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58)
돈 내놔! 필요 없어! (2)
보통 보험이 아무리 사고를 많이 내도 300만 원 내외인 점을 생각하면 1년에 내는 보험료 1,100만 원은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돈은 차량 한 대당 나가는 돈이다.
택시 회사 한 곳당 최소 80대에서 최대 200대까지 있으니 보험료만 해도 매년 수십억, 아니 수백억이 들어와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조사해 보니 계좌는 거의 텅텅 비다시피 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로는 운영 못 합니다.”
“말도 안 돼요. 이건…….”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안 상황에서 택시 회사의 대표들은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건…… 보험금을 안 주는 게 아니라 보험금을 못 주는 상황이잖아?”
재무 기록을 본 한우주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까지 돈을 안 주려고 하는 이유가 그저 돈을 아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무려 5억이나 되는 돈이니까.
그런데 조합원들이 모여서 상태를 확인해 보니 어떻게 해도 돈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매년 수백억이 들어가는데 그 돈이 다 어디 갔느냐고!”
조합원이라지만 사실 택시 회사들은 혹시나 불이익을 받을까 모른 척하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실제로 조합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는 택시 기사를 아무런 이유도 없이 퇴출시킨 사례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 택시를 호출하는 사업은 공제조합에서 운영했다.
하지만 그들은 돈 문제로 인해 인터넷 호출은 개발하지 않고 오로지 전화로만 배정했다.
그러다가 대기업에서 인터넷 호출 서비스를 개발하자 그걸 이용하는 택시 기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조합에서 쫓아낸 것이었다.
왜냐하면 원래 그런 호출 서비스는 회당 천 원씩 자기들이 가지고 가는데, 인터넷 호출 서비스는 무료였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온갖 갑질을 하기 때문에 각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건 아니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재무제표를 확인하니 이 상황에서는 아예 공제조합을 운영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적자 상태였다.
아무리 코델09바이러스 시기라지만 애초에 공제조합의 수익은 그와 별개로 각 조합원들이 내는 돈이다.
바이러스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배임의 끝은 횡령이라고 했던가?’
처음 노형진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한우주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랬다.
최소 수백억에 달하는 돈이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이거,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내부에서도…….”
“지랄하지 마! 내부감사를 어떻게 믿어? 지금 이 재무제표 안 보여? 내부감사 한 새끼도 받아 처먹은 게 빤히 보인데 무슨 내부감사야!”
“이건 외부감사를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이건 외부감사 말고는 답이 없어요!”
“이건 어디까지나 내부 문제입니다. 굳이 그렇게 일을 크게 키워야 하겠습니까?”
“내부 문제? 지금 그런 말이 나와?”
“이대로면 조만간 보험금 지급 자체가 불가능하잖아!”
사실 노형진이 이렇게 일을 키울 때만 해도 그가 미웠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설사 노형진이 아니라고 해도 근 시일 내에 공제조합은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중상태는 땀을 뻘뻘 흘렸다.
‘이게 아닌데?’
사실 공제조합의 이런 방만 경영은 한두 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조합이라는 특성상 제대로 된 감사도 힘들다 보니 들어오는 놈들이 너도나도 해 처먹었다.
중상태도 그걸 알기에 수억을 들여서 선거하고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을 뽑아내기 위해 장난쳐 왔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터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 회계 전표, 이건 도대체 뭡니까?”
“…….”
“우리 회사에 차도기라는 기사가 있었나?”
“없어, 그런 인간.”
해 처먹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차도기라는 사람이 전별금으로 8천만 원을 가지고 갔다는데, 전별금 8천만 원이면 못해도 20년은 근속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가 속해 있었다던 회사의 그 누구도 차도기라는 이름을 몰랐다.
한 회사에서 무려 20년이나 근무했다는 자를, 아무리 사람이 자주 바뀌는 택시 업계라지만 회사 사람들이 이름조차 모를 수는 없다.
“이건 또 뭐야? 2주 염좌에 배상금이 580만 원? 장난해?”
“아니, 그건 교통사고 이후에 일실 손해가…….”
“지랄하지 마. 관련 서류도 없잖아.”
“미친 새끼야! 넌 서류도 안 보냐? 고작 열다섯 살짜리가 무슨 일실 손해야!”
일반적으로 2주 염좌라면 잘해 봐야 300만 원에서 350만 원선. 그것도 노동을 하는 근로자 기준이다.
그런데 고작 15살짜리 학생의 배상금이 580만 원이라니.
단돈 200만 원을 주지 않기 위해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남발하는 공제조합의 행동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
“왜?”
“아니, 그러고 보니 사고 낸 운전사가 우리 회사 사람이네?”
“그런데?”
“저 사람, 그만둔 지 한참 됐어.”
그는 서류상의 이 사고가 나기 1년 전에 택시 운전을 그만둔 사람이었다.
당연히 그 사람은 택시 공제조합에서 탈퇴했다.
택시 운전기사가 아니니까.
“뭐? 운전기사 아니야?”
“고작 3개월 일하고 그만둔 놈이야. 그런데 대체 그놈 이름이 여기서 왜 나오는 건데?”
그 말을 들은 중상태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가짜 사고를 만들고 가짜 합의금을 지급하는 건 돈을 빼돌리는 흔한 수법이다.
택시 회사에서는 딱히 이게 진짜 사고인지 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게 뭐 하자는 짓거리야?”
한우주는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야, 저 새끼 끌어내!”
당연히 택시 회사의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중상태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가면 망할 거야.’
망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증거를 모조리 없애야 한다.
문제는 이미 조합원들이 몰려들어서 조합이 난장판이라는 거다.
“야, 끌어내!”
“대표님?”
애써 택시 회사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던 부하 직원이 기괴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치 그 말이 진짜냐는 듯.
“뭐 해! 저 새끼들 안 끌어내고!”
“뭐?”
“저 새끼들?”
택시 회사의 대표들은 기가 막혔다.
해 처먹은 것도 기가 막혀 죽겠는데 ‘저 새끼들’이란다.
“야, 이 새끼야. 뭐라고 했어! 새끼? 새끼?”
“시끄럽고, 끌어내!”
공제조합의 회의실은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고, 이내 회의실이 아니라 마치 격투기장처럼 사방에서 온갖 물건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악!”
“이 미친 새끼들이!”
“어떤 새끼가 용역 깡패를 불렀어!”
* * *
“공제조합이 완전히 박살 났더군요.”
고용근 변호사는 혀를 내둘렀다.
공제조합의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과 조합장 사이에서 패싸움이 일어나는 바람에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으니까.
더군다나 가장 큰 문제는, 조합장이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건지 용역 깡패를 부른 것이었다.
그 바람에 경찰이 출동해 관련자 전원을 현장에서 체포해 가 버렸다.
경찰 입장에서는 모조리 쌍방 폭행으로 넣어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래요? 소문이 파다한가 보네요?”
“그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금 모든 합의 업무가 완전히 멈춰 버렸거든요.”
고용근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공제조합은 내부에서부터 완전히 부서지는 분위기입니다. 남은 돈도 별로 없는 모양이구요.”
“그럴 겁니다. 그놈들, 제대로 된 감사도 안 두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비현금성자산, 그러니까 건물이나 땅 같은 건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남아 있다고 해도 현금이 없으면 노형진에게 돈을 줄 수가 없다.
“그걸 담보로 잡아서 돈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동의가 필요하고요.”
문제는 이미 모든 게 박살 난 상황에서 과연 조합원들이 동의해 주겠느냐는 거다.
당연히 해 줄 리가 없다.
지금 상황에서 동의해 주면, 그 건물마저 담보로 잡은 돈이 어디론가 사라져도 이상할 게 없으니까.
“그런 상황이니 공제조합은 꼼짝도 못 할 겁니다.”
“이제 공제조합은 끝났군요.”
“아니요. 아직 안 끝났습니다.”
하지만 노형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네?”
“지금 택시 회사들이 피해자 포지션이라고 해서 그들이 선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놈들은 공제조합이 이따위로 굴러간다는 걸 애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몰랐을 수가 없다. 수십 년간 이루어진 일이니까.
그리고 방만 경영 역시 몰랐을 수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서로 돌아가며 대표를 해서 알음알음 다 해 처먹느라 바빴으니까.
“물론 여기서 멈추면 저야 돈을 받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들은 다시 그 짓거리를 할 겁니다. 공제조합은 어떻게 보면 필요악이니까요.”
지금의 공제조합이야 끝났다고 해도 결국 회사들 입장에서는 조합을 만들 수밖에 없다.
일단 보험사들이 택시나 다른 영업용 차량들을 받아 주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조합이 사라진다면 그 조합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금액의 자본금이 문제가 된다.
현금이 없어서 묶여 있는 상황이지 부동산은 절대로 적지 않으니까.
“물론 이제 섣불리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 같은 걸 걸지는 못하겠지만요.”
그러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로 자기네 회원사에 대한 압류가 진행될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
“그 대신에 다른 보험사들과 똑같은 방법을 쓰겠지요.”
“무시 말이군요.”
“맞습니다. 사실 이건 보험사들의 문제도 되거든요.”
원래 보험사들은 무차별적으로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하면서 상대방을 압박해 왔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압박하는 것이 불가능하게끔 규정이 바뀌자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게 바로 무시다.
특히 교통사고 쪽에서 최근에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한 후 무조건 무시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특히나 소송하기 애매한 상황에서 이런 전략을 쓴다.
최저 수준으로 합의금을 제시한 후에 무시해도 그건 불법이 아니다. 법적으로 3년 안에만 주면 되는 돈이니까.
문제는 그 3년 안에 합의가 되지 않거나 소송을 걸지 않으면 회사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한다는 거다.
그렇다 보니 작은 교통사고의 피해자는 3년 이내에 돈을 못 받으면 포기하는 것 말고는 사실상 답이 없게 된다.
작은 금액의 사건의 경우는 변호사 비용보다 못한 돈을 받을 게 뻔하니까.
“맞습니다. 뭐, 그런 곳이 많은 건 아니지만요. 사실 그런 짓거리를 하는 놈들이 보통 질이 안 좋지요.”
대부분의 담당자들은 가능하면 빨리 합의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합의해서 지급하는 돈이 자기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부 규칙상 일정 기간 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사고과가 마이너스가 되는 걸 피하고자 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질이 좋지 않은 놈들은…….”
승진을 포기하고 막 사는 놈이라든가 아니면 인사고과를 돈을 주지 않는 걸로 따려고 하는 놈들은 아예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면서 연락도 하지 않고 ‘배 째라’를 시전한다.
그리고 보험금을 달라고 하면 ‘꼬우면 소송하세요.’라며 못 준다고 못을 박아 버린다.
당연히 그런 경우는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징계를 먹여야 정상이지만 도리어 돈을 아끼는 데 성공했다는 이유로 인사고과에 긍정적인 평가가 반영되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특히 2주 미만의 염좌에 그런 짓이 요즘 많이 늘었습니다.”
“그럴 겁니다. 그리고 대혼란이 지나고 나면 분명 공제조합은 그 방법을 쓸 겁니다.”
그나마 보험사는 대중을 대상으로 영업하다 보니 그런 짓을 대놓고 못 하고 질 안 좋은 놈들만 그런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