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899)
사과를 받는 법 (2)
노형진은 아차 싶어서 물었고, 김승연이 아버지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사건 기록을 찾아서 확인했다.
“그러니까 권보연과 박연경 사건이라고 했지.”
노형진은 해당 기록을 확인하고는 혀를 끌끌 찼다.
“흠, 확실히 소송까지 가지는 않을 사건이기는 하네.”
권보연은 가해자로, 아까 그 남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박연경이라는 여자와 심하게 부딪쳤다.
박연경은 권보연이 다니는 여고에 교생으로 온 여자였는데, 학교에서 일종의 일진 또는 여왕벌로서 행동하던 권보연의 행동을 나무란 것이다.
그리고 권보연은 고작 교생 따위가 자신을 나무랐다는 것에 원한을 가지고는 이를 드러낸 것.
“방식도 참, 더럽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상대방이 교생이라고 해도 결국은 선생의 직위에 있는 사람이기에 학생인 권보연이 직접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
“뭐, 여자들은 비공격적인 방식을 선호하기는 하지.”
남자들은 화나면 서로 직접적으로 주먹질을 하는 데 반해 여자들은 비공격적 방식, 그러니까 주변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권보연이 딱 그랬다.
그녀는 자신을 훈계한 박연경에 대해 온갖 음해를 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어느 학교에 교생으로 나가 있는 누가 낙태를 세 번이나 한 걸레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박연경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올리면서 음담패설을 좋아하니까 전화해서 음담패설 좀 해 달라고 써 두거나, 심지어 박연경을 몰래 따라가서 그녀의 집 주소를 알아낸 다음 박연경이 강간당하는 걸 즐기니까 와서 강간 좀 해 달라고 인터넷에 쓴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이상한 놈들이 아파트로 몰려들기도 했다.
만일 그곳이 보안이 철저한 신형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진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을 것이다.
당연히 이 모든 걸 이상하게 생각한 박연경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그걸 인터넷에 올린 게 권보연이라는 걸 특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박연경 측에 서서 사건을 담당하게 된 것이 새론이었는데, 박연경은 선생님을 꿈꾸던 사람이고 그래도 권보연이 한때 제자였던 사람이니 적당히 합의하라고 한 것이다.
“이런, 이런. 이걸 내가 왜 안 알려 줬지?”
때마침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노형진은 크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러자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승연이었다.
“노 변호사님, 제가 무슨 실수를 한 건가요?”
걱정스러운 듯 묻는 그녀에게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음…… 제 실수입니다. 혹시 김 변호사님은 합의할 때 대개 부모님이랑 합니까?”
“아까 사건요?”
“미성년자 사건들 아니면 가해자들의 나이가 어린 경우에 말입니다.”
“어…… 아, 그렇지요.”
“다른 사람들은요?”
“네?”
“다른 변호사들 말입니다, 부모님이랑 많이 합의하시나요?”
“보통 그렇지요. 미성년자의 법정대리인이잖아요.”
“하아~.”
노형진은 그 말에 머리를 북북 긁었다.
“사과받는 법을 미리 알려 드렸어야 했는데. 역시 그렇군요.”
“사과받는 법요?”
노형진의 말에 김승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과하는 법이라는 말은 몇 번 들어 봤다.
변명하지 마라, 말 돌리지 마라, ‘본의 아니게’라고 하지도 말아라 등등 사과문이 아니라 ‘4과문’을 쓰지 않는 법은 변호사들에게 상식 중의 상식이다.
애초에 그런 사과문들은 변호사들이 써 주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사과받는 법이라니?
“그런 건 처음 들어 보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실수했다는 겁니다. 사과하는 사건만큼이나 사과받는 것도 중요한데 그걸 알려 드리지 않았네요.”
“아니, 사과받는 법도 배워야 합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변호사는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의뢰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의뢰인께서도 합의하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니 더더욱 배워야지요. 의뢰인이 잘 모르니까. 아무래도 이건 김승연 변호사님뿐만 아니라 우리 로펌 전부에 따로 교육해야 할 것 같네요.”
노형진은 자신의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며 말했다.
* * *
“사과받는 법을 교육하겠다고?”
“네. 이번에 김승연 변호사가 담당하는 사건을 기반으로 하나의 사례를 만들어서 교육할까 합니다.”
“사과받는 법이라니. 나는 이해가 안 가는걸.”
김성식 변호사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그도 그럴 게 그도 이제 변호사로서의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사과받는 법이라는 건 들어 본 적도 없으니까.
“대표님이야 아무래도 대형 사건 위주로 담당하시다 보니 그렇지요. 보통 이런 건 미성년자나 청년기에 다다른 사람들 위주로 벌어지거든요.”
“그런가? 그런데 왜 사과받는 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건가?”
김성식은 진지하게 물었고 옆에 있던 김승연도 다시 한번 물었다.
“사과받는 게 끝인 거 아닌가요?”
“일단 사건이 우리 쪽에 넘어오는 이유를 아셔야 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처벌을 원해서 아닌가?”
“맞습니다.”
고발 자체는 변호사가 할 게 그다지 없다. 고발한 후에는 그냥 멍하니 기다려야 하니까.
그래서 고발 사건이 변호사에게 오는 경우는 명확하게 하나뿐이다.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처벌 의사.
“그런데 그런 경우에 말입니다, 중간에 피해자가 손실을 감수하고 합의해 주겠다는 의미에는 기본적으로 사과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물론 변호사비 정도야 상대방이 내겠지만 합의라는 것은 결국 피해자도 어느 정도 양보해 준다는 걸 의미한다.
그도 그럴 게 합의 없이 간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인생에 전과를 남기겠다는 걸 의미하며, 그런 경우 피해가 큰 건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차피 끝까지 가도 민사소송까지 가서 손해배상을 받아 내면 그만이기 때문에 합의라는 건 결국 피해자가 어느 정도 양보해 줘야 가능한 거다.
“그렇지? 그런데 그게 이상한 건가?”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 정작 변호사가 피해자, 아니지, 의뢰인이 요구한 걸 못 해냈다는 게 문제인 겁니다.”
“이해가 안 가네만.”
“피해자가 합의할 때 상대방을 선처하는 이유가 뭡니까? 특히 미성년자 사건에서요.”
“어, 그거야…… 보통은…… 음…….”
잠깐 고민하던 김승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측은지심 아닌가요?”
“맞습니다. 상대방이 불쌍해 보이니까요.”
아이니까, 어리니까 불쌍한 것도 있다. 하지만 다른 건 바로 부모다.
“김 변호사님, 아까 그 아버지 보고 무슨 느낌이 드시던가요?”
“아…… 안타까웠지요. 보니까 힘들게 사시는 분인데 여기 와서 고생하시나 싶기도 하고. 집에 계신 아버지도 생각나고요.”
권보연의 집도 딱히 잘사는 집은 아니었다.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그 혜택을 입은 권보연이 누구보다 잘 알 거다.
“맞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지요.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고 합의했을 때 과연 제대로 사과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제가 아까 지나가다가 잠깐 들어갔던 건, 거기에 사건 당사자가 아니라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가 와서 합의했다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사과해야 할 당사자는 없었다. 오로지 사과하러 온 아버지만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당사자는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합의의 조건은 당사자, 즉 가해자의 사과입니다. 그런데 그 사과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죠?”
“아…….”
그제야 김승연은 아차 싶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법정대리인이니까 당연히 합의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서 합의를 진행한 거지만, 정작 그 합의의 필수 조건인 가해자의 사과는 생각도 못 했다.
“흠, 그러고 보니 그렇군.”
김성식도 뭔가 알 것 같다는 듯 말했다.
“보통 이런 사건에서는 부모들이 나서서 아이를 보호하지?”
“보통은 그렇지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해자는 완전히 배제되는군.”
분명 변호사로서 의뢰를 받을 때는 가해자에게 사과받는 게 조건일 거다.
이 세상에 가해자의 사과도 없이 합의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해자를 완전히 배제하고 합의한다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다른 문제도 있죠.”
“다른 문제?”
“네. 애초에 고소를 한 사람이 상대방의 인생을 걱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배려해 주는 겁니다.”
전과자가 될 것 같으니까 그냥 합의해 주고 용서해 주자.
그 안에는 미성년자인 가해자가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지라는 기대감이 들어 있다.
“세상에 누가 저놈은 성장하면 범죄자가 될 놈이라는 걸 알면서 합의해 주겠습니까?”
“끄응…… 그건 그렇지.”
상대방이 잘못을 뉘우치고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성인으로서의 배려.
이게 이런 미성년자 사건 합의의 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말입니다, 권보연이라는 이 여자애, 과연 그럴까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만?”
권보연이 선택한 방식은 상당히 극단적이고 표독스럽다.
작심하고 집까지 따라가서 주소까지 알아내어 뿌렸으니, 만일 박연경이 사는 곳이 보안이 잘된 아파트가 아니었다면 실제로 강간 사건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전화번호까지 공개해 피해자에게 수많은 음담패설 전화가 쏟아지게 했다.
“상당히 계획적인 범죄자 타입입니다. 이런 애가 지금 반성할 거라 생각합니까?”
더군다나 사건 기록에 따르면 권보연은 학교 내에서도 일진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즉, 범죄에 대해 상당히 무딘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어리다고 보호하는 게 의미가 없다 이건가요?”
“그게 아니라, 애초에 이런 범죄자 타입들이 나중에 큰 범죄를 저지른다 이겁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과정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래.”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우화에서, 아이가 바늘을 훔쳐 오자 어미가 되는 자는 그걸 나무라는 게 아니라 아이를 보호한답시고 칭찬을 한다.
그러자 아이는 점점 커 가면서 온갖 물건을 훔치다가 나중에는 소까지 훔친다.
그래서 감옥에 끌려가면서 그는 자신의 부모를 욕한다. 처음 자신이 바늘을 훔쳤을 때 나무랐다면 자신도 이렇게 크지 않았을 거라고.
“이 상황에서 부모가 법정대리인이라는 이유로 합의해 준다면 그 아이는 반성을 안 하겠죠. 도리어 부모를 핑계 삼아서 더더욱 나쁜 짓을 일삼을 겁니다.”
그 말에 김성식은 턱을 문지르며 의자에 깊이 기대었다.
검사로서 오랜 경험을 한 김성식은 많은 범죄자들을 만나 왔고, 실제로 이런 타입의 범죄자들이 어떤 식의 성장 과정을 거치는지 봐 왔다.
“일리가 있군.”
집안의 불우한 환경 탓에 범죄의 길로 접어드는 이들도 많지만 멀쩡한 가정환경에서 범죄의 길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애들은 보통 집안 환경의 문제라기보다는 가정교육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사실 타고나기를 범죄자로 타고난 애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극소수고, 대부분의 미성년 범죄자들은 결국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