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79)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 (3)
일부 언론에서 하는 말이야 어차피 제보자 보호라는 말로 묻어 버리면 되는 거니까 부담이 없지만 고발은 얼굴을 드러내고 해야 하니까.
“보통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즉 노숙인을 내세워 벌어집니다.”
“노숙자?”
“요즘은 노숙인이라고 하죠.”
“그런데 왜 그런 사람을 쓴다는 건가?”
“명의를 빌리기 쉽고 이쪽에서 추적은 어려우니까요.”
그러니까 문제가 생겨도 그냥 생까면 현실적으로 이쪽에서 자기들을 추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이게 또 하나의 건수거든요.”
“어째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지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노형진은 그걸 이용해서 종우한을 물고 늘어질 생각이었다.
* * *
황해수.
성강실업의 사장이자 이 사건의 핵심인, 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
누구도 그를 추적할 생각은 하지 못했지만 노형진은 그를 추적했다. 정확하게는 그 가족을 추적했다.
“그러니까 황해수 씨는 집을 나간 지 오래되었다는 거죠?”
“그렇다니까요. 돌겠네, 이 망할 형은…….”
황해수의 동생 황해남은 한탄을 쏟아 내며 머리를 북북 긁었다.
“원수예요, 원수.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도망가 버렸다니까요.”
홀몸으로 그랬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처자식이 있는 놈이 강원랜드에서 도박에 빠져서는 전 재산을 날리고 도망가서 가족들은 길바닥으로 나앉았다는 것.
“그나마 가족들이 작은 방을 구해서 어떻게 살아가는데……. 후우, 미친 새끼.”
황해남은 친형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으며 눈을 찡그렸다.
“역시 그런가요?”
예상대로다.
사실 노숙인이라 해도 명의를 빌려주는 것은 어지간히 막장 아니면 잘 하지 않는 짓이다.
그도 그럴 게, 누구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재기를 꿈꾸니까.
명의를 빌려준다는 것은 재기를 포기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죠?”
“모르죠. 알아보지도 않았으니까. 사실 돌아온다고 해도 받아 주기도 싫습니다.”
도박에 한번 빠지면, 손을 잘라도 발로 한다고 한다. 그만큼 도박은 중독성이 강하다.
하물며 자기 혼자 망한 것도 아니고 처자식이 있는데도 전 재산을 가지고 도박했던 인간이다.
이제 와서 용서를 빈다고 한들 결국 다시 가족에게 기생하게 되리라.
“나중에 자기가 정신 차리고 돈을 벌어 온다면야 모르겠지만, 기대하기는 힘들죠.”
마약중독처럼, 돈이 생기면 일단 도박장으로 달려갈 테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사망신고를 하시죠.”
“뜬금없이요?”
“실종된 지 얼마나 되었는데요?”
“한 7년 되었습니다.”
“실종 신고는 하셨고요?”
“네.”
“그러면 사망신고를 하셔도 됩니다.”
“뭐, 어차피 신경 끄고 살아왔으니 상관은 없습니다만…… 왜요? 애초에 이번 사건과 저희 형이 무슨 관련이 있다고요?”
“정치적인 문제죠.”
“정치적인 문제요?”
“네. 바지 사장이 실종된 상황이라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말에 황해남은 눈을 번득였다.
그도 귀가 있고 눈이 있다. 당연히 이 상황에 대해 모르지는 않는다.
“조만간 기자들이 여기로 들이닥칠 겁니다. 한국 기자들은 질이 안 좋지요, 아시겠지만.”
“끄응…….”
가족들의 프라이버시? 알 게 뭔가?
조회 수만 나온다고 하면 누가 죽어도 신경 쓰지 않는 게 한국의 기자들이다.
“피할 수 없다면 이용해야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사망신고를 하면 그 덤터기를 누군가에게 뒤집어씌우고 싶으시다는 거군요.”
“네, 저희에게만 좋은 일은 아닐 겁니다. 운이 좋으면 사람들에게서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동정표라는 거다.
만일 여기서 사망신고가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가장을 잃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끄응…… 알겠습니다.”
어차피 사망 처리해야 한다고 황해남도 생각은 하고 있었다. 살아 있다고 해도 어차피 자신들에게는 짐만 되는 인간이니까.
“그런데 사망으로 처리해도 우리한테 딱히 무슨 이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
“네. 정부에서는, 아니 경찰과 검찰에서는 어떻게든 감추고 싶어 하는 제도이지요.”
범죄 피해자 보상 제도라는 것은 강력 범죄와 관련해서 필요한 경우 유가족의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다.
물론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
“살인의 경우는 주거지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가장이 살해당한 경우는 더더욱 그렇지요.”
“주거지라니요?”
“국민 임대주택 우선권이 부여됩니다.”
그 말에 황해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게, 그의 형수와 두 아이는 고작 5평짜리 작은 원룸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마저도 자신이 돈을 내주지 못하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형이라는 작자가 사라진 게 아이들이 고작 두 살과 한 살이 되던 시점이라 아직 부모가 필요할 때였는데, 아이엄마 입장에서는 어린이집에서 봐주는 시간에 맞는 근무처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진짜입니까?”
“네, 진짜입니다. 물론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요.”
당연히 정부는 예산 절감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
일부 선량한 경찰이 피해자들에게 말해 주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들에게 이런 보상이나 지원 시스템은 언급하지 않는 게 국룰이다.
도리어 이런 걸 언급하면 예산을 까먹는다면서 위에서 오질나게 욕을 먹는 게 현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실 건데요? 그 새끼가 어디서 어떻게 뒈졌는지도 모르는데.”
황해수는 진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노형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만들면 그만이니까요.”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씩 웃었다.
* * *
언론에서도 황해수를 계속 찾고 있었다. 사건의 핵심이 된 성강실업의 사장이니까.
하지만 누구도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보통은 이런 경우 도주라고 생각하지요.”
노형진은 권양구에게 말했다. 그러자 권양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러겠지. 내가 봐도 그래. 그런데 이걸 왜 군검찰로 넘겨야 한다는 건가? 민간인 사건 아닌가?”
“물론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일반적이지 않다면 기껏해야 저처럼 바지 사장일 거라 생각할 거고요.”
“그렇지.”
권양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기까지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바지 사장이라고 하더군.”
“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진즉에 알아챘을 겁니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나?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날 외면했던 인간들이 슬금슬금 연락한다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쓰게 웃는 권양구.
“권력이라는 게 그런 거죠.”
“알고 있지만 씁쓸하군. 하여간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니야. 어차피 기껏해야 바지 사장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바지 사장이 아니라면요?”
“뭐라고?”
“이게 현재 안보 사건으로 의심받고 있지 않습니까?”
“안보 사건? 그렇지. 하긴, 안보 사건이지.”
“지금 분위기도 그렇고요. 나라 꼴이 개판이니, 원.”
이 사건의 핵심은 바로 납품 업자의 선정 절차가 완전 까막눈으로 운영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부에 납품하는 절차가 어이없는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그건 바로 중소기업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핑계로 사업자만 있으면 응찰 자격을 준다는 거다.
정확히는 실질적인 생산능력이나 납품할 물품을 구입해서 유통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일단 신청만 하면 심사 대상이 된다는 거고, 거기에 적당한 뇌물과 권력만 있으면 납품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정부에서도 그걸 알지.’
하지만 굳이 고치려 들지 않는다.
이유야 간단하다. 그래야 자기들이 합법적으로 돈을 빼돌릴 수가 있으니까.
이렇게 납품하는 경우 일단 납품자로 선정된 인간은 질과는 상관없이 납품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런 경우 국내 기업이라면 수익의 20~30%를 수수료로 받아 처먹고, 이번처럼 중국에서 수입하는 경우 70% 이상을 자기가 챙긴다.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돈을 중개업자에게 다 뜯기고 결과적으로 질을 하락시켜서 수익을 창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국산을 납품받아서 넘기는 놈은 양심적인 거고, 현재 대한민국 정부의 물품은 대다수 중국산으로 굴러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한 해 예산을 생각하면 그렇게 빼돌리는 돈이 2~3조는 될 것 같은데 말이지.’
군납부터 정부의 물품 대부분이 이따위로 굴러가니 아마도 수수료만 못해도 2조 이상은 횡령될 게 뻔한 일.
‘이참에 그것도 고치자고.’
고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입찰 조건으로 생산 시설이 있거나, 국내 생산이 불가능한 물품이라면 수입 경험이나 기록이 있어야 한다고 내거는 것.
그게 아니면 최소한 해외 생산 업체와 MOU, 즉 양해 각서 수준의 협의는 해 둬야 한다는 것이 노형진이 생각한 조건이었다.
“유가족에게 말해서 사망신고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아는 게 많으면 위험도도 높은 법이지요.”
“이해가 안 가는데. 황해수가 사망 처리되는 것과 이번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건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권양구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긴, 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법으로 싸우는 방법을 알 리가 없다.
“법으로 싸울 때는 말입니다, 때때로 불확실성 자체만으로 아주 큰 의혹을 불러일으키지요.”
“의혹을?”
“예를 들어서, 황해수가 보안과 관련해서 이미 사망한 경우라면 어떨까요?”
“보안과 관련해서…….”
그 말을 들은 권양구의 얼굴이 굳었다.
사실 어렵게 표현할 이유도 없다. 이럴 때 쓰는 오래된 격언이 있으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인가?”
“네, 바로 그거죠.”
사업자를 내기 위해 필요한 서류는 한두 개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 그걸 모두 발급하기 위해서는 압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뻔하지 뭐.’
이럴 때는 노숙자 한 명 데려다가 인감이나 신분증을 발급시켜서 창업하는 거다. 그 대신에 두둑하게 돈을 챙겨 주는 거고.
“그리고 그 후에 슥삭. 아시죠?”
물론 돈을 주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에 대해 입 다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하긴, 현시점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으니…….”
“네, 맞습니다.”
회사를 창업한 후에 바로 살해되었는지 아니면 노숙자로 살아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는 군이 나설 만한 일이지요.”
현재 이 사건은 안보 사건으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권양구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바로 안건을 올리지.”
* * *
노형진의 함정에 빠진 종우한 의원과 주안도 소장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이런 씨발, 일이 어쩌다가…….”
“종 의원? 이야기가 다르지 않소! 문제 될 게 없다며!”
“나라고 이렇게 될 줄 알았겠소? 저 미친놈이 지금 대체 뭔 짓을 하는 건지.”
상황은 진짜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었다.
그동안 꿀 빨던 회사가 존재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달라붙은 것이다.
직원? 직원이 왜 필요하겠나? 그냥 납품할 때만 운전사 한 명 고용해서 나르면 그만인데.
당연히 직원도, 사무실도 없는 그런 회사였다.
그런데 그런 회사가 어떻게 군납을 했는지 의심받게 되자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조사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