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3998)
소리 없는 살인자 (3)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실제로 공포감을 느낀 걸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실제로 다른 회사에서 자살자가 나왔는데, 박근석의 말에 따르면 우창선의 협박에 겁먹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했다.
“더군다나 그들이 참다못해 결국 고발까지 했지요.”
즉, 상대방이 실제로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협박은 그 두 가지 사실만 성립하면 완성되는 거다.
“어?”
우창선은 그 말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 대부분 반응이 이렇지.’
지금까지 제대로 반격이라는 걸 당해 본 적이 없는 우창선이다. 그러니 자신이 절대적인 갑이라 생각했을 테고, 대부분의 경우 기업의 힘으로 상대방의 저항을 어렵지 않게 찍어 누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실드를 치지 않는 일종의 압력은 처음일 테니 혼자서 감당하기는 부담스러울 거다.
‘어디 한번 재주껏 막아 봐라.’
노형진은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우창선에게 말했다.
“그래서, 위협하셨다고요?”
“아니, 그것 때문에 죽은 건 아니잖아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 이분이 오해하시나 본데.”
“오해요?”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뭐라고요?”
“당신이 사람을 괴롭혀서 자살하게 만들었다면 자살 강요죄가 성립하는 거고, 당신이 그 사실을 입에 담으면서 자살당하기 싫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 건 별도의 협박죄가 성립하는 거라고요.”
“뭐라……고요?”
우창선은 그 말에 깜짝 놀라서 경찰을 돌아보았다.
경찰은 그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습니다. 피해자가 다르거든요.”
동일한 사람에게 이루어진 거라면 하나의 죄로 묶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에게, 전혀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목적으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범죄는 하나로 엮이지 않는다.
즉, 우창선의 협박과 자살 강요는 전혀 다른 죄로 처벌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거다.
우창선은 그걸 몰라서 변명하다가 도리어 죄를 더 만들어서 뒤집어쓴 거고 말이다.
“건수가 180건이라고 하니까 빨리 시작하죠. 이름부터 말하세요.”
긴 한숨을 쉬면서 내뱉는 경찰의 말.
하지만 우창선에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 * *
“우창선은 전혀 모른다고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그 말에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놈이 우리 자식을 잡아먹고 잡아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물론 말이 안 되죠. 하지만 그는 몰랐다고 딱 잡아떼고 있습니다.”
“이런 개 같은…….”
“진정하세요. 처음부터 예상한 일이니까요.”
노형진은 그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물론 피해자들이 억울하고 화가 나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마음대로 움직이면 또 다른 피해자가 될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은 분노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뭘 해야 합니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뭐든 못 할까?
만일 법이 복수해 주지 않는다면?
당연히 직접 나서서라도 우창선을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 심정을 알기에 노형진은 그들에게 각자 일을 맡길 생각이었다.
‘법을 통한 복수는 아무래도 복수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지.’
직접 범인을 두들겨 패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죽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신고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보니 유가족들 입장에서는 복수의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럴 때는 차라리 이들이 할 수 있는 걸 맡기면 된다.
“여러분들은 피해자들의 친구들이나 회사의 사람들을 만나서 좀 설득해 주셨으면 합니다.”
“설득요?”
“피해자들이 과연 여러분의 가족만 있을까요? 그럴 리가 없죠.”
자살한 사람이 그들의 가족일 뿐이지 다른 피해자들도 분명 있다.
“그분들은 지금 사정을 모르고 가만히 있을 겁니다.”
어차피 우창선은 그만뒀으니까. 이제는 그 미친놈과 다시는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할 거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효용을 다해서 일단 내보내기는 했지만 또다시 우창선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회사에서는 기꺼이 그를 불러들일 것이다.
‘이참에 아예 그런 부분도 완벽하게 정리해야겠어.’
“그러니까 저희가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서 설득을 해서 고발해 달라는 겁니까?”
“네, 물론 저희들이 나서서 이야기해도 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같은 피해자분들이 나서서 이야기를 하는 게 그분들에게는 좀 더 와 닿지 않을까요?”
새론은 제3자다. 설득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는 건 거절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삶은 계속되니까.’
친구이자 동료는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지만 자신이 죽은 건 아니다. 자신은 살아 있고 가족들도 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지내지.’
회사에서는 그걸 알기에 우창선을 이용하고 내보내는 형태로 움직인 거다.
그렇기에 제3자인 새론이 나서서 설득을 해도 그때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적인 동물이다. 특히 한국인은 좀 더 감정적이다. 그래서 유가족이 나서면 더더욱 죄책감을 느끼게 될 거다.
‘산 자의 죄책감이라는 거지.’
회사 내부에서 괴롭힘에 이기지 못해 누군가가 자살했다. 그러나 자신은 살아남았다.
과연 그 상황에서 다른 동료들에게 드는 생각은 어떤 걸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니다. ‘나만 살아남았구나.’라는 죄책감이 들게 된다.
설사 그 죽음이 자살이라고 해도, 그 자살이 우창선을 비롯한 윗선의 압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같이 겪은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해자의 유가족은 그 죄책감을 더더욱 자극하지.’
그러면 설득이 좀 더 쉽게 이루어질 거다.
더군다나 우창선은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황. 당연히 그렇게 당한 직원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자신에게 보복하지 못할 거라는 안도의 감정도 있을 거다.
자신은 안전한 상황에서 희생된 이의 유가족이 등장해 도움을 요청한다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 싶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뭘 해서라도 그들한테서 증언을 받아 오겠습니다.”
“아, 돈을 주거나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증언이 인정이 안 될 테니까요. 그냥 그 당시에 우창선이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만 들어 주시고, 그에 관련된 증언을 가지고 오시면 됩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피해자의 가족들은 생계마저 접어 두고 과거 자식이 다녔던 회사의 직원들을 찾아다니면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피하던 사람들은 점차 그들의 설득에 흔들렸다.
“과장님.”
“응? 김 대리, 어쩐 일이야?”
회사 옥상의 흡연실. 그 안에서 담배를 연신 피워 대던 박 과장은 들려오는 김 대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서 그를 바라보았다.
“김 대리, 담배 안 피우지 않았어? 누가 나 불러?”
혹시나 핸드폰 소리를 못 들었던 걸까 하고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는 박 과장. 하지만 거기에는 부재중 전화 같은 건 없었다.
“저 그 새끼 때문에 담배 배웠잖아요.”
“아아~.”
그 새끼라는 말에 박 과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지만 누구인지 알 것 같았으니까.
“군대에서도 배우지 않은 담배인데 말이죠.”
그는 피식 웃으면서 흡연실로 들어와서 담배를 꼬나물었다.
그리고 허공으로 담배 연기를 날려 보냈다.
그걸 보고 있던 박 과장은 거의 다 피운 자신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꺼 버리고는 다시 담배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뭘 그렇게 연신 피우세요?”
“그냥 갑갑해서 그래. 갑갑해서.”
“뭐, 다 그렇죠…….”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연신 담배만 피웠다.
박 과장이 세 번째 담배를 입에 물 때쯤 결국 참지 못한 김 대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과장님.”
“응?”
“혹시 배 대리네 부모님한테서 연락받은 거 있으세요?”
“배 대리네? 하아~ 그래, 툭 까고 말하자. 너도 연락받았냐?”
“대충 들어 보니까 팀원들 다 한 번씩은 받은 모양이더라고요.”
“하긴, 그럴 만하지.”
배 대리는 우창선에게 괴롭힘당해서 자살한 직원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괴롭힘당하기는 했지만 배 대리는 집중 마크당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괴롭힘당했다.
배 대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하는 게 조금 느렸으니까.
물론 조금 느린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 느린 정도였으니.
그 대신에 배 대리는 꼼꼼했다. 그래서 남들이 실수한 부분까지 잡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느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우창선은 배 대리를 미친 듯이 갈궜다.
“배 대리 마지막 날 있잖아요, 염할 때.”
“그래…… 그때…… 후우…… 개 같은 자식.”
배 대리가 죽고 마지막 염을 할 때 두 사람을 포함한 일부 직원들은 가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갔다.
그리고 그날, 그들은 우창선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과장님한테 뭐라고 한 거예요? 그때 과장님이 죽여 버린다고 길길이 날뛰셨잖아요?”
그러나 자식과 가족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던 박 과장이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에 박 과장은 우울증 약을 먹고 날마다 줄담배를 피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 그날…….”
“네, 그 새끼한테서 전화 왔잖아요?”
“배 대리 죽은 걸로 언제까지 회사 빠질 거냐고, 소꿉놀이할 거라면 회사 때려치우고 집에서 놀라고 하더라.”
“네? 진짜로요?”
“그거뿐이었다면 내가 그렇게까지 화가 안 났지. 뒈진 새끼가 그렇게 안타까우면 같이 뒈지라더라.”
“미친 새끼네, 진짜.”
김 대리는 눈을 찡그렸다.
그날 이후로 박 과장이 아무 말도 안 해서 그 통화에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몰랐는데, 들어 보니 역시 미친놈이 맞았다.
“그래,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는데, 후우~.”
사실 회사에 와서 당장 죽여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사장과 이사까지 나서서 중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창선이 그만뒀기에 그걸로 끝난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스카우트였다니. 허, 기가 막혀서.”
유가족들에게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 사건으로 잘린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리어 더 큰 회사인 지온시스템으로 더 많은 돈을 받고 이직해 갔단다.
“박 과장님, 그런데 그 유가족이 한 말이 진짜일까요? 진짜로 우리한테 채찍질하려고 그런 짓거리를 한 걸까요?”
“아마도?”
생각해 보면 이상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자신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항의했고, 실제로 몇몇은 사표를 쓰고 그만두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우창선만 편들어 줬다.
당장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다.
당시에 그는 말로만 항의한 게 아니었다. 통화 내역과 녹음 파일까지 들려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우창선을 편들어 줬다.
“그리고 우창선이 프로젝트가 끝나고 이직한 건 사실이잖아.”
“씨팔. 개 같은 새끼.”
김 대리는 다시 한번 담배를 물려다가 빈 담뱃갑을 확인하고는 눈을 찡그리며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졌다.
그걸 본 박 과장은 그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어쩔 거냐?”
말이 나온 이상 결국은 끝난 상황이다. 다들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그걸 정리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
“솔직히 고민 중이기는 해요. 그런데 어차피 그 새끼, 이제 볼 일 없잖아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니요?”
“그 가족분들 말대로 채찍질하기 위해 데리고 온 거라면 다시 데리고 올 가능성도 있지. 솔직히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우창선 그 새끼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군기반장 한다고 설치는 새끼들이 어디 한둘이냐?”
“하긴, 그건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