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35)
세상을 보는 시선 (4)
새로운 사법 시스템의 문제점을 이미 보고 있던 노형진이었다. 그걸 가만둘까?
돈도, 명예도 없는 판사의 자리.
그리고 그곳에 가야 하는 변호사들.
실력 좋은 변호사들은 가고 싶어 하지만 돈이 발목을 잡는다.
그런데 새론의 변호사들은? 거기서 자유롭다.
싼 수임료를 보완하기 위해 새론에서 미다스를 통해 투자하니까.
그리고 투자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당연히 판사가 된다고 해서 굳이 해지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럴 수도 없는 게, 정치인들이 새론을 통해 미다스에게 직접 투자해서 번 돈만 해도 수백억이 넘는다.
만일 공직에 진출했다고 그걸 막아 버린다면 정치인들부터 다 털려 나가게 된다.
당연하게도 정치인들이 자기 돈줄을 날려 버릴 리는 없다.
즉, 새론의 변호사들은 다른 곳보다 실력도 좋고 사회적 평도 좋은 데다가 자금 부담마저 없는 것이다.
이런 이들이 대거 법원에 입성한다면?
실제로 얼마 전부터 판사로서 법원에 입성하는 새론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늘고 있다.
“김승연 변호사님은 나중에 판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지요?”
“네!”
“그때 잘 부탁드립니다.”
노형진의 말투는 가벼웠지만 김승연은 문득 그런 노형진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이게 천재라는 거구나.’
부패한 자들은 사람들이 모르는 몇 수를 파고들어서 준비해 놨지만 노형진은 그보다 더 몇 수를 노리고 있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김승연은 다시 한번 존경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 * *
“새론? 씨팔, 새론이라고? 아니, 새론이 거기서 왜 튀어나와? 그 베트남 년이 뭐 대단하다고!”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는 우순창 검사였다.
그는 얼굴이 시커먼 외국인 여자가 피의자로 들어오자 일 좀 편하게 할 수 있겠다고 웃었었다.
외국인은 자기방어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런데 갑자기 새론이라는 핵폭탄이 끼어들었단 말에 그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욕을 퍼부어 대는 우순창 검사의 말에 옆에 있던 김학진 수사관이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필리핀 여성입니다, 베트남이 아니라. 그리고 이미 한국 국적을 딴 한국 사람입니다만?”
“지랄. 국적 따면 다 한국인이야? 타고난 핏줄이 어디 가는 거 아니잖아? 그리고 거기도 더럽게 못사는 동네 아니야?”
“다릅니다. 그리고 재판하는데 국적이 왜 들어갑니까? 공정하게 하셔야지요.”
“입 닥치고 있어. 어디 수사관 따위가 검사한테 입을 털어?”
‘저 새끼가 진짜.’
우순창의 말에 김학진은 이를 박박 갈았다.
‘개 같은 새끼. 아버지 백으로 검사가 된 거면서.’
사실 두 사람은 같은 로스쿨을 나온 동기다.
하지만 실력은 김학진이 훨씬 나았다.
김학진이 1~2등을 다툴 때 우순창은 중위권도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걸로 우순창에게 밉보인 게 문제였다.
가난하고 힘없는 김학진이 우순창을 매번 이기자 우순창이 김학진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다만 성적 차이도 어마어마하게 나는데 왜 굳이 자신에게만 자격지심을 가지는지는 김학진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데면데면한 관계는 변호사 시험에 둘 다 합격하면서 틀어져 버렸다.
현행법상 변호사 시험 합격자는 일정 기간 로펌 등지에서 연수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김학진은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나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간신히 연수를 마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도 어떤 로펌에서도 그를 받아 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내기도 했지만 초임 로스쿨 개인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결국 변호사를 포기하고 다시 공무원 시험을 봐서 검찰 공무원이 되었다.
변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이 있기 때문에 검찰 공무원으로 합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때마침 검사로 들어온 우순창의 아래로 발령되었다.
기묘한 타이밍.
하지만 김학진은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자신이 불운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우순창과 만나 술을 마시던 날, 술에 취한 우순창이 떠든 말에 이 모든 일이 그의 소행이라는 걸 알았다.
심한 자격지심을 견디다 못한 우순창이 아버지에게 말해서 김학진이 연수를 못 받게 방해한 것이다.
그 결과가 김학진이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고 검찰 공무원으로 입사하는 것이었고.
의외로 그런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많다.
우순창은 그 사실을 알고 일부러 자신을 여기에 배정한 것이다.
‘병신 같은 새끼.’
우순창이 그렇다고 실력이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순창은 성적도 아버지의 힘으로 받았다. 아버지가 힘이 있다는 이유로 가점을 받았음에도 간신히 중위권 정도였다.
진짜 토론이라도 할라치면 중하위권에 있는 학생에게도 개털린 게 우순창이다.
“너 이 새끼 옷 벗고 싶어?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어? 어? 씨팔, 그지 같은 새끼들이 비슷비슷하지. 필리핀이면 어떻고 베트남이면 뭐 어때? 너도 그지새끼라서 뭐 동병상련 그런 거 느끼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우순창은 매번 저딴 식으로 사람 속을 긁었다.
“하여간 없는 새끼들 수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우순창.
“끄응, 그나저나 이거 어쩐다. 새론, 그것도 노형진이면 완전 머리 아픈데.”
잠시 고민하던 우순창은 전화기를 들어서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중으로 아까 시킨 거 다 처리하고 나가라. 알았냐?”
“네.”
물론 그걸 다 하기 위해서는 퇴근을 포기해야 한다.
우순창이 떠나자 김학진은 눈을 찡그렸다.
그가 나가자마자 입에서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개 같은 새끼. 자기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아오, 씨발.”
원래대로라면 그 검사 자리를 추천받아야 하는 건 그였다.
하지만 우순창이 그 자리마저 빼앗은 거다.
자신은 인성 부족이라는 이유로 추천을 못 받았다.
물론 당연히 그 뒤에는 우순창의 아버지가 있고.
“미친 새끼.”
김학진은 눈을 찡그리면서 일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자 두려면 이 일을 어떻게든 끝내야 하니까.
그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승연이가 웬일이지?”
김승연. 자신의 학교 후배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사실 김학진은 후배가 연락하는 게 반갑지 않았다.
자신은 실패해서 공무원이 되었는데 후배들은 변호사라니.
-아, 선배. 오랜만이에요.
“시간 없다. 빨리 말해.”
-아니, 어떻게 학교 때랑 그대로야? 그러니까 여자한테 인기가 없지.
“그래, 인싸가 아싸의 인생을 어찌 알겠냐? 나 할 거 많아.”
-선배, 순창이 그 새끼 아래에 있다면서요?
“하아! 너한테까지 소문났냐?”
그 말에 김학진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같은 업계에 있으니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없다.
-변호사 안 해요?
“자리가 있어야 하지.”
물론 우순창의 아버지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론이나 하늘에는 그의 손도 닿지 않는다.
그 정도가 아니라, 부당한 압력을 넣는 순간 우순창의 아버지는 아마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 주소를 길바닥으로 옮기게 될 거다.
-혹시 새론 안 올래요?
“새론?”
그 말에 김학진은 혹했다.
사실 많은 변호사들의 꿈이 바로 새론에 가는 것이 아니던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해서 문제인 것뿐이다.
하지만 새론은 여러모로 한정된 인원만 받아들인다.
성적뿐만 아니라 인성까지 확인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 변호사님이 한번 만나 뵙고 싶다는데.
그 말에 김학진은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제출된 서류로 시선을 향했다.
변호사 선임계. 그리고 거기에 박혀 있는 노형진이라는 이름.
“으음…….”
김학진의 입에서 고민으로 가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 * *
“스카우트라면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정보를 달라고 하신다면 거절하겠습니다.”
김학진이 노형진을 만나자마자 한 말이다.
그 말에 노형진은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가 피식 웃었다.
“그럴 이유가 있나요?”
“네?”
“아, 우순창 아래에서 일하신다니 제 선임계를 보셨나 보네요. 그런데 제가 굳이 사건 관련 비밀을 알려 달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 음, 그건 아니죠.”
“이번 자리는 명백하게 스카우트입니다만?”
그 말에 김학진은 얼굴이 붉어졌다. 설레발친 셈이니까.
“그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네? 왜요? 아니, 제가 실수한 건데.”
“실수는 누구나 합니다. 저도 하는 실수인데요. 다만 기회를 잡기 위해 직업윤리를 버리시진 않았잖습니까, 누구처럼?”
그 말에 김학진은 더더욱 얼굴이 붉어졌다.
확실히 우순창은 그런 놈이니까.
“이번에 저희 새론에 빈자리가 좀 났습니다. 많은 변호사들이 검사와 변호사로 자리를 옮기셨거든요.”
“들었습니다. 숫자가 적지 않더군요.”
“네. 그래서 그 자리를 채우는 중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인성도 문제고 미래도 봐야 한다. 그리고 김승연이 추천한 사람이 바로 김학진이었다.
‘인성은 된 것 같고.’
만일 김학진이 자존심을 꺾고 한 번만 기었다면 그는 여전히 변호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점이 노형진에게는 가산점이 되었다.
“새론으로 오시죠. 변호사 자격증, 아직 살아 있으시지요?”
“네.”
변호사 자격증은 취득자가 반납하기 전까지는 유지된다.
그리고 공무원을 한다고 해서 변호사 자격증을 반납할 이유는 없다.
겸직금지 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변호사 일을 하지 말라는 거지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지도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실제로 실력이 돼도 인맥을 만들기 위해 검찰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변호사도 있다.
“좋습니다. 물론 바로 선임이 되시긴 힘들고 1년간의 유예기간이 있습니다. 저희 새론의 조건은 아시죠?”
“네.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1년간의 유예기간 내에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에는 투자금과 수익을 그 당시 기준으로 상환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출근은 2주 후로 하시죠, 사표도 내시고 인수인계도 하셔야 할 테니.”
정말로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스카우트 자리였는데, 김학진에게는 그게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면 이 정도면 서로 충분히 양해는 된 것 같군요.”
노형진이 흡족한 얼굴로 일어나려고 하자 김학진은 왠지 미안해졌다.
오해한 것도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입장상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도 미안했다.
“아…… 저기.”
“네?”
나가려는 노형진을, 김학진이 붙잡았다.
“사실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그…… 사건에 관한 건 아니고, 우순창을 비롯한 젊은 검사와 판사 들이 뭔가를 할 거라 생각됩니다.”
최근 들어 우순창과 젊은 판검사들의 모임이 자주 생기고 있다. 그런데 그때를 전후로 노형진과 새론에 대한 욕이 늘어났다.
그리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렇게 모인 젊은 판검사들은 집안의 후광이 강한 이들이라고 한다.
“우연치고는…… 이상해서요…….”
김학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런 김학진의 말에 노형진은 미소 지으며 답했다.
“김학진 변호사님, 걸레 빨아 보신 적 있습니까?”
“네?”
“걸레 말입니다. 더러운 곳을 닦아 내는 천요.”
“당연히 빨아 봤지요.”
“그게 한 번에 깨끗해지던가요?”
“아니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노형진은 검찰과 경찰 그리고 사법부를 털어서 상당 부분 정화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깨끗해졌다고 믿지는 않는다.
걸레는 절대 한 번에 깨끗해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헹구고 햇빛에 말려서 살균 소독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쉰내가 풀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