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98)
노형진과 유민택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남자. 그는 유민택을 보면서 고개를 팍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아, 전 사장, 이쪽과 인사 나누게. 노형진이라고 하네. 새론의 변호사네.”
“반갑습니다.”
무심하게 인사를 건네는 그를 보면서 노형진은 그가 연기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연기는 능숙한데 심리는 잘 모르네.’
새론이라고 하면 대룡의 가장 믿을 만한 아군이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무척이나 반갑게 인사한다. 그런데 그는 그냥 무심하게 인사를 건넬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그러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바로 자식의 사건을 알고 있다는 것. 자신들이 상대 측 변호사인 만큼 반갑다고 말은 못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한 것이다.
“그다지 반갑지는 않으실 텐데요?”
“네?”
“아시잖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유민택. 전문광은 감출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어쩔 수 없이 인정했다.
“솔직히 반갑지는 않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상대방을 만났으니 반가울 리 없다.
“여기까지 왜 오신 겁니까?”
“아실 텐데요?”
“모릅니다.”
전문광은 자신의 치부를 말하고 싶지 않은 건지 딱 잡아뗐다. 그걸 본 노형진은 그가 가소롭다는 생각했다.
‘웃기는군.’
아들이 가지고 논 상대방은 절망감에 목숨마저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은 고작 창피하다는 이유로 그걸 모른 척하는 걸 넘어서서 아예 없던 일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난 아는데 말이야. 할 말 있나?”
하지만 유민택은 그런 그의 창피함을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유민택이 직접적으로 말하자 전문광을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답했다.
“새론은 우리 대룡의 우호 기업 아닙니까? 그러면 절 변호해야지, 저런 꽃뱀을 변호하면 안 되지요.”
꽃뱀으로 상대방을 비하하면서 새론을 욕하는 전문광. 노형진은 그런 그를 바라보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러면 우리한테 먼저 의뢰하셨으면 되잖습니까? 우리 쪽 의뢰인은 전성문 씨가 아니라서요.”
“처음에는 몰랐다고 해도 대룡의 일이라면 알아서 물러서야지요.”
그 말에 노형진은 천연덕스럽게 유민택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유 회장님.”
“응?”
“대룡에서는 혼인 빙자 간음을 적극 권장하나 보죠?”
“그럴 리가 있나.”
“그런데 왜 혼인 빙자 간음 사건이 대룡의 사건이 되는 거죠?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그 말에 전문광은 얼굴을 찌푸렸다. 회사 차원에서 그런 범죄를 적극 권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니면 공과 사를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도 뽑나 봅니다.”
“말이라고 하면 지금 다인 줄 아나!”
결국 폭발하는 전문광. 하지만 상대방이 좋지 않았다.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뽑은 내 잘못일세.”
도리어 회장이 숙이고 들어가자 사장인 전문광으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공과 사는 구분할 수 있기를 기대해도 되겠지요?”
“그럼 안 그런가? 난 그런 걸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장을 둔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네…….”
유민택이 전문광을 바라보면서 묻자 전문광은 속으로 이빨을 빠드득 갈면서도 ‘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난 자네를 믿네. 나가 보게.”
“알겠습니다, 회장님.”
전문광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가면서 노형진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눈빛을 받은 노형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이거, 너무 자극한 거 아닌가?”
“인재는 못되는군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유민택은 공감하는 모양이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야. 그 실력이나 능력은 인정하는데 아무래도 거친 공사판에서 살다 보니 가끔 공사 구분을 잘 못하네.”
“의외네요.”
보통 현장에서 구른 사람은 사장까지 올라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라갔다는 건 생각보다 능력은 있다는 뜻이다.
“능력만 보고 뽑았네.”
“진짜 능력만 보고 뽑았네요.”
“실수야.”
능력만 보고 뽑았더니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대놓고 경고했으니까 법원 쪽으로 장난은 못 칠 걸세. 자네가 원한 게 그거 아닌가?”
“하하하, 잘 아시네요.”
상대방이 대룡 소속이라고 해도 반대편에 선 이상, 노형진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써서 싸울 뿐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노형진이 나가자 유민택은 고민에 빠졌다.
“흠…….”
그는 한참 고민하다고 전화기를 들어서 비서를 불렀다.
“문 비서, 전문광 사장에 대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오게.”
“전문광 사장 말입니까?”
“그래.”
“알겠습니다.”
통화는 짧았지만 유민택의 생각은 많았다. 노형진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적당히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고 그건 회사 차원에서도 그다지 좋은 게 아니었다.
“전문광? 전문광? 왠지 어감이 이상하군.”
그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노형진은 일단 피해자와 인사하면서 그 얼굴을 살폈다.
‘삶의 의욕이 없군.’
고소한 것은 부모님 때문이지, 이미 그녀의 얼굴에는 삶의 의욕이 없어 보였다. 하긴 그런 식으로 당했으니 여자의 입장에서는 살기 싫을 것이다.
“이런 사건으로 뵙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녀가 노형진을 아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나 하루에도 몇백 명을 만나는 시장의 특성상 가끔 가서 물건을 사는 노형진을 기억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번 사건의 경우 부모님의 의견으로 고소하신 건가요?”
“네.”
“그러면 사정을 좀 들을 수 있을까요? 2심에서는 제가 담당하게 되면서 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어서요.”
“…….”
“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가끔은 분노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됩니다.”
“분노요?”
“네, 이 사건에서 빠진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
“너무 착하게만 사셨어요. 세상은 착하게 살면 호구일 뿐입니다. 화낼 때는 화내셔야 합니다.”
노형진은 정아름의 그런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그녀의 말이 맞다면 이번 사건에서 그녀의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의 잘못은 그저 사람을 믿은 것뿐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떵떵거리면서 잘 살고 피해자는 목숨을 버리려고 한다.
“그건 분노할 일이지, 절망할 일이 아닙니다. 그쪽은 도리어 피해자인 정아름 씨가 절망해서 죽기를 바랐을 겁니다.”
“…….”
“분노하세요.”
“분노라고요?”
정아름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말했다. 착하게 살라고, 세상에 착한 끝은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남을 미워하지 않고 바르게 살라고 들었다.
“화를 내라고요?”
“네.”
노형진은 수많은 피해자들을 보면서 이 점이 안타까웠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다. 그중에는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도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걸 고치기보다는 그걸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 개인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실패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노오오오오오력이란 말이지.’
노오오오오력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맨날 노력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걸 비꼬는 표현이다. 아직은 생각지도 않은 말이지만 노형진은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솔직히 기득권 놓고 일대일로 붙으면 질 거면서.’
기성세대는 언제나 젊은 애들이 노오오오력을 하지 않아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기득권 세대는 젊은 세대처럼 학벌도 좋지 않고 학점도 높지 않으며 어학연수 경험도 없다. 능력적인 면에서 보면 반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저 운이 좋아 시대를 잘 만났다는 것, 대학만 나와도 취업할 수 있고 자격증이라고는 컴퓨터 기능사만 있어도 인정받던 시대 출신이라는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언제나 젊은 세대를 탓한다.
“‘내 탓이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남 탓입니다.”
기성세대가 잘못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내 탓이오.’라는 단어다. 물론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왜 남의 문제까지 책임져야 한단 말인가? 그건 남 탓이지, 내 탓이 아니다. 사기당한 게 자기 잘못인가? 아니다. 사기를 친 놈이 잘못한 거다, 사기를 알아채지 못한 피해자가 아니라.
“화내세요.”
“하지만 어떻게요? 솔직히 모르겠어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그냥 자기를 놔 버리세요.”
“놓는다고요?”
“네.”
하긴 착한 사람들의 문제가 이거다. 착한 나머지 자신을 놓는 걸 두려워한다. 노형진 역시 자신은 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착해서라기보다는 냉철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런 노형진조차도 정신 건강을 위해서 가끔은 자신을 놔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떻게 놔야 하냐면요.”
설명하기 애매한 문제다. 노형진이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는 그때였다.
“여기지? 그 화냥년이 있는 게 여기 맞지?”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오는 여자.
노형진은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곱게 늙은 중년의 여자. 온몸을 명품으로 휘감은 그녀는 정아름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이 망할 년! 어디서 꼬리를 쳐! 이 화냥년! 돈독이 올라도 아주 제대로 올랐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들을 꼬셔서 사고를 쳐? 오늘 너 죽고 나죽자!”
정아름에게 달려드는 그녀. 노형진은 그런 그 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이 새끼야! 안 꺼져?”
“저, 이분의 변호사입니다!”
“변호사?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싸구려 변호사 새끼가 끼어들어! 안 꺼져? 너도 같이 죽을래?”
길길이 날뛰던 그녀를 보던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보아하니 그 전성문의 어머니인 모양이군.’
노형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정아름을 돌아보았다.
“아까 물어보신 거 대답해도 되겠네요.”
“네?”
“어떻게 화내는지 모른다고 하셨죠?”
“네.”
“그래서 그냥 놓으면 된다고 말씀드렸죠?”
“네.”
“근데 그걸 모른다고요?”
“네.”
노형진과 정아름의 대화에 그 아줌마는 더 열 받았다. 자신은 전혀 모르는 말을 둘이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 방법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
“뭐라는 거여, 이 새끼가? 너 지금 죽고 싶어?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전화 한 통이면 넌 이 바닥에서 매장이야! 매장!”
소리를 지르는 그녀. 하지만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
짝!
엄청난 소리와 함께 고개가 휙 돌아가는 그 여자.
여자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믿기지 않는지 붉어진 얼굴로 멍하니 있었고 정아름은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뭐? 듣도 보도 못한 변호사? 너 같은 년이 세상 모른다고 세상이 다 듣도 보도 못한 곳이냐?”
“뭐…… 뭐라고?”
“왜? 너만 성질이 있고 너만 화낼 줄 아는 줄 아나 보지? 듣도 보도 못했다고? 이 아줌마야, 세상은 듣도 보도 못한 게 좋은 것도 있는 거야. 내 이름 듣고 멀쩡하게 나간 인간이 얼마나 될 것 같은데?”
“이것이 미쳤……!”
짝!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따귀가 올라갔다. 그리고 연이어 터지는 따귀 소리.
짝! 짝! 짝!
결국 여자는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붉어진 얼굴에는 당혹감과 수치심이 가득했다.
“너…… 너…….”
“어디서 봤다고 반말이야, 이 아줌마야!”
노형진의 말에 그녀는 분노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 대룡토건의 사장의 와이프다. 자신이 나가면 모두가 고개를 숙여야 했고 모두가 우러러봐야 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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