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7)
>3장. 일하기 싫으면 말하지 그랬어>
“줄을 서세요.”
“잠시만요. 새치기 하지 마세요.”
새론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하나같이 자녀나 가족의 사건 기록을 들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접수하는 곳에서 길게 늘어선 줄이 100미터는 족히 넘었다.
“엄청나게 많은데?”
송정한은 질렸다는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지금 접수 담당을 임시로 배치해서 속력을 두 배 이상 늘렸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마 더 늘어날 겁니다.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으니까요.”
“음…….”
그나마 이들은 확인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온 사람들이다. 전화까지 해서 확인 한 후에 오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오기 시작하면 아마도 이 줄은 훨씬 더 길어질 것이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군.”
“심각한 문제죠. 경찰들에게는 그냥 일하기 싫은 하나의 사건일지 모르지만 가족을 잃어버린 저분들의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기분일 겁니다.”
의외로 한국에서 남자 실종자들은 많았다. 물론 실종자라고 해서 다 진짜 실종은 아니다. 실제로 가출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경찰이 당사자의 의견을 묻어서 가족들에게 생사만 알리고 그 후에 나머지 정보만 알려 주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도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아마도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음…… 손해배상을 받으려고 하는 걸까?”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민사상 손해배상이다. 즉, 형사처벌로 누굴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굳이 민사까지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실 저분들에게는 손해배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단 한 번이라도 가족을 더 보고 싶은 게 소원일 겁니다. 저분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왜 민사에 참가하는 거지?”
“그래야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 저들의 사건은 대부분 가출로 되어 있다. 그런 만큼 아무리 저들이 나서서 외치고 항의하고 울어 봐야 수사해 줄 리 없다.
“하지만 민사에서 이기면 달라지지요.”
민사에서 이겼을 때 받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민사에서 이긴 경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저들은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음…… 전에 있던 소송에서는 이렇게 많았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남상주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얼마 전 모 기업에 대한 손해배상이 진행된 적이 있었다. 물론 집단소송이었다. 그 당시 참가한 사람들은 고작 몇백 명이다. 그에 반해 피해자는 몇만 명이었다.
“아무래도 절박함이 다르니까요. 그쪽은 이겨 봐야 고작 몇십만 원인 데다 이긴다고 해도 특혜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긴 그렇지.”
실제로 그들의 손해배상비는 한 명당 대략 50만 원 정도다. 그런데 거기서 다시 변호사비와 실비를 뺄 테니 소송을 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돈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가족들이 달려 있으니까요.”
“음…….”
고작 50만 원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실종된 가족들을 찾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어떻게든 가족들을 찾으려고 한다. 심지어 몇몇은 그 괴로움을 있지 못하고 자살할 만큼 가족을 잃어버린 슬픔은 커다란 문제다.
“죽은 거면 차라리 포기하도 하지, 소식도 없이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은 사람을 좀먹지요.”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이번 사건은 소송 당사자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 이기면 그걸 핑계로 제대로 된 수사를 요구할 수 있으니까. 한번 소송에 져서 손해배상까지 한 경찰의 입장에서는 그 소송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꼭 이겨야 하는 소송입니다.”
“왠지 부담되는군.”
“그렇지요. 아마 지금까지 한 소송 중에서 심적으로는 가장 부담이 되는 사건일 겁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돈과 억울함이 걸려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니다. 이 사건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확신을 줄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이렇게 피해자가 많은데…….”
길게 줄이 서 있는 사람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몇 십년간 실종된 남자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도 더 이상 찾을 수 없겠지요.”
노형진은 그저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노 변호사님.”
“네?”
“경찰청장님이 오셨는데요?”
“경찰청장?”
노형진은 경찰청장이 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송 대표님한테도 말씀드렸나요?”
“네, 바로 회의실로 오겠다고 하셨어요.”
“알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경찰서장이 새론을 찾아온 건 한 가지 목적일 밖에 없다. 아직 소송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소송을 막기 위해서다.
‘하긴 자기들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규칙이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규칙임에도 불구하고 유지했던 건 자신들이 편하게 일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니 일단 소송을 막기 위해 움직인 것이다.
‘전형적이군.’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회의실로 향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 회의실에는 송정한과 경찰청장인 학도림이 함께 있었다.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진행된 뒤 학도림은 단도직입적으로 요구를 이야기했다.
“뭐, 다 아실 거라 생각하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준비하는 소송을 포기해 주십시오.”
아주 대놓고 말하는 그였지만 노형진도, 송정한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학도림이 말을 돌려 말하는 것에 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가출로 처리된 모든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실 겁니까?”
지난 10년간 그런 식으로 처리된 사건이 5만 건이 넘는다. 한 해에 5천 건이다. 찾아오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니 한 해 5천 명이 넘는 남자들이 실종된다는 소리다.
“그건 곤란합니다.”
“곤란?”
“경찰의 행정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정도 시간을 수사하기 위해서는 인력의 증원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또…….”
학도림은 사정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런 그의 말을 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끝까지 법대로 가지요.”
“뭐라고요?”
“법대로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지금 장난하십니까?”
“장난이 아닙니다. 그쪽에서 인력이 부족해서 일을 못한다면 손해배상이라도 받아서 흥신소라도 동원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그런 게 아니잖습니까? 같은 사법 체계의 일부로서 협조를…….”
“협조란 서로에게 이득이 될 때 하는 거죠.”
과연 여기서 그들이 물러나면 경찰이 내부 규칙을 고쳐서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수사에 들어갈까?
그럴 리 없다.
“애초에 실종된 사람들을 수사하지 않은 건 경찰입니다. 남자라서 무조건 가출 처리한다? 도대체 무슨 쌍팔년도 규칙이에요? 조선 시대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건 규칙이 아니라 그냥 일하기 싫은 거잖아요.”
“뭐라고요? 말이 심하십니다?”
“그러면 일하지 않은 이유가 뭡니까? 우리 의뢰인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 보시라니까요.”
“그거야 인적 자원이 부족해서 그런 거 아닙니까?”
“남자는 뭐, 세금 안냅니까?”
“그거야…….”
남자도 세금을 낸다. 엄밀하게 말하면 대부분의 경우 남자가 여자보다 연봉이 많은 편이라 남자가 여자보다 세금을 더 많이 낸다.
“아무래도 남자는 자체 근력도 있고 또 저항도 가능하고…….”
“남자는 무슨 용가리 통뼈예요? 칼로 쑤셔도 안 죽습니까?”
“…….”
죽지 않을 리 없다. 도리어 그 특성상 강간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강력 범죄에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남자라서 보호해 주지 못하겠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일하기 싫은 거라면 말씀하시던가요.”
“일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그럼 간단하지 않습니까? 내부 규칙을 고치세요. 그 후에 실종된 남자분들에 대해 수사하면 되겠네요.”
“그건 좀 곤란하다니까요 인력이 부족해서 그럴 여건이 안 됩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듣고 있던 송정한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기가 막혀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일은 하기 싫은데 고소당하는 건 싫으니까 소송 취하해 달라 이거네요?”
“…….”
비꼰 게 아니다. 정확한 말이다. 그래서 학도림도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경찰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남자를 빼고’겠지요.”
“그건 아무래도 남자는 자체적으로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있고…….”
“뭐, 정신 나간 여자들한테 몸 로비라도 받으셨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버럭 화내는 학도림. 하지만 다음 순간 노형진의 분노한 목소리에 찔끔하고 말았다.
“그럼 남자에 대한 실종을 거부하는 이유가 뭔지 말을 하세요! 말을! 인력이 없다는 개소리하지 마시고! 지금 우리가 장난하는 것 같아요?”
“…….”
학도림은 말하지 않고 고개를 슬쩍 돌렸다. 결국 보다 못한 송정한이 전화기를 눌러서는 직원을 불러들였다.
“손님 나갑니다. 모셔 가세요.”
“말 안 끝났습니다.”
학도림이 발끈했지만 송정한은 그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실종자에 대한 수사도 안 한다. 그렇다고 내부 규칙을 바꾸지도 못하겠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말이 통할 거라 생각합니까?”
“…….”
“그쪽이랑 이야기해 봐야 별 소득은 없을 것 같으니까 가세요.”
결국 직원에게 거의 끌려 나가다시피 해서 나가 버리는 학도림 청장을 보면서 송정한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이해를 못하겠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야?”
“일하기 싫은 것뿐입니다.”
“그런 단순한 이유로?”
“단순하지만 확실한 이유죠.”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수사하지 말라고 할 여성 집단도 없다. 그렇다고 남자에 대해 수사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을 집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으니까.
“이런 게 한두 번입니까?”
“하긴…… 부정은 못하겠네.”
경찰들은 귀찮은 사건은 수사하려 하지 않는다.
“하긴 여성 강간 사건도 수사하지 않으려고 하는 판국에 뭐든 하려고 하겠어?”
송정한은 얼굴을 찌푸렸다.
“연민주 사건 말씀이신가요?”
“그래, 우리가 그때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연민주 사건은 나중에 알게 된 사건이다. 인터넷에서 어떤 여중생이 도움을 청하자 어떤 남자가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은 자기네 관할이 아니라는 식으로 접수를 거부해 결국 그 여중생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뻔하다면 뻔한 사건이었다.
‘하긴…….’
언론에 조명되거나 이슈가 되거나 하면 마치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굴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경찰은 그다지 열성적이지 않다.
‘가끔은 채찍질도 필요한 법이지.’
그리고 노형진은 이번 사건이 충분한 채찍질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기는 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문제는 그 강도다. 과연 이 소송에서 이긴다고 저들이 과연 제대로 일할까? 공무원이라는 특성상 한 1년 정도는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에 다시 흐지부지되면서 다시 실종 접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기는 건 쉽지만 그 후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번에 제대로 못을 박으려면 이슈화가 필요한데 말이지.”
“언론 말씀이군요.”
“그래.”
첫 번째 계획은 좋았다. 언론을 통해 사람을 모으겠다는 노형진의 계획대로 수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언론은 잠잠했다.
“위에서 막는 모양이야.”
“그렇겠지요. 이런 건 이슈화되어 봐야 좋은 게 없으니까요.”
전 정권의 잘못이든 전전 정권의 잘못이든 일단 욕은 현재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먹게 되어 있다. 더군다나 이 문제는 수십 년을 쌓아 올린 고질적인 문제. 이게 터졌을 때 좋게 나올 수가 없으니 정부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사건을 덮으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압력을 언론사가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있을까?”
“한 가지 길이 있기는 합니다.”
“한 가지 길?”
“네, 누군가를 집중 공략하는 거죠.”
“무슨 소리인가?”
“이런 걸 적극적으로 막는 사람일수록 이것에 이권이 달려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 부분을 공략하는 거죠.”
“아!”
사람이라는 존재는 단순하다. 자신의 이권이 달려 있으면 당연히 막으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부분을 도리어 까발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언론 플레이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권을 위해 일하지 않고 남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경찰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걸로 이권이 들어갈 게 있나?”
“인간은 똥을 치우는 일로 이권을 만드는 존재입니다.”
“음…….”
농담이 아니다. 조선시대에 똥은 아주 중요한 거름이었다. 그리고 양반 가문의 똥은 잘 먹고 잘살아서 최고의 거름이었기 때문에 똥 치우는 사람들은 지금처럼 돈을 받고 퍼 가는 것이 아니라 허락을 받고 퍼 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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