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22)
인간 거래자 (2)
“하지만 의료보험이 없을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잖아. 조선족으로 의심되는 거랑 의료보험 혜택을 신청하지 않는 건 다르니까.”
오광훈의 말이 맞다.
자신이 범죄자라고 고백하고 다니지 않는 이상에야 의료보험을 신청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렇지. 하지만 이런 범죄에 연루된 조선족들은 대부분 불법 밀입국자들이야. 정상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외국인 등록 번호가 있다고.”
그리고 의료보험을 신청하기 위해서 외국인 등록 번호는 필수다.
“아, 그렇겠네.”
“그것만이 아니야. 현금이라는 조건도 있지.”
“현금이라……. 하긴 그놈들, 철저하게 현금만 쓰고 다녔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실수로라도 카드를 쓴 적이 없다.
그래서 추측하는 게, 그들이 카드를 가지고 다니지 않거나 애초에 만들지 않아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너무 방대한데.”
조선족, 의료보험 없음, 마지막으로 현금 결제.
그 모든 걸 다 합하면 분명 특정하기는 쉬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쉬운 것도 아니다.
일단 어디서 출산했는지 모르니까.
“아마 경상도 쪽일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유나는 자신이 섬으로 끌려가기까지 걸린 대략적인 시간을 이야기해 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시간일 뿐이었다.
완전히 갇혀 있었던 데다가 정신도 혼미해서 감각이 엉망이었을 테니까.
그래서 그 대략적인 시간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경상도 어디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다지 많지 않을걸.”
그러나 노형진의 생각은 달랐다.
“응? 왜?”
“너 모르냐? 한국 지방의 산부인과 상황은 중국만큼이나 열악한 거. 기억 안 나?”
“아, 맞다! 그랬지.”
한국의 지방의 산부인과 상황은 아주 열악하다. 산부인과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마저도 진료 수준의 산부인과가 대부분이고, 출산이 가능한 산부인과는 아주 드물다.
“거기다가 그들은 사람이 없는 지역에 숨어 있었단 말이지.”
즉, 대학 병원 같은 대형 산부인과를 갔을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소리다.
“생각보다 쉽게 나오겠어.”
오광훈은 눈을 반짝거렸다.
그리고 그날부터 바로 수사 팀에서는 산부인과마다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확인했다.
환자의 개인 정보를 확인하는 것은 영장이 필요하지만 단순히 환자의 존재 유무를 확인하는 것은 영장 없이도 가능했다.
더군다나 전화 초입에 아동 납치 살해 사건 관련으로 조사 중이라고 슬쩍 말만 해도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했다.
그 아이들이 태어나는 곳이 바로 산부인과니까.
거기에다 중국인의 발음에 무보험일 가능성이 높고 치료비를 현금으로 지불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은 노형진의 말대로 가능성을 확 낮췄다.
현대에 대부분의 병원비는 카드로 결제하니까.
설사 현금으로 결제한다고 해도 체크카드로 하지 현금을 인출해서 결제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자 드디어 한 병원에서 증인이 나왔다.
-아, 기억합니다. 30대 정도 되는 조선족 부부 같았어요.
“30대 말입니까?”
계속 허탕을 치는 바람에 힘이 하나도 없던 김정기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혹시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실 수 있나요?”
-뭐, 자세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출산이 거의 임박해서 와 가지고 깜짝 놀랐거든요. 거기다 기존 진료 기록도 없어서 고생 좀 했습니다.
“고생이라니요?”
-애랑 산모가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긴급 수술을 해야 했지요. 애가 거꾸로 서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산모들은 태아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체크한다.
그래서 아이의 상태와 산모의 상태를 전부 의사가 알고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특히나 출산이 가능한 병원의 경우는 대부분 거기서 출산까지 할 생각으로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그 환자는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보통은 초음파 같은 걸로 애가 거꾸로 서 있는 걸 확인하면 돌리는 조절 운동을 하거나 하는데 그런 것도 안 한 건지. 어찌 되었건 그때 오밤중에 갑자기 긴급 제왕절개수술을 했었지요. 요즘은 그런 일이 흔치 않아서요. 그것도 기억에 남는데, 나중에 시커먼 남자가 나타나서 현금으로 전액 결제했다고 하더군요. 그런 경우는 진짜 드물거든요. 거기다 나중에 보니 그 남자들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저기, 혹시 그러면 다른 정보가 없을까요?”
분명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가서 주변을 수색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말 그대로 의심스러운 상황일 뿐이니까.
그런데 의사는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건네줬다.
-안 그래도 저희가 그때 기록을 최대한 뒤져 봤습니다. 황화연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무보험이니 거짓말일 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아동 납치 살인 사건이라고 하니 병원 쪽도 여러모로 확인해 본 모양이었다.
-그런데 등록된 차량 번호가 있더군요.
“등록된 차량 번호요?”
-네. 환자 보호자 차량으로 등록해야 주차료를 내지 않으니까요. 저희는 자동 주차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거든요.
거기다 현금 수납 기능은 없이 카드로만 결제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카드를 쓰지 않는 그들 입장에서는 차량 등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차량 번호가 ○○가○○○○더군요.
김정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동안 어디에 있는지 찾지 못했던 범인들의 대포차, 그게 드디어 발견된 것이다.
* * *
“철저하게 꼬리 말고 다녔네요.”
병원을 찾기는 했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들이 다급하게 산부인과를 찾아온 건 사실이지만 흔적을 많이 남긴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산모나 다른 사람들의 사진은 아예 없고 아이의 사진만 있는데, 신생아의 사진은 대부분 비슷해서 구분이 불가능하다.
병원에서는 자신들과 협력 관계에 있는 산후조리원도 추천해 줬지만 확인 결과 어디에도 그런 사람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여기서 끊어지는 건가요.”
쓰게 웃는 김정기.
하긴,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마지막을 잡지 못하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기분일 것이다.
“씁쓸하기는 한데……. 그런데 노 변호사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글쎄. 화장실 갔나?”
오광훈도 어딜 갔는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는 그때, 노형진은 약간의 협조를 얻어서 그 당시 산모가 누워 있던 침대를 확인하고 있었다.
다행히 마침 해당 침대가 비어 있기도 했다.
“네, 이 침대에 누워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침대를 보신다고 해도 딱히 아무것도 없을 텐데요? 저희가 얼마나 꼼꼼하게 소독하는데요. 이미 천이랑 다 갈았는데.”
‘하지만 나는 전혀 상관없지.’
노형진은 씩 웃으면서 천천히 침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아무리 소독하고 침대보를 갈아도, 손잡이까지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노형진의 머릿속으로 그 당시 기억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침대를 붙잡고 이야기하는 누군가. 그리고 너머에는 익숙한 눈매가 보인다.
“형님, 캄사합니다.”
“감사고 나발이고 빨리 나가자. 우리가 이런 데 오래 있을 상황은 아니잖아?”
“네, 형님. 그래도 아기가…….”
“안다. 일단 퇴원하면 그러자는 거야, 당장 나가자는 게 아니라.”
노형진은 자신이 기억을 읽고 있는 남자가 이들의 보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찌 되었건 안전을 위해 자리를 옮겨야 할 것 같다.”
“네? 하지만 공안, 아니 경찰들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는데요?”
“그렇게 방심하다가 오래 못 하는 거야. 어차피 우리가 오래 있을 상황은 아니고, 여기도 계집애 때문에 나중에 곤란해. 당장 그 계집 어쩔 거야? 쓸데없는 문제 만들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애를 알아볼 줄은…….”
“일단 내가 거래하던 사람이 있으니 그년은 그쪽으로 넘기고 우리는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알고 있어.”
“어디로 갑니까, 그러면?”
“일단은 어디냐면…….”
노형진은 거기까지 기억을 읽어 내고는 씩 웃었다.
“빙고.”
* * *
그들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행적을 남겼다는 점 때문인지 장소를 옮겼다.
그리고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기억에서 그들이 옮겨 갈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충청도의 어느 버려진 산속의 별장이었다.
누가 봐도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고 어째서인지 주인조차도 오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여기라고? 길이 있기는 한 거야?”
소로가 있었던 흔적만 희미하게 보이는 곳. 온갖 덩굴이 잡다하게 자라서 거의 길이 안 보이는 그런 곳.
“확실히 있어. 자세하게 봐. 보여? 풀들이 짓눌려 있지? 차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종종 다닌다는 거야.”
그런 곳이니 숨어 있어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입구 자체가 거의 사라진 수준이니까.
“이런 곳은 도대체 어떻게 찾았대?”
“나야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이 용케도 사람들이 관리하지 않는 공간을 이용해서 숨어 있다는 거다.
“일단 차는 여기다 두고 올라가지.”
놈들이 어떤 상황인지 모르니 조용히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에 노형진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걸어서 위로 올라갔고, 얼마 가지 않아서 안쪽에서 우렁찬 아기 소리가 들려왔다.
“응애응애.”
“누가 있기는 있네.”
제법 커다란 목소리였기에 다들 누군가 있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그 오래된 집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낯선 차량뿐이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차량인가?”
“그럴 수도 있지. 아니면 네가 잘못 아는 걸 수도 있고.”
이 안에 갓난아이가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인도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돌입할까?”
“곤란하지 않을까? 위험할 것 같은데.”
여기에 데리고 온 사람들은 돌입을 할 만한 인원은 아니다.
물론 이들이 경찰이 아니라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가 범죄자의 아지트라면 어떤 무기가 숨겨져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진짜 범인들의 아지트라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고.”
만일 범인의 아지트고 그들이 누군가를 잡아 두고 있다면 인질극이 벌어지다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흠.”
고민하던 노형진은 문득 좋은 생각이 들었다.
“차량을 가지고 들어오는 건 어때?”
“차량? 조용히 들어오자면서?”
“아니, 그러니까 단체로 몰려드는 게 아니라 한 대 정도 가지고 오자는 거야.”
노형진의 계획은 간단했다.
자신들이 차 한 대만 이끌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마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자는 것이다.
상대방이 주인이라면 사정을 설명하고 사과하면 그만이고, 범인이라면 섣불리 주인들을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연히 나와서 상황을 보려고 하겠지.
“아, 그렇겠네.”
일단 상황을 보려고 하는 놈들이 다짜고짜 무장을 하고 나오지는 않을 거다.
“거기다 이쪽에 건장한 사람들이 좀 있으면 아마 남자 조직원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을까?”
보통 사회집단에서 분란이 일어날 만한 문제가 생기면 남자들이 우선 나선다. 특히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경우는 100% 남자가 나선다고 봐도 무방하다.
“좋은 생각이네. 그러면 경계심도 덜할 테고.”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잠시 후 대기하고 있던 수사관 몇 명이 왁자지껄하게 소란을 일으키면서 차를 끌고 올라왔다.
그들은 아예 들으라는 듯 음악도 빵빵하게 틀며 올라왔다.
사실 수사관이 그런 경우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