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36)
은혜는 원수로 갚는 자들 (1)
박기훈은 어느 때보다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대통령 경호실장은 분노로 얼굴이 빨개져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국정원에 가서 다 쏴 죽일 듯 엉덩이가 들썩거렸지만 애써 분노를 참는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죽이기 위해 국정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정확하게는 일부입니다만.”
“그런가.”
그렇게 말한 박기훈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듯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미안하네.”
“네?”
뜬금없는 말에 노형진은 그런 박기훈을 바라보았다.
박기훈은 비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네가 그랬지, 같이 갈 사람이 있고 같이 가지 못할 사람이 있다고. 사람은 고쳐 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고.”
“맞습니다. 그랬죠.”
“그런데 나는 자네 말을 듣지 않았지.”
대대적으로 전면전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되고서야 알았다, 기득권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소수의 1%가 대한민국 부의 40%를 쥐고 있고, 그들이 한국을 지배한다.
결국 박기훈은 싸우기보다는 타협을 선택했고 그에 실망한 노형진은 박기훈을 떠났다.
“그런데 결과가 이거군.”
자신에 대한 암살 계획.
물론 모른 척 국정원을 개혁하지 않고 임기를 마쳐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개혁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안 그런가?”
“맞습니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박기훈의 레임덕은 가속화될 거다.
물론 퇴임하면 더는 정치를 안 할 테니 상관은 없을 거다.
하지만 과연 그대로 이 모든 게 끝날까?
“아닐 겁니다. 그들은 대통령님을 무조건 죽여야 합니다.”
“그렇겠지.”
그래야 더 이상은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래야 자신들이 안전해질 테니까.
“거기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국정원에서 컨트롤할 요소가 늘어나니까요.”
“컨트롤?”
“이 결말에서 범인이 누구일지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당연히 최종적으로 북한이 될 거다.
그리고 자유신민당은 자칭 안보 전문가라면서 북한에 대한 공격을 주장할 테고, 선거는 보복 심리로 인해 그들의 승리로 마무리될 거다.
“설사 죽이지는 않는다고 해도 아마 교도소행은 못 피하실 겁니다.”
살려 둘 수야 있겠지만 그들은 개혁의 씨앗을 뿌리 뽑고 싶을 거다.
그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없는 증거라도 만들어서 상대방을 감옥에 집어넣는 것.
“죽든가 평생을 감옥에 있든가 둘 중 하나라 이건가?”
“그러고도 남죠. 국정원이니까.”
“…….”
그 말에 박기훈은 한참 말을 아꼈다.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가 입을 연 건 무려 30분이 지나서였다.
“김 실장.”
“예, 각하.”
“대통령 경호실의 힘으로 그들을 막을 수 있겠나?”
“인원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대통령 경호실의 힘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 그랬지.”
한때 대통령 경호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전화 한 통에 대기업의 회장이 와서 살려 달라고 빌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대통령 경호실의 권한은 딱 경호의 영역까지로만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게 다름 아닌 박기훈이었다.
“하아~.”
“개혁이라는 게 그런 거죠.”
권력을 놓아야 개혁이 완성된다.
그런데 권력을 놓으면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에게 물어뜯긴다.
나중에는 그들이 나라를 뒤집어도 저항을 못 하게 된다.
“많이 하는 실수가 그겁니다.”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수다. 그리고 개혁이 끝나면 그걸 내려놔야 한다.
개혁에 반대하는 놈들은 본을 보이라면서 먼저 권력을 놓으라고 지랄하고, 그래서 정말 놓아 버리면 갈가리 찢어 버린다.
“개혁에 성공하려면 누구보다 강한 정신력이 필요합니다. 제가 누차 말하지만요.”
개혁하는 동안에는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그리고 개혁이 끝난 후에도 그 권력을 놓는 게 쉽지 않다.
사방에서 들어온 공격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엄청난 권력에 이미 한번 취해 본 상황에서 권력을 놓는 게 쉽겠는가?
처음에 개혁을 외치던 인간들이 나중에는 부패해서 독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난 그럴 수가 없었던 거군.”
“제가 각하를 떠난 건 단순히 부패한 기득권과 손잡아서가 아닙니다.”
그에게서 개혁의 의지가 상실되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국의 수장을 암살하는 건 말도 안 되죠.”
“후우~.”
그 말에 다시 침묵을 지키던 박기훈은 조용히 물었다.
“자네 생각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가장 편한 길은 이 사실을 외부에 공표하는 겁니다.”
“국정원에서 조작이라고 할 거라면서?”
“물론 그러겠죠. 하지만 아무리 조작이라고 할지라도 일국의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그걸 미다스가 보증해 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미다스가?”
“제가 찾아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군.”
정보의 출처가 미다스라는 것만으로도 그 정보의 신빙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는 CIA보다 정보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미다스니까.
‘그리고 어쩌면 이미 CIA가 움직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냐. 이놈들은 아마 알 거야.’
분명히 알 거다.
과거에 홍안수가 일본의 스파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국에 알리지 않은 게 CIA다.
같이 일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이권에 따라 각자 알아서 행동할 뿐이다.
‘내가 아는 CIA라면 이걸 이용해서 빨아먹을 방법을 찾고 있겠지.’
더군다나 박기훈은 지난 대통령인 홍안수와 다르게 중립 외교 노선을 철저하게 지키는 타입이라서 미국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홍안수는 약점 잡힌 게 있어서 미국에서 빨라면 빨고 짖으라면 짖는 개만도 못한 놈이었지만, 박기훈은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성공하면 다음 정권에 자기들을 빨아 주는 놈을 올리고 싶겠지.’
그렇기에 그들은 끝까지 모른 척할 거다.
문제는 그거다.
여기서 박기훈이 이 사실을 공표하면 암살 작전이야 미루어지겠지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적 싸움이 시작될 거다.
그렇잖아도 코델09바이러스 방역도 노형진이 없었다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신민당은 경제가 망한다면서 거리 두기 같은 방역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판국이니까.
그런데 증거도 없는 대통령 암살을 터트린다?
아마 자유신민당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허위 사실 유포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하며 국정원을 실드 치려고 할 거다.
국정원을 대상으로 싸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야당까지 함께?
그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우리국민당이 민주수호당을 도와준다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암살이 아니라 정권 유지 문제로 이목이 쏠릴 테고, 선거철이 되면 또다시 자유신민당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대통령을 심판하자.’라고 주장하면서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엉뚱한 것만 물고 늘어질 거다.
“당연히 언론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만을 떠들겠지요. 거짓말하는 걸 막았지,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까지는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요.”
“끄응.”
확실한 방법은 하나뿐이다. 현장에서 국정원을 제압하는 것.
문제는, 대통령 암살 시도를 현장에서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계획을 알아야 한다는 거다.
“각하, 그냥 터트리시죠.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는 없습니다.”
죽이려고 한다면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저격도 있고 독살도 있다.
사고로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원거리에서 쏴 버리는 건 아무리 대통령 경호실이라고 해도 막기가 어렵다.
현대 저격 총의 사거리는 최소 800미터 이상이고 최신 저격 총은 2킬로미터 정도다.
그리고 국정원은 그런 총을 구할 수도 있고 사용할 수도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위험부담이라…….”
그 말에 박기훈은 얼마간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노 위원, 아니, 노 변호사. 자네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나?”
“터트립니다.”
“거절하겠네.”
“네?”
“내가 저지른 잘못이야. 내 후임에게까지 같은 잘못을 넘겨줄 수는 없지.”
쓰게 웃는 박기훈.
확실히 그가 이 사실을 터트리면, 재수 없으면 다음 대통령이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질 거다.
그리고 설사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한 번 계획했으니 두 번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박멸해야 해. 그렇잖아도 국정원 개혁 문제로 저항이 심하다고 하더군.”
그런데 이 상황에서 국정원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진다?
그러면 그들은 저항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저항하는 순간 암살범 패거리로 몰릴 테니까.
“각하!”
경호실장이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질렀지만 박기훈의 결심은 어느 때보다 확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