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0)
노형진은 그들을 진정시키고는 천천히 그들의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딱 봐도 그들은 그다지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아내는 가정주부이고 정만욱은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일 뿐이다. 그나마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이 아닌 본사가 있는 미국 쪽에서 생활하다 왔다.
“추가적인 정보는 없나요?”
김소라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지만 그 가족들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하긴 그런 정보가 있었다면 경찰이 벌써 잡았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일까? 어째서 원한을 가지고 이들에게 접근한 걸까?’
도무지 실마리라고는 보이지 않는 상황.
문득 노형진은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냈다. 그가 한국에 들어와서 원한이 생긴 게 아니라 원한을 가진 사람이 한국에 들어와 있던 거라면? 원한 자체는 미국에서 생긴 거라면?
“혹시 미국에 살 때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미국이요?”
“네.”
그 말에 거북한 얼굴이 되는 정만욱.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그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국에 없다면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 회사에서 있었던 일인데 설마 그걸로 한국까지…….”
“그 외국계 기업에 한국인이 많았나요?”
“아무래도 글로벌 기업이니까 사람이야…….”
말을 하다가 흐리는 그를 보면서 그 일이 뭐든지 간에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슨 일인가요?”
정만욱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은 미국에 있을 때 제가 정리 해고에 관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리 해고요?”
“네.”
정리 해고란 말 그대로 회사에서 인원을 감축하기 위해 일부의 사람들을 해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해고당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을 주며 원한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한국 사람도 포함되었나요?”
“당연히…… 그렇지요. 사실…… 가장 많은 게 한국 사람이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만큼 여러 민족과 인종이 있다. 하지만 가장 해고하기 좋은 사람은 한국 사람이다. 중국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덤벼들고 일본인들은 소송도 불사한다. 미국인들은 자국 내에서 해고하는 것을 무척이나 까다롭게 해 놨다. 결국 해고해도 저항이 덜한 쪽을 더 많이 자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때 한국 사람들 중에서 많은 수가 잘렸습니다.”
“당신은요?”
“전…… 미국 영주권이 있어서.”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후회 때문인지 얼굴이 확 붉어지는 정만욱.
“그래서 그때 원한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죠?”
“모…… 모르겠습니다. 제 손에 잘려 나간 한국 사람만 해도 여든 명이 넘습니다.”
얼굴을 부여잡고 절망하는 그였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그를 진정시키면서 기억을 더듬게 했다. 힘든 일이지만 기억해 내야 한다.
“그중에서도 친한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친한 사람요?”
“네, 지금 범인은 당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까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강제로 끌고 갔다면 아이가 저항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신고는 없었어요. 아이의 학교에서 여기에 오는 길에 가게가 많은 걸 생각하면 아이는 상대방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도 한국인이라고 어울리기도 했고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러니 자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렇게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길을 열어 준 것은 김소라였다.
“그 사람은 40대 후반 이상일 겁니다. 아마도 적응이 좀 느린 편일 테고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는 습성이 있을 겁니다. 자신의 과거에 잘나갔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현실에서 주변에 불만이 많았을 거구요. 그리고 한국 이야기를 자주 했을 겁니다.”
“네?”
그 말에 뭔가 기억나는 듯 고개를 드는 정만욱.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 한 명! 한 명 있습니다! 조승덕이라고 저보다 먼저 들어온 선배가 한 명 있었습니다.”
정만욱의 말에 따르면 조승덕은 한국에서 어떻게 들어온 사람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잘나갔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정작 그의 능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는 여러 가지 광고를 성공적으로 만들어서 홍보부 쪽에 있었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인터넷이나 기타 매체에 관심 없이 오래된 광고 전략만을 들고 왔다고 한다. 당연히 그런 방식이 현대에서 먹힐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이 한국에 가면 모셔 갈 곳이 줄을 섰다면서 언제나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 사람이군요.”
“그런 사람이 있는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회사적 업무로 인해 원한을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의 성향입니다.”
30대는 잘렸어도 다른 회사를 구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사회적으로 잘 어울리고 성격이 좋은 사람들은 자신을 해직시킨 것이 원한 때문이 아닌 그저 일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기에 섭섭해할지언정 원한까지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40대가 넘어가면 그러지 못하지요.”
적응은 힘들어지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며 이직은 쉽지 않다. 하나 한때 성공한 사람인 만큼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서 자신을 자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왔으니까요.”
미국으로 취업하러 나간 많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가능한 한 돌아오지 않으려고 한다. 연봉도, 근무 조건도 그쪽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건 한국에 오면 자신은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거나 자신을 받아 줄 곳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둘 다 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한국에 있을 때를 자랑할 수밖에요. 그곳에서 있던 일을 증명할 수는 없거든요.”
“아!”
결국 그로서는 한국으로 도망치듯 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아시는 거 있습니까?”
“전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소식은 들었습니다.”
나가는 순간까지 행패를 부리면서 자신을 자른 이 회사에 복수하겠다면서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퇴직 후에도 몇 번이나 와서 행패를 부려서 경찰에 잡혀 가기도 했다고 했다. 심지어 회사를 상대로 복직 소송까지 했다고 한다.
“그때일 가능성이 높군요.”
복직 소송을 했다면 담당했던 직원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알게 된 상황에서 그 사람이 자신이 알던 사람이라면 더욱 분노했을 것이다.
“그가 당신에 대해 잘 압니까?”
“네…….”
정만욱은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자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자신이 그를 잘 대해 줬기 때문이다.
“그냥…… 제대로 친구도 없이 왕따 같은 걸 당하는 걸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잘 대해 줬는데…….”
‘쩝…… 은혜를 원수로 갚는군.’
이런 놈들의 행동은 언제나 비슷하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남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면 그에게 복수하려고 혈안이 된다.
“그 인간의 주소 같은 거 압니까?”
“미국 주소만…….”
“혹시 그 사람에 대해 알 만한 방법이 없을까요?”
그 순간 둘째 아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사람이 한국에 살 때 살던 주소가 회사 기록에 남아 있을 겁니다!”
“너무 오래된 거 아닐까?”
송정한은 그 말에 우려를 표시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사람이 해외에서 얼마나 오래 있는지 모르지만 젊어서 미국으로 갔다면 아무런 연고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형진 역시 동의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라리 주변을 살피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주변을?”
“그런 인간에게 정만욱 씨가 돌아왔다고 알려 줄 사람이 있다고는 보기에는 힘들거든요.”
“확실히 그렇지.”
회사 내부에서도 왕따를 당하는 그의 입장에서 정리 해고까지 당했는데 정만욱에 대한 정보를 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정만욱 씨나 정만욱 씨의 와이프나 아이나 하여간 그 세 명 중 한 명을 봤다는 소리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넓은데?”
그 세 명의 행동반경은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그곳 어디에서 조승덕을 만났는지 알 수는 없다.
“일단 정만욱 씨의 생활 반경을 빼죠.”
노형진은 한참 고민하다가 가장 먼저 정만욱 씨의 행동반경을 빼기로 했다.
“어째서?”
“조승덕이 있기에는 정만욱 씨의 행동반경은 너무 성공적이거든요.”
이쪽 동네는 조승덕이 들어와서 살기에는 너무 비싼 동네다. 그렇다고 기업 쪽에서 보자니 그 기업 쪽에서 신분도 불분명한 사람을 회사 안으로 들여보내 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길거리에서 우연히 볼 수도 있지만.
‘하기만 우연히 보기에는 좀 그렇단 말이지.’
그랬다면 그런 녀석이라면 원한을 가지고 공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정만욱을 직접적으로 봤을 가능성이 낮다는 소리다.
“그럼 아이일까?”
“아이라……. 그 인간이 아이를 본 지 얼마나 지났지요?”
“그…… 글쎄요……. 한 2년 좀 넘은 것 같습니다.”
정만욱의 말에 노형진은 아이의 생활 반경도 빼기로 했다.
“그럼 가능성이 낮군요.”
“그런가?”
“네, 아이들은 무섭게 크니까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다. 2년 좀 넘었다는 건 초등학교 1~2학년 때 봤다는 소리다. 그런 아이와 비슷한 아이가 한국에 있다고 눈에 불을 켜고 따라다니기는 쉽지 않다. 그저 비슷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게 보통이다.
“남은 건 아내분이군요.”
하지만 아내는 가정주부다. 그녀는 여기서 일을 하지도 않을 뿐더러 어디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기껏해야 마트에나 다니고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그럼 애초에 정만욱의 행동반경을 빼는 게 의미가 없어지는데.’
또다시 막혀 버린 상황에서 노형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질적으로 정만욱과 마찬가지로 그가 들어오기에 이곳은 너무 고가의 주택단지이다. 물론 성공해서 여기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성공해서 여기에 사는 녀석이 미쳤다고 유괴 사건을 벌이겠는가?
그 순간 잠시 생각하던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서…… 설마?”
“설마라니요? 아시는 게 있나요?”
“제가…… 동네 사람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자원봉사를 해요……. 근처 교회에서 같이 나가서.”
“자원봉사요? 어떤 거요?”
“바…… 밥 차요.”
“밥 차?”
“네!”
밥 차란 말 그대로 노숙인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이게 무상으로 밥을 나눠 주는 자원봉사를 뜻한다. 그런 곳이라면 충분히 조승덕이 있을 수 있다. 만일 한국에 와서 실패했다면 말이다.
“어디입니까, 그곳이?”
노형진의 눈에서는 불이 활활 타고 있었다.
“수고하세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로 그날이 밥 차 봉사를 하는 날이었다. 노형진은 서둘러 정만욱의 회사에 연락해서 양해를 구하고 조승덕의 사진을 들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곳에 있을까?”
“없을 겁니다. 바보는 아닐 테니까요.”
노형진은 송정한에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있겠지요.”
유괴까지 한 상황에서 혹시나 와이프가 자신을 알아보면 곤란할 테니 조승덕이 이곳에 왔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여기에 오는 사람들은 매주 와서 밥을 먹는 사람들. 즉, 누군가는 조승덕에 대해서 알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세. 일단은 찢어져서 이야기를 나눠 보지.”
“그러지요.”
노형진과 송정한은 서로 흩어져서 주변에 사진을 들고 혹시나 그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사진을 찍었을 때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이거 조 씨 아냐?”
“아닌 것 같은데?”
“아냐, 맞아. 좀 더 젊어 보이고 깔끔하지만 이거 조 씨 맞네.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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