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20)
혐오 VS 혐오 (2)
당 대표인 고학원의 말에 모두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
그도 그럴 게, 상대방은 말 잘하기로 소문난 변호사다. 심지어 능력도 좋기로 유명한 인물.
매일같이 혐오니 차별이니 하는 말로 말장난이나 하던 국회의원들이 그런 사람과 토론에서 제대로 붙어 버린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그럴 리가 없다.
더군다나 토론의 주제 자체도 영광당에는 불리했다.
공식 토론의 주제는 ‘한국의 혐오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이지만 툭 까고 말해서 혐오 문화를 고치자는 노형진과 혐오 문화를 유지하자는 영광당의 싸움이다.
정치적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지는 너무나 판단하기 쉬웠다.
“역시 당 대표님이 나가시는 게…….”
“저는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차라리 새로운 피가 어떻겠습니까? 우리 정 의원이 나가시죠.”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저한테 어떻게 나가라고 하실 수 있어요? 잘 아는 분이 나가셔야지요.”
정 의원이라고 불린 젊은 여자가 발끈하면서 화를 냈다.
‘후우, 빌어먹을.’
그 말에 당 대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찌어찌 국회의원으로 만들기는 했는데 진짜 실력도, 사상도, 심지어 개념도 없는 국회의원이었으니까.
그렇잖아도 국회의원이 입으로는 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면서도 아랫사람에게 갑질에 부당 해고를 하다가 걸려서 가뜩이나 낮은 영광당 지지율을 뭉텅이로 깎아먹은 상황이었다.
“그러면 박 의원은 어떻습니까?”
다른 여성 의원인 박 의원에게 의견을 묻자 그녀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런 건 경험이 많은 당 대표님이 나가셔야지요.”
그 말에 고학원은 열불이 났다.
이 안에서 가장 혐오를 잘 써먹는 게 박 의원이었으니까.
정치하면서 그녀의 입에서 혐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잘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니.
“그래도 다들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고학원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라고 해서 노형진과 토론 방송에서 만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자 자, 제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죽어도 나가기 싫어서 계속 회의를 이어 가는 고학원이었지만, 그는 왠지 모를 예감에 등골이 서늘했다.
* * *
“젠장, 이럴 줄 알았어.”
고학원은 이를 박박 갈았다.
세 사람이 마치 짠 것처럼 자신을 밀었기 때문이다.
이해는 간다. 자신이 토론에서 지면 창피를 당할 테고, 그러면 그 틈을 이용해서 영광당의 당권에 도전하고 싶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고학원이 완전히 몰락해야 한다.
그런 서로의 마음을 아는 그들은 고학원을 밀어줬고, 결국 고학원이 토론에 나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뿐이야.”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는 건 몰락뿐이다.
“고 의원님, 시간 되었습니다.”
“알겠네.”
PD의 말에 고학원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힘없이 촬영장으로 향했다.
먼저 토론하자고 한 쪽치고는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촬영장에 도착하니 이미 와 있던 노형진이 그를 보고 빙긋 웃었다.
‘돌겠네.’
그런데 고학원의 눈에는 그게 마치 사신의 미소처럼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주간 토론>의 김상희입니다. 오늘의 토론은 ‘한국의 혐오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드디어 시작된 토론.
이미 대략적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선공은 고학원의 몫이었다.
“에, 이번에 반혐오 교육을 해야 한다고 하는 노형진 씨의 주장은 심히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학교는 세상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리고 세상은 결코 공정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배울 수 없다면 학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학교에서 사회의 현실에 대한 교육은 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견 그럴듯한 말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이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과 혐오는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고학원은 마치 두 가지가 동일한 것처럼 말했다.
‘너는 당연히 그런 교육을 반대하겠지.’
그러면 그는 아이들을 바보 멍청이로 만든다고 공격하면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는 불평등에 대해 알고 있으니, 노형진이 그걸 교육하지 말라 하면 가차 없이 반기를 들 것이다.
여기까지가 고학원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노형진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사람이었다.
“그거, 불법입니다만?”
“네?”
“선생님들에게는 중립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걸 어기라는 겁니까?”
확실히, 선생님들에게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거의 언급되지는 않지만 의외로 강력하게 적용되는 규정이다.
어느 정도냐면, 선생님이 정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될 정도니까.
물론 교장이나 교감같이 힘 있는 자리에 있는 놈들이야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일반 선생님들은 그걸 어기면 정말로 모가지가 날아간다.
“중립 의무요?”
“설마 국회의원이 교직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모르시는 건가요?”
그 말에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고학원.
알기야 알았지만, 이 사건과 연관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이 있죠. 사회에 대해 아는 건 좋지만 사회에 대한 비틀린 지식을 교육받는 건 문제니까요.”
“비틀린 지식이라고요? 그거랑 선생님들의 중립 의무랑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뭔가 오해하신 모양인데, 선생님들에게 부여된 정치적 중립 의무는 모든 사항에 대해서입니다. 특정 정당에 대한 게 아니고요.”
한국은 워낙 정당의 대립이 강하다 보니 정치라고 하면 정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선생님이 자유신민당이나 민주수호당 두 정당 중 한 곳에 대해 좋게 말하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난리 난다.
“그런데 정치판에 두 정당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치판에서 유명한 곳이 두 정당일 뿐, 그들이 하는 행동만 정치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서 사회에 대한 판단도 결국 정치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부자에 대한 증세를 이야기한다면?
당연히 반대하는 사람은 나라가 망한다고 거품을 물 거고, 찬성하는 사람은 부자가 세금을 더 내고 부의 재분배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할 거다.
“그건 정치가 아닌가요?”
“그건…….”
“아니면 노동자의 파업 투쟁은 어떨까요?”
노동자는 파업하는 사람들에게 우호적이겠지만 사용자는 빨갱이라고 거품을 물고 욕할 것이다.
“그건 정치가 아닌가요?”
당연히 그것도 정치다. 다만 주체가 정당이 아닐 뿐.
“주체가 정당이 아니라고 해서 정치가 아닌 건 아니죠.”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또 맞는 말이다. 고학원은 할 말을 잃었다.
“음…….”
‘할 말이 없겠지.’
만일 여기서 선생님들이 중립 의무를 저버려야 한다고 말한다면 전국이 뒤집어질 거다.
현직 국회의원이 대놓고 선생님들에게 법을 지키지 말라고 하는 거니까.
‘알음알음 하는 것과 대놓고 말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
일부 혐오주의 성향의 선생님들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세뇌하는 것과, 방송에서 대놓고 애들을 세뇌하라고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힘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해도 방송에서 그딴 식으로 말하면 다음 선거에서 모가지다.
하물며 영광당은 힘도 없는 군소 정당이다.
당연히 대놓고 법을 위반하라는 말은 할 수가 없다.
“물론 사회에 대한 교육을 하는 건 찬성입니다. 학생들은 흔하게 벌어지는 사기의 방식도, 간단한 금융 정보, 노동자의 권리 같은 것도 모르는 채, 말 그대로 무방비하게 사회로 나오죠. 저는 그런 걸 교육하자는 겁니다, 그걸 가르치지도 않고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자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지다. 그리고 그 합리성이 고학원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왔다.
혐오에서 중요한 건 무지성이다. 저쪽에서 뭐라고 하든 세뇌된 그대로 이쪽 위주로만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노형진은 그 무지성 대신 그런 걸 판단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을 가르치자는 거다.
의외로 학교에서 이런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학생은 그런 것에 신경 쓰면 안 된다고 눈을 까뒤집고 반대해 왔다.
학업에 방해되어서?
아니다. 학생들이 그런 정보를 상식 수준에서 배우게 되면 그에 맞춰 사회를 판단하게 되고, 그러면 자신들이 정치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인은 소속 정당과 상관없이 국민이 멍청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자신들이 정치하기 쉬워지니까.
“그러면 고학원 씨는 이런 교육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신가요?”
“찬성합니다.”
물론 이런 걸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다. 하물며 지금은 방송 중이니 말이다.
“하지만 차별은…….”
“네, 차별받지 않기 위해 사회를 알아야 한다는 거죠. 노동자가 노동법을 알고 시민이 자신의 권리를 안다면, 과연 누가 그를 차별할 수 있을까요?”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을 차별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없다.
왜냐, 그랬다가 도리어 반격에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혐오의 문제지.’
혐오는 대부분 저항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실체가 없는 차별과 혐오가 이루어지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인생이 실패해서 바닥에 처박히고 혐오가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경우, 실존하는 사람에 대한 혐오는 공격받을 것 같으니까 반격당할 일이 없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내고 그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마치 대단한 사회운동이라도 하는 양 자아도취하는 거다.
“혐오라는 건 위험한 행동입니다. 사회를 정확하게 알아야 이게 혐오인지 아니면 정당한 불만인지도 알 수 있죠. 국민들이 그걸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면 한국이 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말이 안 된다고요? 지난번 사태에 대해 모르시나 보군요?”
“지난번 사태?”
“아, 모르셨어요? 학교 내부에서 암약하는 세력이 ‘세뇌 과정을 거쳐 애들을 친중파로 키우는 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뿌리다 걸렸는데.”
그 말에 고학원은 사색이 되었다.
그 사건은 인터넷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언론과 정부는 쉬쉬했다. 그게 반중 정서로 흘러가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형진이 그걸 대놓고 방송에서 언급해 버린 것이다.
토론자가 그 이야기를 꺼낸 이상 이제는 해당 장면만 편집하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첫 번째, 아이를 세뇌한다. 두 번째, 아이가 반항하거나 하면 다른 아이들을 선동해 반에서 고립시키고 왕따를 한다. 세 번째, 부모님이 항의하면 학생이 비정상이라고 몰아가며 그 책임을 부모에게 뒤집어씌운다. 네 번째, 반동분자 학생에 대한 평가를 최대한 안 좋게 함으로써 사회 지도층이 될 가능성을 막는다.”
실제 해당 조직의 행동 강령이었고, 그렇게 당했다는 피해자들도 있었다.
“그 당시에 이 사건에 대해 발표한 집단에서 한 말이 이거였죠. ‘중국인 혐오를 멈춰 주세요.’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혐오한 건 그들이었죠. 저는 혐오를 하자는 게 아닙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한 감시 및 처벌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거지.”
노형진의 말을 들으면서 고학원은 자신이 이번 토론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 * *
고학원이 토론에서 처절하게 발리자 혐오주의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그동안 혐오주의자들에게 눌려 있던 정상적인 사회운동가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발언을 하면 혐오주의자로 역공격을 당했기에 그동안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던 그들에게는 최적의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