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70)
그래서 누구야? (3)
전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교통사고는 엄청나다.
그중에서 단순 염좌 같은 건 빼고 계산한다고 해도 현재 보험사에서 거는 소송의 숫자를 생각하면 그 수익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그렇잖아도 관련 자료를 준비해 놨습니다.”
노형진은 미리 준비한 서류를 건넸다.
그걸 받아 든 유민택은 깜짝 놀랐다.
“한 해에 20만 건 이상이라고?”
“네. 환자와 보험사들 간에 보험료 문제로 발생하는 소송 중에서 환자가 한 달 이상 입원한 사건만 추린 겁니다.”
“흠.”
아무리 큰 병원이라고 해도 병상의 수가 4천 개를 넘기기는 힘들다. 초대형 대학 병원조차도 어렵다.
한 달 입원한다고 하면 4천 명.
그리고 1년이면 5만 명 가까이 된다.
그런데 교통사고의 경우 장기 입원은 한 달이 아니라 서너 달, 길게는 1년을 넘기기도 한다.
“더군다나 이런 병원은 입원비나 검사비를 아주 비싸게 책정할 수도 있지요.”
실제로 교통사고 전문 병원은 기존 병원들보다 훨씬 넓고 쾌적하다.
당연히 그만큼 비싸지만, 어차피 돈은 보험사가 내는 거니까.
“그리고 모든 검사비는 필요하다고 하면 보험사가 내니까요.”
“하지만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유민택은 솔직히 말했다.
“전국적으로 이런 병원을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야. 자네도 알지 않나, 병상 4천 개짜리 병원을 만들려면 얼마나 큰 돈이 드는지.”
“그래서 저는 대룡만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물론 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규모와 비용을 계산해 보던 유민택이 내키지 않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노형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돈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문제입니다.”
“시스템적인 문제?”
“대룡이 장애인 전문 병원을 만든 목적이 뭡니까? 전국의 검사 광역망을 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렇지.”
“이미 전국에 한방병원은 넘쳐 납니다. 지금도 상당수 한방병원이 생기고 있어요. 그런데 상당수의 한방병원이 교통사고 전문 병원이지요.”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
아직 그 말뜻을 눈치채지 못한 듯 유민택이 의아해하는 그때, 유영민이 탄성을 질렀다.
“우리가 한방병원을 흡수하면 병실 문제가 해결된다는 거네요?”
노형진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입원 시설로 한방병원을 이용하는 거지. 원격 회선으로 연결된 한방병원으로 보낸다면 우리가 따로 병원을 만들 이유도 없고. 어차피 대다수를 차지하는 정형외과적인 사고의 경우는 입원 이후에 약 챙겨 주는 거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그러니 대룡은 검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만 만들면 된다는 게 노형진의 생각이었다.
“검사 전문 병원이라?”
“지금 한방병원은 양방병원과 전쟁 중입니다. 사실상 서로 물어뜯고 있죠.”
양방과 한방 양쪽 다 하는 병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둘의 관계는 썩 좋지 않다.
왜냐하면 양방은 한방을 의학이 아니라 잡기 또는 미신이라고 몰아붙이고, 한방은 양방을 본질을 보지 못하는 머저리 취급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난번 엑스레이 사건으로 그 대립이 심해졌죠.”
“엑스레이 사건?”
“정부에서 한방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법을 만들려고 했죠.”
한방은 근육이나 신경에는 분명 효과가 있지만, 골절되거나 금이 간 데에는 효과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
검사한 다음 깁스한 채로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치유되기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방병원에서는 엑스레이와 같은 몸 상태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니 근육에 대한 대증 치료, 즉 증상만을 치료해 골절된 사실이 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엑스레이로 검사해서 한방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 경우 양방병원으로 보내는 방식으로 대처하려고 했는데, 일반 의사들이 그건 자신들의 영역이라며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증상을 확인하고 찾아오는 환자의 안전보다는 엑스레이라는 ‘자기네 영역’이 침범당하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것.
“그런데 지금 대룡은 그런 양방의 핵심적인 기업 중 하나죠.”
“그렇지.”
대룡병원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대룡은 거대한 의료 재단을 몇 개씩 집어삼켜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그래서 원래 서울에만 있던 대룡병원이 경기도를 비롯해서 전국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러면, 형 말대로 하면 한방도 우리 아래로 들어오겠네요?”
“정확하게 표현하면, 아래로 들어오기보다는 대룡과 손잡을 수밖에 없겠지.”
대룡에서 검사해서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양학적인 진료가 필수적이지 않은 단순 골절 등인 경우에는 깁스하고 나서 움직이지 않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한방병원으로 보내면 그만이다.
신경학적인 문제는 대룡병원에서 치료해야겠지만.
“아까 필요한 침대의 숫자가 4천 개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병실의 숫자는 의미 없죠.”
필수적인 사람만 받아서 관리하고 나머지는 관리하에 있는 한방병원으로 보낸다.
그 대신에 대룡은 자료를 받아서 관리하고 동시에 보험사와 싸운다.
“파괴력이 어마어마하겠군.”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된다면 대룡은 의학계에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집단이 된다.
이미 양방에서는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고 최정상에 있는 상황이니 이 계획대로라면 한방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게 소문나면 환자들은 너도나도 대룡병원을 찾아올 겁니다.”
왜냐하면 다른 병원보다 훨씬 넉넉한 입원 기간에, 훨씬 정밀한 검사에, 훨씬 중립적인 곳이니까.
“돈이 중요한 게 아니군.”
한국에서 의학의 영역은 권력의 영역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의사들이 소위 사회 지도층으로 인정받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다?
“해 볼 만한 건수입니다.”
“물론 보험사들이 지랄하겠지만 말이지.”
“문제는 그거죠. 우리가 뭘 하든 보험사는 지랄할 거라는 겁니다.”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보험사가 대부분이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피해자는 사고를 당한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보험금을 청구하는 거지 같은 인간일 뿐이다.
“검사 시설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지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이미 보유한 빌딩 일부를 개조해서 진단검사용 장비만 들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룡은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게 될 거다.
“그런 장비를 구입하는 라인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보통은 진단검사용 장비를 대여해서 사용하지만 대룡은 그럴 필요가 없다. 장비의 사용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도 구형 모델들이 있지요?”
“그건 그렇지. 그런 걸 교체할 때도 있고.”
미국은 의료 비용이 비싼 만큼 모든 장비를 최고로 맞추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 교체된 장비가 중고로 많이 나온다.
단순 교통사고라면 그런 걸 사다가 설치해서 검사해도 문제는 없다.
“재미있군.”
유민택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의 대룡에서 더 이상 성장하거나 영향력을 늘릴 기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노형진이 생각해 낸 계획은 한국의 의학계를 완전히 뒤집어 버릴 만한 일이었다.
“영민아.”
“네, 할아버지.”
“이번 일은 네가 한번 해 보거라.”
“네? 제가요? 저는 아무 직함도 없는데요?”
“이제 아르바이트는 그만하고 제대로 취업해야지.”
지금까지는 바닥에서 일을 배워야 한다며 유영민을 비정규직으로 굴렸던 유민택이다.
하지만 유영민은 대룡의 후계자다. 언제까지고 바닥만 구를 수는 없다.
“이번에 프로젝트 팀을 하나 만들어서 특채로 넣어 주마.”
이게 성공한다면 당연히 유영민이 그 공적을 얻게 된다.
누군가는 욕할지 모르지만, 완벽하게 공정한 게임이라는 것은 상상 속에서도 힘든 일이다.
게다가 다른 곳에서는 바닥부터 일을 배우기는커녕 입사하는 것과 동시에 본부장쯤 달고 아랫사람을 부려 가면서 일을 배울 테니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가 할 수 있을까요?”
“해야지. 그래야 대룡을 이어 갈 수 있지.”
유영민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디어 자신이 본격적으로 후계자로서 교육받는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려 왔다.
“노 변호사, 자네에게는 뭘 해 주면 되나?”
“일단은 간단하게 시작하죠.”
“어떤 거?”
“대룡병원에서 한국의학협회의 평가표를 기준으로 진단서를 발급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소문나면, 나중에 새로운 검사 시설을 오픈한다고 해도 환자를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간만에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유민택은 오랜만에 기대감에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