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13)
가좆 같은 관계 (2)
“그런데 어떻게 사망 사실을 알고 찾아간 겁니까?”
“언니 핸드폰으로 사망 사실을 일괄 발송을…….”
“화정자 씨의 핸드폰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마지막 통화가 2년 전이고요. 당연히 거기에 있던 모든 전화번호는 김도수 씨가 넘겨받아서 따로 관리했습니다.”
그 말에 화란연은 말을 못 했다. 그 모습을 본 노형진은 확신했다.
‘누군가를 감추고 싶은 거다.’
예상은 했다.
사실 이 경우는 거의 뻔하다. 김도수가 사망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전해 받고 그 사실을 전달해 준 거다.
아무리 언니와 싸웠다고 해도, 그래서 손절을 했다고 해도, 그래도 가족 중에 한 명 정도는 그나마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가 누군지 감추고 싶어 한다는 건 그가 생각보다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누가 화정자 씨의 죽음을 알려 줬나요?”
“…….”
“말 안 해 주실 겁니까?”
“…….”
“흠, 뭐 상관없지요.”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가 찾으면 그만이니까요.”
분명 김도수가 연락한 사람 중 한 명일 테고, 그렇다면 그들에게 물어보면 되는 거다.
“이상입니다.”
노형진은 더 이상 물어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화란연을 바라보는 판사의 눈빛에는 이미 의혹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 * *
“와, 그렇게 돌아가네?”
실제로 분위기는 바뀌었다.
기존에는 화란연의 주장을 듣고 별말을 하지 않던 판사가 갑자기 화란연에게 해당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나 증인이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원래 화란연과 황마주의 생각대로라면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런 주장의 신빙성이 어느 정도 먹힐 것이고, 설사 이쪽에서 나중에 동의를 얻었다고 해도 그걸 증명할 서류가 없다면 자신들이 유리해질 터였다.
하지만 판사가 갑자기 증거서류를 확인하겠다고 말한 것은 화란연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는 거다.
돈 욕심? 있을 수 있다.
애초에 그게 없다면 재판을 할 리도 없으니 재판장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거짓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입양이라는 과정에서 중요한 건, 입양했다는 기록보다는 당사자 간의 합의지.”
실제로 한국은 입양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걸 몰랐으면 하는 정서가 강하기에 기록상 입양보다는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지금이야 그나마 입양에 대해 좀 더 관대해졌다지만 1980년대에는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강해서, 그러한 식으로 뒤늦은 출생신고가 흔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니 저쪽에서 물어야 하는 건 늦은 출생신고가 아니라 당사자 동의가 없는 출생신고여야 한다는 거지.”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거의 납치에 가까운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겠네, 그걸 주장하는 유일한 사람이 증인석에서 그렇게 거짓말을 했으니.”
재판장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원고의 주장이 과연 진실인가? 자신의 욕심을 이유로 거짓말하는 건 아닌가?’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는 주장에 대한 입증책임이 생긴 거지.”
실제로 재판부는 출생신고가 늦게 되었다는 걸 근거로 입양 절차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의심만 하는 것과 눈앞에서 거짓말하는 걸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래도 여전히 입양 절차가 완성되지 않은 건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지.”
이 방법으로 시간을 좀 더 벌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게 그거야. 과연 다른 가족들은 어떨 것인가?”
“다른 가족들은 잘 모를걸.”
물론 김도수의 양부모님이 김도수를 자식으로 대해 줬으니 당연히 그들도 자식으로 인식하고 있겠지만, 그들의 인식이 재판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이 경우 중요한 건 인식이 아니라 법률적 형태의 완성이니까.
“최소한 그건 가능하지. 내가 핑계를 만들었으니 김도수는 당당하게 친척들에게 상황을 이야기하고 사실을 전달한 사람을 찾을 수 있어.”
“어, 그러면?”
“그래, 화란연은 더더욱 고립되겠지.”
그나마 친척이라고 안면을 트고 조금이라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설마 화란연이 이런 후안무치한 행동을 할 줄 몰랐을 거다.
당연하게도 그런 경우라면 다들 화란연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테니 판사는 점점 화란연이 거짓말한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보면 이런 사건은 입양이 완성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
이미 관련자들은 모두 사망했고 그걸 알 만한 사람들도 모두 죽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판사가 판단할 때 가장 비중이 높아지는 건 바로 진실성이지.”
그리고 화란연의 진실성은 이미 박살 나고 있는 상황.
“그러니까 친척들을 만나면서 살살 구슬려서 화란연이 어떤 사람인지 증언을 들어.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고.”
화란연의 과거 행동과 성격을 미루어 보면 친척들이 화란연에 대해 좋은 소리는 하지 않을 거다.
“이러면 일단은 유리한 포지션을 지킬 수는 있을 거야.”
“포지션?”
“아무리 이길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그것만 믿고 있으면 안 되지. 이길 가능성이 아니라 이길 방법을 찾아야지.”
“하지만 그걸 증명할 방법이나 증인이 없잖아.”
“그게 문제란 말이지.”
자신들이 아는 정보는 단 하나뿐이다.
원래 아이의 엄마는 화정자가 일하던 식당에 애를 버리고 도망갔다는 것.
“그리고 그건 진짜일 거야.”
화란연이 그것까지 거짓말할 이유는 없다. 그래야 돈을 챙길 수 있으니까.
“기록에도 없죠?”
“네, 40년 전이니까요.”
고문학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하긴, 아무리 그가 실력이 좋다고 해도 40년 전 기록을 찾아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역시 결국 정황증거만 가지고 싸우게 되는 건가?”
“그렇기는 한데…….”
현 상황에서 정황증거만으로 싸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노형진은 좀 더 확실한 승리를 추구하고 싶었다.
“왜 애를 버렸을까?”
“응?”
노형진은 한참 고민하다가 문득 물었다. 서세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 소리야, 오빠? 애를 버리는 사람한테 이유가 있어?”
“있지.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냥 애가 싫어서 버렸을 거라고 보는 건 무리지.”
“맞습니다. 80년대라고 하면 아마도 생활고가 문제였을 겁니다.”
가난한 시절, 먹고살기 힘든 시기.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제법 많았다.
“흠, 어쩌면 김도수 씨의 친부나 친모는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역시 그렇지요?”
“네? 고 팀장님, 정상적인 부부가 아니라니요?”
“그 시절에는 다 가난했으니까요.”
모두가 가난했기에 어려워도 힘들어도 부부라면 함께 이겨 내는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원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라고 하면 난리를 피우지만, 그때는 원룸은커녕 화장실도 공용으로 쓰는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뭐, 다 그런 건 아니긴 했죠. 상황이 안 좋으면 고아원…… 아, 요즘은 보육원이라고 하죠? 하여간 그런 곳에 두고 가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그러니까요.”
“그런데 왜 김도수 씨를 거기에 버린 걸까요?”
“그건 뭐 한국의 전통적 문화와 좀 관련이 있거든요.”
진짜 자기가 못 먹고 못살면, 그래서 아이의 생존마저도 확보할 수 없다면 한국, 아니 조선 시대에는 아이를 부잣집 앞에 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부잣집에서 그 아이를 자식으로 받아 주지는 않았다. 한국의 혈통주의는 강한 편이니까.
“그런 애들을 업둥이라고 불렀습니다.”
“업둥이요? 처음 들어 봐요.”
“요즘은 거의 안 쓰는 단어니까. 어느 날 집 앞에 웬 아기가 있다고 요즘 사람들이 덜컥 데려다가 키우겠냐? 그냥 보육원행이지.”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업둥이가 들어오면 자식으로는 못 받아들여 줘도 어느 정도 키워 주는 게 일종의 사회적인 룰 같은 거였다.
그리고 그렇게 업둥이로 큰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 그곳에서 일해 주면서 빚을 갚아 가는 거고 말이다.
“80년대는 아직 그런 업둥이 문화가 좀 남아 있을 시기니까요.”
자식으로 받아들여 주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키워 줄 수 있다는 문화.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데…….”
“뭐, 이제 와서 이해할 필요는 없지. 현실적으로 이제 다시 과거의 문화가 돌아올 일은 없으니까. 중요한 건 그거야. 애를 버린 여자의 경우 애를 키우지 못할 상황이었을 거라는 거지. 부부라면 어떻게 해서든 키우거나, 정 안되면 고아원에 맡겼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야 나중에 자신들의 상황이 좀 나아졌을 때 자식을 되찾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전히 보육원에는 상황이 좋지 않은 집안의 아이들을 맡기는 빈도가 제법 높다.
“그런데 부잣집에 맡기면, 어떻게 보면 아이를 찾기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거든.”
이사를 간다거나 식당이 망해 버리면 자식을 찾을 가능성이 영영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아침 프로그램에는 그렇게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즉, 그 당시 생각보다 절망적인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어떤 식으로?”
“미혼모이지 않았을까?”
“미혼모?”
“그래. 지금도 미혼모는 좀 터부시되잖아? 그런데 80년대는 어땠겠어?”
80년대의 미혼모는 좀 독하게 말하면 거의 창녀 취급받으며 무시당했다.
그런데 또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여자들을 놔둔 것도 아니다.
온갖 감언이설을 다 속삭이면서 어떻게 해서든 한번 즐기기 위해 여자들을 속였다.
그 당시에는 혼인빙자간음죄라는 게 있었는데, 그만큼 어떻게든 여자를 건드려 보려고 하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비라는 인간이 질이 안 좋은 놈이었나 보네요.”
“어떻게 아세요?”
고문학은 서세영의 말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뭐, 지금하고 똑같은 거 아닙니까? 제 자식 버리고 도망가는 새끼가 멀쩡할 놈일 리가 없죠.”
“아, 하긴 그러네요.”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자식이 생기면 과거가 어찌 되었건 어떻게 해서든 잘 키우려고 하는데, 어떤 놈은 그냥 나는 모른다고 버리고 도망가니까.
그리고 그런 놈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건 남녀나 시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 됨됨이의 문제다.
“그러면 이해가 되는군요. 보통 식당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지방 출신들이 많았지요.”
그리고 그런 아가씨들을 살살 꼬셔서 건드리는 놈들은 어딜 가나 넘쳐 났다.
“오, 그러면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죠!”
노형진은 고문학의 말에 좋은 생각이라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정작 고문학은 뭔 소리인가 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네?”
“아니, 지방에서 올라온 아가씨가 서울에서 남자에게 속아서 아이를 가졌다면 아빠라는 인간은 주변 인물이지 않았을까요?”
“아하!”
당연히 주변에서 누군가 그녀를 속여서 임신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나는 모른다며 내팽개친 거고 말이다.
“아무래도 식당 주변에서 마주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만일 집이 서울이라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부모가 몰랐을 리가 없다. 그 시대에는 가족들이 대부분 같이 살았으니까.
“고문학 팀장님의 예상대로 혼자서 상경한 아가씨라면?”
“음…… 확실히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그 시절에는 아가씨를 건드렸다가 책임을 안 진다? 진짜로 감방에 가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