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09)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야 뭐…….”
“원래 프로파일링은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완성하는 거예요. 여기 팀이 없으니 노 변호사님이 조금 도와주셔야합니다.”
“음…….”
그 말에 노형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단독 범죄는 아니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상자를 사과 상자로 이야기했으니까요. 그건 혼자서 들고 도망가기에는 좀 부피가 있거든요. ‘내가’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걸 혼자 들고 도망치기는 힘듭니다. 결국 우리가 놓게 될 장소는 차로 접근할 수 있는 장소이겠네요. 그럼 운전자가 내려서 짐을 싣는다고 보기는 힘드니까 최소한 운전자 한 명, 짐을 실을 한두 명은 필요하니까요.”
노형진의 말에 김소라는 미소를 지었다. 마치 잘했다는 말을 하는 유치원 선생님 같은 표정이었다.
“날카로우시네요.”
“별말씀을. 때려잡기죠. 그러는 소라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김소라는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이런 프로파일링은 통계학이다. 결국 그 통계에서 결과가 도출되게 되어 있다. 물론 아예 뜬금없는 사람이라서 틀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 확률적인 수를 줄여 주는 것은 사실이다.
“제 생각에는 이 사건은 할아버님의 문제보다는 둘째 아드님과 관련된 사건일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우리와 관련된 사건이라니?”
정태성의 둘째 아들 정만욱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아버지는 엄청난 부자다. 당연히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움직인 사건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을 노린 사건이라니?
“장난해요? 이거 할아버지 재산을 노린 사건이에요. 거의 범인도 뻔하구만.”
“뻔하다고요?”
“뻔한 거 아니요? 할아버지 재산을 노리고 달려든 그 아들하고 딸들 중에 있는 거겠지. 쫓겨나고 돈도 떨어지니까 돈독이 올라서 그러는 거요.”
경찰은 마치 다 잡았다는 듯 말했다.
“이미 그 사람들한테 경찰이 붙어서 감시 중이니까 금방 아이를 찾을 거요.”
“그건 왜 우리한테 말해 주지 않았어요!”
“뭐, 일단 아이를 찾은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금방 찾을 겁니다.”
경찰은 자신의 말이 맞다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노형진이 보기에는 완전히 엉뚱한 곳을 뒤지는 느낌이었다.
‘바보냐?’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두 딸과 첫째아들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들이 납치하겠는가?
“엉뚱한 데를 찾고 있군요.”
“엉뚱한 데?”
“네, 그들은 범인이 아닙니다.”
“아니, 당신이 뭘 안다고?”
“간단해요. 이 사건은 금액이 적으니까요.”
“2억이 작다고?”
장난하느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경찰. 하나 노형진은 그 부분에서 대번에 이해가 가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군요. 생각보다 작아요. 그 부분을 놓쳤군요.”
“뭔 개소리들이에요?”
“고작 2억입니다.”
“고작? 이 사람들이 장난하나?”
경찰이 아무래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노형진은 그에게 자신이 깨달은 점을 자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태성 씨는 부자입니다. 원한다면 10억쯤은 우습게 꺼낼 수 있지요. 아마 최대로 한다면 하루 안에 100억 이상현금 동원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두 딸과 첫째 아들은 그걸 알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들이 2억만 요구하지는 않을 겁니다.”
“뭐, 양심에 찔리니까 그런 거겠지.”
‘애를 유괴하는 녀석이 무슨 양심이 있어?’
노형진은 경찰의 말에 속이 참 답답했다.
“맞아요. 제가 할아버지의 재산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집의 상태나 규모 위치로 보면 부자인 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죠. 그런 상대방에게 2억은 너무 작아요. 그렇다면 원래 이 집에 살지 않던 누군가를 노린 거죠. 둘째 아드님이신 정만욱 씨가 오신 지 얼마 안 되셨다고요?”
“네.”
“그럼 그 사람은 아드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일 겁니다. 만일 아드님이 현금을 동원한다면 얼마까지 가능하겠어요?”
“어…… 그러니까 대출을 끼고 이것저것 하면 한…… 2억?”
말하던 정만욱은 움찔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2억.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
“더군다나 사과 상자에는 3억이 들어갑니다. 기왕 받으려면 차라리 3억을 꽉 채워서 받는 게 사람이에요. 그런데 2억을 요구했다는 것은 상대방이 아드님이 3억을 동원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지요.”
“크흠.”
노형진과 김소라의 날카로운 지적에 경찰은 헛기침했다. 생각해 보면 상당히 날카로운 지적이었던 것이다.
“뭐, 개인 취향이라는 것도 있고…….”
“이건 두 명 이상의 멤버들이 움직이는 납치 사건입니다. 그런데 무슨 취향을 따집니까?”
노형진은 한심하다는 듯 경찰을 바라보았다.
“…….”
“그리고 기한인 사흘도 걸려요. 보통 범인들은 스물네 시간을 줍니다. 짧으면 열두 시간을 주기도 하죠. 그런데 기한이 사흘이라는 건 기존 사건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길어요.”
‘확실히 그렇군.’
노형진은 그 말을 듣고 그 부분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미국에 있을 때 유괴 사건이 터지면 최대 서른여섯 시간을 기준으로 잡는다.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확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납치하고 최소 열두 시간 내에 금전을 요구하면서 기한은 스물네 시간을 준다. 즉, 서른여섯 시간이 골든타임인 것이다. 그런데 사흘이라니.
“단순히 돈을 확실하게 받아내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것치고는 처음부터 시간이 너무 길어요.”
김소라는 한참 팔짱을 끼고는 생각에 빠졌다. 노형진 역시 그녀가 생각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았다.
“결국 이건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군요.”
“네?”
“뭐라고요?”
변식범이라는 말에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는 경찰.
“그러니까 두 딸이나 큰 아들이라는 소리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러기에는 돈 금액이 너무 적아요.”
2억을 세 명이서 나누면 잘해 봐야 7천 조금 안 된다. 돈 욕심 때문에 아버지를 감옥에 넣었던 녀석들이 과연 그 돈으로 만족할까? 그럴 리 없다.
“이 사건은 분명 둘째 아드님과 아는 사이이고 또한 아이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사이일 겁니다. 시간을 넉넉하게 줬다는 건 아이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누군데요? 아주 무당 하겠네, 무당 하겠어.”
경찰의 깐죽거림. 하지만 노형진은 그 깐죽거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좋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아니군요.”
“네, 다급해졌네요.”
“왜 그런가? 사흘이나 줬으면 시간이 넉넉한 거 아닌가?”
송정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상당히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사흘이나 줬다는 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는 건 아이를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반대로 말하면 아이가 그 범인이 누군지 알 거라는 뜻도 됩니다.”
그 말에 송정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네, 아이가 상대방이 누군지 안다면 그런 작자들에게는 선택 카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아이가 그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있다는 건 아이를 풀어 주는 순간 범인이 잡힌다는 뜻이 된다.
털썩.
그 말에 주저앉는 정만욱.
“여보!”
“아비야!”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본 노형진은 일단 수사의 방향을 돌리려 했다.
“일단 다른 쪽으로 수사해 주십시오. 아드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드님을 해칠 만한 이유로요.”
“거, 안 그래도 된다니까요.”
“네?”
“우리가 거의 다 잡았다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말 그대로예요. 우리가 다 잡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그 말에 김소라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그럴 겁니까?”
“당신 같은 아마추어들이 할 게 아니라니까요.”
노형진을 바라보면서 빙글거리는 경찰.
그 얼굴을 보고 발끈하려는 송정한을 노형진을 말렸다.
“진정하세요. 예상했던 일입니다.”
“뭐라고?”
“프로파일러에게는 지휘권이 없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노형진의 말에 김소라는 송정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말 그대로예요. 프로파일러에게는 지휘권이 없어요. 그냥 조언자일 뿐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조언해 줘도 저들이 들어 주지 않으면 어쩔 수가 없는 거죠.”
“그게 말이 됩니까?”
송정한이 화냈지만 사실 이런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도 일부 지역의 경찰은 여전히 프로파일러들을 믿지 못한다. 아니,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 양쪽으로 수사하면 좋은데.’
노형진 역시도 그들이 무조건 맞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있다.
“최소한의 숫자라도 지원해 주면 안 되겠습니까?”
노형진은 그 정도는 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경찰은 단호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장난 때문에 시간 낭비할 생각 없소. 우리 경찰이 노는 것도 아니고 뻔한 사건을 뭐 그리 빙빙 돌아가는지.”
“이봐요!”
결국 노형진이 화내려고 하는 찰나였다.
“과장님.”
“응?”
“드디어 잡았답니다. 세 명이서 모여서 음모를 짜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잡아들였답니다.”
“옳거니! 결국 범인들은 모이는 법이지. 그거 봐요. 내가 분명히 그 녀석들이 범인이라고 말했지요. 하하하!”
마치 그들이 죄를 자백이라도 한 듯 웃는 그는 누가 봐도 도와줄 의사가 없어 보였다.
“자자, 바로 철수 준비하고.”
“잠깐만요! 철수라니요? 아직 범인도 잡히지 않았다는데.”
“방금 보고 못 들었어요? 잡았다잖아요.”
물론 그들을 두 딸과 첫째 아들은 잡아넣었다. 하지만 그들이 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벌써 철수 준비를 하는 경찰을 보면서 노형진은 이들이 아예 아이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큰일이다.’
언론에 새어 나간 사건이었다면 아마 눈물을 흘리면서 별의별 가식을 다 보여 주겠지만 저들에게 이 사건은 그저 퇴근을 미루는 잔업일 뿐이었다.
‘망할. 하필 걸려도.’
물론 제대로 된 경찰이 훨씬 많다. 문제는 그런 경찰이 걸리지 않고 엉뚱한 사람이 걸리면 이런 식으로 사건이 꼬인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경찰서에 사건을 접수하러 가면 별의별 핑계를 대면서 일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찰들이 수두룩하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는 것.
“진짜 이럴 겁니까?”
“뭘요?”
“아직 범인 못 잡았습니다.”
“기다려요. 그 녀석들이 조만간 자백할 테니까.”
웃으면서 나가는 경찰을 보면서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면서 김소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마저 가 버리면 대책이 안서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김소라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안 가세요?”
“전 저 사람들이 부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저런 모습을 어디 한두 번 봤어야지요.”
김소라 역시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는 듯 그들이 나간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그럼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겠네요.”
“변호사가 수사하지는 않는데.”
하지만 아이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
‘그래, 일단은 아이를 구하는 게 우선이니까.’
나중에 경찰한테서 한 소리 들으면 그만이다.
“그러면 일단 원한을 가진 사람부터 생각해 보죠.”
“원한이요? 하지만 전 직장인일 뿐인데.”
“원한은 사소한 것부터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까 아무리 사소해도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딱 맞춰서 2억을 했다는 건 두 분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원한이 있는 쪽을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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