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8)
그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디자인이나 패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걸 허물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소피아에게 먼저 질문하도록 침묵을 지킨 것이다.
“그거야…… 당연히 비둘기죠.”
“비둘기요?”
“네, 평화의 상징이니까요.”
“붉은색 덩굴장미와 비둘기라. 의외의 조합이네요. 넝쿨장미가 있는 곳은 비둘기들이 접근하지 않는데요?”
“그런 게 감각이겠죠. 호호호”
성민주는 진땀을 흘렸다. 실제로 덩굴장미가 있는 벽이나 집에는 비둘기가 거의 접근하지 않는다. 가시가 있는 데다가 거기에 엉키면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긴 남과 다른 것을 보는 것. 그게 디자이너니까요.”
“맞습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여러 종류의 디자인을 하셨던데, 원래 그렇게 많은 디자인을 생각하고 다니시나요?”
“네?”
“팬시부터 옷, 가전제품까지 성민주 씨의 고향인 한국의 속담을 빌리자면 말 그대로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따로 그런 것들을 공부하셨어요?”
“그건…… 어, 그냥 학교 다닐 때 문득 문득 생각나는 디자인들을 기록해 놨던 것뿐이에요.”
“그런가요?”
대충 둘러대는 것을 알아챈 소피아는 살짝 정곡을 찔렀다.
“전 개인적으로 성민주 씨가 한 수많은 디자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머그컵이거든요. 그 디자인은 어떻게 생각하신 거예요?”
“네?”
“머그컵요.”
“머그컵…….”
성민주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디자인이 기억날 리 없었다.
물론 전자제품 디자인은 엄청나게 많이 팔려 나가서 나름 보면서 공부했지만 비싼 것도, 많이 팔린 것도 아닌 머그컵의 디자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떤 머그컵요?”
“어머, 머그컵은 하나밖에 안 하셨잖아요?”
“그게…… 제가 개인적으로 한 게 너무 여러 가지라서요. 한꺼번에 넘겼는데 어떤 게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그는 애써 둘러댔지만 사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자식과도 같은 존재다. 설사 공개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수많은 고민을 하면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상품으로 나왔는데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역시 뭔가 이상해.’
그런 속성을 알고 있는 소피아는 노형진이라는 그 동양인 변호사의 말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호호호.”
진땀을 흘리면서 시선을 돌리는 그 모습. 그건 그녀가 수년가 봐 온 디자인 표절을 한 사람들이 보여 주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면 그 노트 디자인은 어떠신지요?”
“노트요?”
“참 뭐랄까, 형이상학적이라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있던데요.”
“네, 그 노트 말씀이시군요. 그 노트는 제 우주에 대한 관념이 들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형이상학적이고 추상적인 우주를 좀 더 따뜻하게 표현하고 싶었죠.”
“그래요?”
그 말을 들으면서 슬며시 미소를 띠는 소피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의 다른 이름인 로라 잔느의 이름으로 발표된 노트는 단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건 성민주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누가 봐도 가로등이 서 있는 비 오는 날의 거리를 묘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형이상학적이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이라고 떡밥을 던진 것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면 그걸 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기억하지 못한 성민주는 아니나 다를까, 미끼를 덥석 물었다.
‘역시 가짜였어.’
소피아는 가볍게 전율했다. 어쩌면 희대의 사건을 특종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온몸에 기대감이 가득해졌다.
“그러면…….”
다음 질문을 하려는 찰나였다.
“일단 본격적으로 떡밥을 던질 시간이군요. 일단은 단시간 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디자인을 했는지 물어봐요.”
그 말에 소피아는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많은 걸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일단 자신이 물어볼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좀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은 소송이 걸린 만큼 우선권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성민주 씨의 가명인 로라 잔느로 활동한 게 대략 8개월 정도 되었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그 8개월 사이에 내놓은 디자인만 40여 종이시던데 단기간 내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디자인을 만들어 내실 수 있는 거죠?”
8개월에 디자인이 40여 종이면 한 달에 다섯 개 이상 만들어 내는 셈이다. 사실 간략한 디자인이라면 몰라도 회사의 운명이 달려 있는 고가의 물품이나 의상 디자인들은 그렇게 빨리 나온다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그 디자인 품목이 팬시부터 옷, 가전제품까지 완벽하게 다르다면 말이다.
“그게…….”
성민주는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아, 할아버지 때문에 이게 뭐야.’
사실 조금만 디자인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파격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그 정도 속력으로 나온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 게 가능한 것은 오로지 단 하나 기존 디자인을 표절하거나 살짝 바꾸는 수준에서 내놓는 것뿐이다.
“그건…… 그냥 영감의 문제라서요. 어쩔 때는 잘 나오고 어쩔 때는 잘 안 나와서.”
그녀는 애써 둘러댔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황당한 숫자였던 것이다.
“그런가요?”
“네.”
노형진은 그 말을 무전기 너머로 들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단 말이지?’
하긴 아는 게 없으니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럴 수 없는 질문을 던져야겠네.’
노형진은 무전기를 잡고는 소피아의 입을 빌려서 바로 핵심을 찌르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디자인들, 특히 유러피안 스타일 홈 컬렉션 같은 경우는 바로 가전제품에 적용되었잖아요.”
“그렇지요.”
“디자인을 넘긴 지 얼마 만에 신제품이 나온 거죠?”
“그러니까 아마 두 달쯤일 겁니다.”
“와우, 엄청나게 빠른 속력이네요.”
“네, 호호호, 제 디자인을 그만큼 알아준다는 뜻이지요.”
“그러면 좋지요. 그런데 궁금한 게요, 어떻게 디자인을 넣었는데 한 달 만에 신제품이 나오죠?”
“그거야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디자인을 잘해서 줬으니까요.”
성민주는 당연히 자신이 잘해서 그런 것이라면서 목소리를 한껏 높였다. 하지만 소피아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디자인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나? 이 녀석, 디자인의 개념을 가지고 있긴 한 거야? 어떻게 이런 애가 여기까지 유학 온 거지?’
그렇게 생각할 만큼 그녀의 대답은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디자인을 실물에 적용하고 그걸 디자인해서 케이스를 만들기 위한 공정을 잡고 물건을 재설계하기 위해서는 못해도 1년은 걸릴 텐데요?”
“네?”
“디자이너야 영감으로 어떻게든 빨리할 수 없다지만 공장은 그런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혹시 그것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그…….”
성민주는 말할 수 없었다. 할 능력이 되지 않았으니까.
사실 디자인을 적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에어컨만 봐도 그렇다.
일단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뽑아서 주면 기술자는 그 디자인이 과연 시스템을 적용하는 게 가능한지 판단하고 수정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어 디자인이 확정되면 그 디자인에 맞게 내부의 설계를 변경하고 그에 맞는 공장의 시스템을 고려해 그 외부 디자인을 제작할 공장을 선정하거나 자체적으로 제작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래서 아무리 빨라도 디자인은 1년 전에 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성화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빠른 속력으로 디자인을 만들어 낸 거죠?”
“그게…….”
성민주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 뭐야. 그런 거였어?’
물론 그들이 그 디자인을 손에 넣은 것은 1년 반 전이다. 그러니 공장을 바꾸기 위한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보니 성민주에게 최종 디자인을 늦게 건네준 것이다.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아, 몰라요!”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를 지르는 성민주.
“그딴 거 내가 알 게 뭐야!”
“어머, 아셔야지요. 그래도 대성화전자의 사장님의 외손녀시잖아요.”
“…….”
그 말에 성민주는 얼굴이 딱딱해졌다. 설마 그걸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건 결국 각자의 개성이라는 게 있기 마련인데 솔직히 민주 씨의 디자인은 개성이 없어요. 마치 제각각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마치 각각의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요.”
훅 치고 들어가는 소피아의 돌직구성 질문. 그 말을 들은 성민주는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뭐야? 지금 나같이 유명한 디자이너를 무시하는 거야?”
그 말에 소피아는 피식 웃었다.
‘역시나 가짜네.’
노형진의 돌직구성 공격이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자신을 의심하는 것이냐면서 화내야 정상이다. 하지만 성민주는 의심이라는 단어가 아닌 무시하느냐는 단어를 썼다. 본능적으로 의심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안 봐도 뻔하네.’
소피아의 오랜 경험상 이런 타입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디자인을 표절하거나 빼앗아 오는 경우 발생했다.
“무시라니요. 그럴 리가요. 성화전자의 사장님의 외손녀이신데 제가 그러겠어요?”
“근데 그런 질문을 하는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니요? 디자이너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지요. 솔직히 그런 속도를 상품에 적용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다른 기업들 역시 그 기술을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성민주는 아차 싶었다. 더군다나 상대방은 이 디자인계에서는 유명한 패션 잡지의 기자다.
“갑자기 몸이 안 좋군요. 인터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더 이상 날카로운 질문에 대답할 자신이 없었던 그녀는 우물쭈물 말을 바꾸면서 일어났다.
“네? 하지만 세 시간 정도 가능하다고 하셨잖아요?”
“갑자기 몸이 안 좋네요. 전 이만.”
가방을 들고 후다닥 나가 버리는 성민주. 소피아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차에 기다리고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
“어떤가요?”
“미스터 노의 말이 맞네요. 이건 100% 표절…… 아니, 이 경우에는 강탈이라고 해야겠네요. 강탈 맞습니다. 패션계 근무자로서 분노할 수밖에 없군요.”
한국 패션계가 재능을 인정하지 않고 갑질이 심해서 디자이너들이 힘들어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대기업인 성화에서 혈족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남의 디자인을 빼앗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바로 알리실 겁니까?”
“그러기는 힘들겠어요. 그녀의 눈치를 봐서는 분명히 그녀가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증거가 없으니까요.”
사실 그녀의 이름으로 발표가 된 이상 그녀가 모를 수가 없다.
“어찌 되었건 프랑스까지 온 보람이 있네요.”
그녀라는 존재가 드러난 이상 자신들이 공격할 방향은 명확해졌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가 한국으로 갈 차례군요.”
소피아는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