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77)
미래는 거래의 대상 (1)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건 아주 오래된 진리다.
물론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많이 희석된 바 있다.
과학수사 기술이 발전하면서 죽은 자에게 남겨진 흔적을 알아내는 방법이 여럿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는 모양이야.”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남상진은 느긋하게 말했다.
“뭐, 뻔하기는 하지. 그 먼 거리에서 쏜 총으로 범인을 특정하는 걸 불가능하니까. 그나저나 전세기라, 좋군. 나도 하나 살까?”
코델09바이러스로 인해 일본은 외국인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든 사람의 입국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수출로 먹고사는 일본이 망할 테니까.
그래서 업무에 관해서는 입국을 허락한 상황.
물론 비행기는 멈췄기 때문에 입국할 방법은 직접 찾아야 했다.
하루 딱 한 대 있는 비행기에 자리를 구하든가, 아니면 노형진처럼 전용기를 타고 오든가 말이다.
“뭐, 큰 건이 성공하면 너도 가능할지도 모르지.”
“호오, 그거 구미가 당기는데?”
그 말에 남상진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정보를 쥐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노형진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절대로 작은 전쟁은 아닐 테니까.
“물론 이번에 제대로 도와줄 때의 이야기야.”
“기꺼이. 그래서, 하루토를 만나서 뭘 묻고 싶은데?”
“범인이 누군지 궁금한데?”
“절대로 말 안 해 줄걸.”
그 말에 남상진은 코웃음을 쳤다.
“총기를 구할 곳은 많고 킬러의 실력은 좋지. 그런데 하루토의 목숨은 하나란 말이지.”
“알아.”
하루토라는 남자가 바보가 아니고서야 당연히 이야기해 줄 리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생각에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것을, 노형진은 하루토를 만난 후에야 알았다.
* * *
“안녕하세요. 하루토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하루토 씨?”
“네.”
“하루토 씨라고요?”
“네.”
그 말에 노형진은 슬쩍 남상진을 돌아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는 하루토가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 애초에 하루토라는 이름은 한국으로 치면 철수처럼, 전형적인 남자 이름이니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상대방은 여자다.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
“그런 시선으로 날 보지 마. 하루토 맞으니까.”
“맞다고?”
“선입견이라는 게 생각보다 쓸 만하거든요.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적을 많이 만들게 되니까요. 선입견 때문에 다들 남자라고 생각하더군요.”
하루토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노형진에게 느긋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저한테 뭔가 물어보고 싶으신 게 있다고 들었는데요?”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아시는 거 있습니까?”
“글쎄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별의별 사건이 다 벌어지니까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최근에 저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모르시나요?”
그 말에 하루토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말했다.
“제가 뉴스를 안 봐서요.”
“뉴스를 봐도 안 나올 겁니다.”
“어머, 그래요?”
그 말에 노형진은 하루토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딱 잡아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쩐다.’
킬러들 사이에서 이런 비밀은 무척이나 큰 가치를 가진다.
만일 비밀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절대로 그와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하루토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고, 딱히 다가가 그녀의 기억을 읽을 만한 핑계가 되어 줄 만한 것도없었다.
“어이, 하루토. 그러지 말고 부스러기라도 말해 주지?”
“천하의 남상진이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의외네요. 다른 고객분들이랑 무슨 일이 있나 보죠?”
다른 고객들이 이런 모습을 알면 좋아하겠느냐는 말.
그 말에 남상진은 코웃음을 쳤다.
“어설픈 협박은 하지 마. 아니면 내가 일본 정부랑 이야기 한번 할까?”
그 말에 하루토가 눈을 찡그렸다.
그런 하루토를 보면서 남상진이 피식 웃었다.
“협박은 이렇게 하는 거야, 하루토.”
“짜증 나는군요. 당신이 여기까지 왔으니 만나 주기는 하지만, 솔직히 당신도 본인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는 건 알죠?”
“알지. 아니까 내가 직접 온 거지.”
“알면서도 나를 찾아왔다니 기가 막히는군요.”
“그러니까 좋게 가자고.”
“아는 게 없습니다만?”
“진짜 이러기야?”
“브로커가 저만 있는 게 아닐 텐데요?”
하루토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아무리 같은 업계에 있다고 해도 딱히 의리가 있는 그런 사이는 아니니까.
그러자 잠시 침묵하던 남상진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큰 건이 있는데.”
“흥. 말로는 뭔들 못해요?”
“어이, 노 변호사. 한마디 해 줘.”
그 말에 노형진은 남상진을 노려봤다.
‘이 새끼가 정말.’
얼핏 노형진을 도와주는 듯 보이지만 사실 남상진은 노형진에게서 슬쩍 정보를 캐내기 위해 이야기를 빙빙 돌리고 있는 거였다.
노형진이 가진 정보의 값어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적지 않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게 분명하니까.
물론 노형진이 도와주면 알려 준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걸 또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었다.
‘브로커 아니랄까 봐.’
노형진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시일 내에 전면전 규모의 전쟁이 벌어질 겁니다.”
“전면전이요? 그래요. 어딘가요?”
“그걸 말해 줄 수는 없죠.”
“그러면 저도 대답하기는 곤란하죠. 애초에 해외에서 전쟁이 난다고 해도 저랑 딱히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건 틀린 말은 아니다. 일본 무기는 팔아먹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니까.
“다른 무기를 쌓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
“굳이요? 전면전이라면 뭐, 그 나라에서 알아서 할 일일 텐데요.”
“그 나라에 현실적으로 충분한 무기가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전쟁도 금방 끝나겠네요.”
“전쟁은 금방 끝나지 않을 겁니다……. 사실상 3차대전의 대리전이라 의외로 오래갈 겁니다.”
3차대전이라는 말에 순간 남상진도, 하루토도 움찔했다.
아무리 두 사람이 무기를 팔아먹는 브로커이라지만 3차대전은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급이 다른 전쟁이니까.
“무슨 말이죠?”
“총력전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나라의 운명이 걸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