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43)
죽는 그 순간까지 (3)
“그리고 현재 상황을 보면 염산은 이미 확보한 것으로 생각해야겠지요.”
얼굴이 알려지기 전에 먼저 염산을 확보하고, 그 후에 가스를 가져와서 몰래 섞으면 비극이 시작되는 거다.
“문제는 그게 어디냐는 건데.”
그건 특정하기가 어렵다.
정말로 강남 한복판일 수도 있고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일 수도 있다.
미국이 독가스라면 눈을 까뒤집고 추적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다.
숨겨서 뿌리면 끝이라, 추적하기가 어려우니까.
“차량 같은 건요?”
“이미 확인 중입니다만 차량은 버려졌습니다.”
공흥구는 이미 차량을 수차례 바꿔서 타고 다니고 있다.
애초부터 그만큼 차를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간첩으로 훈련받은 공흥구에게 차를 훔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차량을 훔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좀 오래된 모델의 차량을 노리면 되니까.
“훔친 차량은 특정하지 못하나요?”
“계속 노력 중입니다만…….”
요원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쉽지 않다는 뜻이다.
“현재 세 번째 차량까지는 추적했습니다.”
“벌써요?”
“용의주도합니다.”
확실히 공흥구도 필사적이기는 하다.
사건이 터진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세 번째 차량을 바꾸다니.
그 말에 차량에 접근할까 생각하던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의미가 없겠지. 접근도 못 할 테고.’
자신에게 사이코메트리 능력이 있다고 말해 줄 수는 없다.
믿지도 않을 테고, 설사 믿는다 해도 온갖 더러운 일에 동원하려고 하거나 실험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더군다나 차량은 훔친 물건이다.
거기다 차를 계속 바꾸고 있으니 차 안에 중요한 증거를 흘렸을 가능성은 낮다.
설사 증거를 남겼더라도 국정원에서 이 잡듯이 뒤지고 있는 이상 자신에게까지 전해지지는 못할 테고.
‘차량을 계속 바꾸면서 도망간다라……. 그런데 어디로?’
문득 노형진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잡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차를 바꾸고 있지만 어차피 도망갈 곳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애초에 공흥구는 삶을 포기하고 막 나가고 있다. 이게 도주일까?
그럴 리가 없다. 지금 공흥구는 가능하면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싶어 한다.
“잠깐 차를 발견한 장소를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노형진에게 발견한 장소를 찍은 사진을 보여 주는 철수 요원.
사진을 살피던 노형진은 돌연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CSS 08이 독가스라고 했죠?”
“네.”
“그게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숨겨진 공간에 있던 양으로 생각하면 못해도 반경 2킬로미터는 오염시킬 수 있을 겁니다. 특히 기화가 시작되면 더더욱 빠르겠지요.”
염산이 섞이는 순간 빠르게 기화하면서 순식간에 최소 반경 2킬로미터를 지옥으로 만든다는 소리다.
“그러면 밀폐된 공간에서 효과를 발휘하겠네요?”
“그렇지요?”
“어, 이런 씨팔?”
노형진의 입에서 흔치 않게 욕이 튀어나왔다.
노형진은 그다지 욕을 좋아하지 않는다.
품위나 품격 운운하는 건 아니지만 욕으로 감정을 쉽게 표현하면 나중에 다른 감정도 욕으로만 표현하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노형진조차도 이번에는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십니까?”
“실내에다가 사람이 굉장히 많은 공간이라면 큰 건물 아닙니까?”
“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런 빌딩이 한두 곳이 아니라서요.”
요원의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물론 빌딩도 그런 구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빌딩은 공흥구가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다. 각 층이 격리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여기?”
노형진이 가리킨 곳을 본 요원을 비롯한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남 라이트 필드.
초대형의 건물로, 개방형 상가 집단이다. 그리고 그곳은 완전히 밀폐되어 있다.
층별로 구분되어 있지만 계단과 바닥은 구분되어 있지 않고 가운데는 완전히 뚫려 있다.
“여기는 환기 시스템도 같이 쓰죠?”
“네, 그렇게 되면…….”
만일 여기서 터트린다면? 밀폐된 공간에 순식간에 독가스가 퍼질 거다.
“오늘 주말이잖아요?”
김소라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라이트 필드 정도 되는 건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인가? 2만? 3만?
“여…… 여기가 아닐 수도 있잖아? 그렇지?”
“어…… 안 그럴 것 같은데?”
노형진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추적된 차량들의 위치가 죄다 그 주변이니까.
정확하게는 조금씩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하는 편이지만 라이트 필드를 기준으로 보면 아주 멀지는 않은 위치였다.
“아니, 어째서? 그냥 가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시간이 문제군요.”
애써 부정하고 싶어 하는 오광훈에게 김소라가 참담하게 말했다.
“지금 시간이 아침 10시 30분이에요. 아직 라이트 필드가 열릴 시간은 아니죠.”
정확하게는, 열긴 했겠지만 아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다.
조금 일찍 나온 사람들이나 영업을 위해 출근한 사람들만 있을 시간.
“가장 사람이 많은 시간이 한 2시나 3시쯤이겠지요?”
노형진은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고 김소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그 시간이 피크일 거예요.”
최고로 사람을 많이 죽일 수 있는 시간.
그 시간까지 숨어 있기는 힘들다. 이 잡듯이 자신을 찾을 테니까.
그렇다면 방법은?
“차라리 움직이면 추적은 힘들지요.”
그 말에 철수 요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든 도로를 막고 검문검색을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 이놈이 정말로…….”
라이트 필드를 노린다면 어떻게 막을 것인가?
“당장 도로를 막고 검문을 하겠습니다.”
“소용없을 겁니다.”
시간상 지금이라면 이미 라이트 필드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거기에 가서 수색해야 하나요?”
“가능하겠습니까? 만일 수색하다가 걸리면요?”
“…….”
아마도 바로 가스를 터트릴 거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에 사람을 은밀하게 투입하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요?”
“군대를 이용하는 거죠.”
“군대? 그게 더 걸릴 것 같은데요.”
“군대를 걸리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노형진은 혹시 모를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공흥구를 최대한 안심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주변에 군대가 어디가 있죠?”
* * *
공흥구는 몰려가는 군용 차량을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멍청한 놈들. 엉뚱한 곳으로 가는군.’
다행히 자신이 향한 방향을 엉뚱하게 추측한 건지 군대는 모조리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흥구는 어렵지 않게 하남 라이트 필드로 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이 이미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몰랐던 사실은 감시 카메라의 설치가 생각보다 훨씬 쉽고 빠르다는 거다.
그렇기에 노형진 일행은 라이트 필드에 방문하는 모든 차량이 출입 기록과 주차 문제로 차량 번호를 찍는 점을 이용해 그 근처에 감시 카메라를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각도로 설치해 공흥구가 입장하는지 확인하게끔 했다.
“E3 입구로 들어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주변을 확인하세요. 다른 특이 사항은 없지요?”
“네, 없습니다.”
“지금부터 E3 입구는 폐쇄합니다.”
혹시나 주변에 민간인이 있어서는 안 되기에 철수 요원은 당장 해당 입구를 폐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공흥구의 차량을 계속 추적하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노 변호사님 말대로군요. 완전히 방심하고 있어요.”
“군대가 모조리 서울로 움직였으니까요.”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하남 라이트 필드의 주변에는 군부대가 없으니까.
하지만 조급했던 공흥구는 그걸 보고 북쪽에 있던 부대가 서울 시내로 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상당수 병력을 서울로 보내는 쇼를 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훈련받은 병력이라지만 일반 병사들을 라이트 필드에 넣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감추고 싶어도 그 특유의 짧은 머리를 공흥구가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
그래서 노형진은 다른 방식으로 그놈을 함정에 빠트리기로 했다.
“내리는 순간이 기회입니다.”
노형진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시겠지만 현장에서 사라진 물건의 크기는 생각보다 큽니다.”
가로 50센티, 세로 30센티 정도의 물건.
거기다 그건 독가스다. 당연히 액화되어 있을 테니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그걸 다른 좌석에 둬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처음부터 물건을 들고 내리는 장면을 멋있게 연출하지만 커다란 독가스 용기를 그렇게 쉽게 들고 내릴 수는 없다.
“당연하게도 독가스를 꺼내기 위해서는 운전석에서 내려서 다른 좌석의 문을 여는 과정이 필요하고요.”
바로 그 타이밍을 노리기 위해 노형진은 주차장 곳곳에 특수부대와 저격수 등 총을 쏠 수 있는 사람들을 배치해 놨다.
어차피 이런 주차장은 대부분 큰 공간이기에 사람만 충분하다면 장거리에서 저격하는 게 어렵지 않으니까.
더군다나 대부분의 차량이 선팅 하기도 하고, 의자를 최대로 젖히고 숨어 있으면 위치상 안쪽을 볼 각도가 확보되지 않기에 공흥구가 주차장 곳곳에 숨어 있는 저격수들을 찾기는 힘들다.
“공흥구가 차를 댑니다.”
그사이 공흥구가 한곳에 차를 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치에 대는데요?”
사실 노형진은 김소라와 이야기해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조정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공흥구가 오기 전에 미리 그가 차량을 댈 만한 좀 넓은 공간을 확보해 두면 된다.
한 세 대쯤 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차를 대는 게 낫다. 다른 곳에는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차를 대기가 거추장스러우니까.
더군다나 차량에서 커다란 짐을 꺼내기 위해서는 공간이 좀 있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서 공흥구가 오기 전까지 적당한 위치 몇 곳을 사람들이 지키고 있다가 공흥구가 확인되자마자 그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그래서 당연히 그런 넓은 곳에 댈 거라 예상했는데, 공흥구는 사람들을 피하려는 본능 때문인지 하필이면 구석의 좁은 자리로 가서 차를 댔다.
문제는 그 위치가 저격수들이 총을 쏘기 힘든 구석진 기둥 뒤라는 거다.
“이런 젠장. 가장 가까운 요원이 누구야?”
“어…… 오광훈 검사입니다.”
“뭐? 오 검사? 그 사람…… 총 쏠 줄 알아?”
철수 요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넘쳐 나는 게 전문 요원인데 하필이면 오광훈 검사라니.
“글쎄요.”
다들 침을 꼴깍 삼켰다.
최악의 경우 오발 사고라도 나면 가스가 터질 수도 있다.
“나름 잘 쏘기는 하지만…….”
하지만 노형진은 다른 걱정이 들었다.
“쏠까요?”
“응?”
“안 쏠 것 같은데요.”
그게 더 걱정이었다.
* * *
“아니, 개새끼. 왜 하필 내 자리야?”
구석에 차를 대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오광훈은 자신의 옆자리에 차를 대는 공흥구를 보고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넓은 자리를 두고 굳이 자신이 배치된 곳에 차를 대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애초에 검사인 그가 구석에 배치된 이유는 현직 요원들이나 군인들보다 전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제외하자니, 라이트 필드는 넓은데 인원은 부족해서 어렵고.
그래서 공흥구가 주차할 가능성이 가장 낮은 후미진 곳에 배치된 건데 하필이면 바로 그 옆이라니?
‘내려서 쏴야 하나?’
오광훈은 잠깐 고민했다.
확실히 그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공흥구 역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 영 꺼림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