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190)
또 다른 미다스 (1) (3)
그런 놈은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도리어 놓쳐 버릴 가능성만 커진다.
“아무래도 오광훈에게 가야 할 것 같네요.”
“오광훈 검사? 그라고 뭔가 알까?”
“그는 몰라도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좀 알 것 같아서요.”
노형진은 씩 웃으며 말했다.
* * *
“누구? 미다스?”
“응.”
“나야 모르지.”
“너, 공안 검사 된 거 아냐?”
“공안 검사가 된 건 사실이지. 귀찮지만.”
오광훈은 귀찮다는 듯 머리를 북북 긁었다.
공안 검사는 대놓고 공안 검사라고 발령받지 않는다. 그저 위에서 그에게 공안 사건을 맡길 뿐이다.
그리고 오광훈은 얼마 전 본의 아니게 공안 검사가 되었다.
국정원이 갈가리 찢어지고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국정원과 관련된 공안 검사들이나 공안 판사들에 대해서도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멀쩡한 놈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놈들은 입을 닥치는 조건으로 조용히 빠져나가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완전히 뭉개진 시스템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국정원은 오광훈을 비롯한 일부 투명한 검사들을 다급하게 공안 검사로 결정했다.
“국정원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어?”
“뭐가 있겠냐? 지금 국정원이 걸레짝 된 건 네가 가장 잘 알잖아.”
“하긴. 아직도 정리 못 했지?”
“정리가 되겠냐? 너 때문에 내부 감시 시스템이 거의 박살 난 상황이더라.”
청와대에서는 이번 기회에 아예 국정원을 싹 다 물갈이할 생각이었다.
수십 년간 특정 정당에 충성하는 걸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부분 때문에 참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것도 아득하게 넘어 버릴 정도로 초대형 사고를 쳤고, 조사 결과 주요 해외 라인은 사실상 말살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 국정원은 그런 자세한 정보는 얻기 힘들지 싶다.”
“그렇단 말이지?”
‘하긴, 진짜 누군가가 미다스를 사칭하고 다닌다면 더더욱 그렇겠지.’
미다스를 사칭하는 놈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놈이 정보가 새어 나갈 곳을 만들어 둘 리가 없다.
‘이거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그를 사칭하는 놈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개판이 되었다곤 하나 국정원의 감시를 피하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왜, 누가 자칭 미다스라고 주장하고 다닌대?”
“그런 소문이 있어.”
“그런데 그런 데 신경 쓸 이유가 있어?”
“안 쓸 수도 없지. 만일 미다스라는 이름으로 사기를 친다고 해 봐.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오광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그러면 그 피해액이 진짜 어마어마하겠네.”
“그래. 그래서 상대방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정보가 없어.”
“다른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보는 게 어때?”
“그런 방법도 생각해 봤는데 그 정보를 줄 만한 사람이 없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송 의원님도 모르더라고. 그러니까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피한다는 소리거든.”
그리고 그건 자신의 정보를 흘릴 만한 사람을 피하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중요한 정보일수록 사람은 그걸 감추려고 하지. 그리고 자기가 미다스를 안다는 정보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하긴, 그렇겠네.”
그에게서 아주 작은 정보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버는 건 일도 아닐 테고, 그와 잘 붙어먹을 수만 있다면 한국의 경제를 지배하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 사실을 외부에 흘리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말이다.
“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보험사에서 살려고 발악하다가 우연히 정보를 물었다고 한 거거든.”
“보험사라고?”
“그래, 보험사 말이야. 너도 요즘 보험사들 상황이 아주 안 좋은 거 알고 있지?”
“알고 있지.”
“그래서 보험사에서 미다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접촉하려고 하는 모양이야. 너도 알겠지만 기업이라는 게 합법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최후의 방법으로 불법적인 방향으로 손을 내밀기 마련이거든.”
지금 보험사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자신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뿌려 가면서 살려 달라고 읍소하는 상황이다.
미다스가 한국에 있다는 정보를 접한 것도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일 것이 뻔했다.
“아직 보험사들이 미다스에게 접촉하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흠.”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뭔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다스가 진짜라고 하면 위험한 거 아니야?”
오광훈은 노형진이 미다스라는 걸 모르기에 당연히 한 말이었다.
“진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진짜가 아니니까 내가 나서서 조사하는 거지.”
“하긴, 넌 미다스의 대리인이니까, 직접 물어보면 되겠구나.”
“그래. 그런데 한국 정치인이나 보험사들과 접촉한다는 계획은커녕 그럴 생각도 없대.”
“그렇게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누굴까?”
“그러니까. 생각보다 꼭꼭 숨었네.”
“일단 철수 요원한테 말해서 확인해 달라고 할게. 그런데 뭐가 나올지 모르겠네.”
“일단 너도 조사 좀 해 봐.”
노형진은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 * *
“이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고?”
처음에 시작할 때만 해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냥 자신의 이름을 빌려서 사기를 치는 놈이 있다면 혼쭐을 내 줄 생각으로 접근한 일이었다.
그런데 파고들수록 점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흔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게 가능한가?”
정치권?
이해는 한다. 이권이 걸리면 어느 때보다 진중해지고 무거워지는 게 정치권이니까.
검찰과 국정원?
둘 다 지금 정신이 없는 상황이니까 이해한다.
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CIA가 아무것도 잡아내지 못했다.
이건 생각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CIA는 노형진과 일종의 공생 관계다.
그들은 노형진을 보호하고 그가 미다스라는 정보를 은닉해 주는 대신에 그에게서 나오는 투자 정보를 이용해 활동 자금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CIA가 진짜 믿을 만한 동맹이라는 뜻은 아니다.
애초에 정보 조직은 믿을 만한 조직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런 걸 가지고 거짓말했다가는 노형진이 묵인하는 투자 정보 유출이 당장 끊어질 거라는 것 정도는 알 테고, 그러면 당장 CIA에서 하는 비밀 작전들과 시스템이 멈출 상황이라는 걸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기에 최소한 사기꾼을 위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미다스의 등장이 확실한 소문인가요?”
오죽하면 노형진조차도 김성식에게 확인하듯 물어볼 정도였다.
“글쎄, 확실한 정보임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을 어떻게 잡을지에 따라 다르겠지. 가령 누군가가 ‘내가 미다스다.’라며 사칭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겠지만 ‘누군가가 미다스를 만났다.’라는 소문은 확실히 존재한다네.”
“애매하군요.”
단순하기에 무시해도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만일 사칭이라면 더더욱 자신을 감추려고 하겠지.”
“그런데 보험사 측은 어떻습니까?”
“가짜 미다스에게 어떻게 해서든 접촉하려 하지만 계속 불발되는 모양이야.”
“불발요?”
“그래. 솔직히 보험사가 미다스를 만나서 뭐라고 하겠는가?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지. 자네 말대로라면 굳이 만날 이유도 없고.”
“하긴, 그건 그렇지요.”
누군가가 사칭하는 게 사실이라면 보험사를 도와줄 방법은 없다.
진짜 미다스라면 직접 돈을 빌려주거나 마이스터를 통해 투자하도록 해서 상황을 어느 정도 해결할 방법이 있겠지만, 진짜 미다스가 아니라면 거절해 봐야 적만 생기는 거니 애초부터 만날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마이스터가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의 사옥을 인수했다면서?”
“정확하게는 인수를 위한 거래 중입니다. 그쪽에서는 앞으로 20년간 사용을 보장해 달라는 입장이라서요.”
물론 노형진은 그걸 보장해 줄 생각이 없다.
그가 거절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 조건을 받아들여서 인수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보험사들의 사옥은 한국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는데, 그런 곳에 있는 건물을 시기에 맞춰서 월세를 올리기는커녕 정해진 가격에 20년간 쓰겠다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건물의 가격만 해도 20년 전과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니 당연히 임대료도 20년 전과 수십 배 차이가 난다.
그런데 보험사는 20년간 자기들이 정한 임대료만 내면서 사용하는 걸 용납하는 조건으로 사옥을 내놨으니 누구도 쉽게 매물에 접근할 리가 없다.
“하지만 미다스가 산다면 그런 조건이 가능할지도 모르죠.”
정작 노형진은 그런 조건을 받아 줄 생각이 없지만.
“그런 걸로 협상하려 들 수도 있으니까 자기들의 신분을 감추고 싶은 놈들 입장에서는 절대로 접촉하지 않겠군.”
절대 불가능하니까.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많습니다.”
“뭐가?”
“이 정도로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게 가능하느냐는 거죠.”
다른 곳도 아닌 CIA다.
물론 그들이 모든 사람들을 감청하거나 감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다스에 관한 건은 계속해서 작전을 짜서 조작하고 은닉하고 또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중이다.
즉, 계속해서 진행되는 작전이라는 거고, 그 작전과 관련된 자료를 계속 모으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CIA 말로는 전문가의 냄새가 난다고 하더군요.”
“전문가의 냄새?”
“네. 누군가 정보를 컨트롤하고 있는 느낌이라는 거죠.”
영원한 비밀이라는 건 없다. 왜냐하면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도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다스를 사칭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큰 사기를 치기 위한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기를 치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을 만나고 접촉해야 하죠. 사기라는 범죄의 특징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렇지.”
다른 범죄와 다르게 특정 대상을 정하고 들어가지 않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이다.
물론 한 사람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경우라면 특정하고 들어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불특정 다수가 표적이 된다.
대표적인 예가 폰지 사기 같은 거다.
그런 건 기본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속여서 돈을 뜯어내는 거다.
실제로 범인이 수조 원대의 사기를 치고 중국으로 도피한 사건이 있는데, 피해자가 수천을 넘어 만 단위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방식의 접근은 정보의 통제에 한계가 명확하거든요.”
“하긴. 그러면 어디서든 정보가 새어 나갔어야 하는데 말이지.”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사기를 치는 목적이 뭔가? 돈이다.
더군다나 미다스를 사칭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을 생각하면 그보다 많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하게도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편이 유리하다. 그래야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으니까.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군…….”
김성식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도 검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사건을 봐 왔고 그중에는 사기 사건도 있었다.
처음부터 중앙수사본부의 부장이었던 건 아니니까.
그리고 사기의 목적성은 결국 돈이다.
“생각할수록 말이 안 되는데?”
노형진의 말을 들으면서 김성식은 이번 일이 다른 사건과 다르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수사하기도 애매하죠.”
“그것도 그렇지.”
가장 큰 문제는 누군가 사칭한다는 소문과 별개로 그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소문이 전혀 없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