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18)
모르면 장땡일까, 과연? (3)
가져다 버린 아이를 그리워하면서 평생을 혼자 산다?
애석하게도 그런 건 이제 드라마에서도 안 나오는 망상일 뿐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사실상 날벼락을 맞은 격이라고.”
과거를 잊고 새로운 사람과 결혼해서 마침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와서 ‘당신의 아이에 관해서 물어볼 게 있습니다.’라고 묻는 것은, 하영미 입장에서는 자신의 치부가 40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셈이다.
실제로도 부모를 찾은 많은 고아들이 다시 한번 내쳐진다.
현실이라는 건 때때로 그토록 잔인하다.
“아니, 나는 그걸 감안해서 혼자 있을 때 접근했단 말이야.”
“그건 잘했네.”
“그런데 모른다잖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지.”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하긴. 위협해야지.”
“뭐? 아니, 이제 70이 다 되어 가는 노인분을?”
노형진의 말에 서세영은 깜짝 놀랐다.
노형진은 성격상 그런 사람을 건드리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그래, 불쌍해 보이지. 하지만 때때로는 독한 약을 써야 하거든.”
소독약은 따갑고 아프다. 하지만 다친 사람이 불쌍하다고 약을 쓰지 않으면 결국 상처만 천천히 썩어 갈 뿐이다.
“김도수를 버린 사람이야. 자기 인생이 중요하니 입을 다문다고? 그러면 모두에게 버림받은 김도수 씨의 인생은? 확실하게 알아 둬. 우리한테 의뢰한 건 김도수 씨야, 하영미 씨가 아니라.”
더군다나 하영미 씨의 인생을 박살 내 달라는 의뢰도 아니다. 그저 하영미가 입양과 관련해서 과거의 이야기만 해 주면 되는 거다.
그런데 자기가 불편하다고 자식의 인생이 망가지는 걸 모른 체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보호할 이유도 없지.”
더군다나 이쪽에서 이걸 터트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덮어 주겠다는데 말이다.
“평온을 원한다면 그만큼 행동을 해야 해. 아무것도 안 하면서 평온하기만을 바라면 안 되지.”
노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할게. 두고 보고 있어.”
* * *
노형진은 바로 하영미를 찾아갔다.
이제는 노인이 되어 버린 사람.
그녀는 노형진이 찾아가자마자 길길이 날뛰었다.
“네 이놈! 나는 모른다니까! 나는 아무것도 몰라!”
서세영은 길길이 날뛰는 하영미를 보다가 노형진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아무리 설득하려고 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던 노인이다. 그런 노인을 과연 노형진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지만 노형진은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어머니한테 복수할 거니까.”
“뭐?”
노형진의 말에 하영미의 눈이 커졌다.
복수라니? 이게 뭔 소리란 말인가?
그런 그녀를 노형진은 더더욱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설마하니 자식을 그렇게 버려 놓고 맘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김도수 씨가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아십니까?”
“뭐…… 뭐라고?”
“자식의 인생을 망쳤으면 그 책임을 지셔야지요. 똑같이 낳은 자식인데 왜 누군가는 맘 편하게 이쁨받으면서 살고 다른 누군가는 노예처럼 굴러가면서 밑바닥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그건 아니죠.”
노형진의 말에 서세영의 눈이 커졌다.
설마 진짜로 협박할 줄은 몰랐다.
“업보라는 건 돌아오는 겁니다. 그리고 부모의 업보를 자식이 지기도 하죠.”
노형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자녀분들이 이 사실을 알면 개판 나겠네요. 일단 재산부터 내놓으셔야 할 겁니다. 양육비도 받아 내야지요. 아, 그리고 남는 재산에 대해서도 분할 청구할 예정입니다. 이걸 과연 자녀분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네요. 애초에 손해배상까지 감안하면 남는 재산이 있을지도 모르겠고.”
노형진은 마치 진짜로 그럴 것처럼 이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러자 하영미는 부들부들 떨었다.
“내 자식들은…… 내 자식들은 안 돼!”
“허? 김도수 씨는 자식이 아닌가요? 똑같은 자식인데 왜 한쪽만 이렇게 차별을 하실까? 그렇게 차별하고, 아니 그렇게 버리고 도망갔는데 설마 복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이 할머니 참 순진하시네.”
이죽거리던 노형진은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김도수는 복수의 의사가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지만 그 사실을 하영미는 모른다.
그리고 노형진은 이 정도 거짓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사람도 아니다.
“기대해 보세요, 우리가 당신네 집안을 어떻게 박살 낼지. 아, 그러고 보니 남편분이 아직 살아 계시죠? 그분이 과거의 출산 사실을 아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변호사가 아니라 악마가 떠드는 것 같은 그 모습에서 서세영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혈압이 오르지 않길 바랍니다. 저 같으면 혈압 올라서 뒈질 것 같거든요.”
“안 돼……. 안 됩니다.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 주세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던 하영미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지난번에는 서세영이 혼자 와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사였기에 화를 내면서 쫓아 보냈다.
그런데 설마 그게 최후통첩이었을 줄이야.
“좋게 끝내려고 했는데 그런 자녀분의 뒤통수를 치신 게 할머님이시잖아요? 우리 의뢰인은 인생을 조졌는데 왜 당신하고 당신 새끼들만 잘 살아요? 우리 의뢰인도 당신 새끼인데?”
“그건…… 실수였어요, 실수.”
“뭐, 사람 죽인 새끼도 실수라고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고 처벌을 안 받는 건 아니잖아요?”
노형진이 몰아붙이기 시작하자 하영미는 다급하게 변명했다.
“아니에요. 진짜로 실수예요. 거기서는 잘 키워 준다고 했어요, 진짜로. 흑흑.”
“웃기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당신이 가게에 버리고 간 걸 우리가 모를 것 같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당신 말을 믿어야 되죠?”
노형진은 더더욱 몰아붙였다.
어찌나 매몰차게 몰아붙이는지 이제는 서세영이 불편한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잘 키워 준다 했단 말이지?’
지금 자신들이 아는 정보대로라면 하영미는 김도수를 가게에 버리고 도망갔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김도수의 양부모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잘 키워 준다고 했다?
그 말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실제로 만나서 입양 과정을 밟았다는 소리다.
“잘 키워 준다고 했단 말입니다, 진짜로.”
“아니, 버리고 갔으면서 말은 진짜 뻔뻔하게 하네요.”
“아니에요. 진짜로 잘 키우겠다고 했어요. 애가 학교에 가야 하니까, 친자식으로 올린다고.”
그 말에 노형진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찾았다.’
초등학교 때 자식으로 올렸다. 그건 화란연이 주장하는 거고 실제로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일에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상황을 보니 하영미는 그걸 알고 있었다.
‘하긴, 연락처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비록 핸드폰이 있던 시대는 아니지만 주소 정도는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물론 편지로 물어보지는 않았을 거다. 왜냐하면 가족들이 보면 곤란하니까.
하지만 편지로 다른 핑계를 대고 만나자고 할 수는 있고, 가족들이 그걸 하영미에게 말해 줬을 가능성이 크다.
“증거 있어요?”
“증거…….”
“증거도 없이 그냥 잘 키워 줄 거라는 말만 듣고 버리는 걸 보통 유기라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재산이 문제가 아니겠네. 지금이라도 유기로 처벌해야 하나?”
필요한 증언을 받아 내기 위해 노형진은 일부러 비정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사실 공소시효는 이미 지났지만 어차피 하영미는 그 사실을 모를 테니까.
그 말을 들은 하영미는 예상대로 최대한 기억을 쥐어짰다.
“진짜로 잘 키워 준다고 했어요. 자기 자식으로 대한다고 했다고요.”
“그거야 할머니 혼자 말하는 거고. 그걸 보통 뇌 내 망상, 요즘은 뇌피셜이라고 하죠.”
“아니에요. 변호사랑 만나서 이야기도 했다고요.”
“변호사?”
이건 또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변호사랑 이야기했다고요?”
“네, 진짜예요. 제발, 우리 애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 제가 잘못한 겁니다. 우리 애들에게만은 제발……. 우리 남편도 알면 진짜로 죽어요, 흑흑.”
코너에 몰리자 하영미는 과거에 있던 일들을 다급하게 털어놓았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노형진은 생각에 빠졌다.
‘변호사를 만났다는 건 계약서를 썼다는 건가? 아니야. 계약서를 쓸 만한 일은 아닌데.’
김도수의 부모는 아이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입양 신고가 아니라 출생신고를 했다. 그럼 변호사를 만나서 계약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공증인가?’
공증. 법적인 증거를 남기는 하나의 행위다.
공증을 할 수 있는 변호사는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공증을 받고 서류로 그 기록을 남긴다.
그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게 법적으로 강력한 증거가 되거나 법적인 판결문이 된다.
예를 들어 300만 원을 빌렸다고 공증하면 실제로 300만 원을 빌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그걸 갚아야 하고, 그걸 갚지 않는 경우 공증은 그 자체로도 판결문의 효력을 가지기에 갚지 않은 사람에게 압류를 걸 수 있다.
‘하긴, 나중에 가서 애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니.’
하지만 공증한 경우는 입양한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식으로 키울 수 있다.
법적인 보호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입양 기록도 남지 않는 거다.
왜냐하면 공증은 공시나 등록의 대상이 아니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요?”
“진짜예요. 진짜로 알아요.”
반응을 보면 아무래도 진짜로 공증을 한 모양이었다.
‘이거 곤란한데?’
문제는, 공증이라는 게 영원히 보관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보통 재산과 관련된 것은 10년, 기업과 관련된 것은 20년이다. 최장 보관 기간은 25년이고 말이다.
특히나 이번 경우처럼 그 밖의 경우는 서류의 의무 보관 기간이 고작 3년밖에 안 된다.
당연히 40년이나 지난 시점에 공증 서류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골 때리네, 이거.’
* * *
“오빠, 어떻게 생각해?”
“일단 가장 큰 문제는 공증 서류는 없을 거라는 거야.”
물론 법적 보관 기간이 있다지만 딱 그 순간부터 무조건 폐기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걸 구분하고 폐기하는 것도 일이니까.
공증한 서류는 아무 곳에나 둘 수 없다. 당연히 그걸 보관하기 위한 창고를 법적으로 별도로 두도록 되어 있다.
시간이 다 되었다고 바로 폐기하는 건 아니지만, 창고에 자리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공증 서류를 분류해서 폐기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공증 서류가 남아 있을 리가 없지.”
보관 기간 3년으로 가장 보관 기간이 짧은 서류다.
1~2년이 지난 것도 아니고 무려 40년이나 지난 공증 서류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아, 미치겠네.”
“그러니까.”
“그 할머니는 서류 같은 건 없다는데.”
공증을 한 서류는 변호사만 보관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가 하나, 당사자들이 각각 하나씩 총 세 개를 보관하게 된다.
하지만 하영미는 서류를 받자마자 폐기했다고 한다. 쳐다보기도 싫었다고 하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할머니가 증언은 해 준다는 건데.”
물론 조건은 있었다.
일단 김도수와는 마주치기 싫다는 것.
하긴, 자기가 버린 자식과 마주친다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쉬운 게 아니란 말이지.”
마주치지 않고 증언하는 건 쉽다.
김도수도 자신을 버린 하영미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으니까 그날만 재판정에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