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34)
폐기될 것인가 폐기할 것인가 (1)
홍보석은 지칠 대로 지친 얼굴이었다.
그런 홍보석을 보면서 노형진이 혀를 끌끌 찼다.
“요 근래에 잠 제대로 못 주무시나 보군요.”
“못 자는 정도가 아니죠. 매일같이 전화해서 은근히 압박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공개하시죠.”
“하려고 했죠. 그런데 조사해 보면 없는 전화번호라고 하더군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홍보석.
그 말에 오광훈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맞아. 나도 겪어 봤지.”
“뭘 겪어 봐?”
“익명으로 오는 전화 말이야.”
“익명으로 오는 전화?”
“스타 검사들은 다 한 번쯤은 겪어 봤을걸.”
스타 검사, 즉 새론에서 키운 검사들은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오면 그걸 녹음했다가 나중에 발신 번호를 조사해서 처벌한다.
실제로 스타 검사 초기만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압력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하던 놈들이 넘쳐 났다.
지극히 흔한 일이었고 그걸 이용한 사기도 많았다.
예를 들어 전화해서 ‘누구누구 비서실입니다.’라고 밝히며 어떤 사건에 대해 선처를 바란다고 하거나 ‘나 누군데 어떤 사건 덮어.’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검사라면 그걸 무시하거나 처벌해야 하지만, 검사들 사이에서는 그런 전화의 뒤를 캐는 건 암묵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취급하고 있었기에 보통은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스타 검사들은 그걸 조사했고, 그 결과 사칭해서 형량을 줄이는 사기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그런 사기가 경찰과 검찰, 심지어 법원에까지 있었는데, 그 전화 한 통에 많은 검사들이 의심도 없이 사건을 덮어 왔던 것.
“그랬더니 이 새끼들이 전략을 바꾸더라고.”
추적이 불가능한 대포폰이나 특정할 수 없는 장비를 이용해 전화해서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추적은 불가능하지만 압박은 되니까 손해 볼 일이 없는 전략이라는 거다.
“진짜로?”
노형진은 너무나도 어이없어서 다시 물었다.
“신분 확인도 안 하고 그냥 그렇게 시키는 대로 해 왔다고?”
“신분 확인이 되겠냐? 전화해 봤자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할 게 뻔한데.”
그렇다고 추적 조사를 하자니, 그게 사실이라면 상대를 건드린 대가로 모가지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
“조사해서 모가지가 날아가든가 사건을 덮지 않아서 모가지가 날아가든가 결과는 똑같으니까.”
하지만 스타 검사들이 생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던 것.
“전화기를 꺼 두면 문제가 없지 않나요?”
“애초에 심적인 압박감을 주기 위한 목적이니까요.”
‘더 이상 건드리지 마라. 더 이상 건들면 너도 죽는다.’라는 하나의 협박 방법이라는 것.
“그 뒤에 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사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계속 차단할 수도 없죠.”
어차피 그 전화번호는 가짜일 테고, 그 번호를 막아 봐야 다른 번호로 접촉하면 그만이다.
최악의 경우 사건 관련자의 번호가 우연히 섞일 수도 있기에 차단은 소용없다.
“전화의 요구 조건은 하나예요. 그냥 사건을 덮으라고.”
“용케 사건이 재배당되지 않았네요.”
“그랬다가는 일이 더 커진다는 걸 아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스타 검사가 관련된 일이다. 당연히 재배당하려고 하면 그 자체가 사건을 덮으라는 하나의 신호가 되어 버린다.
“그래요? 그래도 녹음 파일은 있으시죠?”
“녹음 파일이야 당연히 있죠.”
“그러면 수사하면 되죠.”
“전화번호가 없다니까.”
“누가 전화번호를 조사하래? 목소리를 조사하라고.”
“목소리를?”
“그래. 하긴, 보통은 목소리를 조사할 일이 없으니까 너희가 잘 모르기는 하겠네. 하지만 목소리를 조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실제로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도 전화번호가 가짜이다 보니 주요 핵심 증거는 목소리가 된다.
“아무래도 검찰에서는 증거를 공개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는 하지. 하지만 다른 곳도 그럴까? 유툽도 있고, 다른 온갖 렉카 채널도 있잖아.”
목소리를 공개하고 본격적으로 수사한다면 어떨까?
“운이 좋다면 아마 전화한 놈들을 추적할 수 있을 거야. 누군지는 안 봐도 뻔하지만.”
그렇다. 보나 마나 국정원에서 위협하는 걸 거다.
“아무리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도 누군가는 그 목소리를 알 가능성이 크지.”
실제로 지금은 사라진 사건 추적 프로그램에서 범인의 목소리를 틀어 주고 범인을 특정하는 데 성공한 적이 있었다.
“국정원 요원은 철저하게 익명성을 지키는 게 중요해. 그런데 누군가 목소리를 알아듣고 제보한다면 아무래도 곤란하겠지. 그리고 그런 전화를 하는 놈들이 과연 하위직일까?”
아무리 국정원이 상명하복이 철저한 곳이라 해도 불법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런 일을 하위직에게 시키면 나중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목소리가 공개되면 더 이상 전화하기 힘들어지지. 애초에 사람들이 지금 흥분한 이유가 뭔데? 정치인이나 재벌가도 아닌 일개 술집 주인이 대한민국의 사법 시스템을 농단했다는 것 때문이잖아. 돈만 주면 누구든 사법 시스템을 농단할 수 있는 현 상황에 과연 사람들이 분노를 안 하겠어?”
그 말에 오광훈은 약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런 거야 목소리 변조만 하면 그만이잖아?”
“물론 그러겠지. 하지만 말이야, 중요한 건 전화라고.”
“응?”
“검사라서 그런가, 정치적인 문제를 모르네.”
검사에게 전화해서 사건을 덮으라고 한다.
물론 전화번호와 목소리를 변조하면 특정은 불가능할 거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군가 사건을 덮고 싶어 한다는 거지.”
“아하!”
누군가는 사건을 덮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걸 국민들에게 알린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누군가 권력자가 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고 인식하게 되는 거니까.
“전화번호에 목소리까지 변조해 가면서 장난하는 놈은 없으니까.”
그런 장비가 없는 건 아니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조식은 사기를 칠 때 그런 장비를 쓴다.
문제는 그런 장비가 절대로 싼 물건이 아니라는 거다.
당연하게도 그걸 사서 쓸 정도라면 기본적으로 진짜 권력이나 돈이 막대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수사를 못 한다? 물론 못 하지. 이건 방법이 없지.”
애석하게도 현대 기술로는 그렇게 변조된 번호를 추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나마 발신지를 추적해서 그곳에 설치된 변조기 정도만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그 대신에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수는 있지.”
이렇게 대중에게 공개된 사건조차도 누군가 끊임없이 덮으려고 한다.
과연 그걸 국민들이 안다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쉽게 사라질까?
“아, 그렇겠네.”
“이건 꺼질 수가 없는 장작인 셈이군요.”
“맞습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추적하기 시작하면 결국 국정원의 활동 반경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국정원을 엮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맞아. 국정원에서 인정하지 않을 텐데?”
노형진은 그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국정원의 이야기를 들을 이유가 있어?”
“뭐?”
“국정원의 철칙이 뭔데?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야.”
“그런데?”
“그런데 그게 때때로는 함정이 되거든.”
“그게 함정이 된다고요?”
“네. 일단 방향이 잡히면 뭘 해도 믿지 않으니까요.”
만일 국정원에서 부정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국정원에서 긍정한다? 그러면 국정원은 곤란한 처지가 된다.
국정원에서 부정도, 긍정도 안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방향만 잡아 주면 되는 거지. 그걸 막는 건 국정원일 테지만, 후후후.”
* * *
국정원은 항상 조용한 편이다. 소리를 지르거나 싸우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하지만 이 순간 국정원장실은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 못해 무거운 분위기에 질식할 정도였다.
“조 실장하고 곽 실장 그리고 서 팀장. 할 말 있어?”
“…….”
“이 미친 새끼들아, 미쳤어? 어? 국정원, 그것도 블랙 팀을 이끈다는 새끼들이 협박 전화? 너희들이 제정신이야? 어?”
“아니, 그게…….”
그 말에 세 사람은 할 말이 없었다.
홍보석에게 협박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서든 입을 막아 볼까 했다.
실제로 이렇게 하면 압박을 받아서 고집을 꺾는 인간들이 적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