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48)
범죄의 거래 (2)
하긴, 천억이다. 그게 누구 애 이름도 아니고, 그 돈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계좌에 있으니 유혹이 없으리라고는 볼 수가 없다.
‘아니다. 애초에 천억이 아니겠군.’
수익이 천억이고 원래 투자한 2천억이 있으니 총 3천억이다.
더군다나 리처드 홍은 재능이 없는 애널리스트다. 어쩌다 보니 이번에 운이 좋아서 성공한 거지, 또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니 사법 거래를 통해 아예 돈을 꿀꺽할 생각을 한 것이다.
“곤란하네요.”
사법 거래를 통해 형량을 낮춘다면 아마도 실제 형량은 3년 정도 나올 거다.
원래대로라면 못해도 10년 이상 나와야 하지만, 그게 사법 거래의 함정이다.
업무상 비용 절감을 위해 만들어진 사법 거래지만 확실한 범죄자의 경우는 사법 거래를 통해 아예 형량을 낮추는 것이다.
아니면 이길 가능성이 없는 불리한 처지의 누명을 쓴 피해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이든가.
현실적으로 사법 거래는 득보다는 실이 더 많지만, 여전히 미국에서는 행정적 편의성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네. 문제는 이 사법 거래를 법원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돈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후고요?”
-네.
그다음은 뻔하다. 3년 정도 살고 나와서 느긋하게 평생을 그 돈을 쓰면서 편하게 살겠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도 그런 조사가 있었지?’
한 3년쯤 감옥에 갔다 오는 대신 10억을 준다면 감옥에 가겠느냐는 질문에 한국의 고등학생 30% 정도가 가겠다는 선택을 했다.
고작 10억 가지고도 그 정도 상황이 벌어지는데, 천억이라니.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군요. 도대체 미 정부에서 왜 이딴 거래를 받아들인다는 겁니까?”
이건 말 그대로 ‘거래’다. 즉, 미국 법원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오드빌매니지먼트가 붙었습니다. 아실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오드빌요? 그 악마들이요?”
-아십니까?
“알죠. 하아.”
오드빌매니지먼트.
이름만 들으면 마치 엔터테인먼트 쪽 회사 같지만 그들은 연예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다. 그리고 오드빌매니지먼트는 그런 로비 기업이다.
한국에서야 무슨 로비 기업이 있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미국은 그게 합법이니까 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은 유명하다.
노형진이 그들을 악마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의뢰인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로비스트를 통한 정치적 행위가 합법이기에, 한국도 일본도 매년 적지 않은 돈을 로비스트를 통해 미국 정부에 찔러 넣는다.
‘그러고 보니 한국 로비스트도 문제가 많았지? 그거 알아보라고 해야겠네.’
한국 로비스트는 재미 한국인이 애초에 눈먼 돈을 따먹으려고 만든 회사였다.
안 그래도 한국에서 미국에 로비 비용으로 쓰는 돈은 40억 정도. 그마저도 로비스트들이 슈킹 하고 남은 돈 30억 정도만 로비 비용으로 지급된다.
당연히 로비스트라고 해도 급이 있기 때문에 재미 한국인이 만든 그 기업에서 접선할 수 있는 한계는 명확하다.
즉, 돈을 줄 수는 있지만 그들이 경제나 외교에 실리적인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거다.
단순히 그들은 돈을 주고 로비를 했다는 점을 내세워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서 정부에서 주는 돈을 빼돌리고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일본에서 매년 로비 비용으로 나가는 돈은 대략 4천억.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로비하는 곳이 바로 오드빌매니지먼트다.
당연히 금액이 큰 만큼 그들의 인맥은 어마어마하다.
소문으로는 오드빌의 대표쯤 되면 부통령도 독대할 수 있다던가?
물론 미국의 부통령이 전통적으로 힘이 있는 것은 아니고 유사시를 대비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부통령이라는 직함은 대통령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다.
즉, 그와 독대한다는 것 자체가 미국의 대통령에게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다는 소리다.
‘하아, 그런데도 맨날 미국 정부는 친일이라고 찡찡거리기나 하니.’
애초에 세상은 이상적이지 않다. 정치인도 욕심이 있다.
당연히 주머니를 수천억대로 채워 주는 사람이 우선이지 돈 한 푼 안 주는 한국을 편들어 줄 정치인은 없다.
세상은 결코 이상적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아무리 자신들에게 정의가 있어도 결국 돈이 우선시되는 게 정치판이다.
“오드빌이라면 유명하지요.”
미국의 5대 로비 기업에 들어가는 게 바로 오드빌이니까.
“그런 쪽에서 붙었다면…….”
물론 정치인이 아니라 사법 로비는 불법이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걸 지킬 리가 없다.
당장 부자병이라는 말도 그렇다.
돈이 있는 부자라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도리어 소비에 집착한다는 이유로 부자병이라고 범죄자를 풀어 준 판사가 있었는데, 상식적으로 부자병이라는 학술적으로 인정되는 병 같은 건 없을뿐더러 애초에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법률상 감형 대상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자병이라는 이유로 살인범을 풀어 준 미국 법원이다. 당연하게도 검사는 그 판결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았다.
과연 재판장들과 검사가 한꺼번에 미쳐서 그런 판결을 했을까, 아니면 뭔가 받아 처먹고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어렵지 않은 추측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겠군요.”
미국의 처벌이 강한 건 기본적으로 금융시장의 안정 목적이지만 이런 사건으로 번 돈으로 떵떵거리면서 살지 못하게 하려는 것도 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누구나 이런 사고를 칠 테니까.
하지만 사법 거래를 받아들이고 3년 정도 산다면? 해 볼 만하기는 하다.
“혹시 말입니다, 그 리처드 홍이라는 놈, 미국인입니까?”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한국인입니다. 한국 이름이 홍규혼이더군요.
“한국인이라……. 그러면 이민을 간 건가요?”
-미국 시민권을 가진 건 아니고,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씨구.”
노형진은 그 말에 혀를 끌끌 찼다.
“그러면 수감이 끝나면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되겠군요.”
-그러겠지요.
시민권은 말 그대로 그 나라의 국민이라는 소리다. 이런 경우에는 추방되지 않는다.
그 나라의 국민이니까 당연히 그 나라에서 처벌받고 끝인 거다.
하지만 영주권은 거기에 거주할 권리다. 그렇기에 범죄와 관련되는 경우 박탈당한다.
“아무래도 작정한 것 같은데.”
3년을 살고 나서 미국에서 추방당한다면? 당연히 원국적지인 한국으로 오게 된다.
그리고 국제 규약에 따라, 미국에서 처벌받은 사기에 관해 한국에서 다시 처벌할 수는 없다.
물론 미국에 있는 피해자들이 민사소송 등을 통해 돈을 돌려 달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가능할 겁니다.
일단 아무리 무능하다지만 애널리스트라는 타이틀을 딱지치기로 따지는 않았을 테고, 아마 수익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 감춰 둘 거다.
그리고 대한민국 법원은 힘이 없다.
아무리 법원에서 판결을 내린다고 한들 다른 나라에서 그걸 열어서 돈을 줄 리가 없다.
“더군다나 한국은 카드가 잘되어 있으니까요.”
현금 위주로 돌아가는 나라라면 현금을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회수가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카드가 잘되어 있다.
해외 카드도 한국에서 사용 가능하고, 당연히 사용된 카드값은 해외에서 나갈 거다.
그리고 해외 카드사와 은행은 한국 법원의 판결문 따위 쿨하게 씹어 버린다.
물론 적용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마저도 사전에 정보가 새어 나가면 옮기면 그만이다.
“복잡하군요.”
-네. 엄밀하게 말하면 저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만.
사실 의뢰받은 드림 로펌에서는 재판에서만 이기면 된다.
그 후에 받아 내는 것은 드림 로펌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드림 로펌은 새론의 영향을 받아서, 최대한 사후 서비스를 지원하려고 한다.
“일단은 미국으로 가야겠군요.”
노형진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 * *
“이 와중에 오실 이유까지는 없는데요?”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하이드 맥핀은 노형진을 찾아왔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올지 모르니까요.”
“하긴, 그렇군요. 한국은 아직 격리 대상이 아니지만 그게 얼마나 갈지 모르죠.”
중국은 들어오면 무조건 2주 격리다. 그리고 이탈리아도 그 대상이 되었고, 점점 하나둘 격리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지금까지는 훌륭하게 차단하고 있어서 2주 격리 대상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할 수는 없다.
“그 전에 쇼핑도 좀 해야 하고요.”
“쇼핑?”
“뭐, 이 상황에서 어떤 꼬라지가 날지는 다 알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하이드 맥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형진이 물건이 아니라 기업을 쇼핑하러 왔다는 걸 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일단 당분간은 오지 못할 테니 이왕 온 김에 다 해결해야지요. 그나저나 오드빌은 뭐랍니까?”
“뭐,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거에 대해서는 말 못 한다는 말뿐입니다.”
“하지만 나선 건 확실하고요?”
“네, 확실합니다.”
“흠.”
노형진은 그 말에 고민했다.
‘하긴, 사법 거래에 관련된 협상을 외부에 발설할 수는 없겠지.’
더군다나 3천억이라는 돈이 과연 단순히 판검사 수준에서 끝났을까?
“어디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 예상으로는 주 정부까지는 올라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주 정부라면 거의 끝까지 올라간 셈이군요.”
“그만한 돈이니까요.”
미국은 주별로 법이 다르다. 당연히 판사도 따로 뽑는다.
즉, 주 정부에 올라갔다면 한국으로 치면 정부 부처급까지 올라갔다는 소리다.
“리처드 홍은 뭐 하고 있습니까?”
“현재는 호텔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구속은 안 된 모양이군요.”
“사법 거래가 될 게 확실하니까요.”
그런 경우에 도주할 이유는 없다. 도주해 봐야 당연히 처벌만 강해질 뿐이니.
“일단 타시죠.”
하이드 맥핀의 차에 탄 노형진은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아직까지도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군. 하긴, 그러니까 미국이지.”
이제 슬슬 확진자가 나오는 시점이다. 사망자의 존재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니 경각심이 없는 거다.
“회사에서는 무슨 말 없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직원들과 변호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합니다. 업무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움직일 때마다 열을 재고, 귀찮으니까요. 일부는 마스크 강제 착용이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고소하겠답니다.”
“하라고 하시고, 그런 사람은 자르세요.”
“네?”
“방역이 기본입니다. 그걸 따르지 않는다면 각오해야지요. 아, 그리고 고의적으로 방역을 지키지 않아서 회사에 질병을 퍼트리는 경우에는 그로 인한 손해배상을 한다고 확실하게 못 박아 두시고요.”
“그렇게까지 말입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몇 년은 지옥이 열릴 테니까요.”
그 말에 하이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노형진의 말은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나저나 뻔뻔하게 호텔이라……. 마지막 즐거움이라도 누릴 생각인 걸까요?”
하긴, 어딜 가기도 힘들 거다. 도주하려 한다고 의심받으면 당연히 협상도 물 건너가는 셈이니까.
“그래서 사법 거래는 어디까지 진행되었답니까?”
“모르겠습니다. 검찰 내부에서도 말해 주지 않아서요. 하지만 거의 확정적으로 통과되겠지요.”
“거참, 이놈의 사법 거래는 예나 지금이나 머리 아프게 하네.”
“네?”
“아니요. 아닙니다. 그런 게 있습니다.”
사실 이 사법 거래라는 건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는 사람들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의외로 미국의 처벌의 97%가 이 사법 거래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검사는 사법 거래를 하면 일이 줄어들고 쉽게 실적을 올리고, 피의자는 형량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왜 변호사가 바쁘냐면, 이 사법 거래의 권한은 검사에게 있지 경찰에게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