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4333)
거래하시죠? (2)
“그런데 아예 감출 생각조차 없구나.”
“일종의 위협일 수도 있고, 이런 나라에서는 아직 정보 조직이 확실하게 발달한 구조도 아니니.”
설사 있다고 해도 두에른이 전 정권에서 만든 정보 조직을 믿을 인간도 아니다.
그는 시장 시절부터 자신의 사설 부대를 만들어서 운영하던 인간이다. 그런 놈이 과연 국가에서 만든 정보 조직을 믿을까?
“걱정하지 마. 별일은 없을 테니까.”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이미 노형진 주변으로는 무장한 경호 인력이 배치되어 있으니까.
“노 변호사님.”
그 순간 손을 번쩍 드는 한 남자.
그는 다가와서 노형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미한이라고 합니다. 여기 새론 지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아미한 변호사님? 직접 나오신 겁니까?”
“상황이 상황이라서요.”
아미한은 씩 웃으면서 노형진과 서세영을 재촉했다.
“가시죠, 눈총에 말라 죽기 전에. 하하하.”
그는 웃으면서 노형진과 서세영을 데리고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갔다.
어차피 일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이미 주고받은 뒤라 그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에 굳이 경계할 필요는 없었다.
아미한은 제법 커다란 지프에 두 사람을 태우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음악을 틀었다.
“뭐, 달리는 차량을 도청할 능력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감시가 심한가 보죠?”
“새론은 두에른과 사이가 안 좋으니까요.”
그나마 새론의 필리핀 변호사들이 굳이 두에른과 척지지 않았기 때문에 살해당하지 않은 거지, 만약 척졌다면 어쩌면 자신들도 죽었을 거라면서 아미한은 너스레를 떨었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네 사람 다 감옥에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 매일같이 가고 있기는 하지만 글쎄요,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필리핀 감옥은 열악하기 그지없으니까요.”
네 사람은 매일같이 말라 가고 매일같이 멍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필리핀 감옥은 열악하기 그지없으니까.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을 수 있도록 요청했습니까?”
“했죠, 벌써 몇 번이나. 하지만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허락을 안 해 주더군요.”
“보복이군요.”
필리핀에는 구치소가 따로 없다.
정확하게는 교도소에서 칸만 나눠서 한쪽은 구치소, 다른 한쪽은 교도소로 쓰고 있다. 당연히 열악하기 그지없다.
“그쪽 상황이 심각한가 보군요.”
“네, 두에른이 집권한 이후로 교도소에 사람을 더 많이 수용해서 공간이 거의 없어졌으니까요.”
한 사람당 잘해 봐야 0.8제곱미터쯤밖에 공간이 안 나오는 상황.
실내에서 자는 건 힘이 있고 권력 있는 놈들뿐이니, 둘 다 없는 놈들은 밖에서 자야 한다.
“실제로 네 사람은 밖에서 비를 맞으면서 자고 있습니다. 만일 필리핀이 열대지방이 아니었다면 벌써 얼어 죽었을 겁니다.”
“먹는 건요?”
“거의 못 먹죠.”
필리핀의 교도소에는 별도의 식당이나 주방이 있는 게 아니다.
마치 한국의 6.25 때처럼, 교도소의 한구석에 솥을 거치해 두고 정부에서 제공하는 벌레 먹은 쌀로 밥을 해 먹는다.
다른 반찬? 그런 게 어디 있나. 진짜 무 한 조각이라도 나오면 다행이다.
‘벌레 먹은 쌀 속의 벌레는 귀중한 단백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사실상 필리핀 교도소의 현실 그 자체인 셈이다.
“그나마도 양이 부족하죠.”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아서 못 먹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구치소에 있는 다른 죄수들에게 두들겨 맞고 빼앗겨서 제대로 못 먹는다고.
“그 정도라고요? 그런데 그걸 간수가 놔둬요?”
“필리핀에 간수가 존재하는 이유는 죄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수가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함인 거지.”
그들이 탈주만 하지 않는다면 교도소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 게 필리핀의 간수다.
“필리핀의 교도소 시설은 한국과 비교하면 열악을 넘어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일걸.”
노형진의 말에 서세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감이 없다니?”
“간단하게 말해서, 진짜로 탈옥하려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는 거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높이 5미터짜리 담? 그딴 건 없다.
가시철조망으로 만들어진 담이 있기는 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가 한둘도 아니고, 그들이 뭉쳐서 무너트리려고 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다.
“그런데 탈옥수가 없다고?”
“그런 시도를 하면 그냥 쏴 버리거든요.”
즉, 교도소라는 내부 공간에서는 뭔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지만, 나가려고 할 경우에는 가차 없이 죽여 버린다는 거다.
그리고 필리핀 정부의 방침상 그건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행위다.
길바닥에서도 경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약상으로 몰아 대가리에 납탄을 박아 버려도 문제가 없는 게 현재 필리핀의 상황인데, 하물며 교도소에서 탈옥하려고 하는 자라면야.
“아마 네 사람 다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자국민조차도 필리핀의 교도소에서 매주 열 명 이상이 죽어 나갈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다.
아파도 치료도 해 주지 않고 그냥 죽을 때까지 냅 둔다.
“거기다가 교도소 안에는 코델09바이러스도 돌고 있으니까요.”
당연히 마스크 따위도 없다.
백신? 중국 백신을 선택한 필리핀이다.
그마저도 양이 부족해서 필리핀의 일반 국민들도 다 못 맞는 상황인데 교도소 죄수들에게 줄 리가 없다.
“최악이네.”
마이스터의 백신은 저항력을 높여 주는 거지 절대 걸리지 않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저항력을 높인다 해도, 사람 몸이 박살 나서 굶어 죽기 직전인 상태에서는 저항력에 쓸 에너지도 없다.
“저희 쪽에서 방을 구해서 네 사람을 옮기는 대신 막대한 보석금을 지불하겠다고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더군요.”
물론 구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 봤자 결국은 작은 호텔 정도일 테고 그 앞에 경찰이나 누가 서 있어서 나가지도 못하겠지만, 그것만 해도 구치소에 있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거다.
“도주의 위험이라…….”
이해는 간다.
아마 지금 필리핀 정부도 이게 셋업 범죄라는 걸 알 거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집부리는 이유는, 두에른이 새론에 한 방 먹은 게 억울해서 복수하겠다고 지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어떻게 해, 오빠? 우리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을까?”
“일단 정부 쪽과 접촉하는 건 불가능할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만나야지.”
“다른 사람?”
“그래.”
노형진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일단은 안전부터 확보하자. 그러고 나서 해결책을 찾아야지.”
“하지만 그런 공간에서 어떻게 안전을 확보해?”
그 말에 노형진은 쓰게 웃었다.
“말했잖아, 필리핀 교도소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필리핀 정부나 간수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그렇게 말한 노형진은 아미한에게 물었다.
“그곳을 관리하는 죄수가 누굽니까?”
* * *
한국에서 죄수가 교도소를 통제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물론 방마다 소위 방장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방을 관리하는 업무를 위탁받은 존재일 뿐이지, 죄수가 교도소 전부를 관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필리핀은 그게 가능하다.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구치소까지 관리한다.
죄수 중 파워가 가장 센 사람이.
“그래서, 나를 만나러 왔다고?”
다른 죄수들과 다르게 상당히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난 제임스는 머리가 반쯤 벗겨진 50대의 남성이었다.
아미한은 이미 잔뜩 긴장한 상황이었다.
“조심하세요. 위험한 사람입니다.”
그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임스. 한국인 네 사람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를 관리하는 죄수.
사실상 교도소장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서열이 가장 높다.
어떤 면에서는 교도소장보다도 서열이 높다. 교도소장은 위법을 저지를 수 없지만 그는 가능하니까.
“흠, 한국인과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제임스. 필리핀 헬라파의 두목으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보스다.
그리고 그가 속한 헬라파는 조직원만 3천 명이 넘는 초대형 폭력 조직이다.
원한다면 죄수고 간수고 다 죽일 수 있는 그런 조직.
그런 조직의 대빵이기에 제임스가 현재 교도소를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실형은 피할 수 없으니까 아예 교도소를 접수한 것.
출소하기 전까지는 나가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는 이 교도소 내부에서는 왕이나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은 1인당 0.8제곱미터 안에서 몸을 부비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교도소 안에 24평짜리 집을 가지고 있다.
물론 제대로 된 벽돌이나 콘크리트 건물인 것은 아니고, 목제 합판으로 지은 집이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냉장고와 에어컨을 비롯한 온갖 전자 기기를 사용할 수 있고, 핸드폰으로 조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간수와 교도소장은 그 사실을 알지만 건드리지 못한다.
건드렸다가는 자신과 가족의 모가지가 날아갈 테니까.
실제로 그의 권력이 어느 정도냐면, 교도소 내부에서의 식량 제공 여부와 자는 공간도 그가 결정한다.
그가 ‘저 새끼 밥 주지 마.’라고 해 버리면 그날부터 그 죄수는 굶어야 하고, ‘저 새끼 안에서 재우지 마.’라고 말하면 그날부터 그는 밖에서 비 맞으면서 자야 한다.
“간단하게 거래를 하죠.”
“어떤 거래?”
“한국인이 네 명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아, 소문의 그 새끼들? 안타깝기도 하지.”
제임스는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한국인이 필리핀 교도소에 들어올 일은 그다지 없으니까.
“셋업 당한 것 같던데.”
“잘 아시네요.”
“뭐, 한때 달달하게 당겼으니까.”
셋업 범죄가 돈이 되는데 폭력 조직이 거기에 손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바람에 이러고 있지만.”
제임스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딱히 그런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놈들의 편의를 봐줘야 하지? 뭐, 이제 와서 셋업 범죄에 대한 후회라도 하라 이건가?”
“그럴 리가요.”
‘그럴 이유가 없지. 후회할 새끼도 아니고.’
애초에 제임스는 최소 형량이 30년은 나올 인간이다.
설마하니 그가 수천 명 규모의 폭력 조직을 이끌면서 셋업 범죄만 저질렀겠는가?
아마 그의 명령에 죽은 사람의 숫자만 백 단위는 넘을 거다.
그럼에도 그가 30년 이하를 자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돈이 많으니까.
재판이 오래 걸릴 뿐이지, 재판장에게 두둑하게 먹여 놨을 것이다.
실제로 아미한도 첫 재판까지 1년 6개월은 걸린다고 이야기했지만 돈만 주면 2개월 안에 재판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저 네 사람이 그 이전에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방이 남는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놈을 위한 방은 없어.”
제임스도 교도소 내부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감된 인원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원의 편의를 봐줘야 한다.
문제는 그 인원들에게 줄 만한 편의 중 하나가 방이라는 것.
“압니다. 그래서 그들과 거래하려는 겁니다.”
“뭐? 미친놈인가?”
“미친놈이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죠. 방 하나를 빌리겠습니다.”
물론 이 방은 교도소의 방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가 살고 있는 24평짜리 집에 있는 방을 의미하는 거다.
감옥을 지배하는 보스가 거주하는 공간. 그곳만큼 안전한 곳은 최소한 감옥 내에는 없을 테니까.
“누가 준대?”
“하루에 1인당 한화로 10만 원씩 드리죠. 필리핀 페소로는 4,000페소 좀 넘을 겁니다.”
“뭐?”
“1인당 10만 원. 그러니까 방 하나에 40만 원입니다. 페소로는 1만 7천 페소쯤 되겠네요.”
한국으로 치면 5성 호텔 가격이지만 지금은 사람 목숨이 급하니까.