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59)
돈 내놔! 필요 없어! (3)
하지만 공제조합은 그런 것과 관련된 인사고과 제도가 없을 테니까.
“이번에는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을 건 게 문제가 된 거고요.”
돈을 줘야 하는 공제조합에서 돈을 주지 못하겠다고 선을 그어 버린 덕에 법원에서 어렵지 않게 택시 회사에 가압류를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공제조합이나 보험사에서 마냥 무시로 일관해 버린다면 현실적으로 법원이 가압류를 허락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왜냐하면 계약에 따라 공제조합이 배상의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민원을 넣자니 민원은 거의 효과가 없고요.”
“하긴, 제가 아는 분은 1년이 넘게 돈을 안 줘서 민원을 넣었더니 대놓고 기분 나쁘다고, 돈을 받고 싶으면 소송하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애초에 금감원은 피해자를 보호할 생각이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금감원을 그만두고 나가면 보험사나 은행, 증권사 등에 수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입사할 수 있는데 누가 피해자를 보호하려고 하겠는가?
게다가 이와 관련하여 금감원에 민원을 넣어 봐야 현실적으로 딱히 개선되는 경우는 없다.
회사에는 피해가 전무하고, 지급을 거절한 직원 역시 인사고과에 약간의 마이너스가 되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후우~.”
“간단합니다. 사실, 해결책은 이미 존재합니다.”
“존재한다고요?”
그 말에 고용근 변호사는 눈을 찡그렸다.
“가지급을 받아 내시면 됩니다.”
“가지급? 아! 그런 규정이 있었지요!”
“맞습니다. 100% 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될 겁니다.”
가지급이란 보험사가 피해자나 보험의 수령인이 가장 알지 못하기를 바라는 규정 중 하나다.
간단하게 말해서 청구인이 보험사에 그들이 주장하는 금액의 50%를 먼저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런데 의외로 다들 그 규정을 쓰지 않으시더군요.”
“아, 그렇기는 하죠. 어차피 나중에 받을 돈이라고 생각하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죠.”
“어째서요?”
“보험사나 공제조합이 돈을 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나가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게 되면 근무가 불가능해져서 결국은 생활비도, 치료비도 부족해진다.
문제가 되는 건 이 시점이다.
생활비도 병원비도 없는데, 보험사에서 ‘이거 받고 꺼지든가, 꼬우면 소송하셈.’이라고 나와 버리면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소송을 통해서는 4천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걸 1천만 원쯤 받고 그냥 내몰리는 거다. 당연히 부작용에 대한 치료비는 전혀 없는 것이고.
“하지만 가지급을 이용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물론 가지급이라고 100% 다 주는 건 아니다. 보험사에서 주장하는 금액의 50%가 일반적인 수준이다.
가령 그쪽에서 주장하는 돈이 천만 원이라면, 가지급을 신청하면 500만 원을 미리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리고 그 경우는 급한 대로 치료비와 생활비로 쓸 수 있고요.”
“하긴, 그러고 보니 우리도 한 번도 피해자들에게 가지급에 대해 설명해 준 적이 없군요.”
“변호사들은 소송에서 이겨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가지급에 대해 몰라야 자기들이 마음이 쫄려서 합의해 주니까요.”
500만 원을 가지급으로 받으면 나머지 병원비와 생활비는 일단 다른 대출 등을 통해 감당할 수 있고, 저쪽에서 주장하는 대로 소송에 들어가서 4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받는 금액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말 그대로 미리 돈을 일부 준 것이기 때문에 가지급을 받았으니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지급은 가지급이고 소송은 소송이니까.
어떻게 해서든 상대방을 압박하고 싶어 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가장 감추고 싶은 제도가 바로 가지급 제도이다.
“그러면 우리가 먼저 가지급 신청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면 되겠네요.”
“맞습니다.”
가지급을 신청해서 돈을 받아 일단 피해자들의 생활비와 치료비로 쓴다면 그때는 피해자들이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길 테니까.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소송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 하는 피해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상해가 크고 장애가 남거나 하는 경우에는 소송 가액이 그만큼 커지는데, 그렇게 되면 변호사비와 인지대 등만으로도 천만 원이 넘는 돈이 나온다.
당연히 보험사는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그 돈을 주지 않고, 그 때문에 돈이 없는 피해자들은 그들의 말에 속아서 합의하곤 한다.
대표적인 거짓말이 바로 ‘추후 추가로 청구된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추가 청구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디스크 진단으로 20%의 영구 장애가 인정되고 그에 대해 합의한 경우 그와 관련된 다른 증상들, 가령 골반의 비틀림 같은 건 모조리 그 합의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것과 상관없는 증상, 가령 목 디스크가 온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소송이 가능하지만, 그때는 현실적으로 이쪽이 왜 목 디스크가 왔는지를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돈을 받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가지급을 한다면…….’
버틸 여력이 된다는 것.
그건 보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
“당장 피해자들에게 가지급에 대해 이야기하고 청구해야겠네요.”
“물론 공제조합에서는 못 주겠지만요.”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가지급도 못하면 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는 거다.
* * *
“가……지급?”
“그렇습니다. 지금 피해자들이 가지급 청구를 하고 있는데 그 지급 금액이 못해도 8억은 될 겁니다.”
“미친! 장난해?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되느냐고! 8억?”
8억은커녕 8천만 원도 없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그걸 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현금을 융통해야 한다. 은행에서 대출받거나 가지고 있는 건물을 매각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이미 조합원들을 소새끼 개새끼 하면서 강제로 끌어낸 상황이라 조합원들은 자기를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사실 잘리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자르고 나서 감사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는 거다.
감사가 이루어지면, 그것도 외부감사를 하게 되면 중상태는 교도소행을 피할 수 없다.
그동안 공제조합에서 해 처먹은 놈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최악의 경우 그가 독박을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에 중상태의 목소리가 떨려 왔다.
“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법적으로 우리가 줘야 하는 돈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약관상 조건이 안 되면 거절할 수 있잖아.”
“그게 문제입니다. 대부분 조건이 됩니다.”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경우는 보험 사기 등의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은 데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지급해야 하는 50%라는 조건이 애매했다.
“일단 우리가 제시한 금액이 있으니까…….”
자신들이 약관에 따라 제시한 금액이 있고 그 돈의 50%를 지급하는 게 규정이다.
그 말은, 자신들 역시 보험 사기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보험 사기가 의심스럽다면서 지급을 거절한다?
그렇게 되면 공제조합은 확실하게 망한다.
그렇잖아도 돈이 없어서 지금 조합원들이 들고일어나기 직전이다.
그런데 돈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보상금도 못 주고 꼬투리를 잡히는 걸 두 눈으로 본다?
아마도 그때는 진짜 조합이 이 잡듯이 뒤져질 테고 수십 년간 쌓여 온 수많은 비리들이 드러날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중 일부는 중상태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은닉한 건 중상태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책임을 모두 중상태가 질 수밖에 없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중상태는 어떻게 해서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현실이 직접 그를 찾아왔으니까.
“대표님, 노 변호사님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을 찾아온 악마를, 중상태는 거절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승자가 점령지에 들어오는 걸 방관하듯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오는 노형진을 망연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어떻게, 정신 좀 차렸습니까?”
“…….”
“뭐, 대꾸 안 하신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습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던 노형진은 이어 상냥하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이제 와서 살려 달라고 해도 바뀌는 것도 없을 거고요.”
노형진의 말이 맞다. 바뀌는 건 없다.
아마도 공제조합은 피바람이 불 거다.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니까.
“원하는 게 뭡니까?”
“합의하시죠.”
“합의? 이제 와서?”
“뭐, 굳이 소송할 이유는 없죠. 간단하게 갑시다. 제가 들인 돈까지 해서 6억에 합의합시다.”
“거절한다면?”
“뭐, 새론이 택시 회사 측에 붙는 꼴을 보게 되겠지요.”
그 말에 중상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노형진과 새론.
변호사에게 지독한 놈들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지독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마 우리가 붙으면 형량 차이가 제법 커질 겁니다.”
그 말에 중상태는 고개를 푹 숙였다.
* * *
-오늘 ○○택시조합의 대표인 중 모 씨가 업무상횡령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중 모 씨는 수년간 택시조합의 대표로 근무하면서…….
노형진은 느긋하게 뉴스를 보고 있었다.
노형진이 합의하고 나서 손을 털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예상대로 중상태는 횡령 혐의로 교도소에 갔고, 공제조합은 외부에서 감사에 들어갔다.
“공제조합은 거의 빛 좋은 개살구더군요.”
고용근 변호사는 사건 기록을 가지고 오며 미소를 지었다.
“공제조합들이 걸던 채무 부존재 확인 소송이 사라지니까 재판부가 썰렁해졌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더군요.”
“판사들이 제게 밥 한 끼 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어째서요?”
“덕분에 근무환경이 엄청 개선되지 않았습니까?”
그간 보험사와 공제조합이 건 소송들이 법원에 엄청나게 부담을 주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사라진 것이다.
“글쎄요. 밥을 사 줄까요?”
“농담입니다. 밥을 사 주기는 개뿔, 제 목이나 안 날리고 싶어 하면 그게 이상한 거죠.”
노형진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기에 고용근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후후후.”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