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57)
숨겨 봐야 소용없어 (3)
아마 인정하지 않을 거다.
물론 국가별로 협약에 따라 다른 나라의 판결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부 영역, 즉 형사사건 같은 것만 적용된다.
민사의 영역은 각국의 이득이나 법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그쪽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당장 한국만 해도 일본의 강제 노역에 대해 배상 명령을 내렸지만 일본은 가뿐하게 씹고 있는 상황 아닌가?
“미국의 재판 결과를 중국이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중국에서 다시 소송을 해야 하겠군요.”
“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죠.”
정작 소송 당사자인 리처드 홍이 미국의 감옥에 있다는 거다.
당연히 중국은 그걸 핑계로 제대로 된 재판도 하지 않을 게 뻔하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그거야, 리처드 홍은 한국으로 추방당하겠지요.”
“그러면 중국에서의 재판은?”
“그거야…… 아, 그러네요. 중국에 갈 방법이 없군요.”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는 전과자다. 그것도 무려 3천억이나 슈킹해 버린 큰 범죄자.
3년 후든 30년 후든, 그건 바뀌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중국은 정당한 권리로 입국 금지를 내려 버릴 수 있다.
“그러면 재판은 없는 거죠.”
당사자가 없으니까.
물론 대리인으로 중국 변호사를 선임하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중국 변호사라고 해서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닐 텐데?
그리고 중국 정부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돈의 주인이 불확실하다고.
“그리고 꿀꺽하겠지요.”
“…….”
확실히 가능한 이야기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중국은 얼마 전에 자국 내 마스크 공장에 대한 국유화를 발표했지요.”
실제로 그걸 실행했다.
물론 노형진이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국유화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그런 상황에 겁먹은 많은 기업들이 중국을 벗어나고 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코델09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다고, 상황은 잘 통제되고 있다고 떠들면서도 기업의 국유화를 감행해 버렸으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중국에서 은행의 달러 출금에 제동을 걸었지요.”
“아, 기억납니다. 한 번에 3천 달러 이상의 출금이 금지되었다지요?”
원래 역사에서는 좀 더 있어야 벌어지는 일이지만 이번 역사에서는 좀 더 빠르게 그런 일이 벌어졌다.
개인의 자산을 국가가 통제한다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다.
더군다나 중국의 화폐인 위안화는 얼마든지 출금이 가능한데 달러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시죠?”
“달러 부족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그 상황에서 과연 중국이, 홍콩에 잠자고 있는 3천억 원을 나가게 해 줄까?
3천억 원이면 달러로는 2억 5,600만 달러가 넘는 큰돈이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리처드 홍은 하필 중국에다가 넣었을까요?”
“우리에게 은행이 발각될 거라 생각하지 못한 거죠.”
그의 계획대로라면 3년만 지나면 감옥에서 나온다.
이후 자신의 계정으로 온라인 계좌 이체를 해서 편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중국에 들어가지는 못하게 되겠지만 온라인 접속이야 어디서든 할 수 있고, 미국의 재판을 중국 정부에서 알 리가 없으니까.
“우리가 그 은행을 찾아낸 게 이 정도의 파급력을 낼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하이드 맥핀은 피식하고 웃었다.
“일단 중요한 건 이 재판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겁니다. 물론 우리가 이 자료를 공개해도 되지만, 이걸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주지사가 끼어든 이상 저쪽이 유리하게 재판이 이어질 것은 당연한 일.
“그렇다고 해서 주지사를 어떻게 하기는 애매한데요. 물론 더 큰 돈을 주면 되기야 하겠지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오드빌과 경쟁하는 그림이 그려질 겁니다.”
화이트스틸과 오드빌이 경쟁하는 구도가 나온다면 당연히 주지사는 더 많은 돈을 받아 내려고 할 거다.
“그러면서 그놈이 이미 받은 돈은 토해 낼 리도 없고.”
결국 남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다.
“그렇다고 자를 수도 없지 않습니까? 주지사는 사실상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보다는 총독에 가깝겠지요.”
어찌 되었건 미국의 주지사는 권력이 막강하다.
그들은 미국 내에서 주 방위군을 움직일 권한이 있다.
주 방위군은 쉽게 말해서 2선급 군대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한국의 예비군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최전방 부대도 가지지 못한 무기로 무장을 하고 있으니까.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공개하는 건 어떨까요?”
“글쎄요. 그것도 방법입니다만, 주지사라는 인간이 그냥 있을까요? 막 나갈 것 같은데요. 어차피 다음이 없지 않습니까?”
이게 공개되면 아마 다음 주지사 선거에서는 확실하게 떨어질 거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그가 아주 대놓고 방해할 거라는 거다. 자신을 엿 먹인 복수로 말이다.
“한국의 정치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레임덕이 온 대통령이라 해도, 누군가를 성공할 수 있게 밀어주지는 못해도 망하게 할 수는 있다.’라고요.”
“하긴, 틀린 말은 아니군요.”
성공하라고 밀어주려면 온갖 후원을 다 해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하지만, 망하게 하려면 그냥 규정대로 하라면서 죽어라 쪼기만 하면 된다.
다른 곳이 규정에 좀 더 여유롭게 대응하는 사이에 공격받는 쪽은 소송과 온갖 서류 요구의 폭탄에 묻혀 버리게 될 게 뻔하다.
“그렇다고 그냥 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대신에 다른 방법을 쓰도록 하지요.”
“다른 방법이라니 어떤……?”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협상을 걸어 보는 거죠.”
“그게 무슨……? 코델09바이러스와 관련해서는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만.”
애초에 코델09바이러스는 없으며 그건 정부의 가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놈이 그것과 관련된 협상을 할 이유가 없다.
그는 주민들의 목숨보다 본인의 신념이 더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런 사람에게 마스크나 식료품을 공급하겠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저런 타입에게는 지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지지 세력이라고요?”
“SNS에 올린 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병신 짓 같아 보입니다.”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런데 아시겠지만, 정치라는 것은 고도로 체계화되어 있는 사회 행동입니다. 물론 주지사가 그런 글을 올린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게 그냥 혼자 욱해서 자기 마음대로 떠든 걸까요? 물론 신념이라는 부분에 관해 이견은 없습니다만.”
“흠…….”
하이드 맥핀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게 욱해서 SNS에 글을 싸지르는 타입이라면 주지사까지 올라가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건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보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지지 세력,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일종의 쇼인 거죠.”
상식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게 정치인의 SNS다.
그런데 그걸 굳이 팔로우 하면서 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기본적으로는 업무와 관련된 소수의 정치인들과 기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진짜 업무에 연관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지지층이라 이거군요.”
“맞습니다. SNS에 보여 주기 위한 쇼죠.”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이런 걸 하고 있다는 일종의 어필. 그게 바로 SNS인 거다.
애초에 그의 지지층이 아니라면 그를 까기 바쁘지 굳이 팔로우 하면서 그가 올리는 글을 볼 리가 없다.
병신 같은 글이 올라오면 기자들이 알아서 기사화해 주는데 뭐 하러 팔로우까지 하면 스스로의 속을 긁겠는가?
“그렇다면 이런 타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성향일까요?”
“좀 무식할 겁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하고요. 일단 식자층이나 공부를 좀 한 타입은 아닐 테고요.”
노형진은 하이드 맥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분석이 맞으니까.
“그러면 그 지지층이 원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보면 되는 거죠. 누차 말했지만 당장 주머니로 들어오는 수억의 돈보다 미래의 표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게 정치인입니다.”
무식하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한 타입은 사실 미국에서는 흔하다. 그들은 보통 생계형 노동자들이다.
지식 계층일수록 진보 성향인 민주당을, 노동 계층일수록 보수 성향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거야 딱히 비밀도 아니다.
“저런 주장, 그러니까 코델09바이러스 부존재설의 기반은 그겁니다. 공장을 멈출 수 없다.”
실제로 현 주지사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세력은 인텔리라고 하는 지식층이 아니라 블루칼라라고 불리는 노동 계층이다.
그리고 노동 계층은 공장이 멈추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게 되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그걸 이용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