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8)
현대도 한 지역마다 정화조를 치우는 기업은 하나뿐이다.
“이권이라. 하지만 누구를 공략한단 말인가? 이런 걸로 이권을 챙길 만한 사람이 없어 보이는데.”
“그러니까요. 사실 수사를 제대로 해도 이권에 손해 보는 것은 없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 한 명 있지 않습니까?”
“한 명?”
그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돌려서 문 쪽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 사무실을 나간 사람, 학도림.
“생각해 보면 이상하기는 하네.”
청장쯤 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러 여기까지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더군다나 이런 경우는 그냥 ‘수사하겠습니다.’라는 한 마디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걸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지 못하겠다고 못을 박는 건 이상한 일이다.
“이권이 있으니까 나서는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권이라…….”
노형진의 말에 송정한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다면 한번 털어 볼까?”
“그렇지요. 일하기 싫다면 놀게 만들어 주면 되니까요.”
* * *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노형진은 양복을 가다듬으면서 다음 재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늘 재판은 어렵지 않겠지요?”
“어렵지 않을 겁니다. 다만 정부가 상대라는 것이 문제지만요.”
어떤 식으로 해석하든 경찰이 성인 남성의 실종 사건의 접수를 거부하는 것은 명백하게 불법이다. 헌법상의 평등권에도 위배되고 공무원법상의 업무 규칙에도 위배된다. 그러니 이런 사건은 누가 와서 하든 이기는 것이 당연했다.
“일단은 손 변호사님도 이번 사건을 잘 봐 두세요. 사건 자체는 무조건 이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건 자체만 보면 무척이나 큰 사건입니다.”
“그렇지요.”
“그러니까 이번 사건은 사람들의 반응 같은 걸 잘 봐야 합니다. 물론 정부에서 최대한 막고 있지만 아무리 막는다 해도 우리가 이겼다는 소식까지 막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 경우에는…….”
공동 출석하기로 한 손예은에게 큰 사건에서의 변호사의 행동에 대해 가르쳐 주고 싶었던 노형진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 실습의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노 변호사님?”
다가오는 남자를 본 노형진은 손예은에게 설명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고문학 팀장님?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상대는 다름 아닌 고문학이었다. 그는 변호사도, 서류 업무를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정보 팀을 이끌면서 재판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가 재판정에 직접 올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문제?”
“네, 학도림을 따라다니던 팀에게서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그 말에 노형진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학도림. 얼마 전 그들을 찾아왔던 경찰청장으로, 다짜고짜 노형진에게 소송을 취하하라고 요구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식이 끊어졌다니요?”
“말 그대로입니다.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에 확인해 봤습니까?”
상대방은 경찰이다. 당연히 눈치가 빠른데, 다른 사람도 아닌 청장을 따라다니면 붙잡을 수밖에 없다.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지 않았더군요.”
“음…….”
아무리 민간 정보 팀이라지만 경찰 내부에 그 정도 사실을 확인할 만한 소식통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경찰 내부에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뜻인데.’
경찰에 잡혀 들어가지 않았다면 연락이 끊어질 이유는 없다.
“다만 마지막에 찝찝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찝찝한 보고?”
“네, 학도림이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데 한국인 같지 않다는 겁니다.”
“한국인 같지 않다?”
“중국 쪽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노형진은 살짝 눈을 찡그렸다. 똑같은 동양인이지만 중국인과 일본인, 한국인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 흑인이나 백인은 그 차이를 모르지만 세 나라 사람들은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린다. 더군다나 이들은 정보 팀. 눈치 빠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이다.
“중국인이다?”
“네.”
경찰청장이 중국계 사람들을 만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다음 말은 노형진의 예상을 살짝 빗나가는 것이었다.
“학도림이라는 사람 말입니다. 조사하다 알았는데 그 사람도 중국인입니다.”
“네? 중국인요?”
“정확하게는 한국으로 귀화한 화교입니다.”
“화교?”
“네.”
그 말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중국인이라서?
아니다. 그가 청장이라서 이상한 것이었다.
“하긴 학 씨가 흔한 성씨는 아니기는 합니다만…… 화교인 건 의외군요.”
흔한 성씨는 아니라고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니 그건 그렇게 넘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그의 직위.
‘영 찝찝한데.’
한국은 웃긴 나라다. 아래쪽에서는 세계화니 다문화니 하면서 마치 글로벌 국가인 것처럼 굴지만 상류층에서는 엄청난 순혈주의가 지배한다. 당장 부잣집에서 자녀가 결혼하는 대상이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이면 난리가 난다.
사실 한국인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모 재벌가는 사위가 재벌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 취급도 안 해 주는 걸로 유명하니까.
‘그런데 청장이 화교 출신 귀화인이라고?’
보여 주기식으로 하급 공무원은 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상류층의 특성상 그런 사람들을 청장급까지 올리지는 않는다.
‘청장쯤 되면 상당이 고위 공직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면 그 녀석이 그날 보여 준 행동도 이상해.’
다짜고짜 와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그의 모습은 그들이 아는 상위 계급 공직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상위 계급 공직자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능력이 아닌 정치 덕분이다. 소위 말하는 정치 놀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정치 놀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라면 문제가 되는 걸 피해서 슬쩍슬쩍 찌를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그런데 그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절대로 정치 놀음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갔지?’
이상한 점이 생각나자 하나둘 꼬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의심들.
“무언가 이상해요.”
노형진은 직감적으로 일이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무래도 제가 가 봐야겠군요.”
“직접 말입니까? 하지만 변론이 바로 코앞인데요?”
그 말에 노형진은 손예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손예은이라고 하지만 그런 시선의 목적을 모를 리가 없었기에 깜짝 놀랐다.
“저 보고 지금 대신하라는 건가요?”
“네, 어차피 이 사건에 공동 변호인이니 누가 가든 상관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노형진이다. 경찰 역시 노형진이 나올 걸 대비해서 수많은 방어 전략을 구성했을 것이다.
“어차피 이 싸움은 이기는 싸움입니다.”
“알지만…….”
문제는 그 배상액을 얼마나 받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노형진은 그녀의 어깨를 잡으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우리 의뢰인들이 요구하는 건 돈이 아닙니다.”
의뢰인의 대다수는 돈이 아닌 제대로 된 수사를 원한다. 그래서 가족을 찾기를 찾지 못한다고 해도 하다못해 죽었다는 소식이라도 듣기를 원한다. 이건 그걸 위한 소송이다.
“이 소송에서 필요한 건 배상금의 액수가 아닌 당당하게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입니다.”
“그렇지요.”
“그에 반해 지금 사라진 사람들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중국인들과 선이 닿아 있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건 내 능력이 필요한 일이야.’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한다면 충분히 그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니 한시라도 빨리 그가 움직여야 한다.
“그들을 실종 신고한다고 해서 경찰이 과연 도와줄까요?”
그 말에 손예은은 갑자기 말이 막혔다. 안 그래도 남자 실종 사건을 모조리 가출로 처리하는 경찰이다. 그들에게 소송한 집단의 직원이 경찰청장을 감시하다가 실종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실종된 사람들을 찾기 위해 과연 열심히 수사할까?
‘그럴 리 없지.’
수사는커녕 다시 가출로 처리하고 관심도 가지지 않을 게 뻔했다.
“이 사건은 이제 단순히 의뢰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직원들, 우리 가족의 문제입니다.”
그 말에 손예은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을 찾지 못한다면 과연 누가 새론을 위해 정보를 캐면서 일하려고 할까?
“이곳은 제가 알아서 하지요.”
“하실 수 있지요?”
“네.”
손예은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음먹은 이상 그녀는 물러나거나 도망갈 사람은 아니었기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손 변호사는 여기서 싸워 주십시오. 전…… 우리 가족을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노형진은 사라진 사람들을 찾으러 법원을 떠났다.
* * *
“여긴가요?”
“네.”
노형진이 간 곳은 오래된 빌딩 건축 현장이었다. 원래 건설하던 곳이 망해서 공사가 멈춰 버린 폐건물.
“여기서 소식이 끊어졌다고요?”
“그렇습니다.”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곳을 아무리 봐도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함정에 빠졌군요.”
“실수입니다…….”
“이렇게 치밀하게 만든 거니 실수가 아닙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준비를 상당히 많이 했군요.”
추적자가 갑자기 시외로 나가면 당연히 의심하게 될 거다. 그래서 시내로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시내에 이런 공간이 있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는가? 결과적으로 시내에 한복판에서 기습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건물주를 확인해 봤습니다만…….”
“아무것도 없었겠지요.”
완성된 건물도 아니고 건물을 올리다 회사가 망했으니 당연히 뭐가 있을 리 없다.
“이상하군요.”
“그렇지요?”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곳으로 올 리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정보 팀이다.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100단이다.
“이쪽으로 올 리가 없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설사 온다고 해도 무슨 이야기를 했을 텐데…….”
“여기에 온 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차량을 추적했습니다.”
정해진 연락 시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되지 않자 고문학이 차량에 설치된 위치 추적 장치를 원격으로 작동시켰는데 장치에 표시된 곳이 여기라는 것이다.
“이 주변의 다른 곳으로 갔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렇겠지요.”
주변을 둘러보는 노형진.
이곳이 공사를 하다가 망해서 비었다고 하지만 엄청나게 시끄러운 유흥가다.
“움직일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찾지 못하겠습니다.”
이미 다른 팀원들이 주변 가게나 모텔 등지를 뒤지고 다녔지만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발견된 게 이거라는 거군요.”
“네.”
공사 현장으로 들어가는 철조망이 휘어진 모습.
잘 보이진 않지만 그 앞에서 익숙한 신발 자국이 발견되었다.
“음…….”
“저희는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지그시 노형진을 바라보는 고문학.
“변호사님이라면 찾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군요.”
어쩌면 그는 노형진에게 어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는 정보 쪽 일을 하는 사람이고 노형진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정보를 가끔 가지고 온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그들도 찾지 못하는 것이었다.
“일단은……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군요.”
노형진은 대답하는 대신에 휘어진 철조망으로 향했다.
‘일단은 기억을 읽어 보는 게 중요하겠어.’
자신의 능력을 고문학은 모른다. 그런 만큼 섣불리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곳으로 들어갔단 말이지요.”
“아마도요. 정문 쪽은 막혀 있으니까요.”
노형진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철조망을 손으로 당겼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것은 혹시 모를 기억을 읽기 위해서였다.
‘역시.’
그리고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찰나의 기억.
그 기억 속에서 두 남자가 다급한 표정으로 그 안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 두 사람은 노형진도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정보 팀이었던 것이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 텐데?’
정보 팀은 불법과 합법 사이에 걸쳐 있는 일을 한다. 당연히 비밀을 감추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어 그 인간들이 위험한 행동을 할 수도 있기에 사전에 이야기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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