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79)
“그럼 무슨 수로 쫓아내게?”
“그는 한국인이 아니니까요.”
“한국인이 아니라고 집단 린치라도 가할 생각인가?”
“아니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노형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아닌 만큼 다른 방법이 있지요.”
“다른 방법?”
“네, 후후후.”
“덥군.”
노형진은 공항으로 내리면서 눈을 찌푸렸다.
“와, 진짜 억울하네. 여름휴가도 못 갔는데 일하러 오다니.”
이곳은 휴양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물론 돈 있는 외국인에게는 그렇다. 대부분의 가난한 내국인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미스터 노!”
그 순간 손을 번쩍 드는 한 남자. 노형진이 사전에 연락해 둔 변호사였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이 힘들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뇨, 괜찮았습니다.”
“그렇군요. 이리.”
라드 아민은 웃으면서 노형진을 맞이했다.
“그나저나 제가 부탁한 곳은 찾았습니까?”
“네, 찾았습니다. 부탁하신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다행이군요.”
“하하하.”
라드 아민은 미소를 지으면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한국에서 자신이 세운 법률 회사와 일하고 싶다고 하기에 무슨 사건인가 했는데 생각보다 쉬운 사건이었던 것이다.
‘꼭 잡아야 한다.’
새론은 한국뿐 아니라 이곳에서도 유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점을 세우고 이곳에 관광을 왔거나 이주한 한국인들에게서 사건이 생기면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은 아주 부자라는 것.
이 나라는 가난한 나라다. 변호사가 많지는 않지만 변호사비를 낼 만한 부자는 더욱 적다. 즉,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선을 만들어서 한국 관광객의 사건을 넘겨받는 게 최선이라는 뜻이다.
“생각보다 빠르군요.”
노형진은 솔직히 놀랐다. 계획을 짜고 움직인 지 며칠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실 노형진은 여기까지 왔을 때 그들을 찾았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돈이면 뭐든 되니까요.”
그 말에 노형진은 씁쓸해졌다. 한국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더욱 심하다는 게 기억난 것이다.
‘뇌물인가?’
하긴 단돈 몇십 달러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니까.
“시간은 언제죠?”
“오늘 오신다고 해서 내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군요.”
라민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불쌍하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초한 일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다음 날, 라민과 노형진은 근처의 허름한 가게로 향했다.
“누구세요?”
그들과 함께 온 사람들을 본 가족들의 눈에는 공포가 어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이 좋은 의도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나왔습니다.”
“법원?”
이 나라에도 법원이 있고 경찰이 있으며 판사가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법이 있다.
“아니, 법원에서 왜?”
“압류하기 위해서입니다.”
“압류?”
힘든 삶을 산 것처럼 보이는 여자가 되물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내인가? 아니면 동생? 나이로 봐서는 엄마는 아니겠고.’
어찌 보면 불쌍하다. 저 여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로 이 고초를 겪는 것이니까.
“압둘 아사드가 남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아마도 아내였던 모양이다. 노형진은 그 말에 얼굴을 찌푸렸다. 결혼까지 한 녀석이 한국 귀화라니.
‘결국은 그거군.’
그곳에서 귀화하면 아마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다. 애초에 이들에게 한국으로 들어올 돈이 없기도 하지만.
‘남편을 잘못 만났군.’
노형진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압둘 아사드가 한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버…… 범죄요?”
눈이 커지는 아내. 그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행관은 단호했다. 어차피 자신의 일이 아니니까.
“그 손해배상을 하셔야 합니다. 압류가 떨어졌습니다.”
“압류라니요. 잠시만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압류라는 시스템은 어느 나라나 기본적으로 있는 사항이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 보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 점에 착안해서 성추행의 피해자 가족들을 설득해서 소송을 한국이 아닌 이곳에 내게 했다. 그리고 적당한 뇌물은 그 사건을 엄청난 속력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해 줬다.
“이 건물과 재산을 압류할 겁니다.”
“그건 말도 안 돼요! 이게 어떤 재산인데! 안 됩니다! 안 돼요!”
그녀는 절규했다. 하지만 집행관은 가차 없었다.
“안 돼요!”
그녀의 절규가 들려서일까, 안에서 다른 가족들이 뛰어나왔다. 아마도 강도라도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몇몇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그 소식을 듣고 절망했다.
“안 돼!”
“이건 안 돼!”
사정없이 끌어내지는 집안 세간들.
이곳은 한국과 달랐다. 한국은 일단 딱지를 붙이고 경매일을 기다리지만 이곳은 먼저 끌어내는 모양이었다.
“가지고 갑니까?”
“압류된다고 하면 죄다 가져다 팔아 버리거든요.”
“아아.”
대충 상황을 알 것 같았다. 건물이야 그렇다고 해도 저런 물건들은 빼앗기느니 팔아 버리니까. 실제로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매로 넘어간 건물에 가면 문짝이고 창문이고 다 박살 나 있다. 그래서 경매해 본 사람은 고치는 것을 고려해 천만 원 정도 더 예산을 잡는다.
“으아아!”
“안 돼!”
“제발요! 한 번만 봐주세요!”
그들이 울고불고 하든 말든 집행관들은 가차 없이 그걸 끌어냈다. 노형진은 마음 한구석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돌려줄 거니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몸을 돌렸다.
“다음 장소로 가지요.”
“벌써요? 끝까지 안 보십니까?”
“뭐, 볼 이유가 있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라드 아민은 노형진은 데리고 바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노형진도 마음 같아서는 힘들게 온 것인 만큼 길게 쉬면서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미 일은 산처럼 쌓여 가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그런가요?”
“네, 이미 얘기가 다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안으로 들어간 노형진은 잠시 후 다른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는 이미 다 알면서도 마치 처음 듣는다는 것처럼 모른 척하고 있었다.
“이런, 죄송해서 어쩌지요? 저희가 골라서 보냈는데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상대방. 노형진은 한숨만 나왔다.
‘이건 뭐, 움직이면 돈이네.’
이미 아민 변호사가 다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식으로 모른 척한다는 건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뿐이다.
“여기, 약소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아민 변호사는 미리 준비한 봉투를 슬쩍 건넸고 상대방은 그걸 받아 들고는 책상 아래로 숨겨서 내용물을 확인하더니 빙긋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나쁜 놈이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더럽히면 안 되지요.”
“그렇지요. 하하하.”
노형진은 웃으면서도 돈이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저희가 가능하면 빨리 해 드리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열두 시간쯤 걸릴 것이다.”
역시 뇌물의 힘이라고 할까? 못해도 일주일은 걸리는 것이 고작 열두 시간이라니.
“그러면 가능하면 빨리 부탁합니다.”
노형진은 기왕 이렇게 된 거, 모든 걸 마무리하고 서류를 가지고 가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봉투를 받은 공무원은 행복한 함박미소로 답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그에게 씁쓸한 미소를 보낼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숙소는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압둘 아사드.
아니나 다를까, 노형진의 말대로 상황을 보겠다면서 기다리고 있자 압둘 아사드는 그 본색을 드러내고 과거와 같은 요구를 하고 있었다.
“사람을 부려 먹었으면 먹고사는 정도는 해결해 줘야지요. 그리고 기도실은 왜 없앤 겁니까? 이거 종교 탄압입니다!”
“더 이상 근무 시간에 기도하는 것은 용납 못하겠네.”
“이거 제소할 거예요! 네? 알아요? 제소할 거라고요!”
압둘 아사드를 위시해서 사장실로 몰려와서 행패를 부리는 외국인 노동자들. 이길태는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내가 다시는 외국인 쓰면 성을 간다.’
경찰에 신고해도 ‘한국말 몰라요.’ 같은 말 몇 마디만 하면 귀찮다고 풀어 주니 아주 기고만장한 상태였다.
“빨리 복구해 놔요!”
불쌍한 건 불쌍한 거지만 그렇다고 호의를 권리인 것처럼 마구 요구하는 아사드의 말에 이길태가 한마디 하려던 순간이었다.
“복구해 줄 필요 없습니다.”
“뭐야?”
고개를 돌린 아사드는 노형진과 김성식의 등장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는 사람이다. 그 재판에서 사장인 이길태를 변호했던 변호사들.
‘그래서 너희들이 어쩔 건데?’
아사드는 자신 있었다. 자신들은 한국 법에 따라서 근로자로서 보호받으니 이길태는 자신들을 자를 수가 없다. 물론 불손하다는 것이 해고의 사유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은 외국인이다. 한국어와 한국 풍습을 잘 몰라서 그런 거라고 대충 둘러대면 다시 복직된다.
“여기는 법이 끼어들 거 아니니까 꺼져요.”
아사드는 비웃음을 날렸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아사드의 비웃음을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아사드 씨.”
“뭐요?”
“해외에서 일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아십니까?”
“뭐?”
노형진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사드. 해외에서 일하려면 필요한 것?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뭐긴 뭐요. 비자지.”
한국에 와서 일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취업 비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취업 비자를 받은 자신은 한국의 법의 보호를 받는다.
“그거 말고 하나가 더 필요하지요.”
“하나 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사드. 다른 사람들 역시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대답은 노형진이 아니라 김성식이 대신 해 줬다.
“여권이 필요하지.”
“여권?”
“그래, 너희 나라에서 네가 해외에 나가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 말이야.”
“난 이미 여권을 받았거든?”
“정확하게 말해야지. ‘받았거든.’이 아니라 ‘받았었거든.’이다. 아직 한국어를 다 못 배웠군.”
“뭐?”
하지만 김성식은 대답 대신에 뒤쪽으로 손을 까딱했고 그 뒤에서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그 말에 얼굴이 딱딱해지는 외국인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들을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먹은 건 아니었다. 자신들은 이미 여권과 비자가 있고 불법 체류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들이 자신들을 잡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뭐? 날 추방이라도 하려고?”
“정확한 판단.”
“뭐?”
반쯤 빈정거리는 뜻으로 한 말인데 노형진이 그게 맞다고 하자 아사드는 순간 당황했다. 노형진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당신 나라 말이니까 이게 어떤 뜻인지 알고 있지요?”
“그건…….”
그게 뭔지 몰라서 낚아채서 살피던 아사드의 눈이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서류에 따르면 자신은 한국에서 저지른 범죄를 이유로 여권이 취소된 것이다. 비자가 없어서 한국에 없는 게 아니라 여권이 없어서 한국에 못 있게 된 것이다.
“이게 뭐야! 무슨 짓을 한 거야!”
“보다시피. 그거 찢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사본이니까요.”
아사드는 버럭버럭 화내면서 서류를 찢었지만 노형진이 원본을 줄 리가 없다. 이미 원본은 출입국 사무소에 제출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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