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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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함정일 때도 있다 (4)
마치 과거에 자신이 남들에게 했던 그대로 하는 듯한 모습에 이두억은 자신이 늙었고 더 이상 이제 감옥에서 대접받으며 살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어찌어찌 형기를 마치고 출소했지만 문제는 먹고살 방법이 없었다는 거다.
다행히 어디서 딸에게 생활비를 받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바로 딸년을 찾아서 소송을 걸었다.
그것도 교도소에서 사역하면서 번 돈을 탈탈 털어 변호사를 사서 건 소송이었는데.
“젠장, 고작 28만 원?”
법원의 판결로 나온 돈은 고작 28만 원.
변호사비로만 550만 원을 썼는데 그 10분의 1도 안 되는 돈이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변호사가 150만 원은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걸 믿고 한 소송이었다. 그런데 고작 28만 원이란다.
“미치겠네.”
그 순간 누군가 그가 있는 고시원 문을 두들겼다.
“아저씨.”
“누구야?”
“저 총무예요. 이번 달 방세도 안 내실 거예요?”
“…….”
“여기 주인아저씨가 이번 달 방세도 안 내시면 방 빼래요.”
그 말에 이두억은 순간 욱했다.
그가 누구던가? 교도소에 가기 싫어졌다고 해서 성격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아니, 씨팔. 누가 안 준대? 준다고! 준다니까!”
“주실 거라면 빨리 달라고요. 저도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에요.”
총무는 짜증스럽게 말하고는 휙 가 버렸다.
뒤에 남은 이두억은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미치겠네, 진짜.”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일단 돈이 들어 있는 계좌는 압류당했다.
다행히 동사무소에 상황을 설명하고 압류 방지 통장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압류된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기에 결국 다음 달까지 기다려야 한다.
“당장 돈이 없는데.”
그런데 법원의 판결에 따라 딸에게서 받을 수 있는 돈은 고작 28만 원. 한 달 45만 원이나 하는 고시원비를 내는 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끄응, 그렇다고 그년 집에 가서 깽판을 부릴 수도 없고.”
그가 법원으로부터 받은 것은 단순히 부양료 판결 결정문만이 아니었다. 접근 금지 명령도 있었다.
노형진이 이두억에게 이채미의 주소가 드러난 것을 알자마자 바로 다시 접근 금지 명령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미치겠네.”
물론 주소를 아니 찾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찾아가면 정말로 다시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는 노릇.
“이대로 굶어 죽을 수도 없고.”
이두억은 이를 박박 갈았다.
물론 고시원에서 당장 쫓아내려고 한다고 해도 버티려고 이를 악물고 지랄하면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여기가 제일인데.”
고시원이지만 다른 곳과 다르게 밥과 라면 그리고 김치가 무제한으로 나오는 곳이다. 그래서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는 있는 그런 곳.
여기서 나가는 순간 정말로 먹고사는 게 막막해지는 상황이었다.
“끄응…… 어디서 돈이 뚝 안 떨어지나.”
막 이두억이 그런 고민을 하는 그때, ‘띠링’ 소리와 함께 문자가 날아왔다. 그걸 확인해 본 이두억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건 다름 아닌 이채미가 보낸 입금 내역이었다.
무려 200만 원이나 되는 입금 내역.
“오, 이년이 웬일이래?”
자신을 보지도 않으려고 이를 박박 갈더니 의외로 200만 원을 보내 준 것이다.
“당장 가서 막걸리나 한잔…… 이런 썅년!”
돈만 확인하고 히죽 웃던 이두억은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그도 그럴 게 방금 돈이 입금된 계좌가 다름 아닌 압류된 계좌였기 때문이다.
“썅년! 개 같은 년!”
이래서는 막걸리는커녕 여전히 당장 방세조차도 낼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개…….”
이두억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 * *
“진짜 기분 나쁘네요, 그놈한테 돈을 보내 준다는 게.”
이채미는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물론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 없는 건 아니다. 남편도 이 건에 대해 허락해 줬기에 돈을 보내 주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놈에게 자신이 돈을 줘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기분이 나쁘고 짜증 났다.
“압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봐야 합니다. 뭐, 장기라고 해 봐야 아주 오래는 아니지만요.”
“후우~.”
그 말에 이채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일단 입금 내역은 확인되었고 법원의 판결도 떨어졌으니까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겁니다.”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슬슬 복수를 마무리 짓죠.”
* * *
이두억은 자신이 편하게 먹고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매달 딸년이 주는 돈과 정부에서 주는 돈을 합하면 300만 원이 넘을 테니까. 아니,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그동안 쌓이고 쌓인 업보가 찾아왔다.
“뭐라고?”
“기초 수급 자격이 박탈되실 거예요.”
갑자기 날아온 서류 한 장.
그건 그의 기초 생활 수급 자격이 박탈된다는 한 장의 통지서였다.
당연히 이두억은 다급하게 행정 복지 센터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귀자는 그런 그에게 차갑게 말했다.
“아니, 왜? 아니, 씨팔. 내가 자격을 얻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지만 법이 그런걸요.”
전이라면 이귀자는 아마 벌벌 떨었을 거다.
하지만 한번 막 나가기로 결심하고 경찰까지 부른 전적이 있으니 그녀로서는 자칭 빈민이라는 불쌍한 척하는 놈들에게 끌려다닐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전과 7범이라면 불쌍한 존재도 아니다, 그냥 병신 같은 인간이지.
“내가 왜!”
“자녀분이 생활비를 준다면서요?”
“그거야…….”
“그게 문제예요. 이미 그쪽에서 서류를 냈어요.”
“서류를 냈다고?”
“네.”
기초 생활 수급 대상자는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장 먼저 노동력이 없거나 노동을 할 수 없는 환경이어야 하고, 또 그를 보호할 사람이 없어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호할 수 있는 사람, 즉 자녀 등이 있는 경우 여건과 상관없이 무조건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지금은 법이 좀 바뀌어서 자녀에게 보호의 의사가 없음이 확실하다면 기초 수급 생활 대상자로 넣어 준다.
실제로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자식과 아주 오랜 시간 연락하지 않거나 금전 거래 등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금전 거래 내역이 확인되었고 그 후에 입금도 하셨더라고요.”
“아니, 그거야…… 그런데…….”
“거기다가 법원을 통해 부양료를 받기로 하셨다면서요?”
이귀자는 무심하게 이두억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런 경우는 기초 생활 수급자에서 자동으로 빠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고작 200만 원이라고!”
“고작이 아니죠. 그런 큰돈을 줄 정도라면 보호의 의사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정부는 자식에게 보호받는 사람까지 보호할 만큼 복지 비용이 넘쳐 나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는 100% 기초 생활 수급자에게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난 어쩌라고?”
“네?”
“아니, 그러면 나는 어쩌냐고? 난 뭐로 먹고살라고?”
“저야 방법이 없죠.”
분명 돈이 있다. 지금 눈앞에 돈이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돈이 들어올 통장은 압류되어 있다는 거고, 돈이 들어와야 하는 통장에는 더는 돈이 들어오지 않을 거라는 거다.
자식이 자신을 챙기기 시작하니까.
“이, 이, 이…….”
아무리 눈치를 보고 산다고 해도 그 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여기 사장 누구야! 사장 나오라고 해!”
한 번도 아니고 벌써 세 번째 당하는 일. 이귀자는 피식 웃으면서 바로 경찰을 불렀다.
“그리고 사장이 아니라 동장이죠.”
이제는 아주 뻔뻔하게 대답하는 이귀자의 말에 이두억은 눈이 돌아갔다.
“으아아아!”
* * *
처음에 노형진이 200만 원을 보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이채미는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올 지경이었다.
매달 28만 원을 보내라는 법원의 명령도 짜증 나 죽겠는데 200만 원을 보내라는 건 실로 터무니없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걸 보낸 후에 날아온 질의서는 그녀의 생각이 흔들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이게 뭐죠?”
“말 그대로 부양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기 위한 겁니다.”
“이해가 안 가는데요. 이제 와서 왜 이런 게?”
“아버지께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무슨. 짐승만도 못한 새끼를.”
아버지라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이채미.
“그 기분은 이해합니다만, 일단 중요한 건 이두억 씨가 기초 생활 수급자라는 거죠.”
한두 푼도 아니고 200만 원이나 보냈으니 나라에서는 부양 의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고, 사실 확인을 위해 이채미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다.
“그 전에는 물어보지 않았잖아요?”
“그때는 뭐, 너무 확실했으니까요.”
무려 20년간 단 한 번도 연락도 하지 않았고 애초에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조차도 바꿨으니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연을 끊은 거다.
“하지만 돈을 보냈다는 게 문제죠.”
확실하게 돈을 보냈고 그 돈이 무려 200만 원이다.
“다만 그 돈을 쓰지 못하는 이두억 씨는 거의 미칠 지경일 겁니다.”
“계좌가 압류되었으니까요?”
“네.”
손해배상금 400만 원. 그리고 현재 그의 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처음 받은 기초 생활 자금 120만 원과 이채미가 보낸 200만 원 해서 총 320만 원.
“이 금액이 참 애매한 거거든요.”
딱 80만 원만 더 있으면 손해배상금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제 그 돈을 받을 방법이 없다.
기초 생활 자금을 당분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채미의 부양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받을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돈을 꺼내서 갚을 수 있지 않아요?”
노형진은 이채미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게 참 웃긴 문제인데요. 계좌에 돈이 있는 것과 채무를 갚는 건 다른 문제거든요.”
“네?”
“가압류와 채무를 갚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니까요.”
노형진은 손해배상 채권을 구입해서 이두억의 계좌를 가압류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돈이 있다.
“하지만 그걸 압류하는 건 법원의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법원의 결정을 받아서 해당 계좌를 열고 돈을 꺼낼 수 있다.
“즉, 제가 압류를 신청하지 않으면 그 계좌는 천년만년 계속 묶여 있는 형태가 된다는 거죠.”
“그게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가압류가 걸려 있는 이상 그 계좌는 쓸 수가 없다. 꺼낼 권한이 없으니까.
“이채미 씨가 계속 돈을 거기로 보내면 돈은 쌓이는데 정작 쓸 수는 없는 그림의 떡이 되는 거죠.”
“아!”
그걸 보면서 과연 이두억이 무슨 기분일까? 아마 미치고 팔짝 뛸 기분일 것이다.
“하지만 200만 원이나 보냈는데…….”
“물론 200만 원을 보냈죠. 하지만 그게 다음 달에도 똑같은 금액을 보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채미 씨는 이두억 씨에게 매달 28만 원을 송금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결정이 없었습니다.”
매달 28만씩 보내든 여러 달 치를 묶어서 한꺼번에 보내든, 그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결정한 사항이 없었다.
보통 법원은 당연히 매달 보낼 거라 생각하지, 한꺼번에 묶어서 보낼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200만 원이면 대략 7개월 치? 그 정도 되는 돈이지요. 그 말은, 이번에 200만 원을 보냈으니 앞으로 7개월간은 한 푼도 보내지 않아도 뭐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아, 그런 거야?”
“그래.”
옆에서 듣고 있던 서세영은 노형진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그러면 조금씩 보내도 되는 거 아니야?”
“물론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부양 의사에 대한 판단을 하기가 애매하지 않겠어?”
“어?”
“애초에 이번 계획의 목적은 바로 이두억을 기초 생활 수급자에서 탈락시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