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969)
이건 훼이크다, 병시나 (3)
이미 한국항공에 대출해 주기로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대룡에 대출해 준 후에 나중에 다시 한국항공에 대출해 줄 수는 없다.
설사 그게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이 양쪽 다 돈을 빌려줄 만큼 자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환장하겠네, 진짜.”
황동인은 입술이 바짝바짝 탔다. 하지만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무조건 거절해.”
“네?”
“무조건 거절하라고. 오리엔탈항공이 대룡에 넘어가게 할 수는 없어.”
오리엔탈항공은 어떻게 해서든 한국항공이 먹어야 한다.
그래야 독점할 수 있고 그래야 황금저축은행도, 한국항공도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거 조건이…….”
다른 곳도 아닌 대룡이다. 조건을 비교할 수도 없는 일.
“무조건 안 된다고 해!”
하지만 황동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그건 노형진이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 * *
“그래서? 거절당했다고요?”
“그렇다고 하더군. 허, 진짜 어이가 없어서.”
유민택은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다른 곳도 아닌 대룡이다. 대룡에서 과연 2조를 확보하지 못해서 대출하려는 걸까?
아니다. 안정적인 자금 운영을 위해 그런 거다.
그런데 거절이라니.
“뭐, 이걸로 한 가지는 확실해졌네요. 예상대로 한국항공과 거래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돈을 빌려주기로 한 것일 테고요.”
“자네 말이 맞을 걸세. 그게 아니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세상에 안전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봤어도 위험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못 봤다.
“아마도 그쪽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한국항공에 돈을 빌려주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 자네가 전에 썼던 그런 방법은 어떤가?”
“뱅크런요? 힘들죠.”
막대한 돈을 넣었다가 한 번에 빼는 방법으로 뱅크런을 시킬 수는 있다. 한번 그런 방법으로 피해를 준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코델09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입니다. 뱅크런을 일으키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아무리 저축은행이라고 해도 황금저축은행 정도의 규모가 되는 곳에서 뱅크런이 발생하면 경제에 치명타가 옵니다.”
물론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상황이라면 주저 없이 그런 방법을 쓰겠지만 지금은 그걸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문제인 거다.
“그러면 우리 돈으로 인수해야 하나?”
“아, 물론 그건 나중 문제죠. 일단은 한국항공이 대출을 못 받게 하는 게 우선이니까요.”
“어떻게?”
“거절당했으니까 그걸 경제 잡지에 내보내는 겁니다.”
“경제 잡지에?”
“네, 아 다르고 어 다른 게 바로 언론이니까요.”
“이해가 안 가네만?”
“상식의 선에서 생각하면 된다는 거죠. 지금 상황에서 황금저축은행과 한국항공이 사돈 집안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당연한 거다. 그걸 외부로 공표하면서 결혼하기에는, 서로 인맥이 끈끈하다는 걸 자랑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대출받게 될 때라도 부당 대출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부당 대출이잖나?”
“맞습니다. 부당 대출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사람들이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 사실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게 되는 거죠.”
대룡의 대출 신청을 황금저축은행이 거절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면 가능성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부당 대출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2조 원이 없다는 거죠.”
“응?”
“그들의 믿음을 없애는 방법은 뱅크런뿐만이 아닙니다. 확실하게 돈이 되는 것도 거부하는 것. 그건 그 기회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돈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황금저축은행이라면 2조 원 정도는 커버 가능할 텐데?”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그걸 증명하는 건 다른 문제죠.”
“아!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대룡이라는, 확실히 돈이 되는 기업의 대출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걸 뉴스에 내보낸다면?
“왜 대출을 거부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시작될 겁니다.”
결과는 이미 나와 있고 그에 대한 원인을 찾는 건 지금부터다.
문제는 그 원인을 찾는 방법이다.
만일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당연히 은행 내부에 현금 자산이 거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된다.
이를 피하고자 한국항공에 돈을 빌려주기로 약속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건 부당 대출에 해당된다.
“결국 어느 쪽이든 황금저축은행 쪽은 마땅한 말을 못 하는 거죠.”
그걸 굳이 노형진과 대룡에서 건드릴 이유는 없다.
“언론에서 알아서 터트릴 테니까요, 후후후.”
* * *
대룡그룹, 황금저축은행에서 대출 거부당해. 대룡의 자산적 문제인가, 황금저축은행의 자산 부족인가
쾅!
그럴듯한 제목이었다.
하지만 그걸 본 황금저축은행의 주주들은 분노로 눈이 돌아갔다.
“지금 이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말씀을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에, 그게 말입니다, 아니, 뭔가 오해가…….”
“오해? 오해? 지금 오해라고 했습니까? 다른 곳도 아닌 대룡에서 대출을 신청했는데 그걸 거부하고, 오해?”
“서류가 미비해서…….”
황동인은 분명 황금저축은행의 사주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모든 걸 지배하는 건 아니었다.
황동인이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자기 혼자 저축은행 규모의 사업을 할 정도의 돈은 없다.
당연히 투자자들이 있고, 투자자들은 이 뉴스를 보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뉴스 못 봤어요? 현재 황금저축은행의 예치금이 부족해서 대출을 거부한 게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잖아요!”
이는 중요한 문제다.
그도 그럴 게, 은행의 파산 과정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바로 그런 예치금 부족 현상이니까.
“예치금은 충분합니다. 현재 예치금은 대략 3조 4천억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대룡에서 신청한 대출을 거부한 겁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서류가 미비해서…….”
황동인이 진땀을 뻘뻘 흘리며 말하자 모두의 뒤에 있던 한 노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황 사장.”
낮은 목소리에 언성을 높인 것도 아니었건만, 그 노인의 말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그도 그럴 게 그는 여기서 최대 주주였으니까.
단순히 최대 주주라는 게 문제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쩐주였다. 그것도 힘과 권력을 다 가진.
“내가 황금저축은행에 투자할 때는 말이지, 자네가 어느 정도 장난치는 건 감안하고 한 거야.”
“네…… 네, 회장님.”
“그런데 이번 건 장난이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오해십니다, 회장님.”
“오해? 내가 설마 대룡에서 제출한 서류를 못 구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설사 서류가 부족해도, 말해서 보충하면 그만 아니던가? 심지어 미국에서 운영 중인 의료 재단을 담보로 걸었다던데?”
그 말에 황동인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도대체 어디서 그 정보가 새어 나간 걸까?
아니, 생각해 보면 그게 새어 나간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말했을 텐데? ‘뭘 해도 좋다. 누구한테 용돈을 받아도 좋다. 나한테만 피해를 주지 말아라.’라고.”
“회, 회장님.”
“그런데 말이야, 자네가 요즘 선을 너무 넘는 것 같아.”
“아니, 그게 그러니까…… 저도 거국적으로 생각해서…….”
“그래서 거국적으로 어떤 부분을 생각했나?”
“그게…….”
당연히 그런 거 없다. 그냥 이권만 따라간 거니까.
하지만 이게 설마 문제가 될 줄은 몰랐기에 황동인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러니까…… 한국항공에서 항공 산업을 독점하게 되면 추후 장기적으로 우리의 주요 고객이…….”
“장난하나?”
“네?”
“지금 코델09바이러스가 언제 끝날지 아나?”
“…….”
당연히 모른다. 황동인은 사업가지 예언가 같은 게 아니니까.
“그러면 한국항공이 우리한테 빚을 갚을 수는 있겠나?”
한국항공이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건 아니다.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이 썩어 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돈이 썩어 나는 상황이라면 굳이 제2금융권인 황금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리려고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항공 산업을 독점함으로써…….”
황동인은 어떻게 해서든 변명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명이 도리어 그의 목을 조이는 함정이 되었다.
“황 사장.”
“네, 회장님.”
“자네는 황금저축은행 사장인가, 아니면 한국항공 사장인가?”
“네?”
“우리는 은행이야. 우리한테 중요한 건 우리한테 이자를 내줄 사람이야.”
즉, 이자를 내줄 수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돈을 빌려주는 게 은행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바로 그런 황동인의 변명이었다.
“상식적으로 이자를 잘 낼 곳은 대룡이지. 한국항공이 아니라.”
“…….”
“그리고 아까부터 한국의 항공 산업을 독점함으로써 이익이 엄청나게 날 거라는데, 그런다고 해서 한국항공이 우리에게 그 수익을 나눠 주나?”
“그거야…….”
그럴 리가 없다. 도리어 수익이 나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빨리 빚을 정리하려 할 것이다.
“자산이 빵빵한 기업이 굳이 은행에 찾아올 이유가 없지.”
설사 있다고 한다고 해도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을 찾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면…….”
“자네가 아무리 한국항공을 칭찬한다고 해도 우리한테는 땡전 한 푼 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라는 거지.”
한국의 하늘길을 독점해서 매년 수십조씩 벌어들인다고 한들 그들이 황금저축은행에 뭔가를 해 줄 가능성은 없다.
“우리 은행은 이자로 먹고살지. 당연히 대출해 줄 때도 안정적으로 이자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겠지.”
그런데 황동인은 그런 사람이 찾아왔는데 자기 스스로 쫓아내 버렸다.
“요즘 자네가 감을 잃은 것 같은데 말이지.”
회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자네도 슬슬 쉬어야 하지 않겠나.”
“네?”
그 말에 황동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내 딸은?’
한국항공이 자신의 딸을 며느리로 맞이해 준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할 때 수월하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다.
사실 한국항공 입장에서는 아무리 황동인이 황금저축은행의 대표라 해도 진짜로 동급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필요할 때 돈을 확보하는 게 쉬워서 선택한 것뿐이다.
1금융권은 자신들이 한국항공과 급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호오?”
그 말에 노인이 왠지 재미있다는 얼굴이 되었다.
“그러니까 은퇴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군?”
“저는 아직 창창합니다. 은퇴는 아직 멀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싱긋 웃었다.
“재미있어.”
“네?”
“내 말에 토를 단 놈이 몇십 년 만인지 모르겠군.”
그 말에 황동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의 인생도 망가질 게 확실했다.
“이 안에서 자네가 얼마나 텃밭을 갈아 놨는지 모르지만…….”
방금 전까지 웃던 노인의 눈빛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자네 편이 많기를 바라네. 목숨이 걸린 싸움인데 어설프게 싸우면 재미없지 않나.”
‘이런 젠장.’
황동인은 그 말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이제는 싸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