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0)
“다른 기록은 없습니까?”
“다른 기록요?”
“네, 다른 사건으로 고발당했다거나.”
“애석하게도 그런 건 없습니다.”
“그런가요?”
“네.”
혼인 빙자 간음죄는 시중에 널리 알려진 범죄이기는 하지만 또 반대로 널리 알려진 만큼 잘못된 정보도 많다.
“사전에 혼인 빙자 간음으로 고발당한 적이 없다면 주변에서 누군가 알려 줬다는 소리군요.”
그 말에 손예은은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요.”
“설마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요. 청계의 일도 있지 않습니까?”
“네?”
“청계 말입니다.”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뭔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법무 법인 청계. 이제는 사라진 범죄 설계 집단.
‘그러고 보니 그들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
수뇌부 중 일부는 처벌받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여전히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단 한 번도 변호사 자격이 박탈된 적이 없다. 그만큼 그들의 세계는 공고하다.
“혹시 청계의 변호사가 해 준 거라 생각하세요?”
“그럴 수도 있군요. 이번 사건 담당이 누구죠?”
노형진은 상대방 변호사의 기록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소장에는 변호사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 그걸 보고 변호사 협회에서 검색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음…….”
그러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일단 법무 법인 청계 소속이었던 건 맞군요.”
“설마…….”
“네, 범죄를 설계했을 가능성이 높네요.”
“그러면 증거도 모여 있겠군요.”
“그게…… 그럴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네?”
손예은은 깜짝 놀랐다. 법무 법인 청계는 약점으로 잡기 위해 자신들이 설계한 범죄에 대한 모든 증거를 남긴다. 그런데 가능성이 낮다니?
“이번 사건의 가해자 측을 담당하는 변호사는 전태훈이네요.”
“설마?”
“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은 건 아니죠.”
더군다나 기록에 따르면 전태훈과 전성문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나왔다.
“친척이군요.”
“아…….”
“아마 뭔가를 노리고 한 설계는 아닐 겁니다.”
그저 트로피 삼아서 여자를 가지고 놀 수 있게 도와준 것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증거도 남아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심이니까 일단 공평해졌기는 할 텐데.”
1심은 분명 전광문이 손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은 2심이니 판사가 바뀐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저들이 유리하단 말이지.’
없는 것을 증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 사건은 형사사건. 그가 직접 사건에 끼어들어서 하는 게 아니라서 증거를 수집하고 의견서를 내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2심까지 왜 갔지요?”
“네?”
“이런 사건은 보통 1심에서 끝나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네.”
혼인 빙자 간음죄는 형량이 큰 것도, 큰 실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대룡토건의 사장쯤 되고 검사라면 당연히 판사가 그들에게 넘어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2심으로 바로 넘어갔다?’
기록에 따르면 2심을 신청한 날짜는 판결 난 날짜로부터 이틀 후. 문제는 이 시점이면 1심 결과를 아직 피해자나 변호사가 받은 날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결문은 끝나고 사흘째에서 받으니까.
‘즉, 손예은은 변호사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2심을 넣었다는 건데.’
일반적으로 이런 사건이 변호사나 피해자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아 2심을 신청하는 걸 제외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한번 담당 검사를 만나 봐야겠군요.”
“담당 검사를요?”
“네, 혹시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시죠?”
“아닙니다.”
그렇다면 서로 아는 사이라서 항고했다는 뜻은 아니다.
“일단 이 사람을 만나 봐서 이야기해야겠습니다.”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그가 열쇠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노형진입니다.”
“서태웅입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검사는 단단해 보이는 건장한 남자였다. 그는 노형진에게 자리를 권하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이번에 제가 정아름 사건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네? 노 변호사님이요? 놀랍군요.”
“그게 놀라운 일인가요?”
“그럼요. 노형진 변호사님이야 유명한 분 아닙니까?”
노형진은 그렇게 대화하면서 그의 기색을 잘 살폈다. 그리고 그가 왠지 반가워하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그런 걸 반가워할 일은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이군.’
노형진은 그에게 한번 돌직구를 던져 보기로 했다.
“전성문과 악연이 깊은가 보네요?”
“네?”
“전성문에 대해 좀 아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는 약간 당황하다는 얼굴이 되더니 슬쩍 바깥을 보고는 일어나서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로 와서 앉아서는 목소리를 낮춰서 물어봤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설마 제 뒷조사라도 하신 겁니까? 그런다고 해도 안 나올 텐데요?”
“거의 바로 항고하셨더군요. 항고장을 쓸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처음부터 질 걸 예상하고 항고 준비를 하셨다고 봐야 해서요. 그런 경우는 한 가지뿐이죠.”
“허.”
서태웅은 깜짝 놀랐다. 노형진이 날카로운 변호사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자신이 항고했다는 것만으로 자신과 전성문이 악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명불허전이라고 하더니 대단하시네요. 비밀은 지켜 주시는 거죠?”
“그럼요. 검사와 가해자의 사이가 나쁘다면 우리야 좋지요.”
노형진이 미소를 보이자 서태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검사나 판사는 피해자나 가해자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을 경우 그 사실을 고지하고 다른 사람에게 사건을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뭐, 대학교 동기입니다.”
“그거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데요?”
“저 녀석의 이런 짓이 대학 때도 유명했거든요.”
“좋아하는 분이 당했나 봅니다.”
“그건 또 어떻게 안 겁니까?”
“아까 기록에는 나오지 않을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이런, 노형진 변호사님 앞에서는 진짜 입조심해야겠습니다.”
서태웅은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대학에 다닐 때 그 녀석은 이런 식으로 여자를 건드리는 것으로 유명했고 그 당시 희생자 중에는 서태웅이 좋아하던 여자 선배도 있었다. 고백도 해 보기도 전에 전성문이 먼저 건드리고는 버리는 바람에 충격받은 선배는 학교를 그만둬 버렸다.
“그래요? 학교에서 유명했나 보군요.”
“네.”
아버지도 잘나가는 데다가 그 자신도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방탕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 녀석이 혼인 빙자 간음죄로 왔다는 걸 알고는 왠지 납득이 가더군요.”
“자기 버릇은 개 못 준다고 하죠.”
“하하하.”
노형진은 왜 그가 문자나 전화로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원래 그런 녀석이라면 경험도 많은 데다가 전태훈이 조언을 아끼지 않았을 거니까.
“그래서 항고하신 거군요.”
“네.”
그의 성향을 알고 있으니 피해자의 말이 맞다는 걸 알고 바로 항고한 것이리라.
‘그나마 썩은 검사는 아니군.’
썩은 검사라면 알았다 해도 항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판사에게서 넌지시 어떤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항고했다는 것은 피해자의 편에 서겠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방법은 찾으셨습니까?”
“아직은 못 찾았습니다.”
노형진이라고 해도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솔직히 저도 그렇습니다. 이 녀석이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지라 여러모로 곤란하네요.”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건에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형사사건이다 보니 피해자 측 변호사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조언해 주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서다.
“그러면 그동안 모은 기록을 볼 수 있을까요?”
“기록을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모을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무리 노형진이 따로 정보 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권력이 아니다 보니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원래는 따로 신청해야 합니다만?”
“압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피해자 측 변호사는 검사 측 기록을 열람 신청을 하여 볼 수 있다. 문제는 그걸 신청하고 볼 때쯤이면 2심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
‘3심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3심은 법률심이다. 즉, 해당 사건이 법에 제대로 적용되었는지를 보는 것이지, 사건 자체를 보는 게 아닌지라 이런 사건은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사건은 그걸로 끝이다.
“좋습니다. 다만 여기서 보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노형진은 서류철을 받아서 쭈욱 살피기 시작했다. 사건 자체는 단순한 만큼 그 증거 기록 자체는 그다지 특이할 건 없었다.
‘대부분이 피해자인 정아름이 제출한 거야. 검찰 측에서 준비하는 건 기껏해야 여행 기록 같은 건데.’
딱히 특별한 게 없는 기록들. 이런 식이면 당연히 검사가 반박할 만한 게 없었다.
‘흠…….’
노형진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서태웅에게서 부담을 느꼈다.
‘이거 참…… 내가 찾아내기를 바라는 모양이군.’
하긴 자신으로서도 답이 없으니 노형진의 도움을 바라는 것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바로 보여 줄 이유가 없다.
“음?”
노형진은 기록을 살피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뭔가 찾으셨습니까?”
“네.”
“뭔가요?”
“이거요.”
“그건 그냥 해외여행 기록인데요?”
“그렇지요.”
노형진이 집어낸 것은 해외여행 기록이다. 당연히 특이할 게 없는 기록이다.
“이게 왜요?”
“이거 우리 피해자랑 간 여행 아닙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연인끼리 여행을 가는 것은 흔한 일 아닌가요?”
“그렇지요.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있어서요.”
“어떤?”
“잠시만요. 인터넷 좀…….”
“아, 네, 쓰세요.”
서태웅은 노형진에게 자리를 비켜 줬고 노형진은 인터넷을 뒤져서 관련 기록을 찾아냈다.
“이거 보이시죠?”
“이건?”
“네, 장소와 날짜가 똑같습니다.”
거기에는 모 회사에서 운영하는 신혼여행을 위한 이벤트 상품이 등록되어 있었다. 이미 기한은 지난 행사지만 홍보를 위해 인터넷에 뿌린 정보는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왜요?”
“저도 우연히 이 광고를 봤던 기억이 있어서요.”
“광고?”
“네, 연인들을 위해 풀 패키지를 저렴한 가격에 지원해 주는 행사였지요.”
“그런데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필수용품이 있습니다.”
“필수용품요? 여행을 가는데 무슨 필수용품이…… 어?”
거기에는 신청 자격으로 결혼이나 결혼 예정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응모가 가능하다고 되어 있었다.
“왜 이런 걸 요구한 거죠?”
“가격이 싸니까요.”
연인 패키지라고 하지만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온 행사 상품이다. 당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중에는 가짜도 있을 테니까요.”
“아!”
회사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신혼여행 부부에게 홍보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하는 행사이다. 그런데 그곳에 가짜 커플이 끼어드는 것을 바랄 리 없으니 당연히 그들이 연인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뭔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뭐, 뽀뽀 사진 같은 걸 요구할 수는 없지요.”
“그렇겠네요.”
그런 건 어렵지 않게 만들어 낼 수도 있는 사진이다. 수백만 원을 아낄 수 있는데 누가 뽀뽀 정도 안 하겠는가? 그렇다고 주변에서 사귄다는 증명서를 써 줄 리는 만무하다.
“가장 확실한 건 결혼 예정임을 증명할 수 있는 청첩장이나 결혼식장 계약서일 겁니다.”
“아!”
서태웅은 그 말에 눈이 커졌다.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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