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31)
찜하는 놈이 임자인 세상 (2)
하지만 애초에 간담회에서 설득이라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토론과 합의라는 건 결국 오랜 시간과 협상 끝에 얻어 내는 거다. 그런데 하루 날 잡아서 만나 대화 좀 했다고 합의가 이뤄질까? 그날로 끝인데?
“아니, 다 필요 없고, 혐오 시설은 빼라고요!”
“맞아요! 장애인 시설은 혐오 시설입니다! 어떻게 혐오 시설을 들일 수 있어요? 절대 안 됩니다! 무조건 빼세요!”
“하지만 이미 건물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다른 걸로 쓰면 되죠. 혐오 시설은 절대 용납 못 합니다.”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대룡 측 대리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언제나 그랬으니까.
간담회? 말이 간담회지, 그냥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자리다.
‘이걸 어떻게 한다?’
그는 힐끔 한구석에 앉아 있는 노형진과 서세영을 보았다.
‘길이 보이지 않으면 노형진 변호사에게 맡기라고 했었지…….’
물론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해결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 애초에 협상이 이뤄질 만한 자리가 아니었으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노형진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이윽고 노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협상단 중앙으로 갔다.
“이제 제가 맡도록 하지요.”
“하? 그래서?”
예상대로 상대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노형진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대룡 측에서 뭐라고 떠들어 대든 요구를 바꿀 생각이 없으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만약 저희가 장애인 전문 병원을 세운 후에 집값이 하락한다면, 집을 판매하실 때 그 하락분에 대해서는 배상하겠습니다. 단, 2년 안에 하락하는 경우에 한해서 말이죠.”
“뭐?”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집값이 떨어진다시는데.”
실제로 뭔가를 세울 때 주변에 피해가 발생하면 그걸 보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다.
노형진의 말에 대룡 측 협상단은 뜨악한 표정이 되었다.
사전에 협의된 적이 없는 이야기니까.
당연히 상상동 측도 갑작스러운 말에 약간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생각해 보지 못한 조건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집값이 떨어진다고 난리를 피우긴 했지만 집값이 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이어지는 노형진의 말에 양쪽 다 어이가 없어서 입을 열지 못했다.
“대신, 이후에 집값이 오른다면 상승분은 저희가 가지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뭔 개소리야!”
“우리 집값을 왜 너희들이 가져가겠다는 건데!”
소리를 버럭 지르는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 사람들.
“저희가 금전적 위험성을 부담하고 있으니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미친! 개소리하지 마!”
집값은 오른다. 이미 그건 수차례에 걸쳐 실제로 확인된 사항이다. 그저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집값 운운한 것뿐이다.
그런데 그 수익을 기업이 환수해 간다니?
애초에 집값이 오르면 저쪽에서는 돈을 줄 이유가 없다.
“세상에 그런 법이 어디 있어?”
“그건 우리의 사유재산이야!”
당연히 그런 법은 없다.
어떤 회사가 세운 무언가 덕분에 집값이 올랐으니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을 그 회사가 가져간다면 개발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거래란 그런 거죠. 그래서 저희가 집값을 보전해 드리겠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집값이 떨어지면 피해액을 보상해 주겠다. 하지만 오르면 지급했던 돈을 다시 받아 가겠다.
“기브 앤드 테이크 아닙니까?”
“미친.”
물론 당연히 이런 협상은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집값이 오르는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병원의 존재와 상관없이 집값은 오르는 게 현실적인 추세다. 문제는 그게 병원과 상관없다는 걸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즉, 그 계약이 성립되는 순간, 이 지역 집값이 100억 오른다고 해도 그 수익분은 대룡에서 모두 가지고 간다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그건 사유재산이야!”
“네, 그렇지요. 그리고 병원 역시 사유재산이죠.”
“하지만 집값이 떨어진다니까!”
“그러니까 집값을 보전해 드린다니까요. 저희 조건만 받아들인다면 말입니다.”
“아니, 그건 사유재산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리고 병원은 대룡의 사유재산이죠.”
마치 무한 도돌이표 같은 말이 계속되자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는 질려 버렸다.
“합의 없어! 씨팔.”
“반대해. 배 째!”
파투가 나자 대룡 측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어?’ 하는 사이에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 측이 우르르 나가 버리자 이번 협상 담당자가 다급하게 노형진에게 다가왔다.
“아니 노 변호사님, 협상을 파투 내시면 어쩝니까?”
“제가 낸 거 아닌데요?”
“그런 조건은 당연히 저쪽이 안 받아들이죠.”
“그러면 저쪽 조건을 받아들이실 건가요?”
“아니요. 하지만 그렇다고 파투를 내시면…….”
“어차피 날 파투였습니다.”
협상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협상의 여지는 없다. 결국 강대강의 싸움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런 걸 저쪽에서 외부에 터트리면…….”
“못 터트립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도덕적 우월성은 이쪽에 있으니까요.”
장애인 전담 병원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다. 한국에는 장애인 병원이 필요량의 10분의 1도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고질병이죠.”
‘나만 아니면 돼.’라는 사고방식.
사회 혐오 시설은 필요하지만 내 동네에는 절대 들어서면 안 된다.
그냥 그걸 핑계 삼아 상상동 주민들을 공격할 수 있으면 된다.
“그걸 알기에 저쪽에서는 이 일을 공개 못 합니다. 더군다나 이쪽은 돈을 준다고 협상까지 했죠.”
그런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말은 그게 목적이 아니라는 단적인 반증이다.
“하지만 그 돈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만일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그 돈을 달라고 했다면?
집값을 조절하는 건 주인들의 마음이다. 1억에 팔 수도, 100억에 팔 수도 있다. 그건 결국 그들이 내놓는 매매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저는 ‘집을 팔 때’라는 조건을 붙였죠.”
집을 사는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누차 말하지만 이런 시설은 필요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기에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건 말장난 아닌가요?”
“아닙니다. 애초에 말입니다, 집값이 10억이든 100억이든 1천억이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병원이 생겼다고 해서 지금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할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거야…….”
“거의 없을 겁니다.”
저들의 주장과 다르게 장애인 전문 병원은 혐오 시설이 아니다. 일반인과 접점도 없고 부딪칠 일도 없으니까.
당연히 저들 입장에서는 굳이 집을 팔고 떠날 이유가 없다.
즉, 현실적으로 저들은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한다는 거다.
노형진이 제시한 조건은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었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저들은 거의 보상을 못 받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진짜로 이사 가면 어쩌려고요?”
그 말에 노형진은 코웃음을 쳤다.
“못 갑니다.”
“어째서요?”
“대룡에서 왜 굳이 상상동을 병원 부지로 골랐는지 아십니까?”
“그거야…….”
잘 모른다. 이들이 담당하는 것은 부지 협상이 아니라 주민과의 협상이니까.
“싸니까요.”
“네?”
“다른 지역에 비해 상상동은 좀 싼 편입니다. 전형적인 구도심이죠.”
높아 봐야 3층짜리 집이 대부분. 가장 높은 것도 5층짜리 빌라, 그마저도 20년이 넘은 빌라다.
“여기에는 아파트가 없습니다. 아파트 같은 게 생기면 배상금이 터무니없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룡에서도 꺼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여기 상상동이 낙찰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싸니까’.
물론 싼 것만 원한다면 아예 시골에 처박아도 되지만, 그러면 접근성이 떨어져 시민들이 찾아오기가 힘들어진다.
당연하게도 ‘적당한 거리’에 ‘적당한 위치’가 중요한데 상상동만큼 적당한 곳이 없었다.
대룡이 바보도 아니고, 비싼 동네에 자기 돈을 들여서 자선병원을 짓겠는가? 그렇잖아도 돈이 잘 안 벌리는 장애인 전문 병원인데?
그러니 주요 도심은 아니지만 찾아오기에는 쉬운 위치가 최적일 수밖에 없는 거다.
“저들이 집을 팔면 어디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한 가지는 확실하죠. 여기에 있는 집을 팔면 다음은 무조건 경기도권입니다.”
상상동은 서울치고는 집값이 싸다. 당연히 여기를 팔아도 서울 안에서 머물지는 못한다. 경기도권으로 내려가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아예 생활권이 바뀐다는 거다.
다시 말해서, 여기에 사는 주민 대부분은 집을 팔고 떠나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 봐야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애초에 집을 팔지 않을 거라면 10억이든 100억이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저들이 저러는 건, 어떻게 해서든 집값을 올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 더 말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안 팔 거라면서요?”
안 팔 거다. 그러면 저렇게 격렬하게 싸울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제가 파투를 낸 겁니다.”
“네?”
“저기 대책위원회라는 놈들이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던가요?”
“뭐가요?”
“대부분이 30대에서 40대입니다.”
“그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지금 시간을 보세요.”
노형진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돌려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3시 30분. 파투 나는 바람에 일찍 끝났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이런 구도심의 집주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온 건 다 젊은 사람들뿐이죠.”
“싸움을 해야 하니까 그런 거 아닌가요?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혈기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아니, 대부분 그게 정상이기는 하다.
“재산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는 일이고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재산을 물려받는다고 해도 결국은 직장인이죠, 재벌가 도련님이 아니라. 그런데 지금 시위가 몇 주째 계속되고 있죠?”
“어?”
지금 그들은 병원 앞에서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감고 버티고 있다. 그것도 교대해 가면서.
“저들은 스스로를 상상동비상대책위원회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그 권한에 대해 확인하신 거 있습니까?”
그 말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당연히 그런 걸 확인한 적은 없다. 애초에 그들이 유일한 대화 창구였기 때문이다.
“어, 설마?”
“네, 아마 전문 시위꾼들과 투기꾼들일 겁니다.”
“투기꾼…….”
그 말에 다들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걸 확인할 생각을 못 했다니.
“사실, 이건 의외로 오래된 사기 방법입니다. 대부분 영문도 모르고 당하죠.”
어디서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러면 일단 무슨 비상대책위원회라고 이름 짓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다닌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들이 대표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의 선동에 놀아난다.
실제로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행동하는 사람 아래로 사람들이 뭉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나중에 가서 새로운 대책위원회를 만들어 봐야 결국은 따라 하기 수준이라 대표성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대책위원회의 적법성에 대해 문제 삼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대책위원회가 생겼다? 그래서 그 밑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그러면 그때는 없던 적법성도 생기기 마련이다.
결국 그 지역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니까.
하지만 그 대책위원회에 가입할 때 그들에게 ‘주소지 확인 좀 해 봅시다.’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근데 오빠, 그걸 어떻게 안 거야?”
“너무 극단적이거든.”
“너무 극단적이라고?”
“그래. 일반인은 말이야,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야. 그리고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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