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80)
피 냄새를 풍기는 먹잇감 (5)
‘내가 그걸 모르겠어? 후후후.’
일례로 어떤 의사는 이례적인 증상을 보이는 목 디스크 환자에게 그의 목 엑스레이와 CT 사진을 당시 저술하고 있던 의학 서적에 넣는 것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병원비 전액을 대신 부담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만큼 환자의 질병이나 환부에 대한 정보는 쉽게 제공할 게 아니다.
심지어 의사조차도 쉽게 공유할 수 없어서 환자의 동의를 얻어 가면서 쓴다.
물론 그게 오직 의학의 발전을 위해 내부에서 교육용으로만 사용된다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가령 병원 내에서 의사들이 환자에 대한 정보를 보고 치료를 목적으로 토론하거나 교육 목적으로 의대생들에게 완전히 익명으로 영상을 제공하거나 하는 거 말이다.
그건 사용의 특례에 어느 정도 적용된다.
하지만 그게 아닌 경우 그 특례는 적용되지 않는다.
디스크를 수술한 의사가 환자에게 병원비를 제공한 이유가 뭔가?
그렇게 함으로써 정당한 사용료를 지불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건 당사자 사건인지 확인하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면 의료법 위반입니다.”
“그…….”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카운터가 들어오자 손하균은 할 말을 잊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노형진은 씩 웃었다.
‘걸렸구나.’
애초에 이게 의뢰인에게 배정되었던 사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이걸 가지고 온 사람도 의뢰인이 아니었으며, 그 회사에 있는 사람은 이건 공통 메일로 발송된 가이드라인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즉, 공통 메일로 발송된 시점에서 이건 특정 사건에 대한 의견의 제시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 사실은 일단 감출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큰 사건을 노릴 예정이니까.
“재판장님, 이는 심각한 의료법 위반 행위로 보입니다. 만일 피고 측이 이 사진을 발송한 사람과 수령한 사람, 그리고 이 사진의 주인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해당 사건은 의료법 위반 행위로 저희가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세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으니까.”
판사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실제로 이번 소송과 이 사진의 주인 여부는 상관없다.
‘하지만 크게 보면 상관있지.’
이 사건에서 당사자는 보험사라는 법인과 내부자문위원회라는 개인이다.
하지만 노형진의 목적은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일이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면 해당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 서류를 발송한 직원이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개인이 자기 담당 사건에 대해 의견을 제시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
최소한 부장급 이상의 사람이 이런 걸 진행할 테니 법인이 아닌 개인이 범죄의 대상으로 특정된다.
그렇다면 보험사에서는 과연 그 부장급을 위해 어떤 포지션을 취할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개뿐이다.
정상적으로 사용 허가를 받았든가, 회사 교육용으로 사용되었든가.
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아닐 게 뻔한 일.
궁극적으로 보험사에 타격을 준다는 목적성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게 된다.
“미친.”
자신이 놀아나서 도리어 폭탄을 터트렸다는 사실에 손하균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하지만 불행히도 폭탄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 * *
“국민의 관심이라는 것은 무섭죠.”
“무섭다 뿐이겠는가? 아주 난리가 났어. 지금 보험사들은 증거를 없애느라고 정신이 없고.”
“이미 늦었지만요.”
노형진은 유민택을 보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사실 세 번째 폭탄은 유민택, 아니 대룡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내부에서 이런 걸 명령한 자들에 대한 조사?
물론 보험사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겠지만 새론이나 노형진에게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다.
도리어 핵심적인 문제는 그들이 제시한 ‘2주 염좌’라는 조건이었다.
의사들이 2주 염좌가 아닌 추간판 탈출증, 즉 디스크라고 주장하는데도 보험사가 내부 자문위를 이용해 피보험자를 속여서 보험료를 주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그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태양도 보험사도, 교육에 사용된 자료가 동의를 얻은 것이라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았으니까.
만일 동의를 얻었다면 해당 자료를 제공하는 데 문제가 있을 리 없겠지만, 동의는 받지 않았을 테니 사실상 보험사에서 자문 위원을 교육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 된다.
이 경우 동의서가 존재하지 않으니 제시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그걸 실행한 직원이 누구든 간에 형사고소도, 형사처벌도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진짜 목적은 이쪽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더군요.”
“지금쯤이면 알지 않겠나?”
노형진이 노린 진짜 목적. 그건 다름 아닌 대룡병원의 홍보였다.
디스크를 2주 염좌로 처리해서 돈도 안 줬다.
그 사실이 자연스럽게 소문나면서 그간 쌓여 있던 보험사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상황에서 대룡은 한국의학협회의 감정표를 기준으로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단하겠다고 발표했고, 동시에 부족한 병실을 채우기 위해 다수의 한방병원과 제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소문이 돌자마자 교통사고가 난 사람들은 너도나도 대룡병원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한방병원에서도 제휴를 통해 손님을 받기 위해 연락해 왔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미칠 것 같은 기분일 겁니다.”
그간 90년 전 기준으로 쉽게 꿀 빨고 있었는데 이제는 안 먹히는 데다, 그거 말고도 다른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잖아도 다급하게 전국에 전문 검사 센터를 세우고 있네. 그리고 변호사들에게서 연락도 많이 온다고 하더군.”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준으로 검사해 주는 대룡 병원에 자문을 요청하는 게 유리하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양쪽에 동시에 자문을 받은 뒤 더 유리한 조건을 선택해서 소송하는 게 불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법원이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쓰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국의학협회의 평가표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한국 법원이 의학협회의 평가표를 무시할 경우 의학협회가 들고일어날 게 뻔하니 그럴 수가 없다.
“보험사들은 편하게 돈 벌려고 의사들한테 소송을 건 일로 이 지경까지 온 걸 알면 기가 막히겠지.”
“그러니까 선을 넘지 말았어야지요.”
노형진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아직 정작 그건 안 끝났습니다.”
“어떤 거?”
“가짜 진단표를 써 준 의사들 말입니다.”
“그렇군.”
보험사들은 지금 거의 박살 나는 상황이다.
이로써 그들이 의사에게 소송한 행위에 대한 복수와, 추가로 벌어질 소송 차단에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의사로서의 양심을 저버린 일부 의사들을 놔둘 수는 없지요.”
몇 푼의 자문료를 더 받기 위해 그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평가를 적용해 줬다.
그에게는 50만 원 정도일 뿐인 자문료.
하지만 그로 인해 피해자는 수천에서 수억의 손실을 보고 평생을 장애로 고통받아야 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영혼까지 털어 봐야지요, 후후후.”
* * *
같은 시각, 손하균은 이를 갈았다.
“망할 놈 같으니라고.”
패배였다.
그것도 꼼짝도 못 한 채 두들겨 맞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비참한 패배.
부당 해고가 인정되어서 복직 처리된 것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의 판단이 보험사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업무의 영역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판례는 뒤집는 게 거의 불가능하니, 이제는 손해배상 소송이 벌어질 경우 내부 자문 위원이 아닌 회사가 배상을 책임져야 했다.
“대표님, 다른 소송들은 어떻게 할까요?”
“계속해야지.”
“하지만…….”
한번 판례가 만들어진 상황이고 대부분의 사건은 자료도, 증거도 비슷하다.
그 말은 다른 사건에서도 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소리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지금 상황에서 태양은 몰락하는 해다. 욱일(旭日)이 아닌 낙일(落日).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줄 만한 곳은 현재로서는 보험사들뿐이다.
자존심 상하고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 해도 그 소송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소송은 계속 진행해.”
“알겠습니다.”
“노형진, 이 복수는 꼭 하마.”
손하균은 판결문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말이야.”
노형진에 대한 복수심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