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14)
유령이 아니라 사람 (3)
“극단적 대립이라는 게 이건가?”
“맞습니다. 결국 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뇌리에 박아 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부작용이 생기는 거 아닌가? 보복을 위해 검색하거나.”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그 방법은 금방 막힐 테니까요.”
어차피 그런 극단적인 검색은 검색엔진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나중에라도 알아차리고 알고리즘을 고쳐서 막는다.
그러니 그때까지 인터넷에 혐오 글을 싸지르게 해서 자기 인생이 드러나게끔 유도하면 되는 거다.
* * *
차대동은 언제나처럼 인터넷에 똥을 싸지르고 있었다.
스스로에게는 그건 구국의 글이었을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똥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한국이 망하는 건 김치년들 때문이다.
-김치년은 삼일한이다. 삼 일에 한 번 패야 한다.
-김치년들의 투표권을 박탈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차대동은 근무시간에조차도 일은 안 하고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욕설을 쓰기 바빴다.
“뭐가 그렇게 바빠?”
같이 일하던 선배가 돌아보더니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이 새끼야, 일할 때는 일만 하라고. 핸드폰 좀 작작 보고.”
“네, 선배님.”
“빨리 안 옮겨? 시간 없는 거 몰라? 신입이라는 새끼가 빠져 가지고.”
선배는 계속해서 그를 나무랐다. 그리고 자신의 짐을 들고 창고로 향했다.
“이런 씨팔. 진짜 좀 먼저 들어왔다고 꼰대 짓은. 이게 다 김치년들 때문이야. 김치년들만 아니면 내가 진짜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데.”
그는 5급 공무원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7년간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다.
5급에서 9급으로 눈을 낮췄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사실 그가 떨어진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공시생이라는 타이틀은 부모님의 등골을 빨아먹는 수단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학원을 빼먹는 건 예사였고, 인터넷 강의는 틀어 두고 낮잠 자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7년이 흐르자 부모님은 더 이상 지원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그마저도 그의 아버지가 알음알음 부탁해서 얻은 자리였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되자 차대동에게는 분노를 풀어낼 대상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건 자연스럽게 여자가 되었다.
여자의 공무원 시험 합격률이 남자보다 훨씬 높았으니까.
당연히 그는 인터넷에 온갖 혐오 글을 배설하면서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김치년들만 아니었으면 내가 5급 공무원으로 떵떵거리면서 살 텐데.’
자신의 실력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분노만 표출하던 그는 낑낑거리며 짐을 옮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평범한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야! 차대동! 너 이 새끼, 뭔 짓을 한 거야!”
차대동이 막 짐을 옮긴 후에 쉬려고 하려는 찰나, 얼굴이 시뻘게진 과장이 달려왔다.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차대동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네?”
갑작스러운 폭력에 그는 눈이 커졌다.
그런 차대동에게 과장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이 새끼야,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길래 회사가 발칵 뒤집어지냐 이거야! 이 미친 새끼! 뭐? 김치년? 삼일한? 이런 미친 새끼가! 야, 우리 회사 화장품 회사인 거 몰라? 그런데 여자를 그딴 식으로 말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오자 차대동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과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같이 일하던 선배가 어리둥절해서 되묻자, 과장은 그런 선배에게 분노에 차서 말했다.
“이 미친 새끼가 인터넷에 똥 싸질러서 지금 화난 사람들이 우리 회사로 전화해서 항의하고 난리도 아니다.”
“화난 사람들이 전화한다니요?”
“하아~ 시팔. 네가 봐라. 내가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진짜.”
고개를 흔들며 핸드폰을 건네는 과장.
핸드폰을 받아 들고 캡처된 화면들을 살피던 선배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
“아니…… 선배님, 여기엔…… 오해가…….”
“오해? 미친, 무슨 오해? 씨팔! 낙하산으로 온 거 그렇잖아도 마음에 안 들어 죽겠고 일도 더럽게 못하는데도 그냥 참았는데 지금 뭔 짓을 한 거야, 이 새끼가?”
선배는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회사 전화가 터져 나간단다. 인터넷에 우리 회사 이름이 공개돼서 난리란 말이다!”
“헉!”
눈앞에 닥친 재앙과도 같은 상황에 차대동은 정신이 혼미해졌다.
최선을 다해서 감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군지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이 미친 새끼, 아오. 저 새끼 아버지 부탁만 아니었어도 안 받아 주는 건데, 병신을 받아 가지고 회사 망하게 생겼네.”
과장은 답답한 듯 가슴팍을 팡팡 쳤다.
다른 것도 아니고 여성용 화장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다.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정적인 수익이 나는 상황이고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미친놈 하나 때문에 회사가 망하게 생긴 것이다.
“당장 튀어 들어와! 사장님이 당장 들어오래.”
“사장님이요? 왜요?”
“너 예쁘다고 만나자고 하겠냐, 이 미친 새끼야?”
잔뜩 화가 난 과장의 얼굴.
과연 사장은 어떨까?
과장은 직장인일 뿐이지만 사장은 지금 자신의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 버렸다.
그런데 과연 좋은 말을 해 줄까?
“…….”
“어어어?”
한참 침묵을 지키던 차대동은 갑자기 반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사과하고 반성하는 것.
그런 건 차대동에게 없었다.
그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게 다 김치년들 때문이야.’
* * *
“한남충 운지 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물론 이런 문제는 회사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었다.
가정도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아…… 아니 오빠, 그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한테 온 글 다 읽어 봤다. 뭐? 틀딱 노친네 운지 했으면 좋겠다고? 한남충 뒈지라고? 지금 그딴 말을 아버지한테 하고, 뭐? 그게 아니라고?”
세 명의 오빠들은 극도로 분노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게, 막내라고 금이야 옥이야 키운 여동생이 인터넷에 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한남충이라고 부르며 빨리 운지 했으면 좋겠다고 글을 썼으니까.
운지란 일부 인터넷에서 남자의 죽음을 비꼬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나가 뒈지라는 표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 네가 그렇게 바라던 대로 아버지 돌아가니까 그렇게 좋더냐?”
“오빠, 오해야. 그건 그때 잠깐 힘들어서…….”
“힘들어?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너한테 병원비를 내라고 했어, 아니면 아버지를 간병하라고 했어? 돈도 우리가 내고 간병도 네 올케언니들이 다 했어. 넌 대학 다닌다고 맨날 술 처먹으러 다녔잖아? 그런데 뭐가 그리 힘들다고 아버지한테 죽으라고 해?”
“아니,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그랬어.”
“네가 힘들어 봤자 아버지보다 힘들었겠냐고! 이 미친년아! 아버지 유언이 뭔데! 어! 같이 들어 놓고 뭐? 한남충? 운지?”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동생을 꼭 잘 부탁한다는 말.
그 말은 세 명의 오라버니에게 남은 마지막 사명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아버지가 죽은 후에 동생이 인터넷에 남긴 글.
‘틀딱 한남충 드디어 운지 했다. 만세!’
“아버지는 널 위해 최선을 다하셨어! 막내라고, 너 하나 끝까지 잘 키우겠다고 그 고생을 하셨다고! 그런데 넌……!”
분노한 큰형이 막내를 때리려고 하자 뒤에 있던 동생이 그런 형의 손을 잡았다.
“놔! 안 놔? 오늘 저년 죽이고 나도 죽을 테니까!”
“그만둬. 조카도 생각해야지.”
“씨팔.”
“어차피 이제 남남이야. 안 볼 사이니까 그만둬. 남남끼리 얼굴 붉힐 이유도 없어.”
“두, 둘째 오빠?”
“오빠라고 부르지 마라. 나한테는 너 같은 동생 없다. 아버지도 한남충이었는데 오라비 따위야 당연히 한남충 아니겠냐. 그러니 여기서 연 끊자.”
그는 그렇게 차갑게 말했다.
“당장 우리 엄마 집에서 꺼져. 짐은 내놓을 테니까 가지고 가든 버리든 알아서 하고.”
“자…… 잠깐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너 때문에 우리는 엄마도 잃게 생겼으니까.”
막내딸이 아빠가 죽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세 형제는 이 상황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꺼져.”
“오빠, 오해야. 이거 내가 다 설명할 수 있어.”
“이 미친년이!”
결국 지금까지 참고 있던 셋째가 나서서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나갔다.
“잠깐, 놔! 악, 놔! 놓으라고!”
“넌 내 눈에 다시 띄면 죽는다. 알았냐!”
그는 동생을, 아니 동생이었던 여자를 바닥에 내던지고 문을 쾅 닫았다.
“흑흑흑.”
그녀는 뒤늦게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가족과 자신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 * *
“인터넷에 난리가 났더군.”
“예상대로죠, 뭐.”
혐오를 신나게 떠들던 사람들은 검색을 통해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발칵 뒤집어졌다.
회사에 혐오주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그나마 양반이었고, 독한 사람은 혐오 사실을 프린트해서 가족들에게 편지로 발송해 버리기까지 했다.
“좀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송정한은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하지만 확실히 혐오가 줄어들고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줄어들고 있지.”
인생이 조져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확실히 인터넷상에서 혐오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혐오주의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는 건 익명으로 보호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혐오를 뿌리면서 패배감을 감추고 대단한 사람인 양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정 사이트 사람들은 더더욱 그랬죠.”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혐오주의자들에게 당하던 사람들은 기꺼이 상대방의 신상을 털어 댔고, 그걸 공개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좋게 하지 말라고 할 때는 혐오주의라고 역공하면서 공격을 멈추지 않던 혐오주의자들은 무서운 속도로 인터넷의 글을 삭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되네.”
송정한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는 극한의 대립이 이루어지고 둘 다 같이 죽게 생겼다고 생각해야 마침내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노형진의 말을 이제야 이해했다.
당장 전쟁만 해도 그렇다.
전쟁 초기에는 절대로 화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 다 싸우다 싸우다 이러다 나라가 망하겠다 싶어야 화평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송정한은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일반인이 피해를 입을까 걱정이었다.
“뭔가 오해하셨나 보네요.”
그런 송정한의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해?”
“이건 일반인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상관이 없다니?”
“지금 인터넷으로 혐오주의자들의 신상을 털어서 신나게 복수하고 있는 사람들, 그런데 정상적인 사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흠…… 그러고 보니 그건 생각하지 못했군. 일반인이라면 그럴 이유도, 시간도 없지.”
아무리 코델09바이러스로 거리 두기가 일상화된 상황이라고 해도 시간을 건실하게 보내는 방법은 많다.
당장 인터넷 방송국에 있는 TV 프로그램만 해도 1년 내내 봐도 못 볼 정도로 많지 않은가?
“그런데 과연 그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편지 쓰고 전화해 가면서 누군가를 공격하고 있을까요?”
“설마……!”
“네, 인터넷의 함정이죠. 그들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있을 뿐, 사실 일반인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인터넷에 매달려서 혐오 글을 싸지른다. 그리고 그 글을 소비하면서 점점 증오의 감정을 키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