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19)
모르면 장땡일까, 과연? (4)
혹시 불안하면 그날 서세영이나 직원이 그에게 붙어 있으면 되고.
“하지만 화란연 측의 황마주라는 변호사는 분명히 유전자 검사를 요구할 거야.”
그리고 그걸 통해 모자 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할 거다.
물론 현재 상황을 봐서는 친모일 가능성이 크니 그건 문제 될 게 없다.
“그래도 증거가 없으니 아마 우리가 돈 좀 쥐여 주고 위증해 달라고 부탁한 거라고 주장하겠지.”
“뭐, 그런데 솔직히 상관없지 않아?”
일이 이쯤 되면 현실적으로 화란연이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이미 화란연이 거짓말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의심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모까지 나타나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가 화란연의 주장을 받아들여 줄 리가 없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다른 게 문제야.”
“다른 거?”
“김도수 씨의 심리.”
“김도수 씨의 심리라니?”
“김도수 씨는 이제 자신이 혼자라고 심각하게 생각할 거야. 돌아가신 부모님은 알고 보니 양부모고, 친척이라는 년은 재산을 빼앗으려고 소송하고, 생부 생모라는 놈은 자기한테 관심도 없거나 아예 버리고 갔지. 그 충격이 얼마나 크겠어?”
“그건 그렇지.”
“그 상황에서 김도수 씨를 입양했다는 기록은, 양부모님이 진심으로 김도수 씨를 사랑했다는 하나의 상징적인 증거거든. 그러면 아무래도 김도수 씨가 받는 정신적 충격이 좀 덜하겠지.”
그 말을 들은 서세영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른 노형진의 그런 모습은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 하던 부분이었으니까.
“표정이 왜 그래?”
“그냥…… 다른 변호사들은 이쯤에서 멈추지 싶어서.”
“이기니까. 그리고 그걸로 끝나니까.”
사실 재판에서 이기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 후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의뢰인이 자살하든 폐인이 되든, 변호사들 입장에서는 관련 없는 제3자의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새론은 아니야.”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게 새론의 모토다.
“모두에게 공정한 서비스. 그게 단순히 법적으로만 적용되는 게 아니거든.”
의뢰인이 재벌가라면 과연 변호사들이 재벌가의 심기를 신경을 안 쓸까?
그럴 리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재벌가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할 거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야. 물론 일반적으로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 경우는 특수하니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 김도수도 안정을 찾을 거다. 그에게는 아내가 있고 자식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
즉, 부모님이 나를 사랑했다는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공증 서류는 없을 거라면서?”
“부모님은 보관했을 것 같은데 말이지.”
아이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공증까지 했던 부모님이다.
입양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도 아이가 자신이 입양아라는 걸 몰랐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 행동이었다면, 아이를 나중에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 서류를 보관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미 재산은 정리된 상황이잖아.”
“재산이야 정리되었지. 하지만 거기에는 없었잖아.”
노형진은 그 말에 고민했다.
확실히 김도수가 어머니 사후에 그녀의 집을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나온 건 없었다.
‘왜 없을까?’
나이 먹은 후 폐기?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일에 대비해 공증까지 하면서 기록을 보관한 것을 생각하면 말이 안 된다. 꼼꼼하다는 거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노형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김도수 씨가 모르는 곳에 감췄을 수도 있지.”
“모르는 데에다가 감췄다고?”
“그래.”
“어째서?”
“화정자 씨는 김도수 씨가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감추고 싶어 했잖아.”
그래서 굳이 늦게라도 호적에 올리고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집에다가 서류를 뒀다가 혹시라도 그걸 김도수 씨가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그걸 따로 둔다고?”
“생각보다 그런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많아.”
특히 자식에 대해 애틋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40년 전이잖아.”
지금이야 입양이라는 게 사회적으로 좋은 행동, 사회적 선행으로 인식되지만 40년 전에는 어땠을까?
“40년 전에 입양아라고 하면 무척이나 처우가 안 좋았어.”
상황이 안 좋아서 부모가 버렸다?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 씨앗인지도 모르는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아, 그렇겠네. 맞아. 그 당시 기록을 보면 그런 거 있더라.”
혈통이 중요하던 시기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입양이라는 건 집안에 남의 씨앗을 들이는 더러운 행동으로 인식해서 집안이 뒤집어지는 일이었다.
만일 집안에 대를 이을 남자가 없다?
그래도 멀쩡하게 부모가 있는 친척의 애를 빼앗아 가면 갔지,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건 용납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게 다 혈통을 지키기 위해 벌어진 일이지.”
그런 상황에서 김도수의 부모님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 사실을 감추려고 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에 입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할 정도는 아닐 테니까.”
“그러면 어디다 둔 거지?”
“글쎄. 어디다 뒀을까?”
노형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아차 싶었다.
지금 자신들은 과거의 혈연과 혈통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시선이 좀 잘못된 것 같네.”
“응? 오빠, 그게 무슨 소리야?”
“화정자 씨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잖아. 만일 그런 서류를 감춘다면 가장 좋은 곳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이지.”
왜냐하면 자주 왕래는 하지만 동시에 그곳을 김도수가 이리저리 뒤져 보거나 할 일은 없으니까.
“어? 그러고 보니 이번 사건에 친가 쪽은 한 번도 이야기가 안 나왔나?”
“나올 이유가 없었지.”
친가는 애초에 상속권도 없다.
그리고 친가라고 해도 이제 아버지 세대는 다 돌아가시고 사촌 정도만 남아 있다.
“더군다나 그 사촌들이 상황을 알 만한 입장도 아니고.”
출생 시기가 미묘하게 비슷해서, 그들은 김도수의 입양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 시점에 그 시기를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아는 건 전혀 없을 거다.
“하지만 외가에는 아무것도 없단 말이지.”
화정자는 죽었고 이미 서류와 물건은 다 정리했다. 그런데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친가뿐.
“더군다나 한국은 전통적으로 외가보다는 친가와 더 친밀하니까.”
“그건 사실이지.”
“그리고 그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분들도 입양에 전적으로 동의하신 모양이고.”
김도수도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은 전혀 차별 같은 걸 겪은 적도 없었다고.
“그렇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미 돌아가셨잖아.”
“그렇기는 하지.”
이미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하지만 그 재산을 누군가 정리하지 않았을까?”
노형진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그 재산을 정리하면서 챙겼을지도 모르지.”
* * *
할머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재산을 정리한 것은 김도수의 큰아버지였다.
애석하게도 김도수의 아버지는 할머니보다 좀 더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걸 정리할 사람은 오로지 김도수의 큰아버지뿐이었다.
그리고 그때쯤 김도수의 어머니는 치매가 오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말이다.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김도수의 사촌 형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이런 건 창피해서라도 이야기하기 힘든 부분이죠.”
더군다나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전처럼 다른 친인척들에게 연락하는 게 편할까?
그럴 리가 없다.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킬 테니까. 실제로 김도수도 그러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저희가 서류를 정리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쓰게 웃는 사촌 형. 그는 뭔가를 꺼내서 노형진에게 건넸다.
“공증 서류입니다.”
“찾으셨군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으셨다고요?”
“네. 서류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읽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조부와 조모가 돌아가신 후에 서류는 자연스럽게 큰아버지에게 넘어갔고, 큰아버지는 이미 입양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동생 부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서류를 조부와 조모의 집에 감춰 두고 있었는지도.
그랬기에 그걸 넘겨받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관해 두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그걸 제가 넘겨받았지요.”
“그런데 왜 안 돌려주신 겁니까?”
“저도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그걸 감춘 이유가 이해되더군요. 사실은 저도 입양해서 키우는 애가 한 명 있습니다.”
“네?”
“저희 셋째가 입양된 애입니다.”
그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 가족들의 마음도 이해가 가더군요.”
혹시나 입양아라고 해서 차별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동시에 입양아라는 이유로 보호받지 못하는 거 아닐까 하는 두려움.
실제로 법적으로 입양된 사람에게도 재산의 권한이 있다고 못 박힌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척이라는 인간들은 재산을 내놓으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매년 소송을 걸고 있고, 이제는 그게 딱히 언론에 나갈 정도로 뉴스가 되지도 않는 시대다.
무조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돈을 뜯어내겠다고 그렇게 소송을 거는 상황에서,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보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비참한 현실.
“그래서 제가 모른 척하고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하아~.”
만일 처음부터 김도수가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별문제 없이 이 소송은 정리되었을 거다.
하지만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를 고립시켰고 그 결과 이번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도수가 충격을 많이 받았나요?”
“네, 솔직히 많이 받았습니다.”
“나중에 만나서 술이라도 한잔해야겠군요.”
사촌 형의 말에 노형진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판결은 간단했다.
이미 화란연과 황마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판사가 의심하는 상황이었고, 김도수의 생모가 입양에 동의했다고 증언한 데다가 그에 대한 공증 서류까지 있으니까.
당연히 원고 패소 결정이 내려졌고, 그 날벼락에 재판이 끝나자마자 화란연과 황마주는 멱살을 잡고 싸우기 시작했다.
“이길 수 있다며!”
“저런 게 있다는 소리 안 했잖아!”
“이길 수 있다며! 내 돈! 내 돈! 40억 내놔!”
“뭔 개소리야! 후불로 주기로 한 수임료 내놔! 수임료 2천만 원 당장 토해 내!”
서로 멱살을 잡으면서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노형진은 김도수를 바라보았다.
그 둘이 싸우든 말든, 혹은 나중에 서로 소송전을 하든 말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공증이라니…….”
공증 서류를 바라보면서 김도수는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께서는 김도수 씨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지키고 싶어 하셨고요.”
그리고 그걸 조부와 조모도 알고 있었기에 온 가족이 그를 보호하려고 했다.
“김도수 씨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입양아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주변에는 예나 지금이나 가족이 있습니다.”
그 말에 김도수는 눈시울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