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28)
지역이기주의 (3)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해야 한다. 자식이나 형제를 버릴 수는 없으니까.
“대룡은 이번에 상상동 병원을 시작으로 장애인 병원을 늘려 갈 생각이야.”
“응? 어째서?”
“대룡이 바보냐? 적자 보면서 그 짓은 안 하지. 아, 물론 자선이니까 어느 정도 적자는 감수할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흑자면 모를까 적자는 아니야.”
“어째서?”
“다른 병원하고 다르잖아. 전부 고정 고객이라는 거지.”
“아, 그러네.”
다른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잠깐 와서 치료하고 병이 나으면 떠나간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짧게는 몇 년, 길게는 평생을 와야 하는 고정 고객이다.
투자한 돈이 있으니 초기에는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환자의 수급이 안정적이니 결국은 이익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룡이 자선사업으로 장애인 전문 병원을 건설하는 건 사실 장기적 이익과 좋은 이미지 두 마리를 잡는 전형적인 상생 전략이었다.
“한국은 장애인 시설이 필요 수량의 10분의 1도 안 되니까.”
“그래, 더군다나 제대로 업무 컨트롤도 안 되지.”
비상시가 아니라면 지역 3급 의원들에게 약의 처방이나 진단은 맡길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의 대형 병원들은 그런 시스템의 구축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면 자기 손님을 빼앗기는 셈이니까.
“문제는 3급 의원들에서 잘못된 진단으로 죽는 사람도 많다는 거지.”
병은 거의 증상이 비슷하다. 폐렴도 감기도, 발열과 기침을 동반한다. 검사 장비가 없는 3급 의원에서 오진 가능성이 큰 이유다.
“대룡은 이번 기회에 이걸 고치면서 일종의 온라인 검진 시스템을 만들어 볼 생각이야. 물론 처음부터 시작하면 기존 대형 병원들이 반발할 테니까 장애인 케어라는 이름으로 실험하는 거지.”
각 지역의 병원들과 손잡고 전자화를 통한 화상회의와 진단 공유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대형 병원에 가지 않아도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하긴, 그러면 3급 의원들의 실력이 엄청나게 늘겠구나?”
“동시에 1급 병원의 부담도 확 줄어들겠지.”
물론 그 시스템을 구성한 대룡은 떼돈을 벌 거다.
다만, 그걸 1급 병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병원에 가 본 사람은 안다.
A병원에서 엑스레이와 CT, MRI를 찍었는데 불확실하다고 다른 병원에 가라고 해서 B병원으로 가면 거기서도 엑스레이와 CT, MRI를 다시 찍는다.
의사에게 A병원에서 찍은 걸 보여 주었더니 화상이 흐릿하니 다시 찍어야겠다는 말을 듣거나 해서가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의사 자체를 만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시대가 바뀌어서 외부에서 찍은 것도 공유할 수 있게 시스템이 구성되기는 했다. 입원할 때 외부에서 받아 온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업로드하면 뭐 하나, 안 보는데.
“결국 누군가는 욕먹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해. 그리고 그건 장기적으로 돈이 되지.”
“배달 앱처럼?”
“맞아.”
처음에 배달 앱이 생겼을 때 사람들은 이제는 배달비까지 받아 처먹느냐고 욕했다.
지금은? 배달 앱이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욕 처먹던 기업들은 시총이 수십조를 넘겨 버렸다.
“이건 일종의 대형 시스템 테스트 같은 거야.”
“한국 병원들이 난리가 나겠네.”
노형진은 서세영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한국? 고작 한국으로 끝날까?”
“응?”
“그럴 거였다면 그 돈 들여서 이런 테스트를 하지도 않지.”
“그러면?”
“전 세계에서 의료비가 가장 비싼 나라가 어디겠어?”
“설마…….”
미국.
전 세계에서 가장 의료비가 비싼 나라.
너무 비싸서, 병에 걸리면 치료 대신에 죽음을 기다리는 나라.
대룡이 미국에서 엄청난 수익을 내는 이유가 뭔가? 다른 곳보다 가격이 저렴해 환자가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런 가격마저도 한국 사람들이 볼 때는 ‘악마 새끼’ 소리를 들을 정도로 토 나오게 비싸다.
“그런데 이게 시스템화되고 사람들이 좀 더 싼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아…….”
미국은 보험이 프리가 아니다. 정해진 제휴 업체와 정해진 보험만 거래가 가능하다.
A라는 보험회사는 B라는 의료 재단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식이다.
만일 급해서 C라는 의료 재단으로 간다? 보험 적용 없이 모조리 환자 본인이 토해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네.”
대룡과 관련된 보험사에 가입되어 있다면?
당연히 대룡 관련 재단으로 가야 하지만, 급하면 다른 곳이라도 가야 한다.
그런데 대룡과 제휴를 맺은 작은 병원들에서 긴급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대룡 계열 의료 재단의 커버 영역이 순식간에 전미 대륙으로 퍼지는 셈이다.
“그 상황이 되면 다른 의료 재단이나 보험사가 생존할 수 있을까?”
정해진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보험과, 전 미국에서 긴급할 때 쓸 수 있는 보험.
그걸 비교할 가치가 있을까?
아마도 미국의 다른 보험과 재단은 고사할 거다.
그 말을 들은 서세영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 그러면 이 모든 게 오직 그걸 위한 테스트라고?”
“그래.”
한국이 첫 번째 시험장이 된 건, 인터넷 환경이 안정적이고 장애인 환자를 위한 병원이 부족해서 자선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의 본래 목적을 감출 수 있어서다.
“대룡이 마냥 착해서 수천억을 들여 땅 사고 건물 올리는 게 아니야.”
그 이상을 뽑아 먹을 수 있는 계획이 있으니까 하는 거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한국의 재계 1위는 우습게 될 거다. 아마 그때는 글로벌 순위부터 따져야 할 거다.
노형진의 설명을 들은 서세영은 진짜 놀랐다.
“그게 보여?”
“‘보여?’가 아니라 봐야 하는 거야. 네가 배워야 하는 세계이고.”
그 말에 서세영은 왜 노형진이 세계 최고의 변호사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문제는, 멀리만 보다 보니까 아무래도 가까운 걸 못 봤다는 거지.”
“동네에서 반대할 거라는 거?”
“그래. 설마 장애인 복지를 위해 하겠다는 일을 반대할 집단이 있을 줄은 몰랐던 거지.”
다른 것도 아니고 좋은 일을 하겠다는 건데 왜 반대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 계획을 준비한 사람이 누구든, 그는 한국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대해 잘 모를 가능성이 컸다.
“이해가 안 가네. 오빠 말대로라면 어차피 주변 집 가격이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지는 않는다면서?”
“그렇지. 하지만 자기들이 보기 싫다는 감정도 있고…….”
“보기는 뭘 봐? 보려고 해도 볼 수도 없겠던데.”
진짜 장애인들이 병원을 나와서 활개를 치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하 주차장으로 차를 타고 들어갔다가 다시 차를 타고 나온다.
입구로 나온다고? 그렇게 나오는 장애인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기다가 건물 입구에서 바로 도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건물 입구에서 나오면 제법 넓은 정원과 산책로를 거치고 나서야 도로에 접할 수 있다.
주변은 나무로 빙 둘러 막혀 있어서 외부에서 보이지도 않는다.
즉, 장애인을 보려면 외부에서 직접 병원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보기 싫다는 이유로, 그리고 장애인이 보인다는 이유로 집값이 떨어진다는 건 개소리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집값이지.”
“이해가 안 가는데. 아니, 집값이 오른다면서?”
노형진은 서세영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긴, 서세영은 아직 많은 걸 배워야 한다.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변호사로서의 기본적인 지식. 세상을 보는 눈은 아직 어리다.
“오르지, 한 10%쯤. 하지만 그 병원이 일반 병원이 되면 한 50%쯤 오르겠지.”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지금 저쪽에서 요구하는 건 병원 자체를 열지 말라는 게 아니야. 장애인 병원을 열지 말라는 거지.”
거기에 병원이 생기면 집값이 못해도 50%는 오를 거다. 다른 곳도 아닌 대룡병원이 아닌가?
그런데 장애인 전문 병원이라면?
당연히 환자는 장애인이니 일반인은 받지 않을 거다.
“그러니까 50% 이상 올릴 수 있는데 고작 10%밖에 못 오를 테니 책임져라 뭐 그런 거야?”
“응, 그런 거야.”
“미친.”
서세영은 기가 막혔다.
“그게 가능해?”
“가능하지. 기본적으로 병원 건물은 병원으로 지어지니까. 다른 걸로 전용하는 게 쉽지 않아.”
일반 건물과 다르게 병원 건물은 용도에 맞게 지어야 한다. 배관 내부에 산소 라인도 깔아야 하고 응급 시설도 설치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냥 쓰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몇몇 건축물의 경우는 그게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책을 파는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도 건물을 새로 지어서 올려야 한다.
왜냐하면 책의 무게가 실로 어마어마해서 일반적인 건물의 기준으로는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의 경우는 무조건 그에 맞는 방식으로 지어야 하고, 그래서 대형 서점 역시 무조건 지하에 배치한다.
맨 꼭대기 층에 배치하면 건물 전체를 그 기준에 맞춰야 하지만 지하에 위치하면 지하만 그 기준에 맞추면 되니까.
실제로 과거에 풍광을 위해 수영장을 맨 위층에 설치했다가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을 정도로 용도에 맞는 설계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병원용으로 지어진 건물을 다른 용도로 쓰는 건 아주 심각한 낭비지.”
물론 일반 건물을 병원으로 쓰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요양 병원 같은, 비상 상황이 거의 없는 병원 기준이다.
“아, 그러니까 장애인 병원을 짓지 말라고 하면 대룡에서는 그 건물을 버릴 수가 없으니 일반 병원으로 쓸 거라는 계산이네?”
“그렇지. 아, 도착했다.”
대화하는 사이, 두 사람은 상상동에 도착했다.
창문 너머로, 입구 앞에서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온몸에 쇠사슬을 묶고 버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의 조끼와 빡빡머리에 매인 끈에는 ‘투쟁’이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잘하는 짓이다, 증말.”
그걸 보고 서세영은 눈을 찡그렸다.
진짜 억울한 피해를 입어서 저러는 거라면 이해라도 한다. 그런데 자기네 집값을 올리겠다고 저러고 있다니.
“어쩌겠어. 들어가자.”
노형진이 그들을 피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거품을 물고 날뛰기 시작했다.
“대룡은 반성하라!”
“대룡은 집값 하락 책임져라! 책임져라!”
“대룡은 집값 하락 보상하라! 보상하라!”
노형진은 그걸 힐끔 보았을 뿐, 무시하고 계속 움직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텅 빈 주차장만 보였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자 2층에 빈 공간을 대책 회의실로 꾸며 둔 것이 보였다.
“아, 오셨습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박 원장님.”
“개원도 안 했는데 무슨 원장입니까? 그리고 잘 지냈다고 볼 수가 없네요.”
얼굴이 시커멓게 변해 있는 남자는 원래 병원이 개원하면 원장을 맡기로 한 박상용 원장이었다.
그는 대룡종합병원에서 장애인 재활을 전담하다 장애인 병원을 만들면서 그쪽의 원장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저 시위 때문에 차일피일 개원을 미루며 이러고 있었다.
“어떻게, 협상은 잘되어 갑니까?”
“말도 안 통해요. 그냥 막무가내입니다.”
저쪽에서 요구하는 건 단 하나다.
혐오 시설은 안 된다.
“아니, 언제부터 장애인 전문 병원이 혐오 시설이었다고…….”
“뭐, 상관있겠습니까? 저들이 원하는 건 뻔한데.”
“그건 그렇죠.”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이지 저들이 원하는 건 여기에 장애인 병원이 아니라 제2의 대룡종합병원이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50%, 많게는 200%까지 집 가격이 뛸 테니까.
“저희는 말이 안 통해서…… 하아~.”
“회장님은 뭐라고 하세요?”
“회장님은 마음 같아서는 탱크로 밀어 버리고 싶다시던데요.”
“하긴.”
그는 대룡을 세우면서 이런 시위를 숱하게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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