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1)
여기에는 분명 청첩장이나 결혼식장 계약서 등을 함께 제출해야 증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결혼식장 계약의 경우는 아무래도 계약금도 걸어야 하니 아마 곤란하겠지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청첩장은 인쇄소에서 돈을 조금만 내면 해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인쇄소도 결혼 증명을 받아 가면서 청첩장을 만들어 주진 않는다. 더군다나 소량 인쇄라면 그다지 돈은 들지 않는다.
“인쇄소…… 인쇄소……. 잠시만요.”
바로 그의 카드 기록을 뒤지기 시작한 서태웅은 여행을 가기 얼마 전에 서울에 있는 인쇄소에서 결제한 내역을 찾을 수 있었다.
“잡았습니다. 흐흐흐.”
“이 사람들?”
“네.”
인쇄소 사람은 시큰둥한 얼굴로 사진을 보면서 대답했다.
“왔다 갔지. 확실히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조금만 주문해서 기억해.”
“그래요?”
서태웅과 함께 온 노형진은 그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 꼴랑 열 장이 뭐야. 열 장이. 최소량이 쉰 장이라니까 남자가 투덜거리더라고. 그래서 쉰 장을 하기는 했지.”
“그래서요 혹시 무슨 말을 하던가요?”
“뭐, 여자는 결혼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닌데 이런 거 하는 거 아니지 않느냐고 하고 남자는 어차피 결혼할 사이에 미리 예행 연습 삼아서 하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그래요?”
“그래, 하여간 얼마나 여자한테 찝쩍거리던지.”
남자의 말에 노형진은 기회를 잡았다는 것 알 수 있었다. 서태웅 역시 드디어 잡은 기회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거 증언해 주실 수 있죠?”
“그건 좀.”
노형진이 말하자 그 인쇄 업자는 귀찮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서태웅이 나서자 대번에 돌변했다.
“아무래도 증언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서태웅이 검사 신분증을 내밀자 그는 잽싸게 얼굴에 미소를 떠올렸다.
“그래야지요. 하하. 안 그래도 남자가 나쁜 놈 같았어요. 하하하.”
그걸 보고 노형진은 그가 뭔가 켕기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뭐, 그거야 내가 신경 쓸 게 아니지.’
사실 이런 곳에서 켕긴다고 해 봐야 결국은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현금으로 돈을 받는 정도일 것이다. 그건 노형진과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고 고발할 생각도 없었다.
“그럼 감사합니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자 서태웅은 신이 났다. 짝사랑이라고 해도 결국은 사랑이다. 그런데 그런 짝사랑 대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어했던가?
‘늦었지만 복수하네.’
아주 많이 늦었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복은 혼자 오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 주인장은 슬쩍 눈치를 살피면서 입을 열었다.
“그 청첩장이 남았는데요.”
“뭐라고요?”
“그거 남았어요. 드릴까요?”
“그게 남았다고요?”
“네, 그 사람들이 필요한 건 하나뿐이라고 하면서 하나밖에 안 가져갔거든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샘플용으로 보여 주려고 그냥 뒀는데요.”
확실한 물증이 증인과 더불어서 찾아왔다.
“잘될까요?”
“네, 잘될 겁니다.”
노형진은 다독거리면서 정아름을 진정시켰다. 형사 건인 만큼 그녀가 직접 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야.’
그냥 자신의 감정을 놓으라는 노형진의 조언이 잘 맞은 것일까? 그녀는 그날 이후 심각한 감정 기복을 보이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많이 괜찮아졌다.
‘한국인의 질병 중 화병이라는 게 있다지?’
심지어 영어사전에 화병이라는 뜻의 고유명사로 등재되어 있는 이 병은 한국인 특유의 병으로, 모든 분노를 속으로 삭여서 일어나는 병이다. 하지만 그걸 한번 내놓으면 사람은 훨씬 편해진다. 마치 정아름처럼 말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일단 판결이 나오면 저쪽에서 항고하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항고를 잘 받아 주지 않는다. 즉, 이번이 노형진에게도 그들에게도 마지막 기회라는 소리다.
“아마 지금쯤 재판이 끝났을 건데요.”
노형진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는 우편으로 재판 결과를 보내 주지만 이번에는 자신에게 전화해 줄 사람이 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그 순간 울리는 핸드폰에 잽싸게 전화기를 받아 드는 노형진.
“여보세요. 노형진입니다.”
“접니다. 서태웅.”
“아, 서 검사님. 뭐라든가요?”
노형진은 다급하게 물었고 노형진의 질문에 서태웅의 털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하, 이겼습니다. 증언도 있고 심지어 물적 증거까지 있으니까요. 1년 6개월 실형이 나왔습니다.”
“나이스!”
노형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걸 본 정아름 역시 이겼다는 사실에 벅찬 얼굴이 되었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요?”
“제가 피해자들을 찾아서 설득했거든요.”
“아!”
전과는 없다고 하지만 전부터 그런 걸 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처벌에 큰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하하하, 덕분에 저도 시원하게 복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서태웅의 말에 노형진은 한마디 더 해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그 녀석, 사기랑 사문서 위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확실히 청첩장을 이용해서 특혜를 봤고 거기에 계획에 없는 청첩장을 만들어서 사문서 위조까지 했으니 그것도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거, 다시 만나는 날이 기대되는데요. 후후후.”
서태웅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서 결국은 인생 종치게 만들었구만.”
유민택은 예상이나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혼인 빙자 간음으로 전과가 줄줄이 달리고 나자 사장의 아들이라고 해도 회사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애초에 실형이 나온 이상 회사에서 그냥 둘 리도 없고 말이다.
“그나저나 전문광은 뭐라고 합니까?”
“전전 사장 말인가? 모르지. 볼 수가 없으니.”
“네?”
“뭐,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더군. 현장 감각도 중요하지만 인성도 중요해.”
뭔가를 턱 던지는 유민택.
“그 인간이 벌인 일들이네.”
“많네요?”
“아무래도 건설 쪽은 엄청난 이권이 왔다 갔다 하니까.”
현장 중심으로 하겠다고 생각해서 현장에서 끌어올린 것이 전문광 사장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해 먹던 버릇을 못 고친채로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결국 ‘전’이라는 이름이 붙었지.”
“전전 사장이라 어감이…….”
“묘하지?”
유민택은 피식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 말에 노형진 역시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가?”
“그냥 어떤 분이 생각나서요.”
“어떤 분?”
“네, 아마 그분은 지금쯤 제가 누군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겠네요. 하하하.”
노형진의 말에 유민택은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아줌마의 권력 (1)
딩동딩동딩동딩동.
노형진은 끊임없이 울리는 벨소리에 귀를 막고 움찔거렸다. 오랜만에 쉬는 날. 그 아침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쾅쾅쾅.
딩동 소리를 넘어서 이제는 문 두들기는 소리. 그리고 그 너머에서 들리는 째지는 목소리.
“1101호 총각!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나와!”
“우우…….”
“안 나오면 관리실에 문 따 달라고 할 거야!”
노형진은 상대방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힘겹게 일어나서 비비적거리면서 입구로 향했다.
“좀 쉬자…….”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서류를 정리하느라고 제대로 쉬지 못했던 터라 노형진은 잠이 절실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대방이 그냥 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바깥을 빼꼼 내다보았다.
“누구세요?”
“나? 부녀회장이야.”
“부녀회장요?”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부녀회장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부녀회랑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도대체 부녀회에서 무슨 일인데요?”
“거참, 젊을 사람이 그렇게 게을러서야 어디다 써? 지금이 벌써 오후 9시야! 9시!”
그 말에 노형진은 울컥했다. 자신이 잠든 시간은 새벽 5시다. 고작 네 시간밖에 못 잔 것이다.
“으하함…… 그런데 왜요?”
하지만 아침부터 싸우고 싶지 않았기에 잠결에 그냥 물어보는 노형진. 부녀회장이라고 한 여자는 노형진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자네 말이야, 너무 우리 오피스텔에 관심 없는 거 아냐?”
“네?”
“반상회에 나오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잖아. 안 나오면 벌금이라고 했잖아. 그동안 안 낸 벌금 40만 원 받으러 왔어.”
“뭐라고요?”
순간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던 노형진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부녀회장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리고 부녀회비 60만 원도 같이 내.”
“부녀회비요?”
“그래야지. 한 달에 6만 원씩 내라고 되어 있잖아.”
노형진은 잠결이라지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냐니? 내부 규칙으로 만든 거야. 내부 규칙.”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아줌마가 미쳤나?’
그는 여기에 온 지 이제 열한 달이 되었다. 당연히 부녀회 같은 건 들어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다. 결혼도 하지 않은 자신이 무슨 부녀회에 가입한단 말인가?
“다음부터는 부녀회 회의에 빠지지 말고 참석해. 매달 21일 3시니까.”
“21일 3시오?”
“그래.”
“장난해요?”
매달 달라지기는 하겠지만 일단 그게 주말일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더군다나 낮 3시면 한참 일해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떻게 참석하란 말인가?
“장난이 아니라 내부 규칙이야. 내부 규칙.”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문을 쾅 닫았다.
“이봐! 총각, 뭐하는 거야!”
“원, 별……. 아침부터 미친놈이 다 있네.”
상식적으로 아침부터 와서 부녀회라고 돈 내라고 하는데 그걸 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봐 총각!”
“시끄러워요!”
노형진은 이불을 뒤집어쓰면서 다시 꿈나라로 가기 시작했다.
직장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그건 다름 아닌 퇴근 시간일 것이다. 그건 노형진도 마찬가지다.
노형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퇴근하고 있었다. 그동안 속을 썩이던 사건이 해결된 것도 그의 기분이 좋은 이유 중 하나였다.
“오늘은 행복한 마음으로 그동안 못 본 미드나 보면서 시간을 보낼…….”
노형진은 집에 도착해서는 멈칫했다. 집의 문이 살짝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지? 부모님이 오셨나?’
그럴 리 없다. 부모님은 그가 바쁜 걸 아시기에 사전에 연락하고 오신다.
‘누나?’
누나는 올 리 없다. 임신 초기라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임신은 초기가 더 위험한 법이니까.
‘일단 들어가 보자.’
혹시나 원한을 진 사람이 들어가 있을 수 있기에 만일에 대비해서 들고 다니던 가스총을 가방에서 꺼내 들고는 조심스럽게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갔을 때 보인 것은 노형진이 멘붕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뭐, 압류?”
“그렇다니까요.”
“허허, 거참. 천하의 노형진도 그렇게 당하나?”
“아니, 이거 말이나 됩니까?”
노형진은 남상주 변호사에게 툴툴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사방에 붙어 있는 가압류 딱지였다. 그건 노형진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자신이 뭐가 아쉬워서 가압류를 당한단 말인가? 가압류란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그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임시로 압류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노형진이 가진 재산이 얼만데 돈 몇 푼을 안내겠는가?
“도대체 어떤 녀석인지.”
“전화해 봤어?”
“고 팀장님한테 부탁드렸습니다. 아침에 재판이 있어서요.”
“음…….”
남상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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