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86)
개념 없는 의뢰인 (2)
“그런데 제 체감상 그건 1천 번이 아니라 한 3천 번쯤 돌려야 한 번 나온달까요?”
‘아, 확률 조작?’
그제야 노형진은 기억났다.
비록 한국에 이 일이 터졌을 때 그는 미국에 있었지만, 이야기는 들었다. 그로 인해 한국 게임 회사들이 난리가 났다고 들었으니까.
“그리고 이번에 황당한 일도 있었고.”
“황당한 일요?”
“네. 아까 말했잖아요, 강화한 걸 갈아서 다시 아이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네.”
단순히 재료를 뽑기만 했다고 끝이 아니다.
검을 만드는 데에는 ‘순정한 미스릴’이라는 아이템이 필요한데, 이건 판매를 안 한다.
그럼 어떻게 얻느냐?
강화도 10 이상의 무기 계열의 아이템을 갈아 버리면 그 안에서 확률적으로 떨어진단다.
확정적으로가 아닌, ‘확률적’으로 말이다. 그것도 확률이 0.05%라나?
“안 아깝습니까?”
“아깝죠, 강화 10까지 가야 하는데 강화가 안 되고 날아가면…….”
“아니, 그런 말이 아니고 말입니다.”
그렇게 데이터 쪼가리에 수억씩 처바르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지만 고한병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하여간 그런데요, 어찌 되었건 이게 강화 확률이 더럽게 낮거든요.”
1단계는 100% 강화 성공이지만 10단계의 성공 확률은 1% 정도.
만일 실패하면 당연하게도 아이템은 부서지고 원하는 순정한 미스릴은 안 나온다.
“그래서 강화 성공 확률을 올려 주는 아이템을 처발랐죠.”
“그건 또 얼맙니까?”
“어, 대충 1%에 2만 원입니다.”
그러니까 1%인 아이템 강화 성공률을 100%로 올리기 위해서는 198만 원을 처발라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요?”
“그래서 간단하게 아흔아홉 개를 발랐습니다. 확실하게.”
“아흔아홉 개를 발랐다면…….”
확실히 그거 하나당 1%의 상승을 불러온다는 거니까 성공해야 한다.
“실제로도 성공 확률 100%라고 떴고요.”
그런데 실패했다.
상식적으로 개당 1%의 확률 상승이니 아흔아홉 개를 발랐다면 무조건 성공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갈려 나갔다.
“막 현타가 오는 시점에서 그 꼴을 당하니까 멍하더라고요.”
“아, 그럴 겁니다.”
사실 게임 회사에서 확률을 조작하는 건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 공성전기>는 뭐, 유명하지.’
아직 소문이 안 났을 뿐.
“하여간 말도 안 되는 거잖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GM을 불렀죠.”
“그런데요?”
“답변이 ‘본사는 강화 중 파괴된 아이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습니다.’라고 오더라고요.”
GM을 불렀더니 바로 온 것도 아니고 무려 아홉 시간 만에 와서 전혀 상관없는 매크로 답변 하나 던져 주고는 쌩까 버렸던 것.
상식적으로 100% 강화 확률템이 갈려 나갔다면 당연히 그건 게임 회사 책임이다. 그런데 책임이 없다니.
“그래서 화가 나서 직접 찾아갔죠.”
몇 번 더 GM을 불렀지만 매번 똑같은 매크로 답변뿐이었기에 참다못한 고한병은 직접 본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담당자를 만나기를 원했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안 나왔다고요?”
“네. 분명 제가 계정과 아이디를 말해 줬거든요.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말해 줬고.”
하지만 담당자는커녕 아무도 안 나왔다고 한다.
도리어 직원들은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면서 병신 취급을 했다고 한다.
“병신 취급이라고요?”
“이해가 가세요? 제가 거기에 120억을 썼는데 병신 취급받았다니까요.”
슬쩍슬쩍 손가락질하면서 수군거리는 수준도 아니고, 아예 대놓고 들으라는 듯이 또 개돼지가 왔다고 키득거렸다는 거다.
‘또라…….’
노형진은 개돼지라는 말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 게임사들이 유저들을 보는 시선이 딱 그 정도니까.
실제로 운영자도 아닌 회사 일개 직원도 개돼지라고 인식할 정도이니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앞부분이다. 분명 ‘또’라고 했다.
‘그러면 다른 유저가 찾아온 적이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회사에는 대응 절차가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없다?
‘철저하게 무시한다 이거군.’
“어찌 되었건 말입니다, 화가 나서 기다렸죠. 뭐, 제가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돈 많은 백수고 딱히 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현타가 온 시점이니 게임을 접을 생각을 할 테고, 그럴 때는 게임 내의 경쟁이 하찮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데 퇴근 시간까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요?”
“그러더니 갑자기 경비원이 절 강제로 끌어내더라고요.”
“얼씨구?”
무려 120억이라는 돈을 쓴 사람이다.
그 정도로 돈을 썼다면, 누구 말마따나 백화점이었다면 클레임 때문에 왔다는 말에 점장이 튀어나와서 고개를 90도로 숙였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저를 질질 끌고 가더라고요.”
나중에 따졌더니 경찰이 ‘우리는 당신을 끌고 나온 게 아니라 구해 준 거다. 다시는 그쪽으로 가지 마라.’라고 했단다.
‘흠…… 직접적으로 손쓴 건 아니겠지만…….’
경찰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회사에서 찾아온 유저들에게 법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압박을 가한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찾아간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던 걸로 봐서는 말이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자니 저도 빡쳐서요.”
“쯧쯧.”
“왜 그러십니까?”
“아니, 웃겨서요.”
공성전기>는 기본적으로 유저들의 경쟁 심리를 이용해서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회사다.
당연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거기에 그렇게 미친 듯이 돈을 쓰지 않는다. 돈 좀 있고 경쟁 심리가 강한 사람들이나 그렇게 질러 댄다.
“그런데 정작 자기네 유저 특징을 모르네요.”
경쟁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개돼지 취급을 받을 경우 “에이, 더러워서 접는다.”가 아니라 “어디 한번 죽을 때까지 싸워 보자.”라고 나온다.
‘특히 부자들은 더 그런데.’
부자들은 돈보다 자존심이 우선이다. 그런 걸 알면서 이딴 식으로 행동한다니.
‘자기네들도 부자다 이거네.’
사실 공성전기>를 운영하는 한방소프트가 확실히 부자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어쭙잖은 부자들이야 찍어 눌러서 짓밟아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빡쳐서 복수하려고요.”
“그래요? 흠…… 그래서,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노형진의 용팔이스러운 질문에 고한병이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뭔 말입니까, 그게?”
“간단하게 말해서 이런 거죠. 복수를 원하시냐, 소송을 원하시냐.”
“다릅니까?”
“다르죠. 아주 다르죠.”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복수를 원하시면 돈은 엄청나게 들어가겠지만 한방소프트가 흔들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해 드리고, 소송을 원하시면 간단하게 소송만 해 드리고.”
부자들은 이 부분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소송과 복수가 같기는 하지만 부자들에게 소송은 복수의 수단일 뿐 끝은 아니다.
“음…….”
그는 고민하다가 씩 웃었다.
“복수를 원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의뢰 접수하겠습니다.”
* * *
“그래서 부자들을 위해 복수에 나선다는 겁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군요.”
무태식은 약간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하긴, 그동안 노형진의 업무 스타일을 보면 그런 걸 하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뭐, 부자라고 해서 차별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지만 보통은 서민 위주로 해 주셨지 않습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선택이었죠. 새론의 모토가 뭡니까? 공정한 법률 서비스의 지원 아닙니까?”
일단 돈을 내고 의뢰한 이상 그 사람의 재력이나 신분에 상관없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그게 바로 새론의 규칙이다.
“부자들이야 우리 말고도 충분히 서비스해 줄 변호사들이 많으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서민 위주로 간 거지, 부자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애초에 저도 부자고요. 아니, 여기 변호사들 중에서 부자 아닌 사람이 없을 텐데요?”
“하긴, 그건 그렇지.”
김성식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새론은 수임료는 최저로 하는 대신에 미다스를 통해 직접적으로 수익을 내는 방식으로 변호사들의 수익을 보전해 준다.
그런데 말이 보전이지 그 수입이 일반 변호사들의 수십 배에 달하기 때문에 모든 변호사들이 새론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난리다.
“일단 부자들의 복수라고 해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해 주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는 그 복수가 부당한 것도 아니고요.”
“하긴, 이해는 가네. 120억? 터무니없는 돈을 냈는데 개돼지 취급이라니.”
“더 웃긴 게 뭔지 아십니까?”
“뭔데?”
“그 정도 질렀는데 랭커는 아니랍니다. 순위가 몇이라더라? 120위라던가요?”
“뭐? 랭커가 아니라고? 그 돈을 지르고도?”
“네.”
5년에 걸쳐 120억을 질렀으니 매해 대략 25억씩 지른 셈이다.
“그런데 공성전기>에서 랭커가 되려면 못해도 1년에 50억은 질러야 한다고 하더군요.”
“미친놈들투성이군.”
“현실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일반인은 부자들이 사는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 거기 한 해 수익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조 단위는 가뿐하게 넘는다고 하더군요.”
“미친. 그런 곳을 대상으로 소송해서 이기겠어요?”
무태식은 심각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판부에서 그 돈을 돌려주라고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안 돌려줄 겁니다.”
소송해 봐야 매년 수조 단위로 돈을 버는 게임 회사에서 온갖 로비를 할 게 뻔하니 노형진이 아니라 노형진의 할아버지가 온다고 해도 이기지 못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달라고 하는 것도 현행법상으로는 애매하고요.”
“하긴, 그건 그렇지. 자기가 알고도 지른 거니까.”
데이터 쪼가리라는 걸 알면서도 120억이라는 돈을 지른 거다. 그러니 사기라고 보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체험상 그, 확률 조작이라면서요?”
“그게 문제인 겁니다. 확률 조작이라는 건 말이죠, 말장난이 쉽거든요.”
“네?”
“음…… 이 부분은 고한병 씨가 착각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가령 재료 아이템이 0.1%의 확률로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서 천 번쯤 뽑으면 나와야 정상이라고 하셨죠.”
“네. 그런데 말이죠, 이 확률이라는 건 누적이 아니에요. 그래서 함정인 거죠.”
“그게 무슨 말인가?”
“이런 거죠.”
재료를 뽑을 때 꽝이 나올 경우 확률이 0.1에서 0.2로 누적되어 올라가는 방식이라면 분명 유저의 생각대로 천 번에 한 번은 무조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게임에서 재료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매번 똑같이 0.1로 계산된다.
“결과적으로 1억 번을 돌려서 다 꽝이 나왔다고 해도 그건 그냥 그 사람이 운이 더럽게 나쁜 거지 확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가요?”
“네. 그게 게임의 문제죠. 더 웃긴 건 공성전기>에서는 0.1%도 상당히 높은 확률이라는 거죠.”
검 하나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그 0.1%의 확률로 나오는 재료 아이템의 수가 대략 1천 개라는 게 문제지만.
그것도 다른 아이템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잖아도 공성전기> 측에서 공개한 확률표를 확인해 봤습니다. 눈이 빠지는 줄 알았네요.”
“왜?”
“이 새끼들이 검색을 막으려고 JPG 형식으로 공개했더라고요.”
엑셀 같은 걸로 공개하면 검색이 쉬우니까 수천수만 개의 아이템을 분류도 하지 않고 한꺼번에 그림 파일로 공개해 사실상 검색을 막아 버린 것이다.
“일단 그 기록상으로 보면 말입니다, 가장 확률이 낮은 아이템은 0.00001%입니다.”
“뭐? 0.00001%? 장난하나? 로또 확률보다 낮은 것 같은데.”
“로또 확률이 0.0000122774%일 겁니다. 그러니까 근소하게 로또가 더 높습니다. 더 웃긴 건 이게 아이템이 아니라는 거예요, 재료 아이템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