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
“어떻습니까?”
왕요상이 반쯤 죽어 가고 있을 때 근로자 측 변호사가 그를 찾아왔다. 그러고는 그에게 동아줄을 내려 줬다.
“왕 사장님이 개인적으로 월급을 주겠다는 보증을 해 주신다면 원자재 및 소모품 그리고 완성품에 걸린 가압류 해지에 동의해 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보증해 준다면?”
“그렇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왕요상은 기회가 왔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 녀석들이 겁을 먹었구나.’
회사가 망하면 월급이고 뭐고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당연하게도 월급도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물러나려는 것이다.
‘이래서 이 녀석들이 바보인 거야.’
어차피 자신의 재산은 하나도 없다. 자신이 보증해 봐야 안 주면 그만인 것이다. 자신이 타는 차도 회사 차원에서 빌린 것이고 사는 집도 회사 차원에서 구입한 것이다. 가전제품부터, 모든 것이 그렇다. 아무리 그들이 자신을 압류한다고 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크흠, 싫다면?”
“네?”
여자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우리는 버틸 만하네. 우리야 망하면 뭐, 어쩔 수 없지. 안 그래? 죽을 각오로 덤빈다고 한 건 자네들이 아니었나?”
“그, 그건…….”
말을 못 하는 어린 변호사.
‘훗, 역시 어린것이라 경험이 없군.’
한 번에 속이 드러나는 얼굴이 되다니, 경험이 부족한 게 확실했다.
“나도 회사를 살리고 싶지만 말이야, 그쪽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 나도 어쩔 수 없다고.”
“개인 보증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요?”
“엄밀하게 말하면 난 주주이자 고용된 경영자일 뿐이라고. 내게는 배상 책임이 없어.”
딱 잡아떼는 왕요상의 말에 민시아는 크게 당황했다.
“그럼 어떤 조건까지 달길 바라십니까?”
“통장의 가압류까지 풀어 줄 것.”
“그건…….”
원자재와 소모품 그리고 완성품의 가압류를 풀어 주고 나면 남은 약점은 통장뿐이다. 그런데 그걸 풀어 달라니.
“싫으면 말든가. 어차피 망해도 난 상관없거든.”
“당신 기업입니다.”
“난 주주이자 경영진일 뿐이라고.”
“…….”
“싫어?”
“상의해 보죠.”
“천천히 해 봐, 천천히.”
왕요상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으하하, 멍청한 놈들.”
결국 이틀 뒤 그들은 동의해 주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승자가 된 왕요상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면서 재빨리 공장을 가동했다. 이제 실사 팀이 와도 문제 될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럼 회사는 정상화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다시 옛날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으하하, 이래서 기름밥 먹는 놈들은 안 되는 거야.”
그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 노형진은 합의서를 받아 들고 역시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난 이해를 못 하겠어. 그 녀석이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애초에 소송해서 아무것도 받아 내지 못한 것은 그 녀석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노형진이 월급을 개인 변제 조건을 달아서 각서를 받아 오라고 하니, 민시아는 강하게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할 수 있죠.”
“이건 후퇴가 아니라 완전히 진 거야. 조금만 더 흔들면…….”
“더 흔들면 기업이 넘어가요. 원래 적을 상대할 때는 퇴로를 열어 줘야 끝까지 안 덤비는 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솔직히 땡전 한 푼 없는 왕요상의 채무 지불 각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과연 그럴까요?”
노형진은 왕요상이 자신의 멱살을 잡는 순간 그의 가장 큰 비밀 두 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비밀을 가지고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함정을 파기로 한 것이다.
‘제대로 된 놈이라면 내가 이 정도까지는 안 하는데.’
사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월급만 받아 주고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하는 짓거리가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제가 법률의 기적을 보여 드리죠.”
“법률의 기적?”
“짜잔!”
노형진의 말에 민시아는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이주일 뒤. 노형진은 민시아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서울의 모 은행으로 불렀다.
“여기서 우리는 마지막 승부를 낼 겁니다. 오늘이 마지막 승부가 될 겁니다.”
“마지막 승부라니?”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 드린다는 거죠.”
“부자?”
“아, 정정하죠. 부자는 아니지만 최소한 그동안의 노력에 부족함이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드릴 겁니다.”
“형진아, 법률의 마술을 보여 준다더니, 그게 은행이야?”
“네.”
“장난해?”
누군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믿고 맡겼더니만 하등 쓸모없는 왕요상의 지불 각서로 바꿔 왔다. 이제는 아예 받을 방법이 없어진 것이다.
“따라오세요.”
노형진은 그들을 데리고 은행으로 향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은행으로 들어오자 은행 직원들과 경비들은 잔뜩 긴장했다. 노형진은 그들에게 왕요상이 보증한 지불 각서와 법원에서 보낸 재산 명시 명령서를 들이밀었다.
“그건 재산 명시 명령서?”
민시아는 한 번에 그걸 알아봤다.
“네, 맞습니다.”
재산 명시 명령이란 채무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이 재산을 숨기는 경우, 법원의 명령을 얻어서 해당 은행에 계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맞아, 그 녀석은 계좌도 없는데.”
“네, 그 녀석이 소유한 계좌는 없죠, 법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의 사람들. 그런데 그걸 보던 직원이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다는 안 됩니다. 너무 많아요.”
“그럼 대표로 저와 민시아 님 그리고 네 분만 오세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앞으로 나오는 다섯 사람. 직원은 몇 번의 확인 절차를 거쳐서 은행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자신들이 알던 금고가 아닌 거대한 문의 다른 금고가 있었다.
“이건?”
“대여금고라고 하죠.”
“대여금고?”
“네, 일반적으로 귀중품을 은행에 보관하기 위해서 쓰는 겁니다. 은행에서 금고를 대여해 주면 보관자는 거기에 중요한 물건을 보관하는 거죠.”
“그런 게 있었어?”
“일반적으로 재산 명시 명령은 소유한 계좌만 공개하게 되어 있죠. 하지만 이 금고는 소유가 아닌 대여이기 때문에 일반적 명령에는 표기가 안 돼요. 그렇기에 명시 명령을 신청할 때 따로 언급해야 하죠, 대여금고 포함이라고.”
“자, 잠깐!”
그 말에 순간 얼굴이 딱딱해지는 민시아. 그 말은 이 안에 왕요상의 중요한 대여금고가 있다는 뜻이다.
“보석이나 그런 게 들어 있을까?”
“그런 거라도 18억은 좀…… 무리이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은행 직원과 법원에서 온 직원 그리고 공식 변호사인 민시아까지 동행한 것을 확인한 직원은 법원 명령에 따라 대여금고를 열었다. 커다란 대여금고를 보는 사람들은 잔뜩 기대했는데 그 안에서 나온 것은 007 가방과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종이뿐이었다.
“이게 뭐야?”
“돈이나 보석이 아니잖아?”
나온 게 보석도 보물도 아니자 실망하는 사람들. 하지만 민시아는 그걸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설마!”
“맞습니다. 무기명증권.”
“무기명증권?”
“이름이 쓰이지 않은 증권입니다. 보통 주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 주주란 이 증권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왕요상은 말로는 전문 경영인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그를 뽑기 위해서는 주주들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설마…….”
“네, 그 주주 자체가 바로 왕요상이니 자기 자신을 뽑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었지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주식이란 재산입니다. 즉, 이건 회사의 재산이 아닌 왕요상 개인의 감춰진 재산이라는 거죠. 무기명증권은 주인이 누구인지 등록할 필요가 없거든요. 하지만 왕요상의 대여금고에서 나왔으니 왕요상의 재산인 거죠.”
“왕요상의? 그러면 우리가 가진 채권은?”
분명 왕요상이 책임지고 변제하기로 했으니 그건 명백하게 왕요상에 대한 채권이 맞다.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당연히 이 주식을 압류할 수 있다.
“이 주식은 이제 우리 것입니다.”
노형진은 주식을 확인하자마자 각각의 돈에 맞게 배당하기 시작했다. 배당은 현재의 주식 가격인 1만 8천 원을 기준으로 이루어졌고 그 결과, 주식을 다 나눠 줬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왕요상에게서 받아야 하는 돈이 남을 지경이었다.
“이래서 흔든 거였어?”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노형진이 회사를 뒤흔들어서 주식 가격을 똥값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원래 가격인 20만 원 정도였다면 이 중 일부만으로도 월급을 변제할 수 있었을 테니 왕요상은 상당한 주식은 잃어버렸음에도 여전히 경영권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1만 8천 원인 주식값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주식을 나눠 줘야 했고, 그 바람에 왕요상의 주식은 단 한 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즉, 경영권을 확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1만 8천 원짜리라고 해도 이게 돈이 되는 건 아니잖아?”
“돈이 안 되면 돈으로 만들면 그만이죠.”
“망했어……. 망한 거야…….”
왕요상은 집에서 주저앉은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가장 든든한 보물인 주식을 직원이 모조리 빼앗아 간 것이다. 그랬음에도 자신의 빚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아빠,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보, 말 좀 해 봐요!”
순식간에 영혼까지 털려 버린 왕요상과 그 가족들. 그들은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있었다.
“이게 말이나 되냐고! 그거, 아빠 회사였잖아!”
회사에서 날아온 퇴거 명령서. 즉, 그는 주주총회의 의결에 따라서 경영인에서 해직당했을 뿐만 아니라 회사 명의로 되어 있는 집에서 나가라는 명령까지 받은 것이다. 심지어 자동차부터 가전제품까지 회사 돈으로 산 모든 것을 두고 말이다.
“이…… 이럴 수는 없어!”
모든 걸 감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찾아냈단 말인가? 아니,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 바람에 모든 걸 잃어버린 것이다.
“아빠! 어떻게든 해 봐!”
딸의 비명에 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포기하긴 일러.”
그가 빼돌린 건 주식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받은 배당금과 회사에서 빼돌린 자금을 모조리 땅에다 묻어 버렸다. 금고에 그 많은 돈을 보관할 수도 없는 데다가 은행에 보관하면 직원들이 압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돈이라도 찾아오자.”
몇 년간 그렇게 빼돌린 돈이 100억에 육박한다. 재기하기에는 충분한 돈이다.
그는 서둘러서 차를 끌고 그곳으로 갔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는 멍하니 서서 그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부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땅. 그래서 돈을 숨기기 딱 좋을 거라 생각해서 구입했고 그 안에 비밀 금고를 만들어서 감춰 놨던 그곳. 그곳에는 불도저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자신도 모르게 휘청거리면서 자신의 비밀 금고가 있던 곳으로 가는 왕요상. 하지만 그곳에는 비밀 금고 대신에 다 무너진 흙더미만 가득했다.
“이보시오. 여기 공사 현장이니까 나가요, 나가.”
공사하던 남자는 주저앉아 있는 그를 쫓아내려고 했다.
“공사? 무슨 공사! 여기는 공사할 곳이 아니라고!”
“그거야 나야 모르지. 소유 회사에서 무슨 건물을 짓는다고 하던데?”
“건물?”
“직원 휴양 시설이라나 뭐라나? 하여간 그렇게 공사를 시작했는데.”
“해, 했는데?”
왠지 모르고 공포감에 바르르 떠는 왕요상이었다.
“100억이 넘는 돈이 땅속에서 나왔다지? 주인도 못 찾고 말이야. 결국 회사가 땡잡았지, 뭐.”
그 말에 왕요상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으아아아! 이건 꿈이야!”
“120억이라.”
노형진은 돈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본 두 번째 비밀. 그건 바로 땅속에 묻어 둔 돈이었다.
“이거, 나중에 돌려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주주총회 현장에 참가한 한 남자가 불안하게 물었다. 갑자기 엄청난 배당금이 자신에게 배당된 것이다.
“돌려 달라곤 못 할 겁니다.”
“왜요?”
“첫째, 이걸 달라고 하면 자신이 돈을 빼돌렸다고 인정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결과적으로 세금 탈루 문제가 나오는데 빼돌린 세금에 더하여 징벌적 과세 그리고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 줘야 하는 임금을 합치면 120억이 넘거든요. 그러니까 돌려 달라고 해 봐야 도리어 감방에만 갈 뿐, 더 안 좋아진다는 거죠.”
“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