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2)
“으악!”
흔들리는 배. 그 안에서 남자는 일어나려다가 다시 날아온 발길질에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 새끼야! 똑바로 안 해?”
“으으으.”
“이 씹 새끼, 제대로 일도 안 하고.”
남자의 온몸은 멍으로 가득했고 사지는 부들부들 떨렸다.
“아오 씨발 새끼. 제대로 일도 못하고 퉤!”
거친 표정이 남자는 그를 향해서 침을 뱉고는 바로 몸을 돌려서 자신의 배로 넘어갔다.
“으으…….”
남자는 비비적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망할 새끼, 조또 일도 못하고.”
“그렇게 말입니다.”
“그러니까 좀 괜찮은 놈으로 하자니까.”
“멀쩡해 보였죠.”
배에 남은 두 명은 툴툴거리면서 그들의 있는 선실의 문을 잠가 버리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고 퉁퉁거리면서 저 멀리 배가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밤이 늦어지고 모두가 잠이 들었을 때쯤 부스스 일어나는 남자들. 그들은 선실에 갇혀서 피골이 상접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할 거야?”
“할 거야. 이렇게는 못 살아.”
그들은 얼마 전만 해도 멀쩡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 큰 바다에 떠 있는 ‘멍텅구리 배’에서 강제로 새우를 잡는 노예 신세였다. ‘멍텅구리 배’란 자체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동력이 없는 배를 뜻한다. 그리고 이런 배는 바다에 나오면 계속 물고기를 잡으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사흘에 한 번씩 식량과 물을 주고 물고기를 가지러 어부 아닌 어부들이 온다.
“오늘 갔으니까 사흘 후에 올 거야. 너희들도 이렇게 살고 싶어?”
“하지만…….”
그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잡혀 와서 강제 노동을 하는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자신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려고 매일같이 계속되는 구타는 말 그대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난 이렇게는 못 살아.”
아까 전 두들겨 맞던 남자의 눈빛이 살아났다.
‘내가 누군데.’
그는 여기에 잡혀 오기 전에 진짜 바닥에서 박박 기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완전히 포기한 듯 굴었지만 몰래 다른 선원들의 시선을 피해서 탈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 어차피 죽는 거…….”
동료들도 그런 그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건지 그냥 포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같은 마음으로 뭉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겠지?”
“아마도.”
그들이 이불을 들추고 꺼낸 것은 스티로폼을 그물로 얼기설기 뭉쳐 둔 일종의 튜브 비슷한 것이었다. 바다에서 가장 흔한 쓰레기가 바로 스티로폼이다. 그리고 끊어져서 못 쓰게 된 그물도 적지 않게 걸린다. 그들은 그걸 몰래 조금씩 모아서 이렇게 부유물을 만든 것이다.
“죽더라도 같이 죽어요, 형.”
100일 휴가를 나왔다가 잡혀 왔다고 한 아이는 결심을 굳힌 듯했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러 나왔는데 그 친구들이 자신을 팔아먹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래, 같이 죽자.”
어차피 이렇게 사는 거, 죽든 살든 목숨을 걸고 탈출하기로 했다.
“그나마 저 녀석들이 여기에 안들어와서 다행이지.”
이 안은 말 그대로 엄청나게 냄새가 난다. 도망갈까 봐 땅 위로 올라가지 못하니 당연히 씻지도 못한다. 거기에다 생선비린내와 땀이 어우러져서 도무지 살 수 있는 공간이 못된다. 그래서 저 녀석들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은 덕분에 이런 것들 숨겨 둘 수 있었다.
“오늘 합시다.”
“네.”
준비를 다 끝낸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구석에 있던 작은 철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문으로 다가가서 옷 조각으로 막아 둔 작은 구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젓가락으로 쑤셔서 뚫어 둔 구멍이었다.
그들은 문을 잠그지 않는다. 그저 걸쇠만 걸어 둔다. 그래도 열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그걸 알기에 남자는 수십 번 수백 번 연습하면서 기회만 노려 왔다. 다행히 뚫려 있는 구멍을 그들은 보지 못했다. 사실 봤다고 한들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워낙 오래된 멍텅구리 배인지라 여기저기 구멍 난 건 흔한 일이니까.
“으으으.”
남자는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만일 이때 저 녀석들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오랫동안 감시당하면서 저들의 행동은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사흘에 한 번 먹을 걸 가져올 때면 자기들이 먹을 술과 안주도 함께 가지고 오기에 그날이면 저들은 그걸 먹고 진탕 취해서 잠들어 버린다. 그래서 오늘을 디데이로 잡은 것이다.
철컥.
뭔가가 걸리는 소리. 그 소리에 그 안에 있던 네 사람은 심장이 덜컥했다. 마치 그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주변에 다 울리는 느낌이었다.
“걸렸습니다.”
남자는 걸린 사실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당기기 시작했고 ‘끼기긱.’ 하는 소리와 함께 녹슨 걸쇠가 당겨 올라가더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열렸다…….”
드디어 열리는 문. 그리고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짠 바다의 향기. 매일같이 맡는 냄새지만 오늘은 두려움이 아닌 자유의 느낌이 났다.
“갑시다.”
그 말에 조용히 바깥으로 나가는 사람들. 그들은 배의 난간에 매달려서 물로 뛰어들었다.
풍덩.
연이어 들리는 물에 빠지는 소리. 하지만 술에 취한 감시자들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움직입시다.”
“하지만 어디로요?”
대충 만든 부유물을 잡은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을 보아도 그저 망망대해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 배들이 저쪽으로 갔죠?”
그들이 본 방향은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네.”
하지만 짐을 내린 배들은 언제나 저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방향은 결정된 셈이었다.
“갑시다.”
그들은 찰방거리면서 있는 힘껏 발을 흔들기 시작했다.
* * *
“와!”
“바다다!”
넓은 해수욕장. 가을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일에 찌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기에는 충분한 느낌이었다.
“좋네요.”
노형진은 미소를 지으면서 송정한을 바라보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로 잡을걸 그랬습니다.”
“뭐, 그러면 좋지. 다만 일이 많아서 말이지. 하하하.”
“그러게요.”
한 기업에는 그 기업의 중심이 될 만한 사업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건설과 유통, 전자가 그런 역할을 한다. 노형진의 작전 덕분에 성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화전자에 파고든 대룡의 유민택 회장은 감사의 의미로 새론에게 여행 비용 전부를 내주겠다고 제안했고, 그 덕분에 새론의 식구들은 모두 여행을 올 수 있었다.
‘이거 참.’
노형진을 잡을 수 없으니 주변을 잡아 놔서 노형진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뻔히 보이는 전략이었지만 노형진은 그저 웃으면서 받아들였다. 딱히 손해 보는 건 아니니까.
“으아아아!”
“좋네.”
“여름! 비키니!”
“지금 가을이거든?”
“내년에는 여름에 옵시다!”
“짐승들. 비키니 타령이나 하고 말이야…….”
“내 초콜릿 복근을 보면 되잖아.”
“초콜릿? 그 초콜릿은 어디 무슨 덩어리로 나오냐? 초콜릿 먹고 뽈록 나온 거?”
그 말에 깔깔 웃는 사람들. 서로 이런저런 농담을 하면서 가을 바다에 여유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노형진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분은 좋네요.”
“그렇지.”
회식이라고 하면 무조건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생각하는 게 현실이지만 새론에는 그런 문화는 없다.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참가하고, 참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하는 거다. 술 자체도 그다지 많이 사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여유를 느끼기 위해 온 것이다.
“가을 바다라.”
눈을 감고 싱그러운 바다 향기를 느끼면서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노형진이었다.
그 순간 그의 귀를 뚫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비명 소리.
“꺄아악!”
“뭐야?”
“어디야?”
갑작스러운 비명에 사람들은 다급해졌다.
“저쪽이에요!”
먼저 앞서간 여직원들이 있는 쪽에서 들려온 비명이었다. 그들은 작은 바위 너머로 먼저 뛰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후다닥 뛰어가는 사람들. 바위 너머로 간 그들의 눈에 철썩거리는 해변에 나란히 누워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서로와 끈을 묶은 채로 나란히 바다에 누워 있었다.
“이런 .”
노형진은 그걸 보고 순간 흠칫했다. 딱 봐도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일단은 여직원들을 뒤로 보내고 구급차 불러요.”
송정한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 직원들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노형진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맥을 짚었다.
“어떤가?”
“두 명은 살았습니다만…….”
한 명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도대체 왜…….”
그들의 모습은 허름하다못해서 처참할 정도였다. 다 찢어지고 색이 바랜 옷. 그리고 축 늘어진 몸과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까지.
“이 사람들은 누구죠? 밀입국자인가요?”
일단 생각난 건 밀입국자였다.
하지만 노형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밀입국자라면 이런 모습일 리가 없지요.”
이쪽으로 밀입국한다고 하면 중국 쪽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이 못 살아도 저 정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머리를 보세요. 제대로 자른 게 아닙니다. 그냥 대충 가위로 잘라 낸 거예요. 중국이라고 해도 저 정도는 아닙니다.”
노형진의 말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말은 그만하고 이제 먼저 끌어내세.”
“그러지요. 일단 불을 피울 수 있는 것을 좀 구해야겠네요.”
노형진과 몇몇 젊은 남자들이 그들을 물속에서 꺼냈고 다른 몇몇은 주변의 나무를 모아서 불을 피웠다. 오랜 시간 물속에 있었으니 저체온증이 걱정되었다.
“이거 참…….”
송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기분 좋게 놀러 온 상황이라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남 변호사, 다른 직원들을 데리고 숙소로 가 주게나.”
“네.”
송정한은 직원들을 돌려보내고 병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 * *
“아직은 기절한 상태입니다. 저체온증으로 인해서 상황이 안 좋습니다만.”
의사는 노형진과 송정한에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절한 것 말고는 없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영양실조도 있고 구타의 흔적도 많습니다. 저 사람들, 뭡니까?”
“글쎄요.”
난데없이 해변으로 밀려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영양실조에 구타의 흔적까지 있다니.
“일단은 치료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네, 두 분 다 너무 지친 상태여서요.”
“다른 한 분은요?”
“저체온증으로 사망하신 상태입니다.”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가을의 차가운 바다에 빠졌다면 죽는 게 당연하다. 도리어 살아남은 두 사람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젊다는 것이 도움이 된 것이다.
“그나저나 두 분 다 한국 분인 것 같더군요.”
“네?”
“두 분 다 이빨을 치료한 흔적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치료하는 곳은 일부 대도시뿐이거든요. 물론 중국인들이라고 해서 저런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법은 없지만 한국에서는 흔한 치료법인 데에 비해 아직 중국에서는 고가이니까요.”
“그럼?”
“네, 두 분 다 이빨 치료 흔적을 봐서는 한국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글쎄요……. 아마도…….”
의사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뒤쪽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신지요?”
“아, 저희 직장 동료가 여기에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요.”
“직장 동료요?”
“네.”
노형진은 그 남자를 바라보았다. 발견된 사람과 다르게 멀쩡한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직장 동료라고 하기에는 뭔가 이상했다. 짧은 머리에 과도하게 발달된 근육 그리고 살벌한 분위기까지.
‘직장 동료가 아닌데?’
만일 직장 동료라면 사람이 저 지경이 되도록 둘 리가 없다.
“저희 동료를 구해 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조업하다가 물에 빠져서요.”
그들은 마치 익숙한 일인 듯 이야기했지만 노형진이 왔을 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조업? 그럼 어부라는 건데 지금 자신들이 어부라고 하는 거야?’
사람들은 일을 하다 보면 나름의 분위기를 가지기 마련이다. 가령 어부라면 대표적인 이미지는 구릿빛의 피부와 많은 주름, 근육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네가 어부라고?’
그런데 상대방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피부도 뽀얀 것이 진짜로 바다에서 일한다면 그런 색이 나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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