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31)
자식을 위해서 (4)
가령 누군가가 자살하기 위해 트럭 앞에 뛰어들었는데 그걸 못 피했다고 트럭 운전사를 기소하는 검사들이 있다.
상식적으로 운전자는 피해자이지 가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검사는 운전자를 가해자로 못 박고, 1심에 2심에 3심까지 걸어 가면서 말려 죽이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운전자에게 원한이 있어서가 아니다. 자기가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그게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다.
짐을 가득 실은 20톤짜리 트럭이 단 1초 만에 브레이크를 밟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아무 상관도 없는 거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더군다나 승소 비용이 사라졌거든요.”
과거에는 형사사건에서 이기거나 형량을 깎는 데 성공하면 승소 비용이라고 해서 돈을 더 줬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법이 되었다.
“그러니까 더 당당하게 한탕 하고 손절하겠다 이거죠.”
어차피 알시아는 살인미수이니 못해도 5년 이상은 감옥에 있다 나올 테고, 아무것도 없는 여자가 혼자서 변호사에게 복수하기는 힘드니까.
“그러면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죠?”
“아직 1심은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제대로 시작하죠. 그날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날…….”
자신이 남편이었던 주중환을 죽이려고 했던 그날.
알시아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듯 눈을 찡그렸다.
“아, 대충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두들겨 패고 그랬다고요?”
“네. 국밥집 아주머니가 이야기해 주셨나요?”
“네.”
“그러니까 그날…….”
그날은 평소와 같았다.
밖에 나갔다 온 남편은 또다시 알시아와 딸인 주도연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자기 인생에서 꺼지라고, 너희만 없어지면 된다면서.
“평소에도 이혼해 달라는 소리를 많이 했나요?”
“많이 했죠. 하지만 도연이 때문에 참았어요.”
주중환의 요구는 간단했다.
이혼하고 필리핀으로 돌아가라. 도연이도 데리고 꺼져라.
돈은 땡전 한 푼 못 주니까 꺼져라.
“흠…….”
노형진은 그 말에 턱을 문질렀다.
‘하긴, 자격지심이 터지는 경우가 있지.’
주중환과 알시아는 사랑해서 결혼한 사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결혼 생활을 잘 이어 왔다.
둘 사이에 주도연이라는 예쁜 딸도 뒀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공해서 서울로 올라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건가?’
한국은 혈통주의가 강한 나라다.
주중환의 가슴 한편에는 자격지심도 있었을 거다. 자신이 왜 한국 여자와 결혼하지 못한 거냐는.
‘시골에서야 문제가 될 게 없었겠지.’
시골이야 거의 사람들이 없고 대부분 노인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비슷한 처지인지라 비슷하게 국제결혼을 많이 한다.
당연히 그런 자격지심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러나 성공하고 서울로 올라오니 환경이 바뀐 거다.
화려한 서울. 이제는 충분한 돈.
거기다 이런 동네에는 소위 미시풍이라는 여자들이 많이 다닌다.
돈이 있는 동네다 보니 빡세게 관리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십수 년을 같이 살고 늙은,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고생해서 더더욱 늙어 보이는 필리핀 여자 알시아와, 젊은 데다 관리까지 빡세게 한 여자들을 놓고 비교하면 당연히 알시아가 밀릴 수밖에 없다.
“일단 구타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날도 나가서 술을 먹고 왔고 언제나처럼 구타했다.
자세한 동선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진짜로 죽은 게 아니니까.
하지만 평소에는 맞아 주기만 하던 알시아가 왜 갑자기 칼을 들고 주중환을 찌른 것일까?
맞는 게 지쳐서? 아니면 뭔가 욱해서?
‘그건 아닐 거야.’
맞는 여자들은 아주 심한 공포감을 품게 되고, 자포자기 상태에 들어간다. 그래서 대부분의 매 맞는 아내나 남편을 보면 자기가 맞을 만해서 맞았다고 생각한다.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그날은 칼을 휘둘러서 주중환을 찌르고 도망가셨지요.”
“그게…….”
알시아는 그때가 생각나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하긴, 그녀가 한 진술대로라면 그러고도 남는 일이기는 하다.
“진술서에는 주중환이 따님인 주도연 양을 보면서 허리띠를 풀었다고 적혀 있더군요. 맞습니까?”
“맞아요.”
술에 취해서 들어온 주중환은 아내인 알시아를 무력화하고 강간하려고 했다.
사실 그런 경우가 제법 많다.
범죄자들이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하는 일종의 과정 같은 거다.
“하지만 그날은…….”
그날은 달랐다.
몇 번이나 당했던 일이었기에 알시아는 아내니까, 그러니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주중환이 바라보던 대상은 알시아가 아니었다.
열 살짜리 딸 주도연이었다.
그 미친놈이 주도연을 보면서 허리띠를 풀기 시작하자, 알시아는 직감적으로 주중환이 뭔 짓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차렸다.
“정신이 없었어요.”
자신이 맞아도, 그보다 더한 꼴을 당해도, 그래도 참았다.
알시아가 주중환을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런 감정은 애초부터 없었고, 조금씩 생기던 감정조차 이제 모조리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혼하지 않고 버틴 건 딸을 위해서였다.
딸은 한국인이다. 필리핀에 가서 살 수도 없고, 필리핀에 가더라도 제대로 적응도 못할 게 뻔하다.
“흠…….”
노형진은 그녀의 말에 차분하게 진술서를 바라보았다.
‘그럴 만하지.’
실제로 많은 가정 폭력 사건이 외부로 터지면서 이혼으로 향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식 문제다.
자식이 폭력의 대상이 되거나 자식이 장성해서 반대로 두들겨 패던 부모를 제압하거나 맞던 부모에게 이혼하라고 하거나.
‘부모는 강하다는 건가?’
아마도 알시아는 모성애가 강한 타입일 거다.
실제로 필리핀 여자들은 드세기로 소문났다.
그도 그럴 게, 한국과 다르게 필리핀은 모계사회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기준으로 가정이 꾸려진다.
그런 사회에서 자란 그녀가 수년간 폭력을 참은 건 오직 딸인 주도연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선을 넘은 순간 참을 수가 없었던 거군요.”
욕망이 번들거리는 시선이 자신이 아닌 딸을 향했을 때, 결국 그녀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 아래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지키려고 하던 딸이 아닌가?
“그래서 찌르신 거군요.”
“네.”
주중환은 등을 돌린 채 허리띠를 풀고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두들겨 맞던 알시아는 주방 쪽으로 몰려 있었고.
알시아는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는 본능적으로 칼을 찾아서 주중환을 찔렀다. 그리고 그놈이 쓰러지자 바로 주도연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렇게 도망치고 40분쯤 배회하다가,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서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주중환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검찰도 주중환의 진술을 믿고 있는 상황이고요.”
‘내가 봐서는 그냥 믿어 주는 척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노형진이 봐서는 그렇다.
더군다나 주중환은 경비원에게 구조받을 당시에 바지를 제대로 입고 있었다.
즉, 현장에서 그걸 증명할 방법이 없는 거다.
“그걸 뒤집을 만한 증거를 제출하거나 해야 하는데.”
문제는 검찰이다.
검찰은 법적으로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출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법을 가장 지키지 않는 집단은 아이러니하게도 검찰이다.
당연하다. 기소 독점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뭔 짓을 해도 자기들이 기소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물론 경찰에 검찰 전담 수사 팀이 생기면서 그들이 기소 권한을 가져가기도 했고, 공수처가 생겨서 그들이 검사를 기소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에 약점이 있으니, 그들이 기소할 수 있는 검찰의 범죄는 부패 범죄에만 한한다는 거다.
“즉,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뇌물을 받고 죄를 뒤집어씌운다거나 한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저 같은 경우는요?”
“그게 문제죠.”
검사가 자신의 실적을 채우고 인사고과를 높이기 위해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감추고 불리한 증거만을 제출하는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로 해당 범죄의 공소권은 검찰에게 있다.
“말이 안 되는 거죠.”
검사가 저지른 범죄는 소속 조직인 검찰만이 처벌할 수 있으니 당연히 제대로 굴러갈 리가 없다.
“실제로 검사들이 그런 짓거리를 엄청 많이 합니다.”
더군다나 이걸 외부에서 인식하기도 힘들다.
일단 사건의 검사 주체가 검찰인 데다가, 그 증거를 넘겨받기 위해서는 법원을 통해야 하는데 그 법원에 제출되는 증거 명단 역시 결국 검찰이 만드는 거니까.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물론 그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검찰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조직이라는 것.
‘수차례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애초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결국 아무리 개혁해도 아래에 있는 놈이 올라오는 거다. 이미 오염될 대로 오염된 조직이 과연 그 정도로 바뀔까?
‘그래서 어떻게든 기소권을 나누려고 했는데.’
그래서 노형진은 검사에 대한 기소권을 단순 부패 범죄가 아니라 기타 범죄에 대해서도 공수처나 경찰의 검찰 수사 전담 팀에 주는 걸 권유했지만, 검찰에서는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치인들을 압박했다.
그러자 결국 정치인들도 검사의 일반 범죄에 대한 처벌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해서 그냥 당해 줄 생각은 없었지만.
“일단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