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295)
죽은 자를 대신하여 (4)
그런데 그들과 싸우라고 한다면 과연 싸울까?
“그리고 말이야, 애들은 먹여야 할 거 아니야. 라면이 뭐냐, 라면이?”
한구석에 잔뜩 쌓인 라면 박스를 보면서 불쌍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는 남자.
아까는 화가 났지만 지금은 창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말이 사실이니까.
조직에서 주는 돈으로 어쩔 수 없이 짜장면으로 연명하며 산다?
그것도 돈이 되는 조직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짜장면 한 그릇에 8천 원. 그걸 내줄 돈이 없다.
그래서 곽도파는 라면을 몇 박스씩 쌓아 두고 매번 끼니를 그걸로 때웠다. 그마저도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싼 라면이었다.
“넘어와, 배곯지는 않게 해 줄 테니까. 같이 오랜만에 삼겹살이나 먹지?”
삼겹살이라는 말에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곽도파는 그 소리에 등 뒤의 조직원들을 재빨리 노려봤지만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염병할.’
그도 그럴 게 자신만 해도 입에 고기를 대 본 게 2개월 전이었으니까.
아무리 조폭이라지만 이렇게 비참하게 추락할 줄은 몰랐다.
“형님, 어쩌죠?”
누군가 물었다.
곽도파는 고민했다.
싸워서 이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 아닌, 포기하고 저쪽으로 가면 안 되느냐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
현실적으로는 가는 게 이득이었지만 자존심이 그걸 막았다.
“어차피 저쪽도 너희를 버렸는데 그냥 이쪽으로 오지?”
“뭔 개소리야? 아직 안 버리셨다.”
“그래? 하지만 이미 이쪽에 관련된 정보는 죄다 팔아먹고 있던데.”
“헛소리!”
“증명해 볼까?”
그 말에 곽도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해는 간다. 주변에서 양성화된 조직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자신처럼 양성화를 못 따라가면 그냥 버려진다는 것도.
“우리 쪽으로 오면 최소한 잘 먹고 잘 살 수는 있어. 저쪽은 너희를 버렸는데 너희는 언제까지 매여 있을 거야? 의리? 그딴 게 여기 어디에 있는데?”
그 말에 곽도파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헛소리라고 하고 싶지만 그 말이 안 나왔다. 그 사실을 자신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들 애새끼들, 학교에는 보내야 할 거 아냐? 학교에 가서 애들 선생님한테 뭐라고 할 건데? 애들 기록부에 애아빠 직업을 건달이라고 적어 낼래? 영화 찍냐? 우리가 엔터 소속이라고 명함 하나씩 박아 줄 테니까 적당히 튕기지?”
“크윽.”
곽도파는 그 말이 제일 가슴이 아팠다.
성격이 지랄 같아서 조폭이 되기는 했지만 자식 문제는 또 달랐다.
애를 생각해서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 보자 하다가도 성격이 워낙에 지랄맞은지라 멀쩡한 회사에는 갈 수가 없는 상황.
“우리 쪽에 오면 적당한 자리가 있어. 알지?”
“현장 경호원 말인가?”
“뭐, 잘 아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네.”
행사를 많이 하는 한만우의 회사에는 현장 경호원이 언제나 필요하다.
의외로 이 경호, 정확하게는 현장 통제 업무에 일반 아르바이트생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통제를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생 알바를 써서 아무리 고래고래 ‘질서를 지켜 주세요!’라고 소리 질러 봐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저하게 무시한다.
결국 말이 통제 요원이지 그냥 몸으로 사람들을 밀어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매번 행사를 할 때마다 난리도 아니었다.
“내가 해 보니까 아르바이트하는 애들을 쓰면 있잖아, 이게 지랄 같아요. 애새끼들이 아주 그냥 머리를 존나 잘 굴려.”
예를 들어 어떤 연예인이 온다고 하면 그 연예인 빠순이들이 파고들면서 다가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 현장 통제 요원이 일반인이면 자기가 몸으로 밀어 놓고 성추행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 움찔하면, 그 틈을 파고들어서 행사를 개판으로 만든다.
실제로 이런 행사를 할 때 경찰이 성추행 문제로 출동하는 게 거의 100%다.
“그런데, 솔직히 이쪽은 우리 영역이거든.”
조폭들은 사람을 위협하는 법을 안다. 그렇다 보니 그 존재감 자체가 압도적이라 사람들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
실제로 한만우의 회사는 적은 인원으로 더 좋은 효과를 내는 곳으로 유명해서, 행사와 관련한 계약은 많은데 정작 인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서류 작업할 필요 없어. 그거 담당할 새끼는 붙여 줄게. 뭐, 우리 쪽 애들도 머릿속에 먹물은 없잖아.”
채찍과 당근이 계속 휘둘리자 곽도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만 굴렸다.
“어허, 이미 버려졌다는 거 못 믿네.”
그런 곽도파를 가만히 바라보던 남자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좋아. 증거를 보여 주지. 내가 저 금고 열면 어쩔래?”
그 말에 곽도파는 안쪽에 있는 금고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열어 보든가.”
여기에 있는 금고이기는 하지만 그들 소유는 아니다. 사실상 조직의 지시로 그들이 지키고 있는 거다.
좋게 말해서 경호원인 거고, 사실상 금고를 지키기 위한 경비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제대로 된 사료도 안 주고 먹던 음식물 쓰레기나 던져 주며 키우는 그런 개 말이다.
‘나도 모르는 걸 너희가 안다고?’
당연하게도 곽도파는 저 금고의 비밀번호를 모른다.
애초에 그걸 아는 사람은 조직 내에서도 최상위층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이들이 열 수 있다고?
그렇다면 그건 본사에서 자신들을 버렸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거다.
“열어라.”
“네, 형님.”
그리고 그 말에 잽싸게 튀어나오는 남자.
바로 노형진이었다.
당연히 이 금고의 비밀번호 같은 건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걸 알아낼 수 있었다.
‘역시 한만우 회장.’
한만우의 계획은 간단했다.
금고를 가지고 있는 조폭을 흡수하면 된다. 그러면 소유권은 이쪽으로 넘어온다.
간단한 말이지만, 그쪽 업계의 규칙이기도 했다.
‘이런 걸 여는 건 어렵지 않지.’
아무리 금고에 손대지 않는다 해도 처음 물건을 보관할 때는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이코메트리로 기억 속의 번호를 읽어 내면 되는 것이다.
철컥.
그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금고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곽도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안에 있는 게 뭔지는 자신도 모른다.
애초에 알려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 정보를 팔아넘겼다?
그것만큼 자신들을 버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겠는가?
‘이런 개…….’
물론 중요한 게 들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랬다면 비밀번호를 팔아넘겼을까?
그럴 리가 없다.
아마도 저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리라.
그래서 자신들을 버렸다고 해도, 그래서 비밀번호를 넘겼어도 문제없었을 거다.
어차피 빈 거니까.
쉽게 말해서 쓸모없는 자신들을 여기에 묶어 두기 위한 못밖에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이제 알겠어?”
“니미 씨팔.”
곽도파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러고는 눈앞의 남자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건넸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본사에서 자신들을 버렸다면 자신들이 그들을 위해 여기를 지키고 있을 이유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
“그래그래, 후후후.”
한편 그렇게 그들이 용화파에 흡수될 때 노형진은 금고를 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빙고.’
그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서류들과 작은 USB들.
그게 창동과 조억기의 미래를 박살 낼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 * *
해당 자료는 자연스럽게 오광훈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 익명의 제보는 한국을 발칵 뒤집었다.
-창동그룹 현 회장인 조억기는 다수의 살인을…….
-조억기는 자신의 살인을 감출 목적으로 증인을 청부 살해하고 그 청부 살인자도 죽이려고 했으며 동시에 살인자가 속해 있던 조직을 다른 조직을 통해 토벌하는 방식으로 다수의 살인을…….
-인천 파라다이스 나이트클럽 방화 살해 사건은 조억기가 청부한 두 조직의 분쟁으로 인해 발생한…….
“우와, 아주 작살이 나는구만.”
창동그룹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사건을 덮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창동은 전라남도에서나 힘 있는 기업이지, 전국 규모가 된 사건에는 전혀 힘쓰지 못한다.
“이번 사건으로 창동그룹은 완전히 박살 나겠는데?”
“그러기는 어려울걸.”
그러나 노형진은 오광훈의 말에 혀를 끌끌 찼다.
“단시간 내에는 힘들 거야.”
“어째서?”
“창동이 워낙 지역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니까.”
그들은 건설업과 주류업이 주력인데, 건설업의 경우는 불매운동의 대상으로 하기는 힘들다.
이미 건설된 아파트는 모두 분양되었으니 끝난 이야기고, 소주는 입맛이 워낙 토착화되어서 그 지역에서는 그 소주만 잘 팔리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 유명한 부산 막걸리 기업 사건도 결국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고 기업가들도 전혀 손해 보지 않았다. 그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착취로 인해 누가 죽든 말든 그것만 먹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곳의 근로자들은 여전히 노예 취급받고 두들겨 맞으며 일하고 있다.
“물론 마이스터가 두고 볼 리는 없지만.”
노형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마이스터가?”
“알잖아? 마이스터는 처음부터 스타 검사를 건드린 놈들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고 있었어. 건드리지 않았다면 모를까, 건드렸다면 확실하게 처분해야지.”
“응? 아하!”
노형진의 말에 오광훈은 그제야 생각났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어쩌려고?”
“간단해. 이제부터 마이스터에서 다른 주류에 대한 무차별적인 할인 행사 지원금을 낼 거야.”
“지원금이라니?”
“말 그대로야. 창동에서 만든 술이 아니라 다른 술을 사는 손님에게 술값의 절반을 마이스터에서 지급하는 거지. 건설 쪽이야 거래하는 재료 납품 회사를 족치면 망하는 건 순식간이고.”
그 말을 듣던 오광훈은 순간 갸웃했다.
“아니, 가게가 아니라 손님에게 현금으로 정산해 준다고?”
“응.”
“아니, 왜?”
“술집에 줘 봤자 양쪽에서 다 가져다 팔 테니까.”
이쪽에서 술집에서 소비하는 술값의 절반을 제공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술집 주인이 적극적으로 ‘창동 거 말고 다른 거 드시죠.’라고 나서기는 힘들다. 사람들의 입맛이 있으니까.
‘창동은 살인마 기업이니 먹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할 수도 없다. 기분 좋게 술 마시러 온 손님들의 기분만 상하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님에게 직접 술값을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
“아하!”
손님 입장에서는 그 술값이 아까워서라도 다른 업체의 술을 마시게 될 거다. 그리고 창동의 술만 파는 가게에는 가지 않게 될 거다.
당연히 가게 입장에서는 손님을 잡기 위해 창동의 술이 아닌 다른 곳의 술을 팔아야 한다.
“그러면 이제 끝난 건가? 창동 놈들은 끝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오광훈은 기나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밖으로 나온 것처럼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노형진은 여전히 죽상이었다.
“일단 한국은 끝났네.”
“한국은 끝났다니? 다른 나라에 뭔 일 났어?”
“났지. 그래서 머리가 아주 깨질 판이다.”
노형진은 저절로 한숨만 나왔다. 진짜로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가장 피하고 싶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기에 노형진은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