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01)
노예장이 문제가 아니라 노예제도가 문제 (2)
누구 하나 죽여서 실적을 뽑아낼 수야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사 내부에 피해가 갈 거라는 걸 모를 리가 없다.
“당연히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없던 일로 해야지요.”
우창선이 접근해서 그들을 설득한 건지 아니면 자체적으로 판단한 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직원들을 겁박해서 소를 취하하게 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게 그들의 실수일 겁니다.”
“하긴, 의심이 확신이 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우창선이 괴롭혀서 직원 중 일부가 자살한 건 이제는 딱히 비밀도 아니다.
그리고 현재 직원들 사이에서는 피해 유가족들이 한 말이 공공연하게 소문나고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채찍질할 노예장으로서 우창선을 데리고 온 거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 소문은 빠르게 퍼진 상태다.
“문제는 그걸 확신하지는 못한다는 거죠.”
직원들은 회사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는 않을 거다.
그리고 회사를 어떻게 해서든 믿으려고 할 거다.
그게 자신이 먹고살 방법이니까.
“문제는 그걸 먼저 건드린 게 회사라 이거군.”
“맞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회사는 우창선이 고소당하든 말든 신경도 쓰지 말아야 한다.
아니, 도리어 직원들의 소송을 도와줘야 한다. 공식적으로 회사에서는 우창선에게 책임을 물어서 해직했다고 발표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우창선을 도와서 직원들을 협박한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직원들은 멍청하지 않다.
“회사에서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 사람을 고용한 게 맞다고 생각하겠군.”
“정확하게는 채찍질을 위해 고용한 거지만, 다를 게 없죠.”
그 과정에서 실제로 사망자가 나왔으니까.
이미 그들은 다들 산 자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회사에서의 그런 행동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과 기타 업무 능력을 급속도로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아마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반감은 엄청날 겁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 협박에 굴해서 소송을 취하하기는 할 거다. 하지만 누군가는 소송을 취하하지 않을 거다.
“의외로 직원들의 마음이 떠나는 경우는 사소한 거에서 시작되죠.”
“실수로 모든 직원들의 급여 명세서가 공개돼서 난리 난 적이 있었지.”
그 사건으로 한 회사에서 직원의 60%가 회사를 떠나 버렸다.
“요즘은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라는 게 큰 시대가 아니니까요.”
누군가 그러지 않았던가, 직원에게 주인 정신을 심어 줄 방법은 없다고.
하물며 직원들이 주인처럼 일해 주기를 바라면서 이익은 모두 상부가 독점하는 상황에서 과연 애사심이나 주인 정신이 생길까?
“더군다나 지금같이 IT 업계 인재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지요.”
코델09바이러스가 터진 후 인간의 삶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점점 옮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서로 IT 전문가들을 빼 가기 위해 스카우트 전쟁도 장난 아니게 벌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이직에 대한 두려움이나 귀찮음 때문인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렇지만 윗선에서는 그걸 모른다.
애초에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해석하려고 한다.
“업계가 바뀌는 걸 모르는 거죠.”
그들은 전 세계 시장이 좋지 않으니까 너희도 못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상황은 정반대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제 배신당한 직원들의 분노가 조금씩 튀어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은 다른 쪽으로 향하겠죠.”
* * *
“야, 박 과장. 잠깐 나 좀 보자.”
막 담배를 피우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자신을 부르는 한 부장의 목소리에 박 과장은 눈을 찡그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단 상급자가 보자고 하니 군소리 없이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왜 부르셨습니까?”
“이 새끼야, 우 부장 소송한 거 취하하라고 했지? 내 말 안 들려? 지금 부장이 우습게 보여?”
“우 부장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몰라서 그러십니까? 사람이 죽었습니다, 한 부장님.”
얼마 전부터 우 부장 관련 소송도 취하하고 증언도 해 주지 말라는 압력이 회사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물론 박 과장은 그런 윗선의 말을 무시했다.
어차피 회사를 그만둔 놈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소송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그 새끼가 못 버티고 자살한 거 아냐.”
“자살하게 괴롭힌 게 우창선이죠. 애초에 배 대리가 사표 낸 걸 허락 못 한다고 찢어 버린 것도 우창선입니다.”
“그거야 인생의 선배 입장에서 안타까워서 그런 거지, 자살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
“그건 한 부장님 생각이고요. 결과는 경찰에서 판단하겠지요.”
“박 과장, 거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한 부장의 말을 들으면서 박 과장은 이를 박박 갈았다.
알게 모르게 위협하고 있다는 걸 모를 자신이 아니다.
“아니면 지금 우창선을 처벌하면 안 되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한 부장님?”
“그런 이유 같은 건 없어. 그냥 같이 일하던 사람끼리 소송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러지.”
그 말에 결국 참고 참던 박 과장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우리 애들이 힘들다고 그렇게 울고 죽어 나갈 때도 그랬지요. 조금만 참으라고,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아니, 그거야 그런데…….”
“왜 우리만 참습니까? 우창선 그 새끼한테 참으라고 하세요. 아니, 회사에서 참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사회생활 하다 보면 서로 싸울 수도 있고 소송도 할 수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회사가 나서서 개인의 소송 문제에 태클을 거느냔 말입니다!”
화가 나서 한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한 부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밀려 버리면 안 되었다.
이미 위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소송을 덮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 새끼가! 나이도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서 언성을 높여! 네 부모님은 이런 새끼 낳고 미역국 처먹었냐?”
“뭐?”
그 말에 박 과장의 눈이 돌아갔다.
저 욕은 우창선이 잘 써먹던 욕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부모님을 욕하는 것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래도 그때는 참았다. 회사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씨팔. 보자 보자 하니까!”
결국 박 과장은 몸을 돌려서 ‘쾅!’ 하고 부장실 문을 박살 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한 부장은 움찔했다.
설마 문을 박살 내면서 나갈 줄은 몰랐으니까.
나이나 직급으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건 결국 자기 말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기 싫다는 최후의 발악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이 그에 밀리면 승리하겠지만…….
“여기 있다, 씨팔!”
“뭐야, 이건?”
자신의 자리로 가서 뭔가를 가지고 온 박 과장은 한 부장의 책상 위로 그걸 집어 던졌다.
“염병. 회사 서랍에 사직서 하나 보관해 두지 않는 놈이 어디 있어?”
“뭐?”
“그만둔다고, 이 새끼야! 그렇잖아도 다른 곳에서 오라고 하는 거 지금 하는 프로젝트 때문에 신경 쓰여서 참고 있었는데, 뭐? 미역국? 이 개 같은 새끼. 건드릴 게 없어서 우리 부모님을 건드려?”
“어어?”
그 말을 들은 한 부장은 아차 싶었다.
현재 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실무 핵심 책임자는 다름 아닌 박 과장이다. 그가 그만두면 프로젝트가 멈출 수밖에 없는 일.
“아니, 잠깐 진정해, 박 과장. 내가 말실수한 것 같은데…….”
“그래, 했지, 씹쌔끼야. 네가 사표를 쓰든 내가 사표를 쓰든 둘 중 하나 캐삭빵이다, 이 개새끼야.”
“진정해. 진정하라고.”
직급으로는 박 과장보다 위라지만 한 부장은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기에 흥분한 박 과장을 애써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직원들 중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하얀 봉투를 꺼내서 다가왔다.
“뭐야, 이 새끼야?”
“뭐긴, 사표지.”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해서.”
“여기에 있다가는 다 죽을 것 같아서요. 저라도 살아야 할 같네요.”
부모를 욕한 한 부장의 실수는 다른 직원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여기에 계속 있다가는 다음에 자살하는 사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잠깐…… 이건…….”
한두 명도 아니고 프로젝트 핵심 인력들이 단체로 사표를 들고나오자 한 부장은 아차 싶었다.
“잠깐…… 잠깐만……. 아니. 자 자, 진정들 하고 가서 머리 좀 식혀. 오늘은 이쯤에서 퇴근하고…….”
하지만 부하 직원들은 제자리로 가더니 짐을 챙겨서 휭하니 가 버렸다.
그리고 열 장 정도의 사표만이 남았다.
“이런 씨팔. 이걸 어쩌지?”
한 부장은 분노할 사장을 생각하며 벌벌 떨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 * *
“쯧쯧, 하여간 사용자들이란.”
노형진은 대량의 사표 사태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상대로였다.
“어째서 갑이 되면 세상이 신용과 믿음으로 움직인다는 걸 까먹는 건지 모르겠다니까요.”
“그러니 말이야.”
김성식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갑이 되면 신용과 믿음보다는 힘을 이용해서 상대방을 찍어 누르는 걸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거다.
“뭐, 일부는 다시 돌아가겠지만 아마 누군가는 진짜로 이직하겠지요.”
“그러겠지. 지금 자리가 난 게 한두 곳이 아니니까.”
특히 대기업들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IT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뭐, 일단 직원들의 고발은 계속 진행될 테니까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이제 피해자의 유가족들에게 연락이 갈 순서인데, 연락 온 거 있습니까?”
“그렇잖아도 연락이 왔네. 회사에서 접근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심심한 유감을 표명하면서 합의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더군.”
“합의해 달라고 부탁했다라…….”
그 말에 노형진의 얼굴에 진한 비웃음이 서렸다.
정작 피해자가 자살했을 때는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하면서 직원들의 조문조차 막았던 회사가 아닌가.
그런데 이제 와서 조의 표명과 합의라니.
“확실히 뭐가 있는 것 같기는 하죠?”
“그렇겠지. 그러니까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덮고 싶은 것 아니겠나?”
김성식은 혀를 끌끌 찼다.
“이거야 원. 아무리 범죄가 법보다 빠르다지만 합법적으로 채찍질하는 놈들을 만들어 낼 줄은 몰랐는데.”
“뭐, 법이라는 게 그런 거죠. 중요한 건 그걸 처벌하는 거고요.”
“그래.”
“일단 상황은 알겠습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뭐라고 하십니까?”
복수를 부르짖으면서 모두 싸우겠다고는 했지만 모두가 싸워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복수심을 품고 살아가는 것은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드는 일이라 때로는 잊어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랬기에 누군가 회사와 합의한다 해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니까.
“한 분은 합의하기로 한 모양이고 다른 다섯 분은 합의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뭐,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애초에 복수를 위해서는 회사도 처벌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뀌는 게 없다.
문제는 복수하기 위해서는 사건이 회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거다. 당연히 회사에서는 부정할 테고.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게 이런 거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