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937)
협상의 법칙 (3)
“이놈이 이런 식으로 끝까지…….”
곽차수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렇잖아도 마음에 들지 않던 인간이었다. 하지만 배경이 어마어마해서 어쩔 수 없이 공천을 줬었다.
그런데 이런 핵폭탄을 터트릴 줄이야.
“아니, 협상도 없이 이런단 말입니까?”
생각지도 못한 반발에 한국도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곽차수에게 물었다.
원래 신당 창당은 진짜 양측의 갈등이 극에 달해서 대책이 없을 때나 벌어지는 일이다.
“딱 한 번 찾아왔네. 공정하게 행동하라고 요구하더군.”
“그래서요?”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우리는 공정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
말이 공정하게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거지, 검찰을 통해 송정한을 조지겠다고 넌지시 경고한 거다.
그러니까 개혁이고 나발이고 입 닥치고 권력이나 누리라고.
“그랬더니 신당 창당이라…… 허!”
“다른 이야기도 없이 말입니까?”
“그래, 다른 이야기도 없었어.”
그 말을 듣고는 한국도도 기가 찼다.
이렇게 극단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보통 신당 창당 이야기가 나올 정도의 상황이 되려면 못해도 6개월 이상은 싸움박질을 해야 한다.
“이해가 안 가는군요. 그런 짓을 한다고 해서 딱히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요.”
“뒤에서 제시한 돈이 두둑하니까 그러겠지. 새론이 있지 않나?”
“하긴, 그건 그런데…….”
한국도는 왠지 불안했다.
송정한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이렇게 내지를 타입은 아니니까.
“끄응…….”
넘실거리는 불안감에 절로 신음이 흘렀다.
“노형진이 수작을 부린 걸까요?”
“그럴 걸세. 그날도 노형진이 같이 왔으니까.”
노형진이 같이 왔다면 사실상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물론 송정한의 정치적 감각을 깔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정치적 감각을 가진 것과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데 필요한 힘과 권력을 지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우리를 협박하려는 수작일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어차피 불리할 텐데요.”
“우리한테 엿은 먹일 수 있겠지.”
“하긴, 표를 갉아먹는 게 목적일 테니까요.”
가질 수 없다면 부숴 버리겠다는 말처럼, 새로운 민주 계열의 창당이 이루어지면 그에 따른 표의 분산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당연히 그런 경우는 이쪽에서 협상을 통해 데리고 와야 하는데…….
“권력을 자유신민당에 줄 생각은 아닐 텐데…….”
“그러니까.”
민주수호당도 노형진에게 유감이 많지만 자유신민당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자유신민당은 노형진의 수작질로 인해 수십 년 동안 쌓아 둔 은밀한 자금을 엄청나게 털렸기 때문이다.
당장 화폐 디자인의 변경만 해도 그렇다.
디자인이 변경되면서 현금으로 쌓여 있던 자유신민당의 비자금을 바꿔야 했고, 이는 개인당 한계가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손실을 봐야 했다.
못해도 수백억은 날려 먹었다는 소문이 도는 상황.
그런 자유신민당에 권력을 준다? 그러면 노형진과 송정한이 가만있을 리 없다.
“당연히 이쪽에 고개를 숙일 거라 생각했는데…….”
더러운 싸움에 끼어드느니 차라리 이쪽에 고개를 숙이기를 원해서 이런 짓을 한 건데 그게 먹히지 않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영 찝찝한데 말이지. 기사가 나갈 정도면 창당 계획은 확실하게 나온 건데.”
“하지만 혼자서 창당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송정한은 계파를 가질 만한 위인이 아니다.
물론 아예 계파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이 뛰어나고 동시에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소수의 계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소수’다.
그들의 숫자는 채 열 명이 안 되고, 그나마도 초선이다. 중진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유찬성 의원 정도.
“하지만 유찬성은 분란을 일으키는 타입은 아니지.”
유찬성이라는 사람 자체가 큰 권력을 누리기를 원하기보다는 조용히 국회의원을 오래 해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마저도 이제는 나이가 있어서 은퇴를 고려하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런데 대체 뭘 믿고?”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일단은 설득해 봐야 할까?”
“아닙니다. 놔두시죠.”
“뭐?”
한국도의 말에 곽차수는 눈을 찡그렸다.
“어차피 저쪽에서 요구할 건 뻔합니다. 이쪽에 대선 후보 권한을 달라고 할 겁니다. 송정한 그 인간이 부러졌으면 부러졌지 휘어질 인간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러기 위해 위협하는 겁니다. 차라리 우리가 더 강하게 몰아붙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더 강하게라…….”
“네, 강하게요.”
내부의 누군가가 신당 창당을 할 때, 협상을 통해 상대방을 데리고 오는 것만 방법인 것은 아니다.
때때로는 상대방을 완전히 병신을 만들어서 이름도 못 꺼내게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로 신당을 창당하면 관련된 국회의원은 일단 검찰과 경찰에게 신상이 깡그리 털린다고 봐야 한다.
그걸 막기 위해서는 그들과 안면을 터 두거나 기존 정당에서의 공격을 막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송정한에게는 그런 게 없죠.”
도리어 검찰과 경찰은 송정한을 못 죽여서 안달이고, 그렇게 힘을 추구하는 인간이었다면 대선 후보 협상은커녕 벌써 민주수호당이 그의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고 싹싹 빌고 있었을 것이다.
“아예 묻어 버리자?”
“선거는 아직 멀었습니다. 2년은 국회의원 하나 조지는 데 충분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뒤에 새론이 있는데?”
“압니다. 하지만 나중에 뭐 좀 두둑하게 챙겨 주면 새론에서도 알아서 물러날 겁니다.”
그 말에 곽차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 검찰…… 아니다. 법원에도 연락해 놔야겠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송정한을 치우도록 하지. 미끼용으로 데리고 온 놈이 너무 커 버렸어.”
곽차수는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그렇게 그들이 송정한의 미래를 결정하는 그때, 다급하게 들어온 보좌관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의원님, 긴급하게 확인해야 할 뉴스가 있습니다.”
“긴급하게 확인해야 할 뉴스?”
“미국발 뉴스입니다만.”
“미국? 거기에서 뭔 일 터졌어?”
미국이라는 말에 곽차수는 눈을 찡그렸다.
미국에서 기침하면 한국은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니 미국의 뉴스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인터넷 번역입니다만.”
보좌관은 핸드폰을 내밀어서 인터넷 기능으로 번역된 미국의 뉴스를 내밀었다.
“뭔데?”
그걸 받아 든 곽차수는 손으로 안경의 착용 상태를 조정하며 흐릿한 화면 속의 글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에잉, 내가 누차 말했지, 와이플 폰은 너무 작다고! 내가 볼 수 있는 큰 폰으로 가지고 다니란 말이야!”
“죄…… 죄송합니다! 바로 바꾸겠습니다!”
“어디 보자…… 코델09바이러스 백신의 3차 임상 실험에 들어가면서 진한약품에서는 미 FDA에 긴급 승인 요청을……. 3차? 3차 임상 실험이라고!”
그걸 보고 곽차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한국도 역시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3차 임상 실험이라는 건 사실상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되었다는 소리다.
1차 동물실험을 거친 뒤 2차 임상 실험을 통해 소수의 비교군에 안전성과 치료 성능을 확인하고, 그 후에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3차 임상 실험을 통해 보편적인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
그게 제약 허가의 기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3차라니?
“지금 이게 말이 돼? 우리 정보대로라면 가장 빠르게 연구 중인 곳이 현재 1차 동물실험 중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대부분은 이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빨라도 올해 말에나 백신이 나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차라고? 농담해?”
“더 보셔야 합니다.”
“젠장…… 젠장, 이걸……. 씨팔, 큰 거로 바꾸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읽다가 분통이 터진 곽차수는 결국 핸드폰을 있는 힘껏 집어 던졌다. 보좌관은 아직 할부 기간이 많이 남은 자신의 와이플 폰이 박살 나는 걸 보면서 눈물을 찔끔 삼켰다.
“컴퓨터로 찾아!”
“네…… 의원님.”
간신히 컴퓨터로 뉴스를 찾아서 번역기를 돌리자 그나마 자세한 글을 볼 수 있었다.
2차 임상 실험 결과 진한약품에서 개발한 백신의 감염 방지 효과는 98.8%이며 또한 위중증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백신 미접종자 대비 대략 0.1% 정도로…….
그렇잖아도 전 세계가 코델09바이러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백신이라니.
“그런데 진한약품? 이거 한글 이름이지?”
“네.”
“한국 회사라고? 도대체 진한약품이 어디야? 젠장, 기억이 안 나는데!”
“진한, 진한…….”
그 말에 한국도는 그 이름을 곱씹었다.
분명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데 이 진한약품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분명 들어 봤다.
‘작은 회사인 것 같은데.’
큰 회사라면 자신에게 뇌물을 줬을 테니 기억을 못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작은 회사가 뜬금없이 코델09바이러스 백신을 내놨다?
‘진한…… 진한……. 진짜 어디서 들어 봤어. 진한…….’
한국도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생각나지 않자 핸드폰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곽 의원님, 큰일 났습니다.”
“또 뭔 큰일? 나중에 이야기하세요. 당장 차량 준비해. 진한약품에 방문이라도 해야…….”
선거를 위해서라도 이름을 올려놔야 한다.
일단 한국에 뉴스가 크게 터지기 전에 가서 치하라도 하면서 다리를 걸쳐 놔야 적당한 이득을 챙길 수 있기에 곽차수는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그는 나가지 못했다. 한국도가 나가려고 하는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뭐 하는 짓이야!”
곽차수는 은근한 분노가 찬 눈빛으로 한국도를 노려보았다. 혹시나 자신을 엿 먹이려고 방해하는 건가 해서였다.
하지만 한국도가 곽차수를 붙잡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진한약품 그놈들, 미다스 겁니다.”
“미다스? 잠깐. 미다스라고?”
“기억 못 하십니까, 동티모르 사건?”
“동티모르? 그 째깐한 나라? 거기가 왜…… 아!”
동티모르 사건.
동티모르에 초거대 복제약 생산 공장을 세워서 빈국에 공급하겠다는 세계복지재단의 계획 때문에 정치계가 난리가 났던 사건이다.
그 당시 빈국에 비싼 값으로 약을 팔아넘기던 제약 회사들은 비명을 질러 댔고, 실제로 그들의 매출은 바닥을 찍었다.
비싼 값에 약을 사서 뿌리던 자선단체들 역시 투명하게 움직이는 세계복지재단의 방식 때문에 상당수 말라 죽어 가기 시작한 시점.
당연히 한국에 어마어마한 압력이 들어왔는데, 그때 그 동티모르 공장에 복제약 생산 기술을 제공한 게 바로 진한약품이었다.
“그거, 노형진이 인수한 공장 아니야?”
“맞습니다.”
그 당시 노형진이 진한약품을 인수해서 전 세계에 제공할 수 있게끔 조치해 놨다.
원래 조그만 기업으로, 보호 기간이 끝난 복제약이나 팔아먹던 진한약품이 그 사건으로 크게 성장해 연구 전문 기업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의 머릿속에 그제야 떠올랐다.
“그놈들이라고?”
“네, 맞습니다. 그놈들입니다.”
확실히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복제약을 팔아먹는 정도의 소규모 기업으로 운영되던 진한약품이 그 후 막대한 수익과 미다스의 지원 아래 연구 전문 기업으로 바뀐 건 유명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