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3)
“어…….”
홍태호를 진정시키던 성관중 변호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못 봤는데요.”
“그렇지요?”
“작아서 못 본 거 아닐까요?”
그럴 리 없다. 감시하는 사람이 봤다고 할 정도면 상당히 많은 양을 샀다는 건데 그 정도면 상당히 큰 어항이라는 소리다.
‘활성탄이라니, 그걸 도대체 뭐에 쓰려고 하는 거지? 그건 고작해야…… 망할!’
노형진은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빨리 갑시다! 지금이라도 가면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뭘요?”
“지금 살인이 진행되고 있단 말입니다!”
“네?”
성관중은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 통화해서 최원익이 아직도 학교에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런데 살인을 저지르는 중이라니?
“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젠장! 내가 왜 그런 걸 생각하지 못했지?”
“네?”
“활성탄은 숯입니다. 그리고 그 숯을 피우면 일산화탄소가 나오지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죽습니다.”
그 말에 성관중 변호사의 얼굴 역시 새파랗게 질렸다. 그도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죽는 게 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서 갑시다. 그 녀석이 기분 좋아진 건 아마 실행될 시간이 되어서 그런 걸 겁니다.”
그러면 아까부터 불안하게 시계를 본 것에 대한 의문도 다 풀린다.
“어서 가면 어쩌면 살릴 수 있을지도…….”
노형진은 차로 가려다가 멈칫했다. 그 앞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홍태호 씨?”
홍태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노형진과 성관중을 막고 있었다.
“미…… 미안해……. 하지만 못 보내겠어.”
“태호야!”
“나…… 나한테 남은 마지막 복수의 기회야. 병신 같은 아버지라서 직접 죽이지는 못해도 구하는 건 막을 수 있어.”
“태호야! 이러지 마!”
“미안하다. 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가지도 못하고 경찰에 신고도 못 해! 구급차도 못 보내!”
노형진과 성관중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도 그는 떨리는 손에 있는 칼을 놓지 않았다.
“그놈들은…… 죽어야 해…… 내 자식이 죽었던 것처럼. 자기들끼리 아귀다툼해서 죽어도 좋아. 죽었으면 좋겠다. 진짜 이 병신 같은 아비 대신에 서로 싸워서 죽어 주면…… 좋겠다.”
“태호야…….”
“미안하다.”
노형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시간이 얼마 없는데.’
그 녀석의 반응으로 봐서는 작전이 시작된 것은 제법 되었다. 즉,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니 어쩌면 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홍태호 씨, 진정하세요. 이런 복수는 정당한 복수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처벌도 하지 않는 경찰에 신고할까요? 아니면 그들에게 껌값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아들놈을 팔아먹을까요! 전 그렇게는 못 합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절규하는 홍태호.
“이번에 제 마지막 기회입니다. 복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요. 제발 변호사님…… 이쪽으로 오지 마세요……. 오시면…… 찌릅니다.”
차를 막고는 양손으로 칼을 더욱 꽉 부여잡는 홍태호. 자세는 어정쩡했지만 보낼 생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할 수 없지.’
그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일단은 되든 안 되든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어, 소가 넘어간다.”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을 하면서 홍태호의 뒤쪽으로 바라보는 노형진. 그러자 홍태호는 자신도 모르게 엉겁결에 고개를 돌렸다. 의지와는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으라차차!”
그러자 노형진은 바로 돌려 차기를 해서 그의 손에 들린 칼을 날려 버렸다.
“으악!”
노형진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것은 홍태호만이 아니었다. 성관중 역시 너무나 놀랐다.
“노 변호사님!”
“일단은 갑시다! 어서요!”
“네.”
노형진은 바닥에 떨어진 칼을 바로 주워 들고 두 사람을 태운 뒤 최강수의 집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가서 봅시다.”
물론 노형진도 그런 홍태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겨도 되는 법과 어기지 않아도 되는 법이 있다. 그리고 이건 어겨서는 안 되는 쪽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홍태호의 행동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아야 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어서 달려갑시다.”
“네!”
노형진은 전속력으로 내달렸고 잠시 후 저택의 입구가 보였다.
“꽉 잡으세요.”
노형진은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았다. 그냥 뚫고 지나갈 속셈이었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박살 나는 문. 그리고 그 안을 지나서 정원에서 급격하게 멈추는 성관중의 차.
“빨리 갑시다!”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문이 잠겨 있었다.
“이런 젠장!”
거대한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최강수의 모습. 그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런 망할!”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정원에 놓인 의자를 발견한 그는 그걸 잡아서 통유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와장창!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무너지는 통유리.
노형진은 제대로 어질러진 안으로 황급하게 뛰어들어 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최강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봐요!”
불러도 대답이 없는 최강수.
노형진은 그의 목에 손을 댔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맥이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심장마사지를 할까?’
잠깐 그런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이미 늦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20분 이상 지났다는 뜻이니 지금 심장마사지를 해도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늦었습니다.”
노형진은 참담한 얼굴로 부서진 통유리를 넘어 집 안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마도 한 20분 정도 되는 거 같습니다.”
“20분이면…….”
“네.”
홍태호가 자신들을 막은 시간과 비슷한 시간이다. 만일 그 시간을 막지 않았다면 어쩌면 최원익은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크흑흑…….”
그 말에 홍태호는 주저앉아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복수를 성공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아니면 하고 나니 부질없다는 생각 때문일까?
“흠…….”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이건 곤란한 문제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살인 방조다.’
살인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아니, 구조를 방해했다. 그렇다는 건 최하 살인 방조, 재수 없으면 살인의 종범이 될 수도 있다는 뜻.
“노 변호사님.”
그걸 알고 있는 성관중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노형진은 울고 있는 홍태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마음을 굳히고는 품 안에서 아까 홍태호에게서 빼앗은 칼을 꺼내 들었다.
“노 변호사님, 그걸로 뭘 하려고…….”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들 하지요.”
“네?”
노형진은 대답하는 대신에 자동차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슴없이 타이어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성관중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에 노형진이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제대로 출발한 겁니다. 하지만 타이어에 구멍이나서 늦은 겁니다. 그렇지요?”
“네? 아, 네…… 그렇지요.”
전륜구동인 자동차의 앞바퀴에 나 있는 구멍. 바람이 빠진 타이어로는 제대로 속력을 내지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쉽지만 늦은 겁니다. 사고로 인해서요.”
“네, 사고입니다.”
감사의 인사와 복잡한 생각을 담은 시선으로 노형진과 친구인 홍태호를 바라보는 성관중. 그가 왜 그러는 건지 모를 노형진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변호사니까요.”
변호사.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네, 변호사죠.”
그 말에 성관중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찌 되었나요?”
며칠 뒤, 경찰서에 갔다 온 성관중에게 노형진이 묻자, 그는 허탈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노 변호사님의 생각이 맞았습니다.”
“그래요?”
“네, 자기 동생과 엄마도 죽였다고 자백했습니다.”
노형진의 예상대로였다. 어쩐지 아무리 사이코패스라고 하지만 피해자를 죽인 방식이 너무 잔인하다 싶었다.
“동생은 사랑을 독차지해서, 자기 엄마는 자신의 말을 안 듣고 훈계만 해서 죽였답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최강수는요?”
“우리 함정에 빠져서 그렇게 되었지요.”
최강수가 돈을 다 날린다고 생각하자 최원익은 그 돈을 빼앗기 위해 살인을 감행한 것이다.
“치밀하더군요.”
그는 아버지인 최강수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자리에서 낮잠을 자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활성탄을 정해진 시간에 태울 수 있는 일종의 장비를 설치한 것이다. 그걸 모른 최강수는 습관적으로 잠을 자려고 하다가 그대로 죽어 버린 것이고.
“안타깝군요.”
“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런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말입니까?”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죽이려고 한 거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하게 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거든요.”
“그런가요?”
“네.”
“그런데 왜 숯이 아닌 활성탄을 사용한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그렇게 갑자기 죽으면 100% 부검을 한다. 그 후에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죽은 게 알려지면 분명 그 원인을 찾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숯을 산 기록이 있으면 빼도 박도 못하고 1순위 용의자죠.”
“아!”
“하지만 그에 반해 활성탄은 아닙니다.”
애초에 어항을 갈 때 쓰는 활성탄이 숯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또 일반적으로 그 숯이나 석탄을 산 사람을 찾으려고 할 때는 마트를 뒤지지, 활성탄을 생각해 어항 가게를 뒤질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활성탄은 숯보다 작고 입자가 곱습니다. 빨리 타고 흔적도 적지요. 당연히 입자가 고운 만큼 일산화탄소 발생량도 많습니다. 빨리 그리고 더 많이 나오죠.”
“아아.”
실제로 그렇게 살인에 사용된 활성탄이 타고 남은 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가 아니었다면 완전범죄가 되었을 겁니다.”
이 집에 사는 것은 어차피 최강수와 최원익 두 사람뿐이다. 최원익이 도착한 뒤 활성탄 장치를 치우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 봐야 10분 정도. 그 후에 경찰에 신고하면 최강수는 불운하게도 어딘지 모를 곳에서 흘러들어 온 일산화탄소중독으로 죽은 사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고 말입니다.”
“음…….”
노형진의 말에 성관중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사이코패스라서 그런 건가요?”
“아닙니다. 인간은 필요하면 다 합니다. 다만 사이코패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그렇기는 하겠더군요.”
노형진에게 최원익이 사이코패스인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경찰에서는 최원익에게 사이코패스 테스트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40점 만점에 39점이었답니다.”
“완전 미친놈이네요.”
“네.”
노형진은 어쩐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40점 만점에 39점이라니.
‘그냥 있었다면 도대체 얼마나 죽였는지 알 수도 없는 녀석이잖아?’
노형진이 기억하는 사이코패스 만점자는 딱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아래인 39점도 딱 한 명뿐이었다. 그 둘은 말 그대로 ‘인간 백정’이라고 불러도 되는 인간들이었다. 서슴없이 단돈 몇 푼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들.
“설마 풀려나지는 않겠지요?”
“힘들 겁니다.”
분명 정신병을 가지고 있으면 처벌 대신 정신병원에 넣는 것은 법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사이코패스는 아니다. 그들은 정신병으로 보기도 무리거니와 그곳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역대로 사이코패스를 이유로 정신병원으로 넘어간 녀석은 없으니까요.”
“음…….”
“아마 무기징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의 동생을 시작으로, 엄마와 아빠까지 죽인 희대의 사이코패스다. 그런 녀석을 재판부에서 풀어 줄 수는 없다.
“더군다나 홍상인에 대한 조사도 다시 시작했으니까요.”
사이코패스가 벌인 살인 사건 중 가장 먼저 드러난 살인이다. 그게 제대로 수사도 되지 않고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다시 내사가 시작되었으니 아마도 그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은 징계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가장 깊숙히 관련된 사람은 자신이 구해 준 친아들의 손에 죽어 버렸지만.
“홍태호 씨는 뭐하십니까?”
“수사가 종결되는 대로 모두 다 털어 내고 시골로 내려가겠답니다.”
“그래요? 안타깝네요.”
노형진은 입맛을 다셨다. 이겼지만 이겼다고 하기 뭐한 애매한 기분.
“그나저나 그날 죄송했다고 꼭 전해 달랍니다. 본심이 아니었다고.”
“글쎄요.”
노형진은 그 말에 그저 웃을 뿐이었다.
‘본심이 아니었다?’
아니다. 노형진이 봤을 때는 본심이었다. 그게 진심이었고 그걸 위해 그는 죽을 각오를 하고 칼을 집어 들었다. 죽일 자신은 없지만 방해는 할 수 있었기에.
‘뭐, 이제는 상관없지.’
최강수는 죽었고 최원익은 영원히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들의 엄청난 재산은 소송을 통해 피해자들, 즉 홍태호와 그 외에 드러나는 다른 피해자들의 구제에 쓰일 테고 남은 돈은 국가에 귀속될 것이다.
“그런데 태호가 그러더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복수의 맛은…… 달콤하고도 씁쓸하다고요.”
그 말에 노형진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