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33)
누구세요? (2)
그러한 개개인의 특성 때문에 그들은 국정원이라는 말에 공포감을 품거나 협조해야 한다는 의무감조차도 없다.
그들 입장에서 이 경호 업무는 돈이 되면서도 일하기 좋은 평생직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놓칠 이유가 없으니까.
“물론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니 속이 바짝바짝 타겠지만.”
노형진은 힐끔 방 안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여기는 오늘 행사를 위해 빌린 주요 내빈실이다.
당연히 도청과 감청에 대비하기 위해 도청 장치의 설치 여부를 다 확인했고, 감청을 막기 위해 창문에는 커다란 블라인드까지 걸어 두었다.
요즘은 원거리에서 입술을 읽거나 심지어 유리창의 진동을 읽어 내는 기술도 있다고 하니까.
“그런데 송 의원님은 괜찮으십니까?”
“딱히 문제 될 건 없다네. 진짜로 북한에서 나를 노리는 것도 아니니까.”
실제로 북한에서 송정한을 노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CIA도 ‘노린다.’라고 한 게 아니라 ‘노릴 수 있다.’라고 표현한 거다. 나중에 발뺌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노 변호사 자네 계획대로라면 특정해야 하지 않나?”
“특정하는 거야 쉽죠.”
“어째서 말인가?”
“지금 시간을 보세요.”
노형진은 손목시계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오후 4시입니다. 열성 지지자가 아니면 여기에 올 이유가 없죠.”
“그렇지?”
“보통 지나가다가 끼어들어서 구경만 하는 사람들이 올 만한 곳도 아니고요.”
“아, 알겠네. 감시가 목적이니 내 지지자가 아닐 거라는 거군.”
“맞습니다.”
애초에 정치적인 목적으로 열리는 행사인 만큼 모여드는 사람들은 지지 세력일 수밖에 없다.
4시라는 시간은 여러모로 애매한 시간이다.
직장인이라면 한창 근무해야 하는 시간이고 학부모라면 학교에서 돌아오는 애들을 챙겨 줘야 하는 시간.
그 때문에 이 시간에 정치인들은 가능하면 행사를 하지 않는다. 자리가 텅 비어 있으면 창피하니까.
만일 이 시간에 꼭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알바를 동원해서라도 자리를 채운다.
하지만 노형진은 알바 같은 건 고용하지 않았다.
그 말은,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진짜 열성 지지자라는 소리다.
그런데 그 안에서 침묵을 지킨다?
그건 확실히 이상한 거다.
설사 침묵을 지키지 않는다 해도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그런 자들에게 경호원을 접근시키면 됩니다.”
“하지만 네 말대로 그들이 도망갈까?”
“갈 거야. 블랙 요원이니까.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
그리고 그 후의 상황은 노형진의 계획대로 흘러갈 거다.
“물론 모든 변수를 감안하면서 훈련받은 요원이라면 걸리지 않겠지만…….”
노형진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의 국정원은 정보 체계가 박살 난 지 오래라서 말이지.”
아마도 결국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때가 노형진이 노리는 기회였다.
* * *
감오진은 단상에서 떠들고 있는 송정한을 바라보았다.
국정원 요원으로서 감오진은 송정한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놈이 갑자기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는 바람에 접근하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괴상한 소문 때문에 경호원까지 늘었다.
‘귀찮아 죽겠군. 빨갱이 새끼 하나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야.’
물론 진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건 CIA가 정보를 건넸다는 거고, 그걸 누구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거다.
‘그나저나 송정한이라…….’
개혁 의지가 강한 송정한은 국정원에서도 최우선 폐기 대상이다.
물론 전처럼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국정원에서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진짜로 빨갱이 새끼가 죽여 줬으면 좋겠군.’
그러면 자신들이 편해질 거라 생각하면서, 감오진은 단상에서 일장 연설을 하는 송정한을 바라보았다.
-국민 여러분, 우리에게 있어서 자유란 무엇보다도 소중한 약속입니다. 우리만을 위한 약속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 우리의 후손을 위한…….
연설이 계속되는 상황.
그렇게 송정한을 지켜보느라 감오진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다.
애초에 워낙 사람이 많아서 알아차릴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잠깐 저 좀 봅시다.”
선글라스를 끼고, 경호라고 쓰인 방검복을 착용한 남자.
그를 본 감오진의 얼굴이 굳었다.
오늘 행사에서 송정한을 지키기 위해 새론에서 경호 팀을 파견했다는 건 그도 들었기 때문이다.
“뭡니까?”
“같이 가시죠.”
“당신들이 누군데?”
“경호원입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이런 젠장.’
그 말에 감오진은 아차 싶었다.
그들이 자신을 의심할 줄은 생각 못 했으니까.
하지만 다들 열광하는 와중에 혼자서 냉랭한 얼굴로 송정한을 노려보고 있었으니 눈에 안 띌 수가 없었고, 그걸 알아챈 경호 팀이 그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온 것이었다.
“싫은데요. 내가 왜 당신을 따라갑니까? 당신들이 경찰이야?”
당연히 이런 경우를 아예 예상 못 한 건 아니기에 감오진은 딱 잘라서 거절했다.
실제로 경찰이나 검찰도 아닌 경호원에게는 구인의 권한 같은 게 없으니까.
설사 경찰이라고 해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에야 강제 구인 권한은 없다.
“잠깐만 협조해 주십시오. 최근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서 그럽니다.”
“좋지 않은 소문?”
감오진은 그게 무슨 소리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언론 일부에서 흘러나온, 송정한을 죽이기 위해 북한에서 살인조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임을.
‘젠장.’
확실히 그런 상황이라면 경호원이 경계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신분증만 보여 주시면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럴 수는 없다. 블랙 요원에게 있어서 신분은 생명과도 같은 거니까.
물론 이게 정상적인 작전이었다면 가짜 신분증을 만들어서 제공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정상적인 작전이 아니었기에 신분을 감추기 위한 가짜 신분증도 제공되지 않았다.
“싫은데. 당신들을 어떻게 믿고?”
“그래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죠.”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걸 안 감오진은 재빠르게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경호원은 그가 떠나지 못하게 꽉 잡았다.
“잠시만 기다리시죠.”
“놔. 안 놔? 씨발, 뒈질래?”
애써 위협해 봤지만 애초에 그런 거에 겁먹을 경호 팀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여깁니다.”
미리 연락한 것인지 그 순간 다가오는 두 명의 경찰.
“저희가 경호원이라서 신분증을 제시 못 한다고 하네요. 신분 확인 부탁드립니다.”
“잠깐 신분 확인만 하겠습니다.”
그 말에 감오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위험해.’
더는 무난하게 넘길 수 없는 상황.
다른 것도 아닌 암살을 위한 스파이가 파견된 상황이다.
아무리 상대가 북한이라지만 그런 작전을 실행하려고 파견된 스파이는 가짜 신분증을 확보했을 게 뻔하다.
그러니 경찰은 신분증을 받는 즉시 진짜인지 신원 조회를 해야 할 터였다.
그리고 그건 감오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상황이었다.
“신분증 좀 주세요.”
감오진이 좀처럼 신분증을 보여 주지 않자, 다그치는 경찰의 눈에 의심이 깃들었다.
그 증거로 경찰 한 명은 손을 슬금슬금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향해 가져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북한 간첩의 가스 테러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만약 눈앞에 있는 남자가 진짜로 암살조라면, 제아무리 경찰이라 해도 목숨이 날아가는 건 한순간일 테니까.
“마지막 경고입니다. 신분증 주세요.”
경찰의 마지막 경고가 나오고 다른 경찰의 손이 권총집에 닿는 그 순간, 감오진은 자신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슬쩍 빠지는 것을 느꼈다.
당연하게도 감오진의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씨팔!”
그는 자신을 붙잡고 있던 경호원을 그대로 메치고는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절대로 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게 그의 실수였다.
“멈춰!”
“거기 서라!”
뒤에서 들리는 멈추라는 소리.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멈추는 도둑이 없는 것처럼, 당연하게도 감오진은 전력을 다해서 사람들을 헤치고 도망가려고 했다.
“뭐 합니까! 쏴요!”
“네?”
그리고 경호원은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북한 암살조잖아! 놓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이런 젠장.”
경찰은 그 말에 울상이 되었다.
도망가는 꼴을 보면 암살조가 맞는 것 같으니 그냥 둘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사람이 가득한 이곳에서 총질을 하는 건 꺼려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결국 그들은 차선책을 택했다.
탕! 탕!
허공에 날리는 공포탄 두 발.
“꺄아아악!”
“총성이다!”
그 순간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 송정한에게 몸을 날렸다.
송정한이 쓰러지고,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가서 그를 끌어내렸다. 뒤이어 여기저기서 총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탕! 탕!
“으아악!”
“살인이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도망갔다.
감오진도 그 혼란에 섞여서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표적이 되어서 추격당하는 중이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도망가!”
“어억!”
뒤에서 날아온 태클에 감오진은 바닥을 굴렀고, 그 직후 그의 몸 위로 경찰들과 경호원들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모습이 행사장 여기저기서 연출되기 시작했다.
* * *
송정한 의원 피격?
송정한 의원, 북한 살인조에게 피격당하다
난리가 난 언론.
자기들이 아무리 언론사로서 송정한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해도 이런 사건까지 덮을 수는 없는 노릇.
일이 터지기 무섭게 그들은 다급하게 속보를 날려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익명의 소식통을 통해 빠르게 정보가 새어 나갔다.
-익명의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군이 송정한 의원을 죽이기 위한 살인조를 보냈다는 정보가 있으며, 현장에서 경찰과 경호원에 의해 신원을 알 수 없는 다수의 남성이 제압되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총격이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송정한 의원의 상태는…….
이건 누가 봐도 북한군이 와서 총질한 거였다.
물론 진짜로 북한군이 총질한 건 아니다. 경찰이 공포탄을 쏜 거고, 그건 합당한 절차다.
송정한이 쓰러진 건 총에 맞아서가 아니라 날아올 총알을 피하기 위해 경호원이 몸으로 찍어 눌렀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는 말이다.
“이걸 속네?”
송정한의 사무실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던 오광훈이 혀를 내둘렀다.
“속지. 저런 상황에서는 총성이 공포탄인지 아닌지 구분 못 하거든.”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진짜인지 아닌지 전혀 모르겠더군.”
송정한 의원은 자신이 죽었다는 댓글을 피식거리면서 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아무리 거짓말이 넘친다고 해도 그렇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면 쓰나.”
그 말에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그거, 저희 댓글 알바입니다.”
“뭐? 왜?”
“죽었다는 소문이 나야 더더욱 이슈가 되니까요.”
“그랬나? 뭐, 자네 덕분에 이슈는 확실하게 타겠군. 잡혀간 놈들이 묵비권을 행사해서 다들 진짜 북한 암살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노형진의 예상대로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보이는 의심스러운 사람이 여럿 발견되었고, 노형진은 그들을 제압하도록 했다.
그 와중에 몇몇은 도망가도록 놔뒀고 나머지 여섯 명은 현장에서 제압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려다가 체포당한 참이라 당연히 북한의 살인조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고, 경찰에 의해 모조리 끌려갔다.
“음…… 이쯤에서 내가 나가면 되나?”
송정한은 난리가 난 사람들을 보다가 노형진에게 물었다.
“네. 다치지도 않았는데 다쳤다고 하면 쇼한다고 할지도 모르니까요.”
“쇼가 맞네만?”
“때로는 시기에 맞는 쇼가 필요한 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