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62)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네 (1)
후안무치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고 그 표현은 사회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얼어붙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노형진은 힐끔 김승연 변호사를 보았다.
“아닙니다. 그래도 이번 사건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얼어붙지 않아도 배울 수 있으니까 일단 와서 앉아요. 사건 분석이나 합시다.”
“넵!”
김승연은 재빨리 맞은편에 앉았고, 노형진은 그녀가 가지고 온 서류를 확인했다.
보통은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지만 다른 변호사가 힘들다고 판단하면 노형진에게 종종 사건을 가지고 온다.
이 사건도 그런 사건 중 하나였다.
“이야, 개뻔뻔한 놈이네, 이거.”
“그런데 기존 판례를 보면…….”
“알아요, 압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사건에서 피해자는 절대 못 이기죠.”
인간의 잔인한 습성과 욕심이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소위 말하는 뒷바라지 사건.
“쯧쯧, 뭔 생각을 하는 건지.”
사건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한 커플이 있었다.
남자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여자는 5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공시생.
두 사람은 교내 커플이었고 남자는 졸업 후 취업을 했으며 여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여기까지는 문제 될 게 없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 내내 남자는 여자를 뒷바라지했다. 학원비를 내주고 생활비를 대 주고 심지어 서울에서 생활할 방까지 구해 줬다.
그리고 여자는 당당하게 5급 시험에 합격.
“여기까지는 참 좋은데 말이죠.”
“네, 그 후가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게 방법이 없더라고요.”
“없죠, 현재로서는.”
무려 4년간 남자는 여자의 시험을 뒷바라지했다. 당연히 자신이 벌던 모든 수익을 가져다 바쳐야 했다.
중소기업에서 나오는 돈이야 뻔하니까.
남자의 부모님들도 두 사람이 결혼할 거라 생각해서 말리지 않았다.
“화려하게 뒤통수를 쳤군요.”
그런데 5급 공무원이 된 여자가 돌변했다.
정확하게는, 자신은 무려 5급 공무원인데 중소기업 다니는 남편은 급이 안 맞는다고 결별을 선언한 것.
“단순히 결별만 선언한 것도 아니고…….”
이제 5급 합격도 하고 했으니 결혼하자고 남자가 청혼했지만 여자는 결혼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다가 결별 선언.
“그런데 이미 결혼식을 준비 중이었다고요?”
“네.”
결별은 둘째 치고 괘씸한 것은 이미 여자는 조직 내부에서 4급 공무원을 만나서 교제 중이었고 심지어 스드메, 그러니까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까지 모두 준비한 상황에서 결별 선언을 한 것이었다는 거다.
“종종 이런 일이 있지요.”
노형진은 씁쓸하게 김승연을 보며 말했다.
공부라는 건 전혀 생산적인 활동이 아니다. 마치 군대처럼 끊임없이 소비만 하는 집단이 바로 고시생들이다.
당연히 누군가에게서 지원을 받아야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부모님이 지원해 주지만 종종 연인이 지원해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둘이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이라면 좋겠지만, 그렇게 고시 공부를 해서 합격하면 거기에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지원해 준 사람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한다는 게 문제다.
“문제는 기존 판례는 이런 경우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건데.”
노형진은 턱을 문질렀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관점과 법률의 관점이 다른 법들이 종종 있는데 이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건 증여로 보고, 사전에 조건이 없는 증여라고 한 경우 환수가 불가능하다.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단순 교제만 한 거라면 이별의 영역 역시 헌법상 성적 자기 결정권의 영역에 들어가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네, 그래서 저도 머리가 아파서요. 이런 사건이 아주 많은 건 아닌데 종종 있더라고요.”
상대방을 악착같이 빨아먹은 후에 자기가 성공하면 버리는 이야기는 흔하다 못해 넘쳐 난다.
“도대체 왜 법원에서는 그딴 식으로 판결하는지 모르겠어요.”
“성공해서 상위 계층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뭐, 자기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뭐, 아니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결혼도 하지 않은 대상에게 돈을 지원해 준다는 것 자체가 일반인 기준으로는 성공하는 것은 물론 자신과 함께하는 걸 조건으로 하는 행위라는 것쯤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헤어질 걸 예상하는 사람이 지원을 해 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대한민국 사법부는 계약서가 없으니까 무조건적인 증여라는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배상 책임을 물리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성공한 내부인과 이제는 인생을 조져 버린 외부인 중 누구를 보호하고 싶으세요?”
“너무 극단적인 시각 아닌가요?”
“극단적인 시각이라…….”
노형진은 그 말에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옛날이야기를 보면 말입니다, 이런 사건의 주요 배신자들의 직업이 뭐라고 나왔던 것 같나요?”
“글쎄요.”
“판사, 검사, 변호사 등등 사법연수원 출신들이 죄다 이 지랄이었거든요.”
“사법연수원요?”
“당연한 거죠.”
정치인? 애초에 한국에서는 기반이 없으면 정치는 시작도 못 한다.
의사? 의사는 6년제 대학을 나와서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당연히 개인이 지원하기 힘들다.
“보통은 사법연수원에 가면 이런 지랄맞은 일이 벌어졌죠.”
오로지 자신의 공부와 능력에 기반한 시험 하나로 인생이 바뀐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 일단 소위 말하는 마담뚜들이 달라붙어서 쟁쟁한 집안의 자녀들을 소개해 준다.
“그리고 그런 판결을 내리는 건 결국 법관들이죠.”
노형진의 말에 김승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사실 법적으로 보면서 상식에 반하는 판결이라는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 안에 그런 문제가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의사 같은 경우는 애초에 이런 경우가 드문 게, 대부분의 의사들은 6년제 대학에 다니면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니까요.”
거기다 인턴과 레지던트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끼리끼리 만나는 기간이 엄청 길기에 사법연수원처럼 승리자들이 모이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 사법연수원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이건 공무원도 마찬가지고.”
승리자가 되면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세계에 산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니 과거의 인연이 더럽고 끈질기고 지워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확실한 법리적인 판단이 아니라요. 뭐, 법적인 해석은 무조건적인 증여라고 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현재는 그걸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건 재판해도 못 이기죠.”
노형진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건 노형진이라고 해도 이기기가 어렵다.
이미 답이 명확하게 나온 사건이고 수십 년 동안, 아니 대한민국의 건국 이후 언제나 동일한 답을 내 왔던 사건이다.
“사실 이런 경우는 시간은 둘째 치고 말입니다, 돈이라도 돌려받으면 그나마 다행인 거죠.”
“네, 그쪽도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돈이라도 돌려받으려고 하는 거고요.”
“문제는 돈이 적지 않다는 거죠. 지금 돌려줘야 하는 돈이 얼마죠?”
“대략 1억 2천입니다.”
“엄청나네요.”
“학원비에 생활비까지 모두 남자가 부담했거든요.”
“뭐, 이해는 갑니다만.”
한 사람을 무려 4년간이나 지원했다?
그러면 먹고사는 것만 해도 적잖이 든다. 그런데 거기다가 생활비와 학원비까지 하면 어마어마하게 돈이 든다.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몰락시키고 싶은 건 아니고요?”
“뭐, 더럽다고 생각해서 그냥 돈 받고 끝내고 싶어 했습니다. 나이가 있으니 자기는 그 돈으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요.”
“하긴.”
남자의 나이는 올해 서른 살. 여자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
남자가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늦은 나이도 아니다.
“더군다나 회사가 작은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이기는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스타트업으로 분류될 만한 회사다.
지금은 성장 코스에 들어가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상황.
그래서 스타트 멤버인 남자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라…….”
“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돈만 받는 건 불가능합니다.”
노형진은 상대방의 답변서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돈을 돌려 달라는 소송에 여자는 증여라고 주장하며 변호사를 선임했다. 즉, 돈을 주지 않겠다는 소리다.
“그런데 아무리 판례를 뒤져도 이길 방법이 없어 보이더라고요.”
“흠…….”
노형진은 잠깐 고민했다.
하긴, 이런 고민을 했던 사람이 노형진뿐일까?
그럴 리가 없다.
“좋습니다. 한 가지만 말하죠. 소송으로는 돈을 못 받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대신에 상대방을 압박해서 돈을 받아 낼 수는 있습니다.”
“네? 하지만 저쪽은 이미 돈을 주지 않으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요.”
노형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제가 아까 감정에 대해 물어본 겁니다. 그냥 깨끗하게 이별하고 잊고 싶다면 돈은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개싸움을 하고 상대방을 파멸로 몰아가도 괜찮다면 돈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파멸로 몰아가요?”
“네.”
그 말에 김승연은 궁금증이 생겼다.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판을 했지만 못 이겼다. 그런데 돈을 받아 낼 방법이 있다니?
“의뢰인에게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네, 하지만 빨리해야 할 겁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