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73)
기회는 함정일 때도 있다 (5)
만일 처음에 28만 원만 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공무원 입장에서는 이게 부양하려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을 거다.
더군다나 법원의 명령에 따라 보내는 거라면 더더욱 이걸 기초 생활 수급자에서 떨어트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거다.
사실 28만 원으로 삶을 이어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래서 처음부터 200만 원을 보내라고 한 거야?”
“그래. 그쪽에다가 적극적으로 착각을 유도한 거지.”
아마 행정 복지 센터도, 당사자인 이두억도 매달 200만 원씩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화라도 해서 물어보면 좋겠지만 이두억에게는 이미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져서 차단당한 상태로 연락도 못 하니까.
그리고 공무원의 행정은 대부분 문서로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행정 복지 센터는 이런 우편을 통해 의견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정작 돈은 한 푼도 쓰지 못하는데 기초 생활 수급자에서 탈락할 위험이 생긴 이두억.
“재미있는 건 뭔지 알아?”
“뭔데?”
“매달 28만 원씩 준다는 것도 결국은 부양 의사가 있다는 거거든.”
설사 법원의 결정에 따라 줘야 하는 돈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건 말장난 같은데?”
“그걸 노리는 거야.”
처음부터 28만 원을 주면서 부양 의사가 있다고 해도 기초 생활 수급자에서 빼는 건 쉽지 않다. 그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미 빠진 상황에서 28만 원을 주면서 부양 의사를 물어보면 또 아예 돈을 주는 것도 아닌 만큼 다시 기초 생활 수급자로 넣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면 제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부양 의사 있음’이라고 써 보내야 하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녀가 부양 의사가 있다고 답변서를 보내면 정부에서는 그걸 기준으로 판단할 거다.
“눈앞에서 매달 120만 원을 잃게 된 이두억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뻔하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거든요, 후후후.”
노형진은 자신 있게 웃었다.
* * *
이두억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눈앞에서 돈이 날아가고 있다.
매달 120만 원.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고, 고시원에서 밥과 라면 그리고 김치를 주는 걸 생각하면 그냥 대충 살아도 되는 돈이다.
그런데 그걸 날리게 생긴 이두억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당연히 가장 먼저 한 것은 자신에게 압류를 건 곳, 즉 새론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당장 이거 안 풀어? 어? 이거 안 푸냐고!”
그리고 처음부터 좋게 말하지 않았다.
‘뭐, 당연한 거지.’
이두억의 삶을 돌이켜 보면 그는 언제나 똑같았다.
폭력과 힘으로 상대방을 억압하고 원하는 걸 강제로 뜯어내 왔다.
최근에는 나이도 먹고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버릇이 사라진 건 아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니까.’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두억의 모습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이거 풀라고!”
“이건 저희 소관이 아니에요. 이건 변호사님이 따로 실행하신 거예요.”
접수처의 직원은 조용히 설명했지만 이두억은 얌전히 들어 처먹을 인간이 아니었다.
“아, 씨팔. 그러면 그 새끼더러 나오라고 해!”
물론 그 새끼, 즉 노형진은 이미 나와서 구경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여?”
“역시 답이 안 보이는 사람이기는 하네.”
“그렇지?”
“그런데 뭘 믿고 저러는 거야?”
“우리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거든.”
“뭐?”
노형진의 말에 서세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가 정상인이라니?
물론 그들은 지극히 정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거랑 이번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음…… 다 오빠처럼 천재가 아니니까, 좀 쉽게 설명해 줘야 알아들을 것 같은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거야. 저자가 그동안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해서 이득을 취할 때, 상대방은 지극히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항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안다는 거지.”
“그걸 알고 계산하면서 일을 저지른다는 거야?”
“응? 그건 아니야. 뭐랄까, 본능 수준에서 캐치한달까?”
노형진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제비 놈들은 외로운 여자를 본능 수준에서 알아본다고 하잖아? 의외로 감각이 그쪽으로 발달한 놈들이 제법 많아. 예를 들면…… 어, 음…… 분노 조절 잘해?”
“아, 뭔 소리인지 알겠네. 제발 그렇게 쉽게 표현해 달라고.”
‘분노 조절 잘해’란 인터넷에서 소위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놀리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분노 조절 장애가 있어서 화가 나 이성이 끊기면 스스로 통제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거짓말이다.
일단 분노 조절 장애라는 정신병은 없다. 정확한 진단명은 간헐적 폭발 장애다.
즉, 자신이 분노 조절 장애라고 하고 다니는 것 자체가 애초에 진단을 받은 적도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간헐적 폭발 장애를 가진 사람의 98%는 심한 우울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칭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있는 놈들의 특징은 그다지 우울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개지랄을 떨고 남을 때리고 괴롭혀서 자기는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우울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가장 다른 점은, 간헐적 폭발 장애가 있는 경우 일단 발작하는 순간 블랙아웃이 되면서 자기 보호 본능까지 사라진다는 거다.
발작하면 그 순간부터 자기 보호는 완전히 포기하고 오로지 상대방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하는데, 당연히 그 최종적인 목표 지점은 살인이다.
원해서 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공격을 받아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총에 맞아 내장이 튀어도 그는 공격이라는 행동만을 한다.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광전사라는 존재가 바로 그런 간헐적 폭발 장애 환자인 거다.
하지만 분노 조절 장애 환자라고 주장하는 놈들은 그러지 않는다.
남을 공격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자기 보호선을 넘지 않는다.
온갖 욕을 하면서 위협하거나 주먹으로 때리는 경우는 있지만 정작 형사적 처벌을 받거나 반격당할 위험이 있을 때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생긴, 분노 조절 장애가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인생 편하게 살려고 하는 놈들을 비꼬는 표현이 바로 ‘분노 조절 잘해’다.
자기가 불리한 것 같으면 바로 꼬리 말고 입을 다물어 버리니까.
“이두억이 딱 그런 스타일이야. 이미 확인해 봤어.”
교도소에 있던 시기에 그는 자신보다 강한 죄수가 들어오자 저항도, 찍소리도 못 하고 살았다고 한다.
“여기는 사회고, 대부분은 정상적인 사람이지. 그러니까 자신이 선을 넘어도 반격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고 저러는 거야.”
“흠.”
“그러면 저런 놈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경찰을 부른다?”
“땡. 틀렸어.”
“엥? 왜?”
“그 정도는 생각하고 저 지랄을 하는 거거든.”
여기서 경찰을 부르면 과연 어떻게 될까?
당연히 경찰은 와서 중재해 준다. 이 정도 상황은 업무방해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으니까.
업무방해란 말 그대로 상대방이 일을 못 하게 방해하는 거다.
그런데 이두억은 소송의 당사자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때리거나 물건을 박살 내지도 않았다. 그냥 접수처의 직원에게 폭언을 내뱉으면서 항의하는 것뿐이라,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의 특성상 업무방해로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까 저쪽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고 있다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우리도 선만 넘지 않으면 되는 거지.”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위로 올라왔다. 다른 곳에는 없는 새론 경호 팀의 등장이었다.
아마도 이두억은 그걸 몰랐기에 와 봤자 고작 경찰일 거라 생각해서 난리를 피웠겠지만 말이다.
“야.”
“야? 야? 어떤 새끼가…….”
화를 내면서 몸을 돌리던 이두억의 말투가 흐릿해졌다.
그도 그럴 게 그를 에워싸고 있는 네 명의 건장한 남자들, 족히 머리 하나는 큰 그들은 방검복을 입고 손에는 쇠로 된 3단 봉을 들고 있었으니까.
“이 새끼 뭐냐?”
경호 팀의 리더 정우찬은 손을 들어서 이두억의 뺨을 톡톡 쳤다.
명백한 모욕이 목적.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될 행동은 아니다. 폭행도, 명시적인 위협도 아니다.
“몰라요. 갑자기 와서 이 지랄이에요.”
접수처 직원이 짜증스럽게 말하자 정우찬은 피식하고 웃었다.
물론 그가 진짜 웃겨서 웃은 건 아니다. 가소로우니까 웃은 거다.
“붙잡아.”
“네, 형님.”
“뭐…… 뭐 하는 거야?”
“대화하자며? 대화 좀 해 보자고.”
“잠깐만.”
건장한 사내들에게 붙잡혀서 어디론가 질질 끌려가는 이두억.
노형진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고갯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갈까?”
* * *
이두억은 컴컴하고 어두운 공간에 있었다.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하얀 백열등만이 빛을 발하고 있는 공간.
창문도 없는 것이, 영화에 나오는 남산 취조실처럼 생겼지만, 사실 여기는 엄연한 접견실이다.
정확하게는 등을 전부 다 켜면 화사한 방 안의 풍경이 드러나지만 가운데에 설치된 백열등만 켜면 취조실 분위기가 된다.
가운데의 백열등은 평소에는 일종의 디자인같이 보이지만 불을 끄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뭔데?”
“나 압류한 거 풀어 달라고…….”
쾅!
정우찬은 3단 봉으로 탁자를 강하게 내리쳤다.
“우리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반말이. 너 나 알아?”
“아니……요.”
“그런데 왜 반말이야? 썅놈의 새키가.”
“…….”
“그리고 뭐? 압류를 풀어 줘? 그건 네가 돈을 갚아야 하는 거지! 그냥 풀어 주는 경우가 어디 있어?”
“그게…… 일단 풀어 주시면…….”
“아니, 헛소리하지 말고. 법적으로 그럴 수도 없고, 애초에 이건 새론에서 묶은 게 아니라 노 변호사가 개인적으로 묶은 거라 우리가 손 못 대.”
이미 접수처에서 설명해 줬지만 들은 척도 안 하던 이두억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알아들었어?”
“…….”
“알아들었냐고! 이 새끼야!”
‘쾅!’ 소리 나게 다시 한번 탁자를 치고 나서야 고개를 격하게 끄덕거리는 이두억.
“자, 그러면 다음 문제를 해결하자.”
“다…… 다음 문제요?”
“그래. 회사에 와서 업무방해를 했으니까 배상해야 할 거 아냐!”
“배……상이라니요?”
“아니, 입구에서 그 깽판을 쳐 놓고 그냥 가려고 했어?”
그 순간 문 옆에 있던 남자가 스윽 출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다른 남자가 와서 이두억이 도망가지 못하게 그를 꾸욱 눌렀다.
“편하게 가자. 알았지?”
턱 하고 서류를 내미는 정우찬.
“합의, 여기서 끝내자. 귀찮게 법원까지 가지 말고. 무슨 말인지 알지?”
그 말에 이두억은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 * *
“고작 50만 원으로 충분하십니까?”
정우찬은 노형진에게 물었다.
위협했고, 그래서 합의서를 받아 냈다.
물론 노형진이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한 건 아니었다.
고작 50만 원.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이 적은 돈이었다.
“뭐, 충분합니다. 사람마다 그 돈에 대한 값어치는 다르니까요.”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50만 원은 아주 큰 돈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 방세도 내지 못하는 이두억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런데 가서 경찰에 신고하면 어쩌려고?”
서세영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전과자라고 해서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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