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50)
범죄의 거래 (4)
합법인 것과 별개로 노형진이 미국의 로비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네. 하지만 그것과 우리가 이기는 건 별개죠.”
“별개라고요?”
“무려 3천억이 달린 일입니다. 그걸 그냥 당해 줄 수는 없죠.”
“그거야 그런데…….”
로비야 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에게 하느냐는 거다.
“오드빌이라면 아마 재판부나 검사에게 했겠지요. 안 그런가요?”
“그럴 겁니다.”
“그러면 그들을 카운터 칠 수 있는 곳을 하면 되죠.”
“카운터를 친다고요?”
“네.”
“노 변호사님,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 판검사의 권위는 절대적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만일 판검사의 권위가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판검사를 병신으로 본다면 사회적 안정성이 제대로 유지되겠는가?
“압니다. 그리고 그들의 명예 역시 인정되고 있지요.”
보통 판사라고 하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국민들은 도둑놈의 새끼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없는 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다.
그럼 있는 자리에서는?
당연히 우리 판사님이라고 물고 빤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한국은 이권으로 물고 빠는 경우가 많다면, 미국은 명예로운 판사님으로 물고 빠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뭐냐면, 실제로 미국의 판사들은 명예직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성적으로 잘라서 판사를 뽑았던 것과 다르게 미국은 변호사 중에서 공명정대한 사람을 뽑아 판사로 선임한다.
물론 강제는 아니다. 그리고 변호사가 판사보다 훨씬 더 많이 번다.
그러다 보니 판사는 명예스러운 사람이라는 일종의 증명 같은 직업인지라 많이 존경받는다.
더군다나 일부 지역에서는 제한적이나마 법률 전문가, 즉 변호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판사 직위를 준다.
말 그대로 명예직인 것이다.
명예롭기로 말한다면 제일 유명한 게 연방 법원 판사들이다. 이들은 종신권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이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말하거나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해직되지 않는다.
또한 이들과 소수의 종신권을 가진 지역 판사들은 행정 판사들을 고용할 권한도 있다.
행정 판사들은 8년의 근무 기간 동안 법원의 주요 업무를 담당한다. 쉽게 말해서 한국으로 치면 1심을 담당하는 판사가 바로 이들이다.
“그리고 그런 판사님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감옥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지요.”
하이드 맥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명예를 더럽히는 것을 싫어하는 게 판사들이지만 그것보다 더 싫어하는 건 감옥에 가는 거다.
그럴 만한 게, 이 세상에 판검사를 좋아하는 범죄자들은 없으니까.
오죽하면 미국에서도 판사와 검사 그리고 경찰이 감옥에 가면 살아서 나올 가능성이 낮다고 하겠는가?
물론 진짜로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감옥 안에서 판사와 검사 그리고 경찰 출신이 집단 린치 또는 동성 간 강간의 주요 대상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좀 더 높은 곳에 로비를 해 준다면야, 뭐.”
“좀 더 높은 곳이라고 하면?”
“감찰부 같은 곳 말입니다.”
“네?”
노형진의 말에 하이드 맥핀은 멍해졌다.
감찰부에 대한 로비라니.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담당하는 판사에 대한 로비는 불법이지요.”
그리고 오드빌은 그걸 몰래 하고 있다.
“그런 경우에 우리가 로비스트를 통해 감찰부에 로비를 한다면? 그건 합법일까요, 불법일까요?”
“어…… 아…… 그러니까…… 모르겠군요. 판례가 없어서요.”
일단 감찰하는 곳도 사법부 소속인 만큼 로비의 대상으로 곤란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쉽게 표현하면 ‘사실은 범죄자로 의심되는 판사가 있는데 그놈을 조사 좀 해 주십시오.’라고 로비를 한다는 건데.
“애매하군요.”
불법으로 보자니 실질적으로 이쪽에서 얻는 이득이 없다. 법은 정상적으로 굴러가야 하니까.
반대로 합법으로 보자니, 돈을 주고 ‘누구 하나 조져 주세요.’라는 것이니 그것도 어렵다.
“맞습니다. 아직은 판례가 없지요.”
일종의 감찰의 지원인 셈이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공개적으로 할 겁니다.”
“공개적으로 말입니까?”
“감춰 봐야 의미가 있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드빌의 정보력이 그렇게 어설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습니다.”
오드빌이 어떤 놈들인가? 악마라고 불리는 로비스트들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정보력 없이 로비하는 놈들은 없다.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는 FBI나 CIA 같은 곳들과도 견줄 만한 게 로비스트들이다.
“우리가 로비를 시작하는 순간 알아차릴 겁니다.”
감출 수 없다? 그러면 차라리 대놓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사건을 담당하는 행정 판사들의 기분이 어떨까요?”
“아, 하긴, 그렇겠네요. 오드빌이 미치지 않고서야 종신직을 가진 판사들에게 로비할 리가 없으니까.”
종신직을 가진 판사들은 그만큼 명예를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사실은 이러이러해서 말인데 돈 받고 사법 거래 좀 받아 주십시오.’라고 하면 받아 줄까?
“종신직 판사라고 해서 무조건 거부한다는 건 아닙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없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사건에 한해서입니다.”
이건 명백하게 피해자가 있고, 한두 명이 아니며, 심지어 피해액이 3천억이다.
그런데 돈을 대가로 사법 거래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제가 아는 종신직 판사들이라면 만화에 나오는 ‘나를 우롱하는 겐가? 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라는 대사를 씹어 줄 사람들일 겁니다.”
“결국 그걸 받아들일 건 임기를 가진 일반 행정 판사라는 거군요.”
“네. 애초에 이제 1심입니다. 1심부터 종신직 판사로 가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최소한 상급심이나 가야 종신직이 나오지 1심은 무조건 행정 판사다.
“2심에 가기 위해서는 검사가 다시 이의신청을 해야 하는데 말이지요.”
사법 거래는 결국 판사와 검사 그리고 피의자의 거래다.
즉, 누구도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테니 당연히 이 사건은 거기서 끝이라는 거다.
“하지만 감찰부에 로비한다는 소문이 돌면 아마 담당 판사와 검사는 기분이 참으로 멜랑콜리 할 겁니다.”
“하긴, 그렇겠죠. 두려움이 찾아올 테니까.”
한국에서 멜랑콜리라고 하면 어떤 만화 때문인지 왠지 성적인 코드가 살짝 섞인 약간은 야시시한 느낌이 있지만, 원래 멜랑콜리는 그게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긴 우울감을 뜻한다. 한국으로 치면 비애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소식을 들으면 판검사들이 다들 그런 기분이 들 거다.
언제 자신의 주소지가 교도소로 옮겨져서 엉덩이가 따일지 알 수가 없으니까.
“아마 사법 거래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될 겁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오드빌이 역으로 로비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 그럴 수도 있지요.”
오드빌이 로비스트계의 악마라고 불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노형진은 그것까지 감안하고 이 계획을 준비한 거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와 목적이 다르니까요.”
“목적이 다르다니요?”
“우리의 로비 목적은 ‘재판 과정에서 불법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감사를 좀 해 주십시오.’입니다.”
감사 권한을 가진 곳에 대한 로비라는 초유의 사태이기는 하지만 일단 불법은 아니다. 도리어 불법을 잡아 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하지만 오드빌은……. 그렇군요. 그들은 그럴 처지가 아니게 되는군요.”
이쪽에서 먼저 로비했고, 그 내용은 부정의 감사.
그런데 그걸 막기 위해서는 역로비를 해야 한다, 돈을 쥐여 주면서.
‘우리가 재판에서 돈 좀 받고 짝짜꿍을 하고 싶은데 눈 좀 감아 주세요.’라고 로비해야 하는 셈이다.
“감사하는 곳을 대상으로 그런 로비를 한다고요?”
“하하하, 미치지 않고서야 그 짓은 못 하겠네요.”
감사할 때 동원되는 사람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들 중 한 명만 정의감을 가지고 눈깔 돌아가서 ‘사실은 이런 로비 받았어욤!’이라고 야부리를 털어 버리면 그때는 같이 감사하던 감사 팀의 목이 줄줄이 날아간다.
‘날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같이 주소지를 교도소로 옮기고 엉덩이를 따이겠지.’
로비스트가 합법이고 로비도 합법이라지만 사회적으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
당연히 로비의 기본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보여도 되는 노형진 측과 다르게 그들은 절대 보이지 않아야 한다.
“과연 오드빌이 어떻게 이걸 막을지 궁금한데요?”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