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77)
피 냄새를 풍기는 먹잇감 (2)
현실적으로 본다면 민사소송에서 고소인이든 피고소인이든 변호사는 필요하다.
그리고 이번 사건으로 누군가는 보험사에, 다른 누군가는 새론에 붙을 거다.
사실상 변호사들이 둘로 갈라져서 서로에게 총질하는 그런 구도가 나올 상황.
“어쩌겠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새론에 붙기로 한 변호사들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먹을 놈이 적을수록 자신들이 더 먹는 거야 당연한 일.
“그래서 사건 배당은 어떻게 할 건데?”
그렇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태양이요?”
“딱히 놀랍지 않은 모양이군.”
“손하균 씨 성격이야 제가 잘 알지 않습니까? 죽었으면 죽었지, 제게 숙이고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뭐, 그렇기는 하지.”
김성식도 노형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아는 손하균이라면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까.
“그리고 나쁜 판단을 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새론에 붙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새론은 이미 내부에서 일했던 직원들의 증언을 확보한 상황이니까.
심지어 아예 증거가 될 만한 내부 비밀 문건도 챙겼다.
법적으로는 일정 기간을 두고 직원을 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바로 잘린 일부를 제외하고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들은 내부 비밀 문건을 모두 가지고 왔기에 소송에서 유리한 건 새론이었다.
즉, 새론 측은 참가하는 변호사나 로펌의 숫자가 많아서 전체 수임료 자체는 줄어들겠지만 대신에 각 변호사들과 로펌은 승소 비용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양의 선택이 현실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었다.
태양은 현실적으로 승소 비용은 노리기 힘들지만 보험사들을 방어하는 소송과 그 후에 보험사로 몰려올 엄청난 숫자의 소송 대부분을 독식함으로써 막대한 수임료를 받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민사소송인 이상 보험사들도 제대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나중에 이 사태가 끝난 후에 자신과 개싸움한 변호사들이나 로펌과 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보험사는 쥐어짜이겠지만.
“그나저나 이번 소송의 핵심이 뭔지는 알지?”
“네, 압니다. 아마도 보험사는 자문 위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양심적으로 자문한 거라고 주장하겠지요.”
보험사는 내부 자문 팀에게 자신들이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거나 고의적으로 축소하라고 요구한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면 이 모든 책임을 자기들이 져야 하니까.
이 상황에서 보험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바로 그들이 외주자이거나, 또는 내부 직원으로서 양심적으로 자문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것 말고는 이들이 주장할 게 없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보험사는 후자를 주장할 수밖에 없다.
내부 직원이 아닌 외주자라는 이야기는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증거가 많다.
월급도 줬고, 실제로 내부 자문 팀이 보험사 내부에 존재했으며, 그들을 고용한 것은 딱히 비밀도 아닌 데다가 그들은 정식으로 월급을 받고 4대보험까지 내고 있었으니, 이제 와서 갑자기 내부 직원이 아니었다고 해 봐야 먹힐 리가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그들에게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뿐이다.
“태양이라……. 손하균이 직접 나서겠군.”
“그럴 겁니다. 지금 태양은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이건 살아남을 수 있는 기회다.
보험사들을 살려 주고 그들의 소송을 쓸어 온다면 매년 수백억의 수임료를 받아 챙길 수 있을 테니까.
“재미있네요.”
지금까지 노형진은 손하균과 싸워 본 적이 없다.
그가 뛰어난 변호사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로펌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일하기보다는 내부에서 주로 일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건의 무게의 특성상 그가 직업 참여할 수밖에 없을 테고, 노형진은 그와의 싸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뭐라고 할지 진짜 궁금합니다.”
한때 거인이라고 불렸던 변호사.
그가 과연 자신과 어떻게 싸울지 노형진은 참으로 궁금했다.
* * *
대한민국이 생기고 수많은 소송이 있었지만 이번 사건만큼 모두의 관심을 끄는 사건은 없었다.
“법률계뿐만 아니라 기자들까지 달라붙고 난리도 아니네.”
김성식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그럴 겁니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요. 이번에 패배한다면 보험사들의 상당수가 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겠지.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지.”
왜냐하면 이들이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은 보험은 다른 보험사들과 일종의 대리 보험을 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선박 사고 같은 건 워낙 금액이 크다 보니 다른 보험사들에 별도의 보험을 따로 들어 둔다.
유조선 전복 사고 같은 게 터지면 배상금이 1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통사고 또는 질병으로 인한 치료비는 각 보험사들에 있어 그리 큰돈이 아니었기에 그에 대비해 다른 보험사에 이중으로 보험을 들지 않았고, 소송으로 압박을 가해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지급하거나 하는 건 단순히 돈이 아까웠기 때문이지 그 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수십만 건의 소송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보험사가 돈을 넉넉하게 가지고 있다고 해도 파산을 면하지 못할 거다.
그걸 알기에 정치계, 재계 그리고 법률계까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계는 자신들에게 뇌물을 주던 주요 업체인 보험사들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재계는 금융업을 하는 경우 대부분 보험사도 운영하다 보니 그룹이 흔들릴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인 곳이 많아 다급해하고 있었으며, 법률계는 이번 소송으로 법 전반의 문화가 바뀔 걸 알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우리가 이길 거라 믿어 의심치 않네만.”
“설사 진다고 해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죠.”
보험금 소송에서 자문 위원들이 내부 직원으로서 일한 게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필수적인 요소인 것은 아니다.
그저 다음 재판에서 쉽게 이기기 위한 카드를 하나 더 확보하는 수준일 뿐이다.
“들어가시죠.”
그사이 도착한 차량에서 새론의 변호사들이 내렸고, 그들은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예상대로 법무 법인 태양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갑지 않은 놈이로군.”
“오랜만입니다, 손 변호사님.”
그 말에 손하균은 눈을 찡그렸다.
그도 손채림과 노형진의 관계를 안다. 그렇기에 노형진이 자신을 손 변호사라고 부르는 게 선을 긋겠다는 의사 표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나한테 밟힐 거, 선이라도 긋는 게 좋지.”
“손 변호사님, 못 뵌 사이에 많이 바뀌셨네요.”
“뭐?”
“전에는 정신 승리 같은 건 안 하시더니 이제 연세가 있어서 약해지셨나 봅니다.”
“뭐라고?”
“어린놈의 새끼가!”
손하균 옆에 있던 다른 변호사가 먼저 나서서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이제 말도 옆 사람이 대신 해 주셔야 하나 보네요? 제가 휠체어 하나 보내 드릴까요? 요즘 전동 휠체어가 끝내주게 나온다는데.”
“너, 너……!”
“그만. 지금 흥분하는 건 저놈한테 놀아나는 거야. 들어가지.”
“네, 대표님.”
결국 노형진을 노려보며 천천히 재판정으로 들어가는 그들.
“역시나 격장지계에는 안 넘어오네요.”
“손하균이 어디 그럴 인간인가? 애초에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는 소문이 있던데.”
‘뭐,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다. 가족마저도 그렇게 대하는 인간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우리는 우리 일만 하면 됩니다.”
“그래. 승리 말이지.”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첫 재판이다.
BB손해보험의 내부 자문 팀에 대한 소송은 전국의 관심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재판장님, 자문이라는 게 뭡니까? 전문가 집단에 어떤 사항에 대해 조언을 받는 행위입니다. 보험사에서는 내부에 전문가로 이루어진 내부 자문 팀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문받았다는 것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손하균은 노형진의 예상대로 방어하기 시작했다.
“이번 사건에서 고소인 측은 부당한 해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고소인 측이 저희 피고소인 측을 속여서 취업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의뢰인이 요구한 것은 자문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만, 피고소인 측은 자문할 자격이나 실력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쪽에 자문이 가능한 것처럼 속여서 접근하였고, 그 결과 피고소인은 고소인 측의 자문을 믿고 소송을 진행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저희는 고소인의 부정직성과 기만을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해직을 통보한 것입니다.”
자문 위원들이 양심이 없어서 처음부터 회사를 속이고 입사했고 그에 보험사도 속았다고 말하는 손하균을 보고 있자니 노형진은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기존에 생각한 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상입니다.”
모든 죄는 자문 위원들이 저지른 것이며 보험사는 그저 피해자일 뿐이라는 설명에 자문 위원들은 눈에서 피눈물을 흘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네 직장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자신들을 이용해 먹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버렸다.
단순히 버리는 걸 넘어서 아예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상황.
그간 충성을 바친 걸 생각하면 그들로서는 당연히 억울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연한 거지.’
그게 자본주의다.
특히 한국은 다른 나라들보다 천민자본주의가 훨씬 심하다. 돈만 되면 뭐든 해도 된다.
-돈은 법보다 우선된다.
이게 한국 기업들의 생각이고, 실제로 그걸 위해서라면 해서는 안 되는 짓도 한다.
그런데 그런 행동에 브레이크를 걸기도 어렵다 보니 저들이 이런 짓거리를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거다.
그러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노형진은 당연히 그저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재판장님, 피고소인 측은 마치 자문했던 원고가 처음부터 피고를 속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애초에 대기업의 취업 시스템을 그렇게 만만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간호사는 상당히 힘든 직업이다.
게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간호사가 엄청나게 많다.
얼마나 많냐면, 간호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50%가 간호사로 일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통계 자료가 있을 정도다.
일이 힘든 데다 태움이라는 갑질이 워낙 심해서 아예 근무 자체를 거부하는 거다.
그렇다 보니 나이 먹은 간호사가 퇴직 이후에 갈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보험사가 그런 간호사들이 가는 가장 좋은 직장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최소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재판장님, 피고 측은 마치 자신들이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고 측의 주장에는 논리적인 허점이 있습니다. 애초에 피고 측은 고용하는 갑으로서 을에 대한 선택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원고 측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피고 측을 속인 것은 사실입니다.”
“재판장님, 피고 측은 원고 측이 피고 측을 속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 속였는지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고 측은 분명 자문 자격이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사실을 듣고 그러한 자격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문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있지요. 그런데 그걸 속인 게 맞을까요?”
노형진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재판장님, 증거 나-1을 보시면 원고 측이 그 당시에 제출한 이력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이력서에는 동한종합병원 안과에서 20년 이상 근무했다고 분명 적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