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2)
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사람들이 알아보려 했지만 경찰은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고 가족인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서세영 혼자만 차가운 구치소에 홀로 남아 있는 상황.
“다발성 골절이라.”
쉽게 말해서 차에 뛰어들었던 녀석이 여기저기 부러졌다는 뜻이다.
“전치 14주입니다.”
“큰 부상이기는 하군요.”
“그렇지요.”
“하지만 구속의 사유로는 좀 이상하군요.”
물론 일반적으로 이렇게 크게 다치면 구속 수사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명백하게 남자들이 먼저 강간을 시도한 흔적이 있다. 그런데 피해자를 구속하다니?
“그게…… 상대방이 좋지 않았습니다.”
“좋지 않다니?”
“다음 페이지에 있습니다.”
“다음 페이지?”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페이지를 넘기고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욕을 했다.
“썅.”
다발성 골절의 피해자인 유장선의 아버지 직업이 대검찰청 중수부 부장이었던 것이다.
‘김성식 변호사님의 아들일 리는 없고.’
애초에 성도, 나이도 다르다. 더군다나 그는 전 중수부장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한 가지뿐.
“신임 중수부장 아들이군요.”
“네.”
“아, 돌겠네.”
노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대검찰청 중수부장의 파워는 엄청나다. 김성식이 그 자리에 있을 때 그 강력한 파워로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진짜로 그 자리에서 한마디 하면 어지간한 문제들은 쉽게 해결되는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리의 파워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노형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대단한 파워가 적이 되었단 말이지.’
노형진으로서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이건…… 회의해 봐야겠군요.”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노형진은 심각하게 말을 꺼냈다.
“사람을 모아 주세요. 바로 회의를 해야겠습니다.”
“유창렬에 대해서 아십니까?”
“신임 중수부장 말인가?”
“네.”
노형진의 말에 김성식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두 손을 비비면서 입으로 소리를 낸 것이다.
“딸랑딸랑.”
“네?”
“능력 없이 로비와 아부로 올라간 녀석이지. 당연히 그다지 중립적인 녀석도 아니야. 철저하게 권력 지향적이지.”
“그렇군요.”
“왜 그러나?”
“그게…… 사실은…….”
노형진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다들 한숨을 쉬었다.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자마자 충돌하는군.”
“그러네요.”
그렇다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극단적으로 피해자에게 적대적이었던 경찰과 그럴 만한 사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진행된 구속 수사까지 모든 것이 다 말이다.
“도대체 왜 그 녀석이 강간 미수가 된 겁니까?”
“그게 말이죠.”
진술서상으로는 친구들과 늦은 여름휴가를 갔다가 술을 마시고 실수했다고 한다. 그걸 실수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말이다.
“그럼 강간으로 고소를 넣어 보지 그러나?”
“넣었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법에 대해 몰라도 그 정도 상식은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그들을 강간 미수로 고소를 넣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저께 판결이 나왔답니다.”
“벌써?”
“네, 심신상실을 이유로 집행유예 나왔습니다.”
“이런 미친!”
남상주 변호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상황대로 가면 가해자인 유장선은 처벌받지 않고 피해자인 서세영은 처벌받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체계 아시잖습니까?”
“끄응…….”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면 심신상실을 이유로 형을 감경해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강간이 아닌 강간 미수다 보니 아예 집행유예 같은 가벼운 처벌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서세영 양은 그게 아니겠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중수부장의 아들을 전치 14주가 나오게 했으니 엄청난 보복을 받을 게 뻔하다.
“기가 막히는군.”
“원래 그렇잖습니까?”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법을 보다 보면 허점투성이다. 심지어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많은 보복을 당하도록 법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보니.’
노형진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 중수부장은 얼마 가지 못해서 경질된다. 뇌물 수수와 권력 남용 등의 혐의로 말이다. 애초에 딸랑거리는 힘으로 얻은 자리다 보니 그 자리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아, 조금만 있으면 되는데.’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자신과 부딪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후환은 없겠지만.’
어차피 몇 개월 내에 날아갈 파리 목숨이니 후환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그가 아주 강력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
“일단은……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
“강간 사건부터 시작하죠.”
아무래도 모든 사건의 원인부터 파고드는 것이 정석이다.
“이번에는 손 변호사와 함께하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하게.”
아무래도 이런 사건의 피해자가 여성이니 여성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피해자가 편할 것이다.
“일단은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습니다.”
권력자들이 관련된 사건의 공통점은 그 사건이 무서울 정도로 빨리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피해자를 구해 줄 수 있는 시간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사람들 아십니까?”
“몰라요.”
일단 노형진은 그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역시 술을 사 가지고 온 걸까요?”
손예은 변호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문밖을 바라보았다. 늦은 여름의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깥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것 같군요.”
저들의 주장은 간단하다. 술을 마시고 실수했다는 것. 그리고 그걸 이유로 저들은 처벌을 면했다. 심신상실이라는 변명이 먹혀 버린 것이다.
“참 웃긴 일이지요.”
“뭐가요?”
“술을 마시고 심신상실인지 알 게 뭡니까.”
“하긴 그렇지요.”
전 세계에서 술 마셨다고 봐주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을 한다. 오로지 한국만 심신상실을 이유로 선처한다.
“문제는 그게 너무 뻔하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무슨 범죄를 저지를 때 미리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나중에 잡혀서는 술을 마셨다고 심신상실을 주장하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범죄를 저지르려고 술을 마셨는지, 술을 마시고 실수한 건지 알 게 뭐냐.’
실제로도 수많은 강간범들이 용기를 내거나 나중에 죄를 면탈할 목적으로 술을 마시고 강간을 시도한다.
“일단은 술은 그 두 명이 가지고 온 모양입니다.”
노형진은 주변의 마트나 가게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 주면서 물어봤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몇 군데에서는 적극적으로 내부 카메라까지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수일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계획적으로 온 것 같군요.”
“어째서죠? 술을 마시고 실수했다는 것과 여기서 술을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아닌가요.”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일견 아예 관계가 없어 보인다.
“손예은 변호사님.”
“네.”
“이 세상에 주변과 관계가 없는 건 없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손 변호사님이 봤을 때 여기는 뭐가 있나요?”
그 말에 주변을 쭈욱 둘러보는 손예은 변호사. 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과 밭 그리고 논뿐이다. 노형진의 아버지가 여기로 온 것도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만큼 이쪽은 번잡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것도 없네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게 계획범죄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죠?”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네?”
손예은은 이해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것과 계획범죄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간단합니다. 남자 두 명이 바다도, 계곡도, 산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곳에 놀러 온다. 그것도 진탕 취할 만큼 술을 마시러? 그럴 리 없죠. 그런 경우는 보통 헌팅을 위해 바다나 수영장에 가지,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올 리 없습니다. 애초에 이쪽 동네에는 모텔은커녕 민박하는 곳도 없습니다. 이런 곳에 올 이유가 없지요.”
“아!”
그제야 손예은은 그게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놀러 왔다가 술을 마시고 실수했다고 하는데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놀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적당하게 돗자리를 깔고 술을 먹을 공간조차도 없다.
“그렇군요.”
남자 두 명이 그런 곳에 놀러 간다? 무슨 무전여행이나 국토 대장정도 아니고?
‘그 둘이 게이가 아닌 이상에야.’
그럴 리 없다.
“즉, 그들이 여기에 왔다는 것 자체가 계획범죄입니다. 그리고 설사 어쩌다 왔다 하더라도 반대로 말하면 무계획적으로 왔다는 것인데 이 주변에 술을 구할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아무래도 술을 파는 가게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곳은 외지인이 드물지요. 당연히 외지인이 들어와서 술을 사 가면 기억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즉, 온 적이 없다는 거죠.”
“…….”
“그건 한 가지 결과로 귀결됩니다. 술을 가지고 왔거나 아예 술을 마시지 않았거나.”
“하지만 외부에서 마시고 올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지요. 하지만 여기서 술을 먹을 만한 공간은 차로 30분거리에 있는 읍내뿐입니다. 그곳은 그들의 취향이 아니죠. 그리고 말입니다. 여기로 들어오는 길은 생각보다 험한 편입니다.”
노형진은 아버지가 여기에 살고 있어 잘 알고 있었다. 포장된 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시골이다 보니 제대로 된 가로등도 없을뿐더러 그나마도 무척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다.
“즉, 사람에 대해서 순간적인 성욕을 참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였다면 그 상태에서 운전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아…….”
범죄가 일어난 시간은 대략 10시경. 해가 떨어지고 주변이 컴컴한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술에 취해 운전해서 이 안으로 들어온다?
‘그럴 리가.’
즉, 그들은 서혜영을 노리고 들어왔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접점이 어디냐는 건데.’
사람들은 성 범죄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는 사람, 최소한 어디서 본 사람에게서 일어난다. 지나가다가 ‘아, 저 여자 강간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표적을 정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편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분명 이 기록에 따르면 그들한테서 심한 술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요?”
손예은은 노형진이 놓친 부분을 확인하려는 듯 손에 넣은 사건 기록을 확인했다.
“분명 그들은 응급실로 들어올 때 심한 술 냄새가 났다고 되어 있어요.”
“네, 맞습니다.”
“그럼 술을 마신 거 아닌가요?”
“말씀드렸다시피 여기는 술을 마시고 운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럼 술 냄새가 났다는 병원 측 증언과 충돌합니다.”
병원 측에서 거짓말할 리가 없다. 술 냄새가 나니까 난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심지어 그들을 데려간 구급대원들도 동일한 증언을 했다.
“한 가지 가능성이 있지요.”
“어떤 가능성요?”
“술을 마시지는 않았지만 술 냄새가 나는 가능성.”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가능하지요. 가령 옷에다가 술을 뿌린다거나 하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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