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6)
“이 목록은 넛트월드에서 제공한 목록입니다. 당사자가 끊어 버린다고 해도 그 기록은 남습니다. 너희들은 넛트월드에 요청해서 그동안 피고인인 서세영 양의 넛트월드 홈페이지에 접속했던 모든 가족을 모아 봤습니다. 그중에서 일주일전에 가족을 끊어 버리고 잠수를 탄 아이디를 발견했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검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노형진은 그 아이디를 그에게 읽어 주었다.
“YJS1986. 앞부분인 YJS는 유장선의 약자입니다. 그리고 뒷부분인 1986은 유장선의 출생년도이고요. 제가 봐서는 이 아이디에 대해 정식으로 조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크흑…….”
검사는 완전히 당황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나와 버린 것이다.
‘설마 관계 끊기를 한다고 모든 게 사라질 거라 생각한 거냐?’
그럴 리 없다. 그런데도 그는 범죄를 저지를 결심을 하고는 관계를 끊어 버려서 증거를 없애려고 한 것이다.
“이 모든 증거로 봤을 때 이 사건의 기본이 된 강간 사건은 계획범죄이니 그 당시 피난할 방법이 차량을 타고 도주하는 것뿐이라는 것은 명백합니다. 그 상황에서 피고인의 도주를 막을 목적으로 차량에 뛰어든 것은 유장선이므로 피고인 서세영의 과실은 전혀 없습니다. 이는 명백하게 정당방위에 해당됩니다.”
노형진의 말에 판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 많은 증거가 나왔으므로 이를 분석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때까지 휴정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망치를 내리치는 판사.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그곳을 나갈 때였다.
“변호사님.”
누군가 노형진을 불렀다.
“네?”
“잠시 와 달라고 하십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노형진은 알 것 같았다.
“일단 사무실로 들어가 계십시오.”
“네?”
손예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사건은 그녀와 노형진이 함께 하는 사건이다. 물론 자신은 배우는 처지이니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곤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게 정상이다.
“사건 관련이라면 함께 가야 합니다.”
“뭐, 사건 관련인 것 같기는 하지만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좋은 꼴을 볼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가서 서세영 양이나 챙겨 주세요. 변호사 둘 다 사라지면 불안할 겁니다.”
노형진이 직원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에 손예은은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손예은에게 다가갔다.
노형진은 법원 직원을 따라서 어디론가 향했다.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그가 간 곳은 판사의 사무실이었다.
“어쩐 일로 부르셨습니까?”
“노 변호사, 오늘 변론은 아주 인상적이었어.”
판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입만 웃을 뿐, 눈은 서슬 퍼런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그 말씀을 하려고 절 부르신 건가요?”
“거참, 뻣뻣하기는.”
그는 의자에 앉더니 노형진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뭐, 돌려 말해 봐야 서로 말만 길어지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노 변호사, 지금 누구를 상대하는지 알지?”
“유창렬 대검찰청 중수부장이지요.”
“그래,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나오기야? 그냥 적당히 물러나.”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냥 몇 달 살다 나오면 돼.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잖아.”
“판사님.”
“왜?”
“저도 체면이라는 게 있지요. 다 이긴 싸움을 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판사는 눈을 찌푸렸다.
“정말 이러기야?”
“네, 정말 이러기입니다.”
“자네가 이런다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다 이야기가 끝났다고.”
“그래요?”
“그래, 그냥 몇 달만 살다 나오라고 그래. 중수부장 체면이 있지, 아들이 강간 미수면 그렇잖아?”
“그렇지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뭔가 생각난 듯 손바닥을 딱 쳤다.
“아,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뭐, 좋은 생각?”
“네!”
“뭔데?”
“중수부장을 그만두면 되죠. 그러면 중수부장의 체면이 알 게 뭡니까?”
싱글거리면서 웃는 노형진의 말에 판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노 변호사!”
“네?”
“진짜 끝까지 가자 이건가! 나 판사야! 판사! 네가 아무리 지껄여도 그걸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건 나라고!”
“아니요. 그럴 생각 없는데요?”
“뭐?”
그 말에 노형진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자 그걸 본 판사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것만 터트리면 다 끝나는데 왜 끝까지 갑니까?”
“너…… 너…….”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녹음기였다, 지금까지 대화한 모든 내용이 다 들어 있는.
“같이 죽자는 거야!”
“같이 죽을 거라고 생각해요?”
노형진은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걸 터트리면 아마 판사로서는 먹고살지 못하겠지. 그럼 나와서 변호사 생활해야 할 텐데 너, 나 이길 자신 있어?”
귓가로 울리는 노형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판사는 얼어붙었다.
“이번 재판에서는 내가 못 이길 수도 있지. 결국 판사가 판결하는 거니까. 그런데 말이야, 네가 천년만년 판사를 할 거라 생각해? 이번 재판은 네가 판결하니까 내가 이기지 못해도 널 판사 자리에서 끌어내릴 방법은 많아. 그러면 너도 변호사야. 어때? 이길 자신 있어?”
“…….”
판사는 할 말이 없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과연 판사 자리를 빼앗기고 변호사로서 세상에 나갔을 때 과연 노형진을 이길 수 있을까? 인맥도, 실적도, 돈도, 모든 면에서 노형진이라는 압도적인 괴물인데? 자신이 지금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것도 결국 판사라는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있는 덕분이다.
“어때? 이길 수 있어?”
“…….”
이길 수 없다. 그의 선택은 빨랐다.
“난 말이야, 이기게 해 달라는 게 아니야. 최소한 공정하게는 해야지. 안 그래?”
“그…… 그래.”
“뭐라고?”
“아닙니다……. 공정하게…… 하겠습니다.”
판사는 공포에 부르르 떨었다. 누구도 쓰러트릴 수 없다고 하던 청계를 무너트린 게 노형진이다. 하물며 그때는 돈이라도 없었지, 소문에 따르면 지금은 1조가 넘는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1억 정도만 상부에 쥐여 줘도 자신은 판사 자격은커녕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할 것이다.
“공정하게 하자고.”
“네…… 공정하게 하겠습니다.”
“좋았어.”
노형진은 판사의 얼굴에서 떨어트리면서 웃었다.
“그럼 우리 이야기는 다 끝났지요, 판사님?”
“으응? 그…… 그러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 그러게.”
노형진이 웃으면서 나간 뒤 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바보 같은…….”
잊고 있었다, 부장판사의 권력은 짧지만 돈의 권력은 길다는 것을.
“큰일 날 뻔했군.”
그가 그렇게 안도하고 있을 때 노형진은 넥타이를 풀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아, 진짜 이런 식은 싫은데 말이지. 뭐, 어쩌겠어. 가끔은 소 잡는 칼로 닭도 잡고 그러는 거지, 뭐.”
그는 그렇게 법원을 나왔다.
얼마 후 판결문이 도착했다.
당연히 다음 기일에서도 상대방은 제대로 된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차로 밀었다는 것뿐인데 아무리 상황을 봐도 서세영이 차로 민 게 아니라 도망가는 차량에 유장선이 뛰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네요.”
노형진의 경고를 알아들은 판사는 정당하게 판결했다. 아무리 부장검사의 파워가 세다고 해도 자신을 날려 버릴 수는 없다. 설사 날린다고 해도 변호사가 된 자신에게 어쩔 수는 없다. 하지만 노형진은 다르다. 필요하면 말려 죽이는 건 일도 아니다.
“이거야 원…… 정당방위 인정받기 이렇게 힘들어서야.”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나저나 한 건은 끝났는데 처벌은 역시 안 되겠죠?”
“그렇지요. 검찰 쪽에서는 고발할 의사도 없어 보이고.”
검찰 측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들어서 유장선에 대해 다시 고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하게 했다. 물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명확한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고발하는 것까지 막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제가 증거를 들이밀었지만…….”
“의사가 없다면 별수 없죠.”
당연히 수많은 증거가 나왔다. 그리고 그게 노형진의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사건을 진행시킬 의사가 없었다.
‘이게 다 기소독점주의의 폐해야.’
노형진은 그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나라는 검찰만 기소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하면 진짜 대책이 없다.
‘그렇다고 경찰에 맡기자니.’
경찰 역시 그 부분에 대해서 기소독점주의가 문제가 많다면서 기소권을 달라고 하지만 노형진이 봤을 때는 도긴개긴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나저나 세영이는 어떻게 한대요?”
“아, 세영 양 말입니까?”
“네.”
손예은은 슬쩍 물어봤다. 안 그런 척하더니 그래도 걱정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녀는 이제 고 1이다. 공식적으로 보호자인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고아원을 가야 한다.
“다행히 고아원, 아니 보육원은 안 갑니다.”
“그래요?”
“네, 저희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했습니다.”
“네? 그럼 입양을?”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노문성은 입양하고 싶은 눈치였는데 애석하게도 입양 조건 중 나이에 걸려서 입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같이 살면서 이것저것 챙겨 주기로 하셨습니다. 어차피 잘되었죠. 저도 그렇고 저희 누나도 그렇고, 일찍 분가해서 두 분 다 외로워하시는데요.”
노형진의 어머니는 막내딸이 생기 것 같다면서 좋아하고 있었다. 뭐, 당분간은 어색하겠지만 말이다.
“그건 다행이네요.”
“네,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닌 부분도 있지.”
노형진의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는 김성식 변호사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안 좋은 소식이네. 유창렬이 자네한테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고 하는군.”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그래 봤자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그의 권력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그 자리를 감당할 만한 인재가 아니었다.
“뭐, 덤비고 싶으면 덤비라고 하세요. 다만 그 자리에서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지만요.”
“살아남아?”
“그런 게 있습니다. 하하하.”
노형진은 그냥 웃음으로 때우고 말았다.
백지를 더럽히는 가장 좋은 방법 (1)
“좋다.”
모든 사건이 대충 정리되고 난 후 노형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노력하고 있었다.
‘뭐, 생각지도 못한 동생 비슷한 게 생기기는 했지만.’
입양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동생 비슷한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 노형진의 기분을 이상하게 했다. 그가 원래 막내였기 때문이다. 동생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뭘 그렇게 웃어?”
“아, 사진요.”
“사진.”
노형진은 사진을 보여 줬고 그걸 보고 송정한은 미소를 지었다.
“보기 좋네.”
“그렇지요?”
과거와는 다른 가족사진. 과거에는 없던 사진이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누나와 행복한 얼굴의 부모님. 그리고 어쩌다 보니 생긴 여동생까지.
‘이게 행복 아니겠어?’
노형진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진을 바라보았다. 휑하고 황량한 자신의 책상에 새롭게 생긴 작은 희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사진은 그만 보고 이제 일 좀 하지?”
“하하하.”
노형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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